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시작한 지 꽤 오래되었다. 그동안 미국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전쟁에 대한 찬반 논란이 들끓었다. 이라크 전쟁을 보면서 나는 다시 자유민주주의를 생각하게 된다. 특히, 독일의 유명한 철학자 칸트의 영구평화론을 되새기게 된다.
칸트는 국제평화에 대한 자신의 생각에서 출발하여, 영구평화를 이룰 수 있는 국제질서를 선언적으로 기술했다. 그는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을 영구적인 국제평화를 이룩하기 위한 초석으로 파악했다. 따라서, 군주국이라든지, 독재국가가 아닌,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으로 구성한 세상이 있다면 영구평화가 이룩되는 것으로 파악했다.
칸트의 영구평화론을 경험적으로 뒷받침하는 증거로서, 국제정치학에서는 지금까지 자유민주주의 국가 사이에 전쟁이 없었다는 사실을 주목한다. 이것을 "칸트적 평화(Kantian Peace)"라고 부른다. 물론 자유민주주의와 전쟁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서, 자유민주주의 국가 사이에 전쟁이 있었다는 주장도 있었으나, 보편적인 정의(예컨대, 미시간 대학교의 Correlates of War(COW) Project에서 내린 전쟁 정의)를 원용하면 자유민주주의 국가 사이에는 전쟁이 없었다. 이 현상을 "쌍방 자유 명제(Double-Freedom Proposition)"로 국제정치학에서는 규정한다. 즉, 쌍방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면 평화가 보장된다는 명제이다.
그렇다면, 지구의 모든 국가가 자유민주주의를 채택하면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작아진다고 할 수 있겠다. 이것은 귀납적 추론이므로 전쟁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지금까지는 자유민주주의 국가 사이에 전쟁이 없었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미국 대통령 부쉬의 이라크 징벌론은 대테러 전쟁, 대량살상무기 확산금지 등의 명분을 내세웠지만, 명분 자체도 애매모호하다. 이라크가 알 카에다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증거도 찾기 어려우며, 이라크가 대량살상 무기를 만들었다는 확증도 찾지 못했다. 오히려 개전을 앞둔 시점에 사담 후세인은 일부 중거리 미사일을 유엔 협조를 얻어서 파기함으로써 대량살상무기 비확산에 협조할 수도 있음을 내비쳤다. 물론 사담 후세인의 그런 움직임의 진위는 알 수 없다. 부쉬가 주장했듯이 시간벌기였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독일, 프랑스, 러시아, 중국 등 강대국이 찬성하지 않았던 이라크 전쟁은 왠지 어색하기만 했다. 따라서 많은 관측이 앵글로 아메리칸들이 중동 석유에 대한 지배권을 재확인하기 위해서 벌이는 "십자군 전쟁"이 아니냐는 의혹을 보였다.
이라크에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이 자리를 잡는다면 중동 평화는 상대적으로 더 보장될까? 칸트 영구평화론을 원용한다고 해도 그 가능성은 별로 높아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한쪽만 자유민주주의가 되는 것은 별 효과가 없다는 경험적 결과도 있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인 미국을 보자. 통계적으로 미국은 전쟁을 많이 치른 국가에 속한다. 방어적 전쟁만 치른 것이 아니고, 선제공격을 한 경우도 많다. 태평양 전쟁은 방어적 전쟁의 예이지만, 최근의 아프가니스탄과 지금의 이라크 전쟁만 보더라도 미국이 선제공격을 한 전쟁 건수도 많았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칸트의 영구평화론을 읽고, 국제평화에 있어서 자유민주주의 역할에 환상을 하고 있다면, 일찌감치 깨는 것이 좋다. "칸트적 평화"는 "쌍방 자유"라는 특수한 조건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 자체는 국제정치에서 더 평화적이라든지, 덜 평화적이라든지 등 일반화를 이끌어낼 수 없다. 어떻게 보면 자유민주주의가 국제관계에서 더 폭력성을 보일 가능성이 있는데, "칸트적 평화"로 가는 과정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국가를 폭력적으로 체제 변환하는 사례가 될 것이다.
목적도 중요하지만, 과정도 중요한 것은 아닐까?
미국이 아옌데 정권을 전복시킨 것은 쌍방자유명제의 반례가 될 수 없을까요?
답글삭제ㅎㅎㅎ 그것은 전쟁 범주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CIA의 공작이었죠. 그 사례도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폭력적일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답글삭제그렇군요. 선전포고를 동반한 대규모 군사충돌이라면 딱히 떠오르는 반례가 없습니다. 하지만 반례가 없다는 것이 영구평화상태를 의미한다기보다는, 자유민주주의에서 국가의 국가에 대한 폭력은 좀더 세련된 방식이나, 아니면 효율적인 소규모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경제적 장악, 해당 국가 내에서 친성향 정권의 지지/옹립..
답글삭제쌍방 자유 명제는 영구평화와는 거리가 먼 개념입니다. 그야말로 자유민주주의 국가 둘 사이에 일정 수준 이상의 군사적 충돌이 없었다는 것뿐입니다. 영구평화는 칸트의 이상향이죠. 홍기호님이 언급하신 사례들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의한 "구조적 폭력" 행사 문제와 연결됩니다.
답글삭제윽. 정말 제가 개념을 섞어 썼군요. 5일째 잠이 모자서 제 정신이 아니니 너그러이 용서해 주세요..T_T
답글삭제5일이나... 힘 내세요. 그래도 홍기호님 덕분에 건강이 더 좋아지는 분을 보면 보람을 느끼시죠? 저는 온갖 용을 써봐도 주위의 무엇이 더 좋아지는지, 어떤 때는 제 자신이 공해가 아닌지 걱정이 되는 불쌍한 인생입니다. ㅜ.ㅜ
답글삭제위의 덧글에도 오타를 낸 걸 보면 제가 확실히 제 정신이 아닌 듯 합니다. -_- (모자서-> 모자라서)
답글삭제저도 지금 공중보건의로 건강검진환자만 보고 있어서 환자들이 저 때문에 건강해지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_-;;
쓰고 나니 우울하네요. 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