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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10일 월요일

[단상] 미국 박사과정 선발

사진: Michigan State University, http://www.residenceinneastlansing.com/images/univ.jpg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8/03/01, http://jkl123.com/)

유학을 준비하고 계시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미국 대학교의 박사과정 선발을 어떻게 하는지 제 경험을 참조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학교마다 다르겠지만, 제가 재직했던 학교에서는 크게 네 가지를 고려했습니다. 학부/대학원 성적(GPA), GRE 점수, 추천장, 그리고 에세이입니다. 외국인은 TOEFL 점수를 요구하는데, 이 점수는 일정 수준 이상이면 패스이고, 점수가 아무리 높아도 선발의 주요 기준이 되지는 않습니다.

미국 박사과정 대부분이 학생 선발은 교수의 권위에 의존합니다. 즉, 특정한 합격/불합격 기준이 없고, 교수들이 서류를 검토하고 나서 A 학생은 합격, B 학생은 불합격 식으로 판정합니다. 입학 희망자가 서류를 제출하면 각 응모자 별로 폴더가 만들어집니다. 그다음에 박사과정 입학심사 위원회에 속한 교수들에게 차례로 회람시키고, 각 교수는 평가합니다. 제가 있었던 학과에서는 백분위 점수를 주는 것이 아니고, 5단계의 등급을 두어서 총체적인 평가를 하도록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특정 학생을 반드시 뽑아야겠다고 판단되면, 의견란에 별도 메모를 적습니다. "이 학생은 GRE 점수도 낮고, GPA도 좋지 않지만 나와 관련된 연구에서 반드시 필요한 학생임" 식의 유별난 코멘트도 있었습니다. 이 경우는 특별한 하자가 없다면, 동료 교수들이 유사한 평가들을 대부분 인정해줬습니다. 최종 심사회의에서는 위원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세부 전공별 안배도 고려하면서 학생 선발을 결정했습니다.

따라서 어떻게 보면 매우 자의적인 방식으로 박사과정 학생을 선발한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학부 성적과 GRE 점수는 정해져 있는 것이지만, 추천장과 에세이는 평가하는 교수에 따라서 조금씩 차이가 날 수 있겠습니다. 제 경우에도 드러난 점수보다는 추천장과 에세이를 더 비중 있게 다뤘습니다. 그런 점수들이야 차가 조금 나더라도 박사과정 이수에 큰 지장이 없지만, 추천장과 에세이에 드러난 자질들이 오히려 더 중요하다는 판단이었습니다. 다른 교수들도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점수들이 큰 차이가 나면 당연히 고려 대상이 됩니다.

추천장을 많이 읽다 보면 뻥튀기한 것인지, 정확한 평가를 해준 것인지 어느 정도 감이 잡힙니다. 우리나라에서 오는 추천장들은 대부분 학생을 매우 높게 평가했는데, 손해 볼 것은 없지만 별로 변별력이 없는 추천장으로 취급했습니다. 과목에서 B를 받았는데, 적절한 설명 없이 그냥 학업 능력이 아주 우수하다는 식으로 적은 추천장을 보면 일반적으로 믿지 않게 됩니다. 따라서 특별한 사유가 없는 이상, 가장 좋은 학점을 받은 과목 교수님을 뵙고 추천장을 부탁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리고 사정에 의해서 학점이 잘못 나온 경우가 있다면, 왜 그렇게 학점이 나왔는지 별도로 설명하는 메모를 학생이 덧붙이는 것이 좋습니다. 예를 들어서, 아팠다든지, 학점보다 더 중요한 활동(예컨대, 민주화 데모 ^^)을 했다든지 등의 억울한 사유가 해당됩니다. 이것은 심사 교수에 따라서 고려해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거짓말만 아니라면 손해 볼 것은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에세이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점수나 추천장은 비슷한 경우가 많아서 에세이에서 판가름날 때가 잦았습니다. 학교에서 지정해준 양식이 있다면, 그 양식은 반드시 지키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몇 자 이내라고 하면 워드 프로세서의 자수 헤아리기 기능을 활용해서 그 이내로 작성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손해 볼 수 있습니다. 에세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어떤 분야를 어떻게 공부하고 싶다는 아이디어입니다. 교수들 대부분이 허리 멍텅한 구름 잡기 식 설 풀기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될 수 있으면 자신의 문제의식이 확연히 드러날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작성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세부적으로 분야를 좁힐 필요는 없겠습니다. 그 세부 분야 교수가 있으면 괜찮지만, 그런 전공 교수가 없으면 선발을 꺼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세부적인 분야에서 작성된 좋은 논문이 이미 있다면, 그것은 별도로 첨부하여 큰 득을 볼 수 있겠습니다. 에세이 영어는 매끄러워야 합니다. 따라서 에세이를 작성하고 나서 원어민이나 영어를 아주 잘하는 분에게 맡겨서 proof-reading을 거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한순구 교수님 게시판을 보니 우리 학생들이 최근 5년 동안에 경제학으로 스탠포드, 하바드, MIT로 간 경우가 없다고 하는데, 저도 놀랐습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제가 보기에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입학 사정하는 교수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세 곳은 전 세계적으로 최우수 인재들이 몰리는 곳이라서 점수들과 추천장은 엇비슷할 것이고, 따라서 에세이나 연구 논문 등에서 밀렸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기타 사항들이 일부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그것이 문제였을 것입니다. 우리 학생들이 좀 더 노력하고 입학신청 서류에 신경을 더 써서 미국의 최우수 경제학과 박사과정에 여러 명 입학하면 좋겠습니다.

댓글 1개:

  1. 이준구
    (2008/03/01 10:23) 안박사, 정말로 큰 도움이 되는 글입니다. 저도 안박사의 평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이주현
    (2008/03/01 16:52) 안박사님,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

    초보운전
    (2008/03/01 18:31) 작년에 하버드에 한명 갔습니다. 고대다니다 미국 커뮤니티칼리지로 가서 UCLA편입학 여학생이었는데.. 그리고 MIT도 작년에 한명있습니다 그학생은 스탠포드에서 학부를 했구요.

    안병길
    (2008/03/01 21:27) 그렇군요. 우리나라에서 곧바로 간 사례가 없다는 얘기였나 봅니다.

    초보운전
    (2008/03/01 23:40)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공돌이
    (2008/03/04 03:48) 3년전에 한국 학부 마치고 하버드 가신 분 있습니다. 아무튼.. 언급하신 세 곳의 학교에서 한국 학생을 잘 뽑지 않는 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 이유가 우리나라 학생들이 외국 학생들에 밀려서라기 보다는.. 단순한 그 학교들의 취향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른 탑스쿨들에는 조금씩이나마 꾸준히 진학하는 것으로 알고 있거든요. 그럼.. 좋은 글 감사히 봤습니다.

    안병길
    (2008/03/04 08:38) 한국 학부 출신을 싫어하는 취향인가요? 글쎄요...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왜 그런 취향이 생겼다고 생각하시나요?

    이준구
    (2008/03/04 19:06) 똑같은 학교라도 누가 Graduate Committee 혹은 Admissions Committee를 맡느냐에 따라 180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하버드의 경우도 몇 년 전만해도 어드미션을 뿌리는 축에 속했답니다. 따라서 어느 대학이 한국 학생을 잘 뽑지 않는 취향이 있다고는 말하기 힘들고, 그저 blackbox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면 됩니다. 올해 어드미션이 일부 오고 있는데, 이걸 봐도 명확한 트렌드라는 게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일관된 기준으로 뽑는다면 한 명의 스타가 모든 대학을 휩쓸어야 하는데, 그게 아닙니다. 다분히 어드미션을 결정하는 사람의 성향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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