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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30일 일요일

[수필] 사랑 만들기, 동서양을 뛰어넘은 협조게임...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8/02/26)



아래의 "증명해봐!" 댓글 이음에 사랑 얘기가 예기치 않게 나오는 바람에 동서양을 뛰어넘은 사랑 만들기 협조게임이 생각났습니다.

미국 동기생 중에 예쁜 금발 여학생 Lucy가 있었습니다. 같은 금발인 선배가 계속 관심을 두고 그 여학생과 사귀고 싶어 했습니다. 청춘에 남녀 사랑만큼 중요한 것이 있겠습니까. 청춘이 아니더라도 파우스트 박사의 경우를 보면, 늙어서도 영혼을 악마에 저당잡히고 사랑을 추구할 정도로 사랑은 인간에게 절실한 것이지요. (저는 괴테의 파우스트를 끝까지 읽지 못했습니다. 괴테에 바탕을 둔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 줄거리를 참조했습니다. 오페라 파우스트는 우리들의 귀에 익은 "보석의 노래"와 "병사의 합창" 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 둘은 조금씩 사귀게 되었는데, 큰 진척은 없었던 모양입니다. 하루는 학생들끼리 맥주를 한잔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그 즈음에 둘 사이가 조금 좋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 선배가 저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맥주를 제법 마셔서 모임이 끝날 무렵이 되면 제가 루씨에게 집에 태워 달라고 요청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루씨가 거절하지 못할 것이고, 자기도 그 차에 슬쩍 함께 타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루씨와 조금 친한 것을 알고 협조를 요청한 것이지요. 저를 먼저 내려주면 둘만 남으니까 그 선배가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계산이었습니다. 저는 흔쾌히 도와주기로 했습니다.

맥주를 마시면서 도와줄 바에 아예 확실히 밀어주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임이 끝나고 나서, 여러 명이 작별 인사를 하는 자리에서 그 선배에게 말했죠.

"I know the TV program, 'I Love Lucy.' Do you love Lucy?"

그 선배는 눈이 휘둥그레해 졌고, 제 서툰 조크에 루씨를 포함하여 모두 크게 웃었습니다. 작전은 차질 없이 진행되어 세 명이 같은 차를 타게 되었습니다.

몇 년이 지나고 나서, 둘이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지금도 잘살고 있을 겁니다. 주위에 비슷한 사례가 있으면 팍팍 밀어 드리시기 바랍니다.

(OO님, 위의 꽃 이름도 혹시 알고 계시면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우리 집 화단에 있는 꽃나무인데 이름을 모르겠군요. 위의 음악은 구노 파우스트 4막에 나오는 "병사의 합창"입니다.)

댓글 1개:

  1. 이준구
    (2008/02/26 18:35) 본인도 꽃과 나무에 대해서는 한 수 합니다. 이 식물은 우리말로 철쭉과의 만병초라고 부르는 rhododendron의 일종이 아닌가 싶습니다. 원래 만병초는 이 사진에서 보는 것보다 잎과 꽃이 훨씬 더 소담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약간 자신이 없네요. 그러나 꽃과 잎 모양은 영낙없는 rhododendron입니다. 미국과 영국에는 rhododendron을 주제로 한 식물원이 꽤 많이 있습니다.

    onegin
    (2008/02/26 21:06) 파우스트를 지난 여름에 큰맘 먹고 읽어 봤습니다만, 솔직히 말해 독일의 대학생들이 왜 참호 속에서 이걸 읽었는지 궁금하더군요. ^^; 괴테를 썩 좋아하지 않아서 그랬던 것도 같습니다. 아주 독일적으로 진지한 센티멘털리스트가 아닌가 싶더군요 -감상주의가 진지해지면 받아들이는 사람 입장에선 좀 많이 부담스럽습니다. -_-;;; 하도 건성으로 읽어서 다 까먹었네요. 파우스트의 첫사랑(?) 이름이 그레트헨(Gretchen)이었던가요? ㅋ

    임형찬
    (2008/02/27 16:28) 왠지 안박사님과 이준구 교수님께서는 통일이 되면 백두산 아래 자연림을 한번 같이 탐방하시면 좋은 추억이 되실 듯 합니다.

    이준구
    (2008/02/27 18:35) 백두산 부근의 자연림에 펼쳐져 있는 야생화 군락.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군.

    ^^
    (2008/02/27 21:51) 독일에서는 구노의 '파우스트'를 알아 주지 않는다군요..위대한 문호 괴테의 작품에 감히 누가 곡을 붙일 수 있느냐면서..너무나 신성하기 때문에 정작 독일인들은 손대지 못하고 있는데 구노는 이방인이었기에 용감무쌍하게 오페라로 만들 수 있었겠지요..사실 괴테는 오늘날 '파우스트'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등의 작품때문에 작가로만 알려져 있지만, 그 당시 독일의 유명한 정치가였고, 다방면에 지식과 호기심을 가진 학자였습니다..우리나라로치면 비슷한 시대를 산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과 비교한 책도 있지요..물론 괴테는 살아서 모든 영화를 다 누리고 살았고, 죽어서도 '파우스트'로 불명의 명성을 얻었지만요..베버가 말했다는 "정치가는 메피스토와 계약했지만 항상 천사적 이상의 실천을 갈망하는 파우스트 적 존재이다"..이표현만으로도 '파우스트'가 독일 지성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짐작할만합니다..

    안병길
    (2008/02/27 22:08) 백두산에 선배님을 모시고 가면 제가 많이 배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조만간 백두산 북한 쪽도 관광할 수 있다고 하죠?

    괴테의 "파우스트"를 오페라로 작곡한/시도한 것은 여럿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중에서 구노의 작품이 제일 유명하지요. 불어로 작곡되었으니 독일인들이 심드렁한 것은 이해가 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독어 보다는 불어를 선호하는 편이라서 구노 작품에 대만족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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