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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15일 토요일

[주말] 수필 속으로 흐르는 선율들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8/07/12)

피천득님의 수필 "플루트 연주자" 얘기가 나와서 그 글을 따라 가면서 두서없이 음악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인용 부호 안의 문단들이 피천득님의 수필 내용입니다.

"바통을 든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는 찬란한 존재다. 토스카니니 같은 지휘자 밑에서 플루트를 분다는 것은 또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그러나 다 지휘자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다 콘서트 마스터가 될 수도 없는 것이다."


Arturo Toscanin "Overture Tannhauser" 1/2
토스카니니 지휘로 연주된 바그너 "탄호이저 서곡"입니다(1948년 녹화). 이태리 출신으로서 이태리와 미국에서 주로 활동한 토스카니니는 20세기 전반을 풍미했던 대 지휘자입니다. 콘서트 마스터(악장)는 교향악단의 제1 바이올린 수석주자를 일컫습니다. 교향악단에서 지휘자 다음의 서열 2위라고 할 수 있죠. 연주회에서 지휘자가 등장하기 직전에 단원 중 맨 나중에 입장해서 튜닝을 선도하는 연주자입니다.

"오케스트라와 같이 하모니를 목적으로 하는 조직체에서는 한 멤버가 된다는 것만도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그리고 각자의 맡은 바 기능이 전체 효과에 종합적으로 기여된다는 것은 의의 깊은 일이다. 서로 없어서는 안 된다는 신뢰감이 거기에 있고, 칭찬이거나 혹평이거나, '내'가 아니요 '우리'가 받는다는 것은 마음 든든한 일이다."

하모니를 훌륭하게 이끌어낸 지휘자들이 무수히도 많지만 저는 카라얀을 가장 좋아하는 편입니다. 카라얀이 베를린 필 하모니와 함께 연주했던 베토벤의 교향곡들... 불후의 명연주로 영원히 남을 것 같습니다. 다음은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입니다.

Herbert Von Karajan Conducts Beethoven Symphony No. 3
in E Flat Major 'Eroica', Op. 55

"자기의 악기가 연주하는 부분이 얼마 아니 된다 하더라도, 그리고 독주하는 부분이 없다 하더라도 그리 서운할 것은 없다. 남의 파트가 연주되는 동안 기다리고 있는 것도 무음(無音)의 연주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야구 팀의 외야수(外野手)와 같이 무대 뒤에 서 있는 콘트라베이스를 나는 좋아한다. 베토벤 교향곡 제5번 '스켈소'의 악장 속에 있는 트리오 섹션에도, 둔한 콘트라베이스를 쩔쩔매게 하는 빠른 대목이 있다. 나는 이런 유머를 즐길 수 있는 베이스 연주자를 부러워한다."



Beethoven Symphony No. 5, 3rd mvt--Arturo Toscanini/NBC Symp
Telecast March 22, 1952 from Carnegie Hall, New York City
토스카니니가 지휘한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 3악장 스케르죠입니다. 오케스트라의 악기 배열은 보통 무대 왼쪽이 고음 바이올린, 오른쪽이 저음 첼로와 콘트라베이스로 하는데 이것은 20세기 중반부터 보편화된 것입니다. 그 이전 유럽에서는 제1 바이올린과 제2 바이올린을 지휘자 양 옆으로 나눠서 흔히 배치하였다고 합니다. 위의 토스카니니 지휘가 그 배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원 교향곡 제3악장에는 농부의 춤과 아마추어 오케스트라가 나오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서투른 바순이 제때 나오지 못하고 뒤늦게야 따라나오는 대목이 몇 번 있다. 이 우스운 음절을 연주할 때는 바순 연주자의 기쁨을 나는 안다."


Beethoven - Symphonie Nr. 6 (Pastoral), Berliner Philharmoniker, Herbert von Karajan
2nd Movement - Andante molto mosso (conclusion), 3rd Movement - Allegro, 4th Movement - Allegro (Sturm)
위 동영상은 카라얀이 지휘한 베토벤 교향곡 6번 "전원"의 2악장 끝 부분, 3악장, 그리고 4악장입니다. 2분 30초 정도부터 피천득님이 언급한 부분이 나옵니다. 오보에와 바순이 주고 받고, 클라리넷과 바순이 함께 연주하며, 뒤에 프렌치 혼이 뒤따라서 나오는 절묘한 구성입니다.

"팀파니스트가 되는 것도 좋다. 하이든 교향곡 94번의 서두가 연주되는 동안은 카운터 뒤에 있는 약방 주인같이 서 있다가, 청중이 경악하도록 갑자기 북을 두들기는 순간이 오면 그 얼마나 신이 나겠는가? 자기를 향하여 힘차게 손을 흔드는 지휘자를 쳐다볼 때, 그는 자못 무상(無上)의 환희를 느낄 것이다.


Haydn Symphony No. 94 in G Major "Surprise" - 2nd movement - Andante
Richard Hickox, Collegivm Mvsicvm 90

하이든 교향곡 94번은 "놀람" 교향곡이죠. 하이든의 트럼펫 협주곡이 생각나네요. 3악장이 "장학퀴즈" 시그널 음악으로 사용되었습니다.(장학퀴즈 요즘도 하나요?)^^

Wynton Marsalis Haydn Trumpet Concerto part 3

"어렸을 때 나는, 공책에 줄치는 작은 자로 교향악단을 지휘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 후 지휘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다. 토스카니니가 아니라도 어떤 존경받는 지휘자 밑에서 무명(無名)의 플루트 연주자가 되고 싶은 때는 가끔 있었다."


Bizet-L'Arlesienne Suite No.2-Mov.1
비제의 "아를루의 여인" 제 2 모음곡 중 "전원"입니다. 중간 부분에 플룻, 피콜로, 클라리넷, 그리고 템블린이 잘 어울리고 있습니다.

아래의 모짜르트 플룻 협주곡도 제가 좋아하는 곡입니다.

Mozart Flute Concerto No.1 K.313 - 1st Mov, Emmanuel Pahud: Flute
Haydn-Ensemble Berlin, Mozartwoche Salzburg 2000

모짜르트의 플룻과 하프를 위한 협주곡도 있죠. 선율을 들어보셨을 것 같습니다.

Mozart Flute & Harp Concerto, C-Major, 2nd movement
Karin Leitner - Flute, Duccio Lombardi - Harp, Cape Town Philharmonic Orchestra, Alexander Kalajdzic - conductor, City Hall 2005

하프라고 하니 TV에서 흔히 들었던 선율이 떠오르는군요. 헨델의 하프 협주곡입니다.

Concerto per arpa e orchestra op4 nr6 (1); G.F. Handel
Andante allegro, Lugano's mandolin orchestra (Ticino, Switzerland) conducted by Mauro Pacchin. Performed during the Gala concert 2006: Soloist Elisa Netzer, harp.(16 y. young)

위 동영상은 스위스의 한 만돌린 오케스트라가 협연을 했습니다. 이어서 만돌린이라고 하니 TV 기상예보할 때 들었던 배경음악이 또 생각납니다.^^ 아래는 비발디의 만돌린 협주곡입니다. 좋은 주말 보내세요~

Antonio Vivaldi, Mandolin Concerto, 1st Movement
Detlef Tewes (mandolin), mandolin orchestra of Ettlingen / Germany, conductor Boris Bjorn Bagger

댓글 1개:

  1. hugo
    (2008/07/12 17:29) 선율과 함께하는 수필이란 느낌이 좋습니다. 피천득님의 수필 자체도 하나의 음악 같은 느낌이 드는 글이에요. 안병길 박사님이 그 두 음악을 하나로 만들어 주셨군요!!

    토스카니니 음원을 몇 번 들어본 적이 있는데, 이렇게 음질이 좋은 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잘 듣겠습니다!!.. 근데 토스카니니하면 그 성격과 첼리비다케와 함께 쌍벽을 이루는 독설이 생각나네요.. 처음 봤을 때 뭔 거장이 이런가하고 생각했었는데;;

    안병길
    (2008/07/12 21:33) 토스카니니가 지휘봉을 자주 부러뜨려서 리허설할 때 여러 개를 미리 준비했다는 일화도 있죠. 성정이 불같은 측면이 강했던가 봅니다. 과도한 원칙/완벽주의자라는 평도 있죠. 그런 면모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비평가들은 토스카니니의 클래식 음악에 대한 열정과 기여를 극찬합니다.

    홍두령
    (2008/07/13 00:27) 토스카니니..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대상으로 "가장 총으로 쏴죽이고 싶은 지휘자" 익명 투표를 했는데 압도적으로 1위를 먹었다고 하죠. 참고로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가장 좋아하는 지휘자 1위에는 브루노 발터가 뽑혔답니다. 그 분 지휘한 녹음 들으면 유한 성격이 느껴지지요. ^^

    미성년
    (2008/07/13 11:48) 음... 그런데 몇 년을 들으면 어느 지휘자가 어떻다는 걸 느끼는 경지에 이를까요?

    저는 2년차인데 아직도 전부 다 그게 그거 같기만 하네요. 기껏해야 누구 연주는 빠르고 또 누구는 느리고 식의 계량화(?)할 수 있는 것밖엔 식별이 안 되던데, 음악 감상에도 특별히 예민한 감수성이 필요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경제학을 배워서...라고 말하고 싶기도 하지만 그건 좀 민망하고, 어쨌든 숫자로 검증되지 않는 건 잘 안 받아들여지더군요. 생텍쥐페리가 말한 바보 같은 어른이 된 걸까요? "그 집 얼마짜리니"를 꼭 물어야 직성이 풀리는.

    안병길
    (2008/07/13 13:22) 음악 비평을 하는 전문가들 정도되면 특정 지휘자들의 특성을 조리있게 설명할 수 있겠지만 저같은 아마츄어는 미성년님의 의문에 제대로 객관적으로 답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그냥 누구 지휘가 더 끌린다고 "느끼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위에서 언급된 세계적 수준의 지휘자들은 모두 한 가닥씩 하는 이들이라서 저는 들으면 "와, 음악 좋다!"는 정도죠. 저에게는 카라얀의 베토벤 교향곡들이 유달리 감흥을 주더군요.

    많이 들을수록, 또 해설서 등을 통해서 더 많은 지식을 습득할수록 그런 감흥의 차이들을 더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타고난 감수성이나 친화력의 영향도 제법 있겠지만 아마츄어 수준에서는 그것이 매우 큰 차이를 드러낸다고 보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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