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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3일 목요일

[정치] 정치적 조작, 지역주의, 결선투표, 그리고 자유민주주의

2010 지방선거 단상

1) 정치적 조작: 어설픈 의제 설정은 정치적 조작으로서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함을 보여줬습니다. 우리 민주주의 수준이 높아졌다는 정황입니다. 4대 강 사업 반대 의제는 유효했습니다.

2) 여전한 정치적 지역주의: 호남과 대구/경북의 정치적 지역주의는 여전함을 보여줬습니다. 제도개선을 통해서 정치적 지역주의 완화를 추구할 수 있습니다. 2012년 총선에서 전국득표율 일률배분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채택하는 것이 한 방안입니다. 장기적으로 지역주의 위세가 약해질 것을 고려하면, 대구/경북 지역에서 그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유력한 정치인은 유시민 씨입니다. 이번 선거에서 유시민 씨가 그 토대를 조금 더 다질 수도 있었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3) 부산/경남 정치적 지역주의 변화: 부산시장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가 40% 이상을 득표했고, 경남도지사 선거에서 무소속 후보가 당선되었습니다. 간판은 민주당과 무소속이지만, 결국 친노 지지가 표심으로 작용한 것을 의미합니다. 영남 지역주의가 부분적으로 깨어졌다는 평가도 가능합니다.

4) 선거연합의 딜레마와 결선투표제: 서울시장 선거에서 노회찬 후보가 완주한 것을 야권에서 궁극적으로 비난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선거제도 결함에 더 주목해야 합니다. 결선투표를 도입하여 '억지 춘향식' 선거연합의 딜레마를 극복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결선투표제는 단순과반수 득표가 없어도 당선되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오세훈 씨와 한명숙 씨가 1:1로 붙어서 이기는 후보가 진정한 자유민주주의적 승자일 겁니다.

5) 깨어 있는 유권자: 우리 민주주의가 혹시 중우정치가 아닐까라는 우려가 일부 있었는데, 이번 선거결과가 그것이 기우임을 보여줬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자유민주주의 발전을 이끌어낸 시민의 저력을 다시 한번 보여줬습니다. 정부와 여당은 이런 민심을 제대로 읽어야 할 것입니다. 정부의 4대 강 사업에 제동을 거는 경고장을 국민이 보여준 것으로 해석해도 될 것입니다.

2010년 6월 2일 수요일

[정치] 마음으로 투표했습니다.

저는 재외국민이라서 이번 선거에는 투표권이 없습니다. 그래서 마음으로 투표했습니다. ^^ 2012년 선거에는 재외국민도 투표를 할 수 있다고 하는군요. 이번 선거기간에 제가 느꼈던 점을 생각나는 대로 간단하게 말씀 드립니다.

1) 4대강 사업은 국토 전체에 걸린 가장 중요한 쟁점이었습니다. 여당은 그 쟁점을 가능한 피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특정 4대강 사업 반대 홍보를 선거법 위반으로 간주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도대체 공직자 선출 선거가 무엇인지 아는지 의심이 듭니다.

2) 안보는 국가 존재의 기본입니다. 여야, 좌우를 떠나서 어떤 관점에서 안보를 바라보느냐는 차이가 있을 뿐, 안보 쟁점에서 휴전 상태의 상대방 편을 드는 주요 정파는 없습니다. 그것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의제설정을 통한 정치적 조작을 노리는 것이라고 봅니다.

3) 결선투표 도입을 검토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군소정당도 1차 선거에서는 끝까지 정견을 홍보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반 여당 연합을 위해서 복잡한 과정을 거치고, 더구나 막판에 어쩔 수 없이 후보를 사퇴하는 정치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결선투표가 도입되면 그런 문제가 해결됩니다.

4) 어떤 후보는 광화문 광장에 이승만, 박정희 동상을 세우자는 제안을 했다고 합니다. 두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 발전에 부분적으로 기여한 바가 있다는 평가도 가능하겠지만, 이 대통령과 박 대통령은 궁극적으로는 독재자였습니다. 대한민국 상징으로서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 동상이 있는 광화문에 독재자의 동상을 세우는 것은 우스개 감이 될 것입니다.

5) 자유민주주의 발전에는 시간과 노력이 들어갑니다. 자유민주주의가 정체 혹은 후퇴한다고 해서 포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30년 전 우리 정치와 현재 정치를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이 있었습니다. 깨어 있는 시민이 희망을 품고 참여한다면 장기적으로 우리 자유민주주의는 발전할 것입니다.

2009년 11월 6일 금요일

[자유] 매우 이상한 국회의원 재보선 선거 결과


민주주의를 정의할 때 빠지지 않는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수의 지배"라는 조건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초등학생일 때부터 흔히 들어왔듯이 민주주의는 다수의 지배를 의미합니다. 현실에서 이 "다수"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요?

지난달에 있었던 국회의원 재보선 선거 중 경남 양산시 선거 결과를 보시죠.


한나라당 박희태 (38.13%)
민주당 송인배 (34.05)
민주노동당 박승흡 (3.51)
무소속 김상걸 (3.01)
무소속 김양수 (13.82)
무소속 김용구 (0.54)
무소속 김진명 (0.67)
무소속 유재명 (6.23)
자료 출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http://www.nec.go.kr:7070/jbeservlet/main.jsp?GUBUN=tgm
박희태 후보가 유효표의 38%를 득표하여 당선되었습니다. 38%가 경남 양산시의 민주주의 "다수"라는 의미일까요? 저에게는 매우 이상한 다수로 보이는데요...

다수를 제대로 가려내기 위해서 결선투표제 같은 제도개선이 필요할 것 같지 않습니까? 예컨대, 만약 결선투표를 해서 민주당 송인배 후보가 박 후보를 이긴다면, 박 후보가 38% 득표로 국회의원이 되는 것은 반민주가 민주주의 가면을 쓴 것이 됩니다. 다수가 아닌 소수가 이긴 결과가 되니까요.

2009년 9월 21일 월요일

[수필, 정치] 내 탓인가, 네 탓인가?

남 탓하는 것이야 인간의 기본 속성 중 하나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일종의 자기방어 기제에 속한다고나 할까요. ^^ 그런데 유달리 남 탓을 잘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정치와 관련된 분들도 그 부류에 속한다고 저는 봅니다. 언론 매체를 통해서 이 점은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는데, 실제로 만나봐도 그렇더군요.

저는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에 결선투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해왔습니다. 한번은 평소 주장해왔던 결선투표제에 대해서 여당과 야당 연구소 학자들과 따로 의견교환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제 주장을 처음 대하시는 분을 위해서 그 요점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현행 대선제도가 채택하는 단순 다득표제는 유효표의 과반수를 획득하지 않아도 1위 후보가 당선됩니다. 이것은 민주주의 기본 원리인 단순과반수 원칙을 어길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보다는 상대적으로 더 민주적일 가능성이 큰 결선투표제를 채택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 제 주장의 핵심입니다.  (참조: http://ahnabc.blogspot.com/2009/08/blog-post_4732.html)

결선투표제(일차 투표에서 과반수를 획득하는 후보가 없으면 다득표한 두 명을 결선에 올려서 최종 당선자를 뽑는 방식)를 채택하여 기대할 수 있는 혜택으로서 여당에 대한 확실한 평가, 장기적으로는 지역주의 완화, 정당 간 연합을 거쳐서 궁극적으로는 정책대결 조장, 그리고 야당 후보의 자동 단일화가 예측됩니다. 현재 프랑스와 러시아가 대표적으로 대통령 선거에서 결선투표제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미국 대선도 단순과반수 선거인단을 1위 후보가 얻지 못하면 의회에서 대통령을 선출하므로 결선투표제를 포함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오래전 한 저녁 모임에서 우연히 여당 연구소의 한 학자와 마주 앉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던 도중에 야당 대선후보 단일화가 화제가 되었습니다. 저는 그 학자에게 야당 후보 단일화는 결선투표만 도입하면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분은 매우 진지한 태도로 설명을 모두 들은 다음 몇 가지 질문을 저에게 던졌고, 저는 성의껏 대답하였습니다. 그 여당 측 학자의 마지막 언급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장기적인 정치발전을 위해서 반드시 논의해야 하는 중요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다만, 현실적인 문제로 아마 야당에서 결선투표제를 하지 않으려고 할 것입니다."
즉, 제 주장은 맞지만 현실에서 채택되기는 어려울 것인데, 그 원인은 야당 쪽에 있을 것이라는 말씀이지요. 저는 이론적으로 현행 대선제도의 문제점을 분석했던 것이지 현실적으로 결선투표제 추진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당연히 미칠 수가 없었죠. 그저 논문이나 발표하고, 다른 학자들과 토론하고, 인터넷에 글도 올려서 간접적으로 정치인들에게 이런 것도 있다고 할 수는 있었겠죠.

결국, 국회에서 정치인들이 결선투표제 도입에 합의하느냐 마느냐가 관건이 됩니다. 정치인의 이해관계도 그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정치에 관한 아무리 좋은 분석이라도 정치인에게 별로 이익이 되지 않으면 그 분석은 현실적으로 채택되기 매우 어렵습니다. (이럴 때 여론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정치인들이 하기 싫더라도 전체적으로 이득이 되는 제도이면 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이 여론의 중요한 역할입니다. 투표도 같은 역할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 이익만 챙기는 정치인이 있으면 다음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낙선시키는 관행이 확립되면 정치인은 자신의 이익뿐만 아니라 유권자의 권익도 염두에 둘 것입니다.) 저와 대화를 나눈 그 학자는 결선투표제가 야당 측 정치인들의 이해관계와 어긋나므로 현실에서 채택되기 어렵다는 주장을 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이번에는 공교롭게도 야당 연구소의 한 학자와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또 우연히 대선과 야당 후보 단일화가 화젯거리가 되어서 제가 결선투표제를 그 학자에게 설명했습니다. 그분의 마지막 언급이 또한 인상적이고 흥미로웠습니다.

"아주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주장입니다. 이론상으로는 거의 하자가 없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다만, 현실적인 문제로 아마 여당 측이 결선투표제를 하지 않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 야당 연구소 학자의 입장은 결선투표제가 이론상으로는 옳은데 현실에는 채택하기 어려울 것이고, 그 원인은 여당 측에 있다는 주장이었지요. 어떻습니까? 두 학자의 주장이 재미있지 않습니까? 물론 두 학자가 여당과 야당의 공식 견해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치계의 분위기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지 않습니까?

"내 탓이오, 모두 내 탓이오."가 아니고 "네 탓이오, 모두 네 탓이오."라고 주장하는 것이 정치의 본질일까요?

2009년 8월 21일 금요일

[자유] 현 정치판에서 "공룡" 정당 쪼개기 전략이란? (중)

1. 의제 설정의 미학

어제 글에서 지역주의를 지역주의로 쪼개는 것은 괴물을 상대하기 위해서 자신이 괴물이 되는 어리석음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특정 지역에서 선출직을 얻는 것의 반작용으로 다른 지역에서 표가 분산되면, 그 역효과는 무시하지 못할 것입니다.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라이커 교수님은 <정치적 조작술(The Art of Political Manipulation)>이라는 책에서 적절한 의제 설정을 통하여 원하는 정치적 결과를 정당하게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링컨이 노예해방이라는 의제를 세워서 당시 민주당을 남부와 북부로 쪼개고 대통령이 된 사례를 대표적인 것으로 소개했습니다. 그렇다면 공룡 정당을 쪼개는 쓸 만한 의제는 무엇이 있을까요?

2.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선의 정치

최근 8.15 경축사에서 이 대통령은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선을 제안했습니다. 행정구역 개편과 묶어서 정치권에 던졌기 때문에 의제 설정의 빛이 약간 바랬다는 해석을 이전 글에서 제가 주장했죠. 이 대통령으로서는 여러 현안을 헤쳐나가는 의제로 제법 그럴 듯한 것을 골랐습니다.

그런데 제1 야당인 민주당의 대응이 저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대통령의 제안에 중대선거구제를 들고 나왔는데, 이것이 명분도 시원찮고, 여야합의를 이룰 가능성도 적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치 협상을 하려면 제대로 된 협상카드를 골라야 합니다. 녹슨 과도를 들고 나와서 딱딱한 무를 썰자고 하면 상대방이 웃습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정부/여당은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에 관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 권역 비례대표를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에 대한 협상이 걸릴 수 있겠죠. 독일식과 일본식이 있습니다. 독일식은 아래 제 글 "공공선택으로서 국회의원 선거제도(http://ahnabc.blogspot.com/2009/07/blog-post_29.html)"에서 설명했습니다. 우리 실정에 도입하기 어려운 복잡한 제도입니다. 일본식은 권역 비례대표를 배분할 때 권역 내 정당득표율을 적용합니다. 따라서 지역주의 완화 효과가 미미합니다. 호남에서는 민주당이, 영남에서는 한나라당이 대부분의 비례대표 의석을 차지할 것이기 때문이죠.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서 지역주의 완화 효과를 노릴 수 있는 유력한 방법은 이미 설명했듯이 전국 정당득표율로 권역 비례대표 의석을 일률배분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각각 40% 정당 득표를 했다면, 각 권역에서 권역 비례대표 정원의 약 40%씩 의석을 갖는 제도입니다. 이렇게 하면 영남에서 민주당 의원이, 호남에서 한나라당 의원이 상당수 탄생합니다. 영남의 인구가 더 많으므로 영남 민주당 비례대표 의원이 호남 한나라당 비례대표 의원보다 더 많을 것입니다. 민주당이 손해 볼 것이 없고, 지역주의 완화 대의명분도 살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가 보기에 민주당의 적절한 대응은 짐짓 모른 척하면서 정부/여당의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받아들일 수도 있다고 협상에 임하는 것입니다. 모르죠, 민주당이 고도의 작전을 짜서, 처음에는 중대선거구제를 슬쩍 흘린 다음, 협상에 들어가서는 일률배분을 주장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일률배분은 별 협상 거리도 안 됩니다. 다른 유력한 방안이 없으니까요. 또한, 제 경험에 의하면 정치인들이 중대선거구제에 집착하는 것은 일종의 관성과 같습니다. 이것저것 따져보지도 않고, 막연히 나눠 먹기라서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참조: "중대선거구제 집착증?" http://ahnabc.blogspot.com/2009/08/blog-post_18.html )

3. 결선투표제와 쪼개기 의제 설정

이 부분에서 야당이 머리를 잘 굴리면 쪼개기 의제 설정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만약 여당이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제안하면,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결선투표제를 제안하는 것입니다. 결선투표제가 왜 공룡 정당을 쪼개는 의제 설정이 될 수 있을까요? 국회의원 선거에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면, 분열된 야당 후보가 많은 지역구에서 단일화되는 효과가 생기죠. 후보 단일화를 위해서 여론조사를 하는 등 난리법석을 떨지 않아도 됩니다. 아울러서 공룡 정당에서는 일부 지역에서 2등을 노리는 정치인들이 딴살림을 차려서 나갈 가능성이 생깁니다. 결선을 노리는 것이죠.

결선투표제 도입의 필요성은 바로 아래 글 "현행 대통령 선거제도 개선"에서 설명했습니다. 단순 다득표제보다 결선투표가 민주주의 기본 원리인 단순과반수 원칙을 더 잘 지킬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만약 대통령 선거에 결선투표가 도입되면, 이것도 공룡 여당을 쪼갤 수 있는 실마리가 될 수 있습니다. 박근혜 씨가 차기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기고, 야권의 후보가 지리멸렬이면 한나라당 일부가 뛰쳐나가서 결선을 노리는 시나리오가 충분히 가능하죠.

그런데 정치인들은 선거를 한 번 더 하는 것을 별로 환영하지 않습니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선거라고 하면 일단 돈(특히 검은돈) 문제가 떠오르기 때문에 국민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사실 민주주의에서는 투표(선거, 주민 발안, 주민 소환 등)를 밥 먹듯이 하는 것이 정상인데, 우리나라는 투표에 헛돈을 쓴다는 인식이 강합니다. 그동안 정치자금이 투명하지 않았고, 선거가 끝나면 부정 시비로 얼룩진 적이 많아서 그럴 것입니다. 따라서 야당이 결선투표를 제안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제안해도 여당이 받아줄 가능성도 크지 않겠죠. 매우 어려운 협상이 되겠습니다.

4. 선거제도 변경이라는 정치적 조작

선거제도 변경은 대표적인 정치적 조작입니다. 애로우(Kenneth Arrow) 교수님의 불가능성 정리(The Impossibility Theorem)와 라이커 교수님의 투표 제도 연구를 참조하면, 민주주의가 돌고 도는 세상이 될 수 있습니다. 즉, 시민의 선호순서는 합리적이라도, 전체 사회의 선호순서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비합리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이죠. A보다 B를 더 좋아하고, B보다 C를 더 좋아하고, C보다 A를 더 좋아하는 돌고 도는 세상에서는 선거제도를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가 달라집니다. 이런 속성이 있기 때문에 뚜렷한 명분이 없으면 특정 선거제도를 관철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여러 다른 잣대를 들이댈 수 있기 때문에, 야당이 갑이라는 기준을 제시해서 특정 제도를 관철하려면 여당은 을이라는 기준으로 적당히 거부할 수 있죠.

국회의원 선거제도 변경에서 이런 정치적 조작의 구조적 문제를 벗어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잣대가 정치적 지역주의 극복입니다. 이야기가 옆으로 조금 샜는데, 이 글에서 드리고 싶었던 말씀은 결선투표제를 도입해서 공룡 정당 쪼개기 의제 설정이 가능하지만, 현실화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또 다른 방안은 없을까요? 다음 글로 넘어갑니다.^^

[정치] 현행 대통령 선거제도 개선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8/12/26)

[설명]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흔히 부른다. 국민 개별 선호가 전체 의사결정이 되는 선거는 그만큼 중요하다. 특히 국가지도자를 뽑는 우리 대통령 선거는 모든 국민의 관심을 끄는 최고 중요 정치 이벤트임이 틀림없다. 이 글에서 필자는 현행 대통령 선거제도가 심각한 결함을 내포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그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서 결선투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차기 대통령으로 선호하는 인물 1위가 박근혜 의원, 그리고 2위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대통령 중심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새 대통령을 선출한 지 1년밖에 안 됐지만, 다음 대통령에 대해서 관심을 두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여당은 정권 재창출에 항상 관심을 두고, 야당도 정권 재탈환에 큰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죠. 야당에서는 급기야 반기문 총장을 차기 대선 후보로 떠올리는 비상수단까지 고려하는 모양입니다.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언제 다시 유엔 사무총장과 같은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있는 인사를 쉽사리 배출할 수 있겠습니까. 연임하는 관례를 고려하건대, 반 총장은 한 번 더 사무총장직을 수행하는 것이 본인이나 국민에게 득이 된다고 봅니다.

저는 1995년에 작성한 한 발제문에서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제도가 심각한 결함을 갖고 있으므로, 결선투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현행 대선제도가 절차적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시되는 원리인 “단순과반수 원칙”을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할 가능성이 있어서 개선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아직 그대로입니다. 그동안 제 주장을 여러 전문가와 정치인에게 설명하고 반응을 살펴봤는데, 이론상으로는 맞는 이야기이지만 현실에 적용하기는 어렵겠다는 평이 제법 있었습니다.

1) 선거를 한 번 더 하는 비용 문제, 2) 제도 수정의 현실적 난관(예컨대, 야당의원은 여당이 합의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여당의원은 야당이 반대할 것이라는 반응), 이 두 문제였죠. 그런데 대선 결선투표를 채택하는 프랑스와 러시아 등을 참조한다면 절차적 민주주의를 더 정교하게 만들어서 발생하는 편익이 그 비용을 능가하는 것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이제는 우리 경제 역량이 가장 중요한 선거를 한 번 더 하는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수 있죠.

따라서 두 번째 문제만 해결된다면 우리도 결선투표제를 도입하여 단순과반수의 지지를 받는 대통령의 탄생을 지켜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화 이후 과반수 유효득표를 한 대통령 당선자가 없었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공공선택이론으로 심하게 이야기하면 결정적인 결함이 있는 제도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표가 분산되어서 40% 득표를 했지만, 그 당선자를 55%가 반대할 수 있는 상황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제대로 된 민주주의라면 그 후보는 당선되면 안 됩니다.

저는 앞으로 정치부문의 화두로 대통령 선거제도 개선을 제시하고 싶습니다. 경제가 위중해서 쟁점이 될 것 같지는 않지만, 장기 국가발전 프로젝트로 검토되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입니다. 현 국회의장께서 취임 초에 개헌을 추진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여러 정황을 고려하면, 제18대 국회에서 개헌을 하기는 힘든 것 같습니다. 만약 개헌범위를 권력구조 개편이라는 최소한으로 국한한다면 혹시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쟁점과 관련하여 우리 대선에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려면 개헌이 반드시 필요한지 의문이 있습니다. 헌법 관련 조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헌법 제67조

1. 대통령은 국민의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에 의하여 선출한다.

2. 제1항의 선거에 있어서 최고득표자가 2인 이상인 때에는 국회의 재적의원 과반수가 출석한 공개회의에서 다수표를 얻은 자를 당선자로 한다.

3. 대통령후보자가 1인일 때에는 그 득표수가 선거권자 총수의 3분의 1 이상이 아니면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없다.

4. 대통령으로 선거될 수 있는 자는 국회의원의 피선거권이 있고 선거일 현재 40세에 달하여야 한다.

5. 대통령의 선거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제2항이 문제가 될 수 있겠습니다. 이 의문을 포함하여 여러분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


[토론]

[회원1] 헌법 제67조 제5항은 결선투표를 법률로 규정할 수 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결선투표를 도입하려면 개헌을 해야 한다.

[필자] 공직선거법, 제187조(대통령 당선인의 결정·공고·통지)에는 대통령 당선을 어떻게 결정하는지 규정하고 있죠. 이 규정에 결선투표를 삽입해서 개정하면 위헌이 될까요?

[회원2] 결선투표 도입은 50보 100보이다. 오히려 칼 포퍼를 참조하여 “사악한 지도자”를 뽑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필자] 회원2님은 제 문제제기를 너무 확대하여 해석하신 것 같습니다. a, b, c 대선 후보가 있다고 합시다. 각각 40%, 35%, 25%를 득표했습니다. 현행 제도로는 a가 대통령이 됩니다. 그런데 결선투표를 하면 b가 60:40으로 a를 꺾을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a가 대통령이 되는 것은 비민주주의이며 비효율이라는 것이 제 주장의 요점입니다. 오십보백보라는 식으로 대충 해석하셨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큰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회원1] 공직선거법은 관련 헌법 조항을 구체화 내지는 반복하는 규정이다. 헌법 제67조 제2항 결선투표 외에 다른 형태의 결선투표를 공직선거법에 넣는 것은 헌법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필자] 회원1님이 해석한 것과 같이 유추할 수는 있다고 저도 생각합니다. “최고 득표자”, “다수표”라는 표현이 있어서 결국 단순다득표제(plurality)를 내포하는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크겠네요.

[게시판 주인] “좋은 아이디어입니다만, 우리가 지난 선거를 다른 방식으로 치렀다고 지금의 상황이 달라졌을 것 같지는 않네요.”

[회원3] 게시판 주인 생각에 동감이다. 더 늦기 전에 개선이 필요하므로, 필자 생각에도 동감이다.

[필자] 제 생각에도 제17대 대선 결과는 결선투표를 했어도 다르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결선투표 대부분이 과반수 획득을 선출조건으로 하지만, 변형도 있습니다. 예컨대 1등이 45%, 46%, 혹은 47% 이상 득표하면 결선투표 없이 당선을 결정짓는 것입니다. 이 변형은 이론상 결함은 있지만, 일부 불필요한(경험적으로) 결선투표를 하지 않아도 되는 이점이 있습니다. 기준이 자의적이라서 저는 변형을 찬성하지 않습니다.

[회원4] 게시판 주인과 동감이다. 미국식 중임제는 어떨까?

[필자] 연임 허용 4년 임기 대통령제에 결선투표를 결합하는 형태를 지지하는 정치학자들이 지금은 제법 있습니다.

[회원5] 개헌 없이 결선투표 도입은 안될 것이다. 결선투표 도입은 찬성한다. 단순다수제와 지역구도가 결합하여 특정 지역은 일당 독재나 마찬가지이다. 연대와 연합을 조장하는 결선투표가 국회의원 선거에도 도입되면 좋겠다.

[필자] 회원5님의 의견에 동감입니다. 일단 대선에 결선투표를 도입해서 시행하고, 다음 단계에 총선까지 확산하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심려 깊은 의견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

[토론 평] 이 토론에서 발제자인 필자는 필요한 정보를 획득했고, 여러 회원으로부터 발제 취지에 동의하는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일부 회원은 그 실현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였다. 한 회원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국회의원 선거에도 결선투표가 도입되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하여 필자의 동감을 이끌어냈다. 전반적으로 차분한 분위기에서 각자의 의견이 제대로 전달된 잘 된 토론이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