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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10일 목요일

[단상] 교직에 있는 어느 후배의 편지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8/12/22)

연말이면 이런저런 모임이 많습니다. 저도 우리나라에 있으면 여러 송년 모임에 바쁜 밤을 보내고 있을 텐데 이곳은 그런 모임이 별로 없어서 조용히 한 해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파면/해임된 교사들에 대한 언론보도를 접하면서 요즘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상태인데, 중고등 교직에 있는 어떤 후배에게서 두 통의 편지를 지난주에 받았습니다. 송년 모임의 한 참석자가 교사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을 얘기했던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우리 교육의 불안한 모습을 보여주는 글입니다. 생각해볼 만한 주제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포스팅을 허락해준 그 후배에게 감사하면서 시작합니다.

<시작>
어딜가나 자녀 교육 문제는 가장 큰 화두이고,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이 왜 이리도 힘든지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되었는지 답답하지요.

그런데 교육문제를 이야기 하는 도중에 교직에 있지 않는 어떤 근엄한 후배가 갑자기 뜬금없이 "강남에 선생들이 많이 몰려 사는 값싼 동네"라는 말을 꺼내면서, "저기 일원동 저층 아파트 값싼 동네에 선생들이 많이 몰려 산다", 또 "전세가 아주 싸다"고 하면서, 연거푸 반복해서 "선생들이 그 값싼 동네에 많이 산다"고 강조 하더군요. 그 어조와 표정은 농담이 아니었습니다.

선생인 제 입장에서 선생님도 아닌 선생들이 무더기로 비하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교육문제 얘기하다, 갑자기 값싼 동네에 몰려사는 선생이라니요. 그 의도가 무엇인지, 아마 무의식속에 잠재되어 있던 교사에 대한 인식에 그런 발언을 낳았나 봅니다.

집값이 싸고 안 싸고가 문제가 아닙니다. 이런 발언은 일반인이 교사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갖고 있느냐를 단적으로 나타내주는 예이지요. 낯선 모임에 가면 '선생들' 욕하는 소리에 얼굴을 들기가 힘듭니다.

마치 돈없는 교사가 강남 한 구석에 비집고 전세들어 와 부유층에 끼어 살려고 발버둥 치는 매우 모멸적이고 경멸적인 언사로 들렸습니다. 같은 말이라도 '아'와 '어'가 다르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지요.

그 동네에 교사만 사는 것도 아니고, 택시 운전사, 교수, 상점주인 등,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교사들은 서울 어디에나 골고루 살고 있습니다. 상계동 목동 송파구... 부자인 교사도 있고 가난한 선생도 많습니다.

우리 현실은 경기가 좋을 때는 교사는 관심에도 없다가, 경기가 어려울 때는 교사 집단은 철밥통이라고 매도되며 숱한 뭇매를 맞습니다. 사실 제가 봐도 한심한 교사 많구요, 교직 사회에는 큰 수술대에 올라야 할 부분이 상당합니다. 어떤 획기적인 혁명이 일어나서 게으르고 실력없고 열정없는 교사는 물러나고, 아이들도 사람간의 예의나 배려, 기본적인 인성을 갖추고, 밤늦게까지 학원에 가지 않고, 선행학습이란 것을 없애고, 학교는 진정 배움의 장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교사는 돈이 없어 값싼 집에 사니까 결국 힘이 없습니다. 요즘은 아무나 교사에게 대듭니다. 특히 가정에서 교사 비하 발언에 대해 많이 접해 본 아이들일수록 학교에 와서 안하무인으로 교실을 뒤집어 놓습니다. 그런 학생들은 자라서 역시 그 잘난 부모들까지 무시하지요.

제가 18년 전에, 프라이드(이건 자동차입니다)를 몰고 교정을 빠져 나오는데 한 학생이 "무슨 돈으로 차 샀어(요)?" 합니다. 얼마 전 조선일보에도 "학부모 노릇하기 힘들다"는 교사 고발 기사가 있었습니다. 참고로 저는 아직도 (그리고 앞으로도) 촌지 한 번도 받아본 적 없습니다.

제가 좋아하고 즐겨 보는 미국 드라마가 있어요. - "The West Wing"
백악관의 west wing 에서 근무하는, 대통령을 중심으로 그 보좌관들이 등장하는 정치 드라마입니다. 대부분 하바드, 예일, 버클리 법대 등등을 졸업한 미국 최고의 엘리트들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던 대통령과 국내는 물론 세계 정치를 논하며 매일 매일 숨가쁘게 살아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 속에 아주 왜소하고 늙고 주름이 조글조글한 한 할머니가 대통령의 비서로 있습니다. 그 할머니는 두 아들을 군대에 보낸 후 전쟁에서 모두 잃고, 남편과도 사별하고, 평생을 중고차만 몰고 다닌, 경제적으로 그리 넉넉지 않은 전직 교사입니다. 대통령의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지요. 대통령에게는 누나 같은 존재로 사소한 부분까지 배려해 주고 챙겨주지만, 때로 대통령이 괜한 고집을 부릴 때는 아무도 안 보는 데서 대통령을 호되게 야단도 치는 이 할머니가 어느날 드디어 평생 처음으로 새 자동차를 구입하게 됩니다. 다른 직원들 모두가 자동차를 싸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왜 비싸게 샀느냐며 도와주겠다고 해도 이 꼿꼿한 할머니는 정당한 값을 주었을 뿐이라며 거부합니다.

그 새 차를 운전하고 출근하는 첫 날 아침, 이 할머니는 어느 과속 운전자의 부주의로 사고를 당하고 그만 세상을 뜨고 맙니다. 교회에서 장례식을 마친 후 대통령은 모든 사람을 교회 밖으로 나가게 한 후, 선생님에게 새 자동차 한 번을 타보는 호사로움 조차 허락하지 않았던 무자비한 하나님을 향해 욕설을 퍼붓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아버지가 교장이었던 그 사립고등학교 시절에 반항의 표시로 했던 것 처럼, 담배를 피우고는 그 꽁초를 교회 바닥에 버려 짓밟습니다. 그 후로도 대통령은 종종 선생님의 빈 자리에 쓸쓸해 합니다.

물론 드라마이긴 하지만 여기에는 "나에게는 스승이 없다"고 울부짖고 전국의 모든 교사들을 학생들을 볼모삼아 학부모로부터 촌지나 울궈먹는 사기꾼 집단으로 매도하여 교사의 권위를 짓밟아 뭉개고 우리나라 교육문제의 원인을 나약한 교사의 책임으로만 전가하고, 그 후 교실을 봉숭아 학당보다 더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은 우리 나라 교육부 장관같이 똑똑하신 분은 없습니다. 이 드라마가 추구하는 가치가 바로 이 작은 선생님의 일화에 그려져 있어서 저는 좋습니다.

좋은 학교 가려고 대부분의 사람들 바둥거리지만, 그 목적이 자기보다 못난 사람을 비하하고, 반대로 자기 보다 공부 열심히하고 잘 살고 많이 배운 사람을 어떻게든지 끌어 내리려 하는 사회 분위기에서는 그 궁극의 결과가 어찌될지 자못 무섭습니다.

저는 우리의 아이들이 제대로된 성품을 갖춘 인간으로 자라기 위해서는, 그런 도덕 문제를 시험지로 풀 것이 아니라 우리 어른들이 일상에서 몸으로 실천하며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먼저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 겠지요.
다가오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고 행복하시기를 빕니다.
<끝>

2009년 9월 18일 금요일

[독후감] 보배가 된 구슬 서 말: <36.5℃ 인간의 경제학>

대학교수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단 두 단어로 답할 수 있다. 그것은 교육과 연구이다. 표현은 간단하게 했지만, 두 단어가 뜻하는 바는 깊고 넓다. 둘 중 하나라도 제대로 하면 좋은 대학교수로 평가해도 괜찮다는 것이 필자의 평소 생각이다. 그만큼 잘해내기 어려운 것이 교육과 연구이다. 이 둘을 모두 제대로 해낸 책이 나왔다. 서울대 경제학부 이준구 교수의 <36.5℃ 인간의 경제학>이다. 흩어져 있던 구슬 서 말이 잘 꿰어져서 보배가 되었다는 감상이 필자가 이 교수의 새 연구 결과를 처음 만난 느낌이었다.

필자는 정치학을 공부했지만, 이 교수의 새 저서가 다루는 행태경제학의 주 관심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정치학의 합리적 선택이론이 인간의 합리성을 기본 가정으로 채택하기 때문이다. 사회과학에서 합리성 가정은 유용한 것이라는 견해를 필자는 계속 갖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항상 합리적이지는 않다는 사실을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합리적이기도 하고 비합리적이기도 할 것이다. 사회과학이 지향하는 일반화된 지식을 축적하는 데 합리성 가정이 비교우위가 있다고 생각해왔지만, 비합리적인 인간 행위를 사회과학적으로 분석할 필요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사실, 비합리적 인간에 대한 분석은 비경제학 사회과학 분야가 이미 해왔던 것이다. 대표적으로 심리학이 그랬고, 정치학도 역사기술적인 연구방법론을 채택한 연구에서 비합리적 정치 행위를 분석해왔다. 근현대 경제학도 예컨대 아담 스미스부터 인간의 비합리성 문제를 인지했지만, 심리학이나 정치학만큼 비합리성을 폭넓게 다루지는 못했다. 그 결과, 경제학이 합리성에 기반을 둔 과학적 지식을 축적하는 데 성공했지만, 왠지 뭔가 빠진 듯한 찜찜한 기분을 많은 경제학자가 느꼈던 것으로 안다. 최근 주목받는 행태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이 바로 그런 석연찮은 기분을 해결하려는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제1장 '경제적 인간'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실상과 허상).

합리성과 비합리성은 어쩌면 동전의 양면과 같이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처럼 인간과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인간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하여 그 둘을 모두 잘 분석하면 금상첨화이다. 이런 면에서 정치학 배경을 가진 필자는 합리성에서 출발하여 비합리성 영역까지 과학적 연구를 확대하는 경제학을 부러운 눈초리로 쳐다봤었다. 그 부러움에 이제는 "학문적 질투"까지 느끼게 하는 저작이 이 교수의 <36.5℃ 인간의 경제학>이다.

이준구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알아주는 대표적인 주류 미시경제학자이다. 이 교수가 집필한 <경제학 원론>(이창용 교수와 공저)과 <미시경제학>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채택하는 주류 경제학 교과서이다. 이 교수도 합리적 호모 이코노미쿠스를 가정한 경제 분석을 주로 해왔음을 알 수 있다. <미시경제학>에서 비합리성 문제를 다룬 행태경제이론이 새로 소개된 것은 바로 작년에 개정 출판한 제5판인 것을 참작하면 그 점은 명백하다. 따라서 경제학의 합리성 대가가 비합리성 문제를 제대로 파헤치는 연구를 우리 경제학계에 최초로 내놓았다는 점에서 그 가치는 더욱 빛난다. 어설프게 비합리적 경제적 인간만을 과도하게 부각시키려는 반쪽 짜리 연구가 아니라는 말씀이다. 우리나라 경제학계에서 합리성 연구와 비합리성 연구가 상호보완하는 길을 보여주는 첫 번째 행태경제학 저서로서 그 높은 가치를 일단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 교수의 <인간의 경제학>은 재미있다. 허무 개그에서 느끼는 그런 재미가 아니고 우리가 아직 생각하지 못한, 허술한 경제적 인간을 적나라하게 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큰 종이를 50번 접으면 그 높이가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의 정답에 당황하면서 재미있다고 느끼는 독자를 쉽게 상상할 수 있다(1-2 "우리는 얼마나 합리적일까?"). 필자와 같이 합리성에 찌든 사람도 동네 슈퍼마켓에 가서 "Buy One, Get One Free(하나를 사면 같은 제품 하나는 공짜)"라는 안내문을 보면 그 물건 두 개를 금방 장바구니에 주워담는데, 왜 그런지를 이 교수는 재미있게 설명한다(3-2 "슈퍼마켓 백배 즐기기"). 어떤 때는 단돈 만 원에 절절매지만, 똑같은 사람이 몇십 만 원을 펑펑 쓰고도 태연한 이유를 깨닫고 미소 짓고 싶으면 이 교수 책을 읽으면 된다(3-6 "돈마다 주소가 따로 있다?") 어렸을 때 읽었던 교과서 해설용 만화책을 보는 듯한 재미에 빠져들 수 있는 책이다.

<인간의 경제학>은 어렵게 보이는 경제를 쉽게 설명한다. 경제학의 할인율 개념이 생소한 독자도 제7장 "내일을 향해 쏴라"를 읽으면 쉽게 그 뜻을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주식 투자에 대한 제8장과 금융시장의 특이현상을 소개하는 제9장도 어렵게 느껴왔던 실물 경제의 이모저모를 쉽게 풀고 있다. 이 교수 저서의 일관된 특성인 쉽게 설명하기가 신간에서도 돋보인다.

이 교수의 저서에서 무엇보다 두드러지는 것은 제목과 걸맞게 다양한 인간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제2장 "주먹구구는 우리 삶의 현실이다"에서는 대충 살아가는 휴리스틱 인간을 만난다.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딱딱한 호모 이코노미쿠스가 아니고, 예컨대 배우자를 선택할 때 다양한 휴리스틱을 활용하는 현실형 인간을 만날 수 있다(2-4 "첫눈에 반한 사람을 결혼 상대로?"). 제4장에서는 계산기가 아닌, 갈대와 같이 흔들릴 수 있는 연약한 인간을 만나기도 한다. '귀차니즘'에 빠진 우리 자화상을 볼 수도 있다.

제5장 "우리는 얼마나 이기적인가?"에서는 주류 경제학이 가정한 이기적 인간과는 다른 인간 유형을 만난다. 지금까지 있었던 여러 실험 결과를 참조하여 인간이 생각보다 덜 이기적임을 보여준다. 또한, 경제학 교과서의 가정과는 달리 남이 가져가는 몫에 따라서 자신의 효용이 바뀌는 인간형도 본다. 제6장 "돈이 전부는 아니다"에서는 공정성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인간을 만난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 근로자의 임금을 무조건 내리려고만 하는 고용주는 6-3 "받은 만큼 일한다"를 꼭 읽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런 다양한 인간의 소개는 경제학이 엄정한 분석을 위해서 활용하는 ceteris paribus(with other things the same, 다른 조건을 동일하게 가정함)를 파헤치고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하게 합리적 인간이라고 가정하여 생기는 여러 문제에 대해서 행태경제학의 다양한 인간관은 그동안 미흡했던 설명을 보충하는 방안을 타진한다.

지금까지 설명한 장점을 두루 갖춘 <36.5℃ 인간의 경제학>은 교육적으로도 매우 높은 가치를 갖고 있다. 이 교수는 상대적으로 연구보다는 교육에 더 관심을 둔다고 스스로 밝힌 바 있다. 더 전문적으로 집필할 수도 있었겠지만, 일반인이나 청소년이 읽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책 내용을 꾸린 것은 아마도 교육에 대한 높은 개인적 관심 때문일 것이다. 성년뿐만 아니라 청소년까지 염두에 둔 것은 사회 교육이라는 측면을 일단 고려했을 텐데, 그것이 경제학 연구 자체에 미칠 파급 효과도 무시하지 못한다.

이 교수는 노벨 경제학상을 받지 못한, 또한 앞으로도 가까운 장래에 받지 못할 것으로 보이는 우리 경제학계의 실상에 실망을 가끔 토로했다. 노벨상을 받으려면 노벨상을 받을 만한 저변이 형성되어야 할 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이 교수의 행태경제학 저서는 우리 경제학의 저변을 넓히는 데 크게 이바지할 것은 거의 틀림없다. 이것은 이 교수 홈페이지 게시판에 이미 올라온 어떤 고등학생의 행태경제학에 대한 관심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먼 훗날 대한민국 출신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가 이 교수의 저변 확대 노력의 긍정적 파급 효과로 탄생할 수도 있다고 본다. 이 글 서두에 말한, 교육과 연구를 모두 해낸 책이라는 설명이 바로 그 의미이다.

이 교수의 연구가 완벽한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 경제학계의 최초 행태경제학 저작이라서 당연히 더 연구하여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이 교수가 밝혔듯이 앞으로 연구해야 할 과제는 무궁무진하다고 볼 수 있다. 합리성과 비합리성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기 마련인데, 그 해석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연구과제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예컨대 공정성을 장기적 합리성으로 해석할 여지는 없는지, 일정 기간의 기다림을 편익계산으로 해석할 수는 없는지 등은 주류 경제학과 행태경제학이 협력해서 검토해볼 만할 것이다.

우리 경제학의 발전은 이 교수 혼자 힘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이 교수도 더 노력해야 할 것이지만, 동료나 후학들이 이 교수의 학문적, 그리고 교육적 취지에 힘을 보태거나 동참하여 뭔가 작품을 만들어내고자 용맹정진해야 할 것이다. 이 교수의 <36.5℃ 인간의 경제학>이 그 기초 토양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먼 훗날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또한 그렇게 되기를 희망한다. 이런 중요한 학술적 의미와 함께 교양서로도 높은 가치가 있는 이준구 교수의 신간을 꼭 읽어보시길 권한다.

2009년 9월 15일 화요일

[독후감] 어느 등대지기의 사회비평: "쿠오바디스 한국 경제"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9/05/22)

사회지도층 지식인의 역할은 어두운 바다에서 배가 좌초하지 않도록 등불을 밝혀주는 등대지기의 역할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그 등대지기를 떠오르게 하는 서울대 경제학부 이준구 교수의 사회비평 모음이 출간되었다. "쿠오바디스 한국 경제"는 현재 우리 사회가 당면한 암초가 무엇인지를 탄탄한 논리로 밝혀주는 등대라는 감명을 준다.

자유민주주의의 대전제 하에서 사회비평을 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작업이다. 그것은 자유민주주의가 인간사의 모든 면을 꿰뚫는 절대적인 원리를 신봉하지 않는 근본적인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사회비평도 자유민주주의에서는 보는 관점에 따라서 그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그렇다면 바람직한 사회비평은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하는지 애매할 수 있다는 문제점이 금방 떠오른다. 이준구 교수의 "쿠오바디스 한국 경제"는 바람직한 자유민주주의적 사회비평으로서 갖춰야 할 조건을 훌륭하게 충족시키고 있다.

먼저 이 교수는 자신의 열린 생각을 독자들에게 제시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

"제 말만 옳다고 주장할 생각은 꿈에도 없습니다.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p. 13)
이런 열린 사고방식은 자신의 견해만 옳은 것이라고 강변하는 닫힌 주장과는 뚜렷하게 구분된다. 다른 주장이 더 적절할 수도 있고, 심지어 자신의 주장이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놓는 자세는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교수는 이런 개방적 자세를 견지하면서 대통령과 정부에게도 같은 마음가짐을 갖추도록 당당하게 요청하는 것이다.

"제가 이 자리를 빌려 대통령과 현 정부에 대해 간곡하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말보다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의 말을 더 열심히 듣도록 노력해달라는 것입니다." (p. 325)
소통을 통해서 중지를 모으는 지혜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점을 시의적절하게 제시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의 열린 사고방식이 흐리멍텅함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수십 년 동안 경제학 연구에 매진하여 축적한 지식을 활용하여 이 교수는 자신의 주장을 뚜렷하게 밝힌다. 무슨 주장을 하는지 불분명한 시론을 흔히 접할 수 있는데 이 교수의 사회비평에서는 그런 애매모호함은 없다. 종부세에 대한 이 교수의 다음과 같은 단호한 자세는 단적인 예이다.

"만약 지금 계획된 그대로 종부세가 부과되기만 한다면 주택시장 안정에 확실한 효과가 날 것이라고 자신 있게 예측할 수 있다. 나의 학문적 명예를 걸고 어느 누구와도 자신 있게 내기를 할 용의가 있다." (p. 87)
만약 종부세가 시행된 이후에도 주택시장 안정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이 교수는 스스로 틀렸음을 인정해야만 되었을 것이다. 여러 복잡한 조건을 나열하여 예측이 빗나갔어도 빠져나갈 여지를 만들어놓는 방식이 아니다. 이렇게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여 주장의 근간을 밝히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것이다.

대운하, 교육, 주택시장, 한미 FTA 등의 다른 주제에서도 이 교수는 예의 명쾌함을 보여주고 있다. 명쾌함과 더불어 이 교수 특유의 솔직함도 빛이 난다.

"경제학자인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이상할지 모르지만, 비용-편익분석(cost-benefit analysis)은 그다지 과학적인 분석 방법이 아니다. 편익과 비용을 제 맘대로 조작할 수 있는 수많은 편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p. 28)
상기 내용은 재정학을 전공하는 경제학자로서 쉽게 할 수 있는 주장이 아니다.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어서 발등을 스스로 찍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대운하의 경제적 효과에 대한 터무니없는 뻥튀기 연구결과를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서 국민이 알고 있어야 되는 배경지식으로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담백한 솔직함으로 인하여 이 교수 주장에 대한 신뢰가 더 생긴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 교수는 "좌빨"이라는 망발성 인신공격을 많이 받았는데, 그의 글들을 정독하면 중용의 지혜를 견지하는 지식인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종부세 근간의 유지에 찬성하고, 대운하는 반대하며, 신자유주의적 교육문제 해법에 일침을 놓는 등 현 정부를 비판하는 견해를 주장하였지만, 이 교수 자신이 밝혔듯이 그런 주장은 좌나 우와 같은 이념적 잣대에 의해서 개진된 것이 아니다.

한미 FTA의 전반적 기조에 찬성하는 뜻은 우파라서 나온 것이 아닌 것도 물론이다. 경제학적 지식에 근거하여 국민 다수의 편익 증진에 도움이 될지 안 될지가 판단의 기준이며, 그것이 바로 중용의 지혜이다. 정파나 당파에 맹종하여 갑론을박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는 세태에서 중용의 지혜로 우리 사회의 중심을 잡으려는 이 교수의 노력은 정말 소중한 것이다.

중용의 자세는 미국을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해서도 드러난다.

"시장과 정부 사이의 적절한 역할 분담이란 문제에는 정답이 있을 수 없다. 나라에 따라 그리고 시대에 따라 그 답이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미국 모델이 마치 모범답안이라도 되는 양 그저 베껴오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제 미국 모델이 가진 한계가 명백해진 이상 그것을 베껴오는 전략에도 근본적 수정이 필요해졌다." (p. 184)
적절한 보완책을 전제한 한미 FTA에 찬성하지만, 미국의 신자유주의 경제가 불러온 금융위기를 날카롭게 지적하는 이 교수의 견해를 참조하면 미국식을 편애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상대적으로 멀리 하는 것도 아니다.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뉴욕주립대 교직에 있었던 경력을 고려하여 이 교수를 미국과 관련시켜 섣부르게 평가하는 예도 있는데, 정확한 평가로 볼 수는 없다.

이 점은 과도한 영어교육에 대한 이 교수의 통렬한 비판에서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 및 자본주의 체제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상대적으로 약한 다수 구성원에 대한 배려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 문제의식을 잘 드러내는 이 교수의 주장을 접할 때마다 어두운 바다에서 등대를 만난 듯한 반가운 마음이 든다.

"최소한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계층에 있는 사람들만은 자신의 편협한 이해관계에서 벗어나야 한다. 스스로 무지의 장막 뒤에 가려지는 상태를 선택해 불편부당하고 공정한 자세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p. 142)
"시장의 원리를 도입해 경제와 사회를 활성화한다는 아이디어 그 자체는 전혀 나무랄 데 없다. 문제는 이념의 노예가 되어 시장은 좋고 정부는 나쁘다는 식의 맹목적 사고를 한다는 데 있다. 시장원리의 도입이 때로는 서민들의 삶을 한층 더 팍팍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p. 170)
"다가오는 새해는 좀 더 밝고 편안했으면 좋겠다. 나날이 쪼그라들어 가는 서민들의 주머니가 두둑해질 수 있는 기적을 바라고 싶다. 소수의 이익이 아니라 전 국민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정부를 보고 싶다." (p. 189)
"대학은 입만 열면 3불정책의 폐기를 주장하고 있지만, 자기 대학만 잘되자는 이기주의가 그 밑에 깔려 있다... 대학이 입시의 기본틀을 짤 때 사회적 파장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이기적인 관점만 강조되는 현실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p. 201)
스스로 시장주의자로 고백한 이 교수는 우리 사회의 저변에 이기주의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사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기주의가 편협한 것이 되면 안 된다는 점을 사회지도층에 있는 지식인으로서 토로하는 것이다. 지식인의 양심은 이런 것이라고 모범을 보여주는 듯하다.

사회비평은 일반 국민이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지고의 지식이라도 난해하면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교수의 사회비평은 고학력자가 아니더라도 정독만 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심지어 어려운 경제학 용어도 그 핵심에 금방 다가갈 수 있도록 해준다. 종부세에 대한 헌재의 결정이 가진 문제점을 "결혼중립성"과 "수평적 공평성"으로 설명하는 부분과 주택시장의 수요와 공급이 가진 속성에 대한 통찰을 읽으면 이 점을 잘 느낄 수 있다.

지금까지 제시한 열린 생각, 명쾌함, 솔직함, 중용의 지혜, 약자 배려의 양심, 쉬운 설명을 모두 갖춘 자유민주주의적 사회비평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그런 요소들을 두루 갖춘 이준구 교수의 "쿠오바디스 한국 경제"는 보기 드문 훌륭한 사회비평이라는 감상을 강하게 받는다.

에필로그에 토로한 이 교수의 불편한 감정은 등대지기 역할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가늠하게 해준다.

"솔직히 말해 사회적 문제와 관련된 활동을 할 때는 매우 피곤하고 불편한 심정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에게 지난 1년은 그 어느 때보다 피곤하고 불편한 한 해였습니다." (p. 327)
등대가 필요 없는 사회가 되면 이상적이겠지만 현실성은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등대지기인 이 교수가 더 편안하게 등댓불을 밝힐 수 있는 미래가 펼쳐지면 좋겠다. 그런 미래가 펼쳐지지 않으면, 대단히 미안합니다만 힘드시더라도 우리 사회를 위해서 등댓불을 계속 비춰주십사라고 부탁드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2009년 7월 31일 금요일

[수필] 사회과학의 재미

제가 고등학생이었을 때는 2학년에 올라가면서 문과와 이과를 나눴습니다. 한 학년에 반이 10개였는데, 이과가 7반, 문과가 3반이었습니다. 저는 주저 없이 문과를 선택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과를 택해서 의사가 되거나, 컴퓨터 관련 공학자가 되는 것이 더 적성에 맞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가끔 듭니다만, 그때는 외교관이 되고 싶어서 문과를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경로가 서울대 사회과학계열, 외교학과, 외무고시, 그리고 외교관으로 활동하는 것이었죠.

아버지는 제 선택에 전혀 조언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제 자유를 존중해주신 것이고, 다르게 보면 구체적으로 조언하실 만한 정보가 없어서 그냥 방임하신 면도 있습니다. 제가 서울대 사회계열에 합격하고 외교학과로 들어간 후에서야 아버지는 제 진로에 대해서 회고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길이는 법대로 갔어도 좋았을 텐데..."

미리 말씀하셨다면 제가 법대에 원서를 냈을지도 모르죠. 지금은 듣보잡(그 듣보잡은 아닙니다!)이지만, 고등학생일 때 제가 공부를 조금 했습니다.^^ 그때는 예비고사 제도였죠. 예비고사 전국수석이 부산 출신이었습니다. 그것도 집이 광안리였습니다. 제 고향이 광안리 아닙니까. 집에 확인전화가 오기도 했습니다. 혹시 수석 한 것 아니냐고... ㅋㅋㅋ 전국수석은 차치하고, 학교에서 수석도 못했습니다. 그래도 재수는 안 했습니다. 본고사 수학문제가 매우 어렵게 출제되었는데, 저는 운 좋게도 몇 문제를 풀 수 있어서 그럴 듯한 성적으로 사회계열에 합격했습니다.

유치원 때부터 친구인 의사가 있습니다. 의대로 진학하여 꿈을 이뤘죠. 서울에 가면 그 친구 병원에 꼭 놀러 갑니다.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습니다. 수술 한 건 하고 나면 대부분은, 행복이 증가하는 사람이 한 명 탄생하거든요. 자신도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서 매우 뿌듯하게 생각합니다. 자칭 예술가죠. ^^

사회과학을 공부하면 그런 뿌듯함을 느끼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공부하면 할 수록 이것도 맞는 것 갖고, 저것도 옳은 것 같아서 뭐가 뭔지 헷갈릴 때가 흔히 있습니다. 인간사가 그렇지 않습니까. 최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해서도 보는 시각에 따라서, 서거가 되기도 하고, 사망도 되고, 자살이 되기도 하죠. 각자 마음과 표현의 자유가 있으니까요.

사회과학 교수가 되면 교육과 연구에서 보람을 찾으면 됩니다. 사실, 직업 한도 내에서는 그것이 가장 바람직한 행복 찾기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연구는 반드시 어려운 전문 논문용 연구가 아니더라도, 예컨대 일반인을 위한 해설서라든지, 학생교육을 위한 훌륭한 교과서를 집필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그런데 인간의 욕심도 있죠. 교육, 연구에 덤으로 자신의 아이디어가 정책에 반영되어 사회가 더 발전하면 더 좋은 것이죠. 그런 욕심이 없는 학자를 찾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나라 출신 이공계 학자들은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에서 활동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그러나 사회과학자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 학위를 하고 최종 종착지는 우리나라 직장을 선택하죠. 저도 그랬습니다. 첫 직장은 미국 대학교였지만, 영 재미가 없었습니다. 영어로 교육하려니 기본은 가르치겠는데, 강의만 마치고 돌아서면 뭔가 허전한 것입니다. 우리말로 가르쳤으면 더 잘 설명할 수 있었을 텐데라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미국에서 정년을 보장받으려면 허접한 논문 여러 개보다 똑똑한 자식 한둘이 더 위력을 발휘합니다. 우리나라에 대해서도 설을 매우 잘 풀면, 미국 정치학 학술지 랭킹 1위인 American Political Science Review에 논문을 게재할 수 있겠죠. 그런데 학술지 제목을 보십시오. American으로 시작합니다. 물론 미국 정치학회 학술지라서 그렇지만, 내용도 USA 위주입니다. 지금까지 그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한 우리나라 출신 학자는 한 손에 꼽습니다.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 학술지에 한 편 실으면 가문의 큰 영광이 됩니다. 신촌 모 대학의 제 친구가 오래전에 한 편 실었습니다. 저는 그 친구에게 무조건 실력을 인정한다고 했습니다. 부러비~라고 말했습니다. ^^

미시간 촌구석에서 저 같은 듣보잡이 아무리 떠들어봐야, 워싱턴 DC에서는 들은 척도 안 합니다. 당연하죠. 미국에 학자가 얼마나 많은데요. 그중에서 실력이 뛰어나고, 또 정책 입안자들이 고르고 골라서 학자들의 주장을 듣습니다. 극동 아시아에서 온 촌놈이 워싱턴 쪽에 먹히는 한 소리를 내놓는 것은, 저로서는 고양이가 쥐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교수가 되면 상황은 급반전합니다. 왜일까요? 실력이 갑자기 좋아져서일까요? 아닙니다, 아닙니다. 학자 숫자가 적어서 그렇습니다. 우리나라 인구가 4천 5백만 정도죠. 미국은 약 3억입니다. 대충 7배라고 합시다. 미국 학자수는 7배보다 훨~씬~ 많습니다. 대학교 수만 비교해도 뻔한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게다가 소위 일류 대학교라는 학교로 범위를 좁히면, 큰 방 하나면 해당 정치학자 모두 모을 수 있습니다. (물론, 소위 일류대학 교수라고 해서 더 실력이 좋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지금은 이전보다 경쟁이 제법 생겼다고 하지만, 학자 숫자 자체가 적으면 제대로 된 경쟁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대학교 교수 숫자는 더 늘어나야 합니다. 대운하니, 4대강이니, 그런 데 돈을 쓸 것이 아니라, 일부라도 비정규직 대학교원을 정규직으로 바꾸는 데 돈을 쓰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학자들 사이에 경쟁도 생기고, 지식의 축적이 일어나서, 장기적으로 우리나라 발전에 도움이 됩니다. 돈 쓰고 환경 파괴하는 것과 비교해 보십시오. 얼마나 좋습니까.

사회과학을 연구하는 학자는 주로 연구와 강의를 통해서 자신의 철학과 주장을 관철합니다. 그렇지만 때에 따라서 신문에 시론을 쓰든지, 일반인을 대상으로 책을 내서 사회를 상대로 홍보하기도 하죠. 이럴 때, 더 많은 사람이 공감해주면 더 행복해지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그런데 맥이 탁 풀릴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주장은 올곧은데 비주류가 될 때입니다. 많은 사람이 참 옳은 말이라고 칭찬을 해주는데, 현실 정책으로는 반영이 되지 않을 때입니다. 이럴 때도 신이 난다면, 무골호인이죠. 성인의 반열에 올라도 됩니다. 그런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바람직한 사회는 그런 분이 비주류가 되지 않는 사회일 것입니다. 그래야 사회과학을 제대로 하는 재미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오늘도 두서없이 주저리주저리 했습니다. ^^

(사진 출처: 서울대 경제학부 이준구 교수님께서 직접 촬영하신 것입니다.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2009년 7월 24일 금요일

[자유] 눈물 나는 이야기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9/07/20, http://jkl123.com/)

어느 고등학교 3학년 학생과 담임 선생님의 이야기입니다. 공부를 참 잘하는 학생이랍니다. 거의 모든 과목에서 1등급 실력을 갖추고 있는데, 영어만은 1등급이 아니고 2등급이랍니다. 왜인지 아십니까? 집안이 가난해서 그렇답니다. 영어 과외에 돈을 많이 쓸 형편이 안되는 것이죠. 하루는 학생이 담임 선생님께 물었답니다.

"선생님, 파이 드셔 보셨나요?"
"무슨 파이? 파이도 종류가 많은데... 애플 파이, 피칸 파이..."
"애플파이요.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어요..... 커다랗고 둥근 파이를 앞에 놓고 한번 잘라서 먹고 싶어요."
"....."

그 학생의 꿈은 장차 서울대학교에 진학하고, 외국에도 나가서, 국제적으로 살아 보는 것이라고 합니다.

담임 선생님은 코스트코에서 애플파이를 사서 그 학생에게 선물했다고 합니다. 그 학생은 무척 당황하면서 말도 잘 못하고 우물쭈물했다고 합니다... 서울대 근처에서 벌어진 실화입니다.

서울대학교... 영어가 조금 떨어지는 가난한 학생들도 많이 뽑아주세요.
그것이 우리 헌법의 교육평등 정신에 맞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