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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22일 토요일

[수필] 바닷가 수녀님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8/10/04)
사진: http://cyw.pe.kr/xe/files/attach/images/17863/158/078/P6013666.jpg
이해인 수녀님의 편지,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부산 광안리 바닷가에서 산 쪽으로 10~15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숲 속에 조용한 수도원이 있습니다. 성 베네딕토 수녀회 본원입니다. 시인 이해인 수녀님이 오랫동안 머물렀고, 지금도 그곳에서 암 투병 중이시라고 합니다. 수녀님의 쾌유를 빕니다.

최근 탈옥수 "조카" 신창원과 "이모" 수녀님의 서신 교환이 언론에 보도되었더군요. 소외된 사람들과 마음으로 소통을 해오셨죠.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이해인 수녀님의 시를 소개합니다.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 이해인

손 시린 나목의 가지 끝에
홀로 앉은 바람 같은
목숨의 빛깔

그대의 빈 하늘 위에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차 오르는 빛

구름에 숨어서도
웃음 잃지 않는
누이처럼 부드러운 달빛이 된다

잎새 하나 남지 않은
나의 뜨락엔 바람이 차고
마음엔 불이 붙는 겨울날

빛이 있어
혼자서도
풍요로워라

맑고 높이 사는 법을
빛으로 출렁이는
겨울 반달이여

"빛이 있어/혼자서도/풍요로워라" 너무 멋진 말입니다. 요즘은 광안리가 광안대교와 함께 많이 알려졌지만, 개발 이전에는 한적한 어촌 해수욕장이었습니다. 해수욕장 양쪽 끝 근처에 조그만 돌섬들이 있었고, 중간에는 해변에 허름한 횟집들이 쭉 늘어서 있었죠. 어느 날, 바다를 바라보고 오른쪽 끝에 있는 돌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제방을 쌓고 매립을 하더니 거대한 아파트 군락이 들어섰습니다. 그 이후로 급속도로 도회지화 되어서 매우 번잡한 곳이 되었다고 합니다.

개발되기 전의 광안리는 모래도 깨끗했고, 사람들도 비교적 많이 찾지 않는, 정취가 있는 도시 속의 바닷가였죠. 최근 모 드라마에서 송정을 배경으로 촬영하여 광안리로 소개했다고 누리꾼들이 잔소리하는 것을 읽었는데, 개발되기 전 광안리를 염두에 둔 촬영지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이해인 수녀님 필명에 바다 해자가 들어간 것이 아마 그 시절 광안리 바다의 영향일 것 같습니다. 수녀님이 낭송하시는 "초대의 말" 동영상이 있군요. 친구여/오십시오... 중간에 광안리 바닷가도 잠깐 나옵니다.




후기(2009/08/22): 이 글을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에 올렸을 때, 차현정 님이 긴 댓글을 달았습니다. 게시판에 문제가 생겨서 그 댓글을 지금은 볼 수 없습니다. 성 베네딕토 수녀원 부설인 성 분도 유치원에 다녔다는 이야기가 내용에 있었습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제 고향이거든요. 성 분도 치과에서 치아 치료도 여러 번 받았습니다. ^^

그때는 소심하여 제 고향을 밝히지 못해서 더 친한 화답을 못했네요. ㅜ.ㅜ. 차현정 님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합니다. 차현정 님은 제 고향 후배가 되겠습니다. 저는 부전유치원과 남천국민(초등)학교를 나왔습니다.  차현정 님이 이 글을 보시면 좋겠네요.

댓글 4개:

  1. 요즈음 광안리나 해운대 가면 문화적 충격을 느끼겠더군요.
    나도 군대 있을 때 누나 집이 광안리 부근에 있어 가봤는데요.
    그때가 더 좋다고 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구닥다리라는 소리를 듣겠지요?
    우리는 지금 무조건 부수고 새로 지으면 발전인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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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선생님 군대 시절이면, 제 청소년 시절이니 정취가 있는 바닷가 모습을 보셨을 것 같습니다. 저는 어떻게 비교해도 그때가 훨씬 좋습니다. 최근에 가본 것이 약 5년 전인데 정신이 없더군요. 바닷가가 아니라 무슨 유흥장에 들어선 느낌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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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문제는 그렇게 유흥장으로 만들어 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를 좌지우지 한다는 데 있습니다.
    강변의 수양버들이나 갈대숲 밀어버리고 자전거 길 만든다는 발상이 바로 그 좋은 예가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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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말씀하신 그 자전거 길은 제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가 되지 않더군요. 자전거 길을 잘 만들려면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곳에 예산을 들여야 맞는데, 4대 강 물길 따라서 얼마나 많은 자전거가 움직일지 계산도 제대로 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예컨대 서울에서 가까운 대전까지만 해도 자전거로 유람할 사람이 1년에 몇 명 되겠습니까. 그 돈이면 서울 도심이나 다른 출퇴근 지역에서 자전거를 더 안전하게 탈 수 있는 정비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4대 강 파헤치려고 짜맞추기를 한 전형이 자전거 길인 것은 뻔한 것으로 보입니다.

    위정자들이 좀 세련되면 좋겠습니다. 無爲의 통치라는 것도 있습니다. 우리 경제 수준이면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하는 통치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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