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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4일 일요일

[칼럼-중앙SUNDAY] 권위주의자 남편을 이기는 지혜

원 제목: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법 - 맞대응 전략과 가정 자유민주주의

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16705


2009년 8월 10일 월요일

[자유] 약자는 강자를 어떻게 이길 수 있나요? (끝)

드릴 말씀은 많지만 제가 조금 바빠서, 간단한 발제를 하는 것으로 시리즈를 마무리 짓겠습니다. 정답이 없는 열린 문제제기입니다. 저는 한나라당을 근본적으로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자유민주주의에서 잘 작동하는 보수 정당이 있으면 바람직합니다. 한나라당이 비록 과거 권위주의와 인연을 맺고 있고, 지금 현재도 그런 분위기를 일부 내보이지만, 앞으로 제대로 된 보수 정당으로 거듭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그럼 시작합니다.

한나라당은 이미 브랜드 가치를 갖고 있습니다. 제 추측으로, 그것은 박근혜 씨가 한나라당을 뛰쳐나올 상황이 되었어도, 대통령이 되려고 버텼던 것을 보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한나라당을 전면 부정하거나, 아예 없애려고 노력하는 것은 비현실적입니다. 자유주의에서는 어떤 정당도 원칙적으로 허용되며, 그것은 한나라당도 마찬가지입니다. 더구나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국민도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존재하는 정도가 아니라, 정당 지지도 조사를 하면 1위를 계속 달리고 있지 않습니까. 물론, 심정적으로는 꼴도 보기 싫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치 현실은 냉엄합니다.

이 시점에서 링컨이 어떻게 대통령이 되었는지 살펴볼 가치가 있습니다. 제가 최근에 적은 링컨 이야기를 그대로 인용합니다. 긴 인용이지만, 중요한 설 풀기이기 때문에 읽는 분이 인내심을 발휘하실 것을 부탁합니다. 출처는 서울대 경제학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입니다. http://tinyurl.com/ahn-lincoln 마지막 단락은 보충설명으로 추가했습니다.

(1) 드디어 링컨

그리 하야, 마키아벨리가 정치와 도덕을 구분한 것을 참조해서 링컨을 바라보면 그 사람도 정치인이라는 데 착안하게 됩니다. 정치인의 합리성이 있죠. 자유민주주의에서 정치인은 표를 바라보고 삽니다. 링컨도 그 점에서 다른 정치인과 다를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씨 질문에 제가 예스도 되고 노도 된다고 일단 답했던 것입니다. 거시는 이창용 교수에게 잘 배우셨을 테니 제가 미시 부분을 설명드리겠습니다. 이준구 교수님이 계시면 미시를 저보다 훨씬 더 잘 가르쳐 주시겠지만, 지금 부재중이라서 제가 대신하겠습니다.^^ 성에 차지 않으시더라도, 사이비가 그 정도면 됐다는 평가를 해주시면 대단한 영광이겠습니다.

(2) 의제 설정

이곳에 법을 전공하시는 분들도 오시니까, 제가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법을 다루는 곳입니까, 정치를 하는 곳입니까? 저는 그것이 알고 싶었습니다. 아래에 고정논객 OO씨가 정성껏 정보를 줘서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고맙습니다. 링컨이 법률가 변호사 출신이죠.

위의 제 질문은 어설픈 의제 설정(agenda setting)입니다. 왜냐구요? 제가 정치학 쪽 아닙니까. 당연히 정치도 하는 곳이다는 답을 기대한다는 것이 눈에 뻔히 보이죠. 우리 정치사에서 최근의 대표적인 의제 설정으로 저는 “잃어버린 10년”을 듭니다. 잃어 버렸는지, 아닌지 증명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제법 많은 국민은 뭔가 상실했다고 느꼈죠. 마찬가지로 헌재의 관습헌법 논리 채택은 정치학으로 분석하면 일종의 의제 설정입니다. 저는 어설픈 의제 설정이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헌재 결정 소수 의견으로 나온 전효숙 재판관의 의견서를 찾아서 한번 읽어 보십시오. 다수 의견보다 훨씬 논리적이고 이치에 맞습니다. 세상에 연성헌법도 아니고, 경성헌법을 채택하는 나라에서 공화국도 아닌 왕조 시대 서울을 갖고 헌법 운운하는 것이 도대체 말이 되느냐는 것이죠.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고 증명할 수도 없습니다. 정치에서 전형적으로 등장하는 의제 설정이죠.

(3) 링컨의 의제 설정

링컨이 대통령이 된 것이 1860년인데, 그 언저리 링컨의 정치적 행보를 보면 의제 설정을 잘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링컨이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공화당 쪽은 이합집산을 거듭합니다. 당명도 여러 번 바뀌었죠.
Federalist => National Republican => Whig => Republican

어떤 의제설정을 해야 선거에서 이길 것인지 공화당은 심각하게 고민을 했습니다. 노예해방이라는 좋은 쟁점이 있기는 한데 전국 이슈로 만들기에는 역량이 부족했던 것입니다. 그 즈음에야 농업 위주였으니까 남부의 입김이 셌고, 그 여파로 공화당 쪽 일부도 표심을 잡기 위해서 갈대같이 흔들렸던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때 링컨이 공화당의 구세주 역할을 합니다.

미국이 서부로 팽창하면서 주들이 늘어났죠. 땅을 확보하면 모두 곧바로 주가 되는 것이 아니고, 많은 경우 테러토리(Territory)라는 임시정부 형태를 거쳐서 주가 되었습니다. 그 테러토리에 노예제를 허용하느냐 마느냐가 그 당시 초미의 관심이었습니다. 그 문제를 일리노이주 연방 상원의원인 더글라스(Stephen A. Douglas)가 해결했습니다. 그것이 1854년 캔사스-네브래스카 법(Kansa-Nebraska Act)입니다. 내용은 테러토리 의회가 노예제를 허용하든 안 하든 알아서 결정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민주당이 바라고 있었던 대로 노예해방 이슈를 로컬에 묶어놓는 데 성공했습니다. 민주당 상원의원 더글라스의 공으로 칩니다.

그런데 캔사스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캔사스는 해방구(Free Soils)가 되었는데, 연방 대법원의 판결에 의하여 흑인은 연방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지 못한다고 결정해버린 것입니다. 1857년 드레드 스캇(Dred Scott) 판례입니다. 그 당시 연방 대법원을 남부 출신 판사들이 장악하고 있었거든요. 모순이 생겼습니다. 해방구를 연방정부가 인정하지 않은 셈이니, 캔사스-네브래스카 법의 연원이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이 점을 링컨이 파고들어서 노예해방 이슈를 전국화시키죠.

그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1858년에 연방 상원의원을 선출하는 선거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는 간선이라서 일리노이주 의회에서 선출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민주당 대표는 현역 더글라스, 공화당 대표에는 삐쩍 마른 링컨이 나왔습니다. 두 후보가 일리노이 전역을 돌면서 8차례 토론회를 했습니다. 그 중 프리포트(Freeport)라는 조그만 도시에서 열렸던 토론회에서 링컨은 더글라스에게 다음과 같이 묻습니다.

“Can the people of a United States Territory, in any lawful way, against the
wish of any citizen of the United States, exclude slavery from its limits prior
to the formation of a state constitution?”

음... 영어가 조금 고풍스럽습니다. 요체는 더글라스 당신은 테러토리가 정식 주가 되기 전에, 연방정부가 반대해도, 노예제를 폐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정도가 되겠습니다. 정확하게 위에서 설명드린 모순을 지적한 것입니다. 2년 뒤인 1860년 대통령 선거에 대해서 더글라스는 관심이 많았습니다. 민주당 후보가 되려면 남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죠. 그런데 일리노이주는 북부에 있습니다.

그 당시 이미 민주당은 북부와 남부로 분열의 조짐이 있었습니다. 저 질문에 예스(Yes)로 대답하면 더글라스는 상원의원직을 쉽게 유지할 수 있지만, 남부 쪽의 외면을 받게 되는 것이었죠. 링컨이 설정한 의제는 상원의원을 쉽게 계속 유지할래, 아니면 대통령에 도전해볼래, 둘 중 하나만 골라 보라고 압박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더구나 더글라스 자신이 주도한 캔사스-네브래스카 법도 걸려 있죠. 결국, 더글라스는 쉽게 상원의원직을 유지하는 쪽으로 결정합니다. 링컨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2년 뒤를 기약합니다.

1860년에 민주당은 쪼개집니다. 북부민주당은 더글라스를 후보로 내고, 남부민주당은 자체로 다른 후보를 냅니다. 링컨의 의제 설정이 성공적으로 좋은 결과를 얻었죠. 제16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노예해방을 이끌어 냈고, 그 이후로 미국 정치의 주도권은 당분간 공화당으로 기울게 됩니다. 링컨이 사용한 의제 설정은 의제 추가(Issue Addition)입니다. 공화당의 고민이 노예해방을 전국 이슈로 끌어들여야 하는데 여의치 않았죠. 그런데 링컨이 프리포트에서 토론 한번 잘해서 전국화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TV나 라디오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서, 정당이 유권자에게 정책을 호소할 때 종이 홍보에 의존했습니다. 링컨이 논리를 제공했고, 홍보는 공화당 조직이 맡았습니다. 프리포트 토론 내용의 핵심을 잘 요약해서 신문이나 당 홍보지를 통해서 열심히 뿌렸다고 합니다. 일반인은 링컨의 정치적 조작을 말 그대로 읽으면 무슨 뜻인지 모를 수 있기 때문에, 공화당 조직이 친절하게 해설을 해서, 시민이 드시기 좋게 메뉴를 개발한 것이죠. 대선까지 2년의 기한이 있었기 때문에 시간도 충분했습니다. 링컨은 1860년 대선 때 선거 유세도 별로 많이 하지 않았습니다. 남부는 아예 포기했죠. 링컨이 아이디어 토스를 잘했고, 그것을 받아서 공화당 조직이 잘 움직여서 노예해방 쟁점을 전국화했습니다.

여러분은 이 글을 읽으면서 뭔가 느끼시지 않았습니까? 약자 공화당이 노예해방이라는 쟁점을 이용해서 강자 민주당을 쪼개고 그 당시 미국정치 주도권을 잡았음을 참조하면, 한나라당도 쪼갤 수 있지는 않을까라는 전략적 생각은 혹시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림 설명: 제 미국 사부님 중 한 분인 故 William H. Riker 교수님의 책 The Art of Political Manipulation 표지입니다. 그 책의 제1장 "Lincoln at Freeport"를 나름대로 요약한 것이 인용 부분입니다. 그림을 클릭하면 책 내용을 디지털 자료로 보실 수 있습니다.

2009년 8월 8일 토요일

[자유] 약자는 강자를 어떻게 이길 수 있나요? (4)

주말이군요. 사람이 머리가 별로 좋지 않으면 고생한다는 말이 있는데, 제가 이번에 그 말에 맞아떨어지는 글 적기를 했습니다. 어제 올린 이 시리즈 세 번째 글을 작성할 때는 캘리포니아 시간으로 목요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제 블로그는 캘리포니아 시간 기준이 아니고, 우리나라 시간 기준이거든요. ^^ 그래서 금요일 새벽에 글이 올라간 것입니다. 하루 지났으니 오늘은 토요일이죠. ㅜ.ㅜ 주말에는 가벼운 말씀을 드리려고 했는데...

머리 굴리기를 했습니다. 어떻게 교묘하게 빠져나갈 길이 없을까... ㅎㅎㅎ 있었습니다. 어제 글 끝에 "가정" 이야기를 했죠. ㅋ 주말이니까, 가볍게 가정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이렇게 빠져나옵니다. 제가 영악하다고요? 에이, 너무 그렇게 빡빡하게 하시면,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자주 하신, "너무 깨끗한 물에는 물고기가 많이 살지 않는다!"라는 말씀으로 다시 슬쩍 비켜나겠습니다. ^^

소재는 가벼운 가정이지만, 주제는 그렇게 가볍지는 않습니다. 저는 가족은 공동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큰 사회집단에 공동체라는 말을 적용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시는 분들이 제법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사람이 많이 모이면 이해관계가 서로 부딪힐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룻쏘의 공동체 같은 개념이 현실화되기 어렵다는 견해죠. 그런데 가족은 일단 혈연으로 끈끈하게 연결된 가까운 사이이고, 좁게 잡으면, 아빠, 엄마, 형제자매로 단출하여서, 모든 구성원이 공동으로 바라는 무엇을 그려낼 수도 있겠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런데 이 가족마저 가끔 공동체가 아니고 이익집단의 속성을 드러낼 때가 있습니다. 예컨대, 돈 문제가 걸리면 그렇습니다. 어떤 가족 결정을 해서 어떤 구성원은 힘들어지는데, 다른 가족은 편해질 때도 공동체로 똘똘 뭉치는 것이 아니고, 다투거나 시기질투할 수 있죠. 가장 작은 사회집단인 가족이 이런데, 큰 정당이 무슨 "공동체"라고, 우리 도덕/윤리 교과서 내용과 비슷한 정치적 구호를 외치면, 저로서는 우습다고 여길 수밖에 없습니다. 관심 있는 분은 주요 정당의 정강이나 강령을 훑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 정당들이 있습니다.

가장 간단한 가족 구성부터 살펴볼까요? 남편과 아내가 있습니다. 남편은 권위주의자이고, 아내는 자유주의자라고 합시다. 어떤 모습이 떠오르나요? 집에서 아내는 집안일을 열심히 하고, 남편은 폼 잡는 모습이 저는 떠오릅니다.

겉으로 별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죠. 특히, 남편이 돈을 엄청 잘 벌면, 자유주의자 아내의 마음은 불편해도, 생활하는 데는 지장이 없을 것입니다. 마음! 이것, 참 아리송한 것입니다. 불가에서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하여서, 남편이 무슨 말을 하든, 어떻게 행동하든, 아내가 마음 속에서 남편은 자유주의자!라고 생각하면 모두 해결된다고도 볼 수 있겠죠. 그러나 그런 해탈 경지에 이른 자유주의자는 별로 많지 않을 것입니다. 이기적 개인주의자이니까요.

이 사례가 전형적인 약자 자유주의자와 강자 권위주의자가 만난 모습입니다. 여자가 약자인 것은 우리 헌법에 나오므로 별 이의가 없을 것 같은데... ㅎㅎㅎ 이 글을 읽는 어떤 남편분은 즉각 반론을 제기하시는군요. 내 아내는 그렇지 않다! 내 아내가 얼마나 힘도 세고, 말도 잘하는지 모르시는군요. 기타 등등 이유를 대면서 저를 비판하십니다. ㅜ.ㅜ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런 예는 제외하겠습니다. ^^ 일반적으로 여자가 약자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남편은 강자 권위주의자입니다. 자유주의자는 권위주의자를 싫어합니다. 개념 정의상 그렇지 않습니까? 따라서 합리적 자유주의자는 그런 불편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머리 굴리기를 일단 해야 합니다.

여러 다양한 상황이 가능한데, 권위주의자에게 "너, 권위주의자!"라고 대놓고 이야기하는 것은 공적인 관계에서는 괜찮은 작전이지만, 사적 관계에서는 부작용이 심하게 생길 수 있습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제대로 된 전략입니다. 맞대응 전략(Tit-for-Tat Strategy)이라고 있습니다. 제 책 제7장에서 제법 자세하게 소개하는 전략인데,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잘해주고, 그다음부터는 남편이 잘해주면 잘해주고, 잘해주지 않으면 잘해주지 않는 것입니다. ㅋㅋㅋ 남편이 계속 잘해주지 않다, 잘해주면 다시 잘해주는 것도 포함합니다.

맞대응 전략의 탁월한 효능은 이미 연구, 분석되어서 학계 정설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미시간 대학(늑대 Wolverine 학교!)의 액셀로드(Axelrod) 교수님이 잘 설명해주셨습니다. 간단하고, 나이스하고, 적절히 응징하고, 관용도 보여주는, 전략적으로 안정적인 좋은 방안이라는 것이죠. 무엇을 위하여? 이기주의자 사이에 상호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한 훌륭한 전략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 전략을 인터넷 생활에서 항상 사용합니다. 인터넷에 이기주의자들이 득실거리죠. ^^ 제가 편하려고, 제 행복 추구를 위해서 그 전략을 활용합니다. 액셀로드 교수님이 틀렸다는 것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저는 부부 사이에 분업할 수 있고, 필요한 경우에는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내가 전업 주부라면, 대부분 가사일을 맡는 것이 적절하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해서 남편이 마초 행세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남편이 자발적으로 요리, 설거지, 청소 등을 거들면 좋죠. 또한, 아이가 있으면, 아내를 도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육아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맞벌이에 아이가 없는 자유주의자 아내와 권위주의자 남편을 생각해보시죠. 이런 때 자유주의자 아내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맞대응 전략을 적용할 수 있을까요? 이론을 현실에 곧바로 적용하면 부작용이 날 수 있습니다. "당신이 배신 전략을 썼으므로, 나는 응징에 들어간다! 각오해라!" 부부 사이에 이런 대화가 오가면... 부부 싸움이 납니다. 서로 불편해집니다.

응용의 미학을 발휘해야 합니다. 남편이 청소로 깨끗해진 공부방을 무척 좋아하면, 별말 없이 청소를 슬쩍 건너뛰는 겁니다. ㅋ 아니면, 남편이 쇠고기를 무척 좋아하는데, 장을 볼 때 닭고기 위주로 장을 보는 것이죠. 적절한 설명도 해줘야 합니다. "닭고기가 쇠고기보다 몸에 덜 해롭다고 하죠?" 기타 등등... 싸우지 말고,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져서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심할 때는 절절한 심정을 담은 편지를 보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아야 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협력해오지 않으면... 알아서들 하시기 바랍니다. ㅜ.ㅜ

제가 각 맞벌이 남편과 아내가 어떤 선호를 가졌는지, 구체적인 타입은 무엇인지, 문제가 되는 쟁점이 무엇인지, 일일이 따져서 전략을 보여 드리지는 못하니 독자께서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원리는 나름대로 설명했으니, 각자 머리를 잘 굴리시면 되겠습니다. ^^ 제 머리를 빌리고 싶으신 분은 연락해주세요. 공짜 점심은 없으니, 적절한 보상을 제공하시기로 합의하시면 빌려 드립니다. 그런데 큰 기대는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 머리 성능이 그렇게 좋은 것은 아닙니다. ㅋ

머리 굴리기에 더해서 남의 힘을 빌려올 수 있으면 빌려오는 것이 좋습니다. 아내와 남편이 외딴섬에 사는 것은 아닐 테니 연결된 분들이 반드시 있죠. 대표적인 예가 아내의 부모, 남편의 부모가 계십니다. 그런 분 중에 자유주의자가 있으면, 당근 연합 전선을 펴서 권위주의자에게 세력을 과시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만약, 모두 권위주의자이거나, 귀차니스트이거나, 점자니스트라면, 그분들 중 가장 자유주의에 가깝거나 아내의 뜻에 동감해줄 수 있는 분부터 자유주의 진영으로 모셔야 합니다. 상당한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힘을 모으는 연합에서 눈사람 만들기를 참조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처음에는 작게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크게 만드는 것이죠. 꼬마 눈사람 노래를 들으시거나, 제가 올려 드리는 "똥퍼 내줘(표현 죄송! Tombe la Neige, 똥버 라 네줘, 내리네 눈이)"를 보고 들으시면서 편안한 주말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

Tombe la neige - SALVATORE ADAMO

사진 출처: http://cfs7.tistory.com/image/29/tistory/2008/08/14/11/36/48a39a22d52d7

2009년 8월 7일 금요일

[자유] 약자는 강자를 어떻게 이길 수 있나요? (3)

권위주의자와 자유주의자가 맞짱 토론을 하면 누가 이길까요? 권위주의자가 이길 가능성이 큽니다. 왜 그럴까요? 권위주의자는 스스로 권위가 있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아는 지식이 절대적 진리에 가깝다고 믿는 속성이 있습니다. 반면에 자유주의자는 지적 상대주의를 바탕에 깔고 있어서 상대방이 옳을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죠. 권위주의자는 자신이 믿는 바를 계속 주장하고, 자유주의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지칩니다. 자유주의자의 최후 방어선은, 상대방도 옳을 수 있고, 자신도 옳을 수 있다는 정도가 될 것입니다.

어떤 사회에서 자유주의자가 혼자서 고군분투하는데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면, 맞짱 토론과 같은 상황이 됩니다. 심지어 독불장군이라는 공격을 받을 수 있죠. 사실은 권위주의자가 독불장군인데, 거꾸로 누명을 쓸 수도 있습니다. 권위주의자들의 집단 공격으로 왕따가 되는 현상이죠. 자유주의자들은 서로 도울 필요가 있습니다. 분열되면 좋은 먹잇감이 됩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약자일 때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권위주의자가 얼마나 골치 아픈 존재냐면,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끝장 토론을 관찰하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제가 가입한 한 인터넷 동호회에 매우 특이한 토론자가 있습니다. 제삼자로서 관찰해보면, 거의 일방적으로 반대편 의견이 우세한데, 끝까지 자신이 맞다고 주장합니다. 그것이 가능합니다. 의제설정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A라는 토론 범위가 있다고 하죠. 제법 긴 시간 의견교환을 하여 중지가 모였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토론자는 A'라는 쟁점으로 옮깁니다. 그런 의제 전환을 효과적으로 막지 못하고 말려들면, 토론이 끝나지 않고 계속 진행됩니다. 여러 낮밤이 지나도 계속 할 수 있죠. ^^ 인간사나 인간관계에 연결된 변수가 매우 많아서 얼마든지 가능한 정치적 조작입니다.

이럴 때 민주주의 친구가 도울 수 있습니다. 의견교환이 어느 정도 이뤄진 다음, 1+1=2와 같은 정답을 찾을 수 없으므로 투표하자!라고 주장하는 것이죠. 자유민주주의 해법입니다. 그런데 권위주의자에게는 이것도 통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재미있죠? 권위주의자는 자신이 권위라고 착각하기 때문에, 자신을 제외한 모든 토론자가 반대의견을 내놓아도, 자신이 옳다고 주장할 수 있죠. 이런 사람이 권력을 잡으면 독재자가 됩니다.

자유주의에서는 독재자가 될 가능성이 짙은 사람의 존재도 인정합니다. 생각은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생각 자유는 절대적이죠. 사람 머리 속에서 벌어지는 것은 자유주의에서는 건드리지 않습니다. 권위주의에서는 건드립니다. 북한의 주체사상이 그런 것이고, 지난 시절 우리의 국민교육헌장도 비슷한 속성을 갖고 있죠.

생각 자유는 절대적이지만, 표현의 자유는 상대적입니다. 헌법에서도 이 점을 명확하게 적어놓았습니다. 적극적으로 말할 자유와 소극적으로 듣지 않을 자유가 부딪힐 수 있어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유주의는 표현 자유를 최대한 허용하기 때문에, 그 제한은 매우 조심스럽게 해야 합니다. 제대로 작동하는 민주주의로 제한하는 것이 정답입니다.

앞의 막무가내 토론자의 예를 대입해봅시다. 충분한 의견교환을 한 다음, 토론 주제에 대한 결론에 대부분 토론자가 동의한다면, 그것을 다수의견으로 발표하고 토론을 끝내야 합니다. 그 막무가내 토론자의 주장은 소수의견으로 남는 것이죠. 만약 막무가내 토론자가 의제 전환을 통해서 토론을 계속 끌고 가려고 하면 상대를 해주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점잖게 한마디만 하면 되죠.
"당신의 의견을 소수의견으로 존중합니다. 절대적으로 틀렸다는 것은 아닙니다. 상대적으로 우리 의견이 더 적절한 것이 이번 토론의 결론입니다."

이렇게 민주적으로 잘 봉합하려면, 권위주의자보다 자유주의자 숫자가 더 많아야 합니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지배를 뜻하니까요. 여기서도 힘을 합칠 필요가 있다는 것이 명확하게 드러나죠. 그런데 자유주의자들은 자유분방하기 때문에 서로 의견이 어긋날 때가 잦습니다. 이때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사회 전체가 자유주의로 흘러 넘치면 갑론을박하면서 난형난제하는 재미를 만끽하면 됩니다. 그러나 권위주의자가 여기저기서 출몰하는 상황이면, 자유주의자들은 일단 그 재미를 접어두고 전열을 정비해야 합니다. 힘을 합치지 않으면 권위주의자들의 폭압에 심하게 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상대적으로 누가 더 자유주의적인가를 잘 따져야 합니다.

이 글 시리즈 2편에서 두 교수님에게 감히 당부한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권위주의라는 적 앞에서 분열되면 곤란하다는 것이죠. 특히, 그 분열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견해차면 더 그렇습니다.

내일은 어떻게 머리를 굴려서, 자유주의 세력을 확장할 것인지에 대한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정치뿐만 아니라 가정이나 직장에서도 이 문제의식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권위주의자들이 다수인 가정이나 직장에서 자유주의자가 어떻게 전략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바람직한지 생각해볼 만합니다. 자유주의자 여러분, 힘내십시오. 서로 격려해서 엔돌핀이 돌도록 노력합시다.

그림 출처: http://images.chron.com/blogs/nickanderson/archives/and0820blog.jpg
권위주의 정부를 풍자했습니다.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내용이 재미있습니다.

2009년 8월 6일 목요일

[자유] 약자는 강자를 어떻게 이길 수 있나요? (2)

(음식에 정성이 들어가야 맛있듯이, 글에도 정성이 들어가야 반응이 좋은 법이죠. 1편에서 무플의 굴욕을 지금까지는 안고 있습니다. ㅜ.ㅜ 정성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반성하고, 열심히 노력해보겠습니다.^^)

지금 현재 정치판을 객관적으로 살펴보면, 소위 보수라는 진영이 강자이고, 그 이외 진영이 약자죠. 국회의원 숫자를 헤아려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약자 진영은 머리를 잘 굴려야 하고, 그것도 부족할 수 있으니 힘을 합쳐야 합니다. 효도르도 저 같은 사람 10명과 붙으면... 우리 쪽이 질까요? 그렇다면, 복싱 선수 10명과 붙으면 효도르가 질 겁니다. ㅋ

프레시안에 신촌 S대 정외과 교수님이 칼럼을 기고하셨는데, 진보라는 말을 아무렇게나 쓴다고, 매우 기분 나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803081227&Section=01
"진보가 그렇게 부러운가?"

최근에 자유주의 무슨 연합이 자기들이 진정한 진보!라는 광고를 대문짝만 하게 일간지에 실은 것이 그 교수님 심기를 대단히 불편하게 만들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인지 이전 참여정부 때 같은 지역인 신촌의 E 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님이 청와대 홍보수석을 할 때 이야기까지 끄집어냈더군요. 참여정부가 진보라고 표현한 것이 못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로, 진보가 영어로 (the) progressive인데, 그 홍보수석은 (the) liberal로 표기했으니, 제 나름대로 해석하자면, 무식이 철철 넘쳐났다는 가공할 만한 공격이었습니다. 표현을 직접 보시죠.

"다만 문제는 liberal을 자유주의가 아니고 진보라고 번역한 뒤 자신들이 진보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progressive가 진보지, 어떻게 liberal이 진보인가? 영어단어 공부부터 다시 할 필요가 있다. 한마디로, 'shit'을 '똥'이 아니라 '빵'이라고 번역한 뒤 '똥'을 보고 '빵'이라고 우기는 꼴이다. 자신들이 진보세력이라고 주장하는 민주당 지지자들, 노무현 정부 참여 지식인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은 progressive인가? 이에 대해서는 progressive는 아니고 liberal이라고 꼬리를 내릴 것이다."

상당하시죠? 화가 많이 난 모양입니다. 화내면 지는데... ^^ 제가 보기에는 화낼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liberal이 progressive를 포괄할 수 있거든요. 그렇지 않습니까? 자유주의(liberalism)는 모든 사상의 자유를 원칙적으로 허용하니, 진보주의도 자유주의 사상으로 인정받을 수 있죠.

참여정부를 보는 시각에 따라서 보수(FTA와 이라크 파병 참작), 중도우파(경북대 이정우 교수 표현), 그리고 그 홍보수석의 리버럴 진보까지 다양한 정체성으로 불리는 것은 저로서는 별로 이상하지 않습니다. 참여정부에 진보 색채가 전혀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더구나 지금 이명박 정부와 비교하면 참여정부를 "마일드" 진보로 불러도 괜찮습니다. 진보도 결국 상대적인 개념이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참여정부를 진보 정부로 평가하는 것은 아닙니다. 보수, 중도, 진보로 삼분법을 적용하면, 참여정부는 전체적으로 중도 정도였다고 봅니다. 이라크 파병이나 FTA 추진은 보수였죠. 실패했습니다만 4대 개혁법안 추진은 진보 특성이라고 봐야죠. 기타 등등...

신촌 S대 교수님이나 E 여대 교수님이 적어도 겉으로는 현재 강자 진영에 속하지 않는 것은 분명합니다. (사람 속은 알 수 없습니다. 어느 날 다른 진영에 떡 서 있는 분도 저는 봤거든요. 마음의 자유가 있으니까, 저는 그것도 이해합니다. ^^) 그렇다면, 약자들끼리 힘을 합쳐야 하는데, 위 인용처럼 퍼부으면... 힘을 합치기 어렵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혹시 두 분이 이 글을 보시면 훌훌 털고, 진보-보수에 너무 신경 쓰지 마시고, 아직도 싯! 퍼렇게 살아서 날뛰는 권.위.주.의.자.들을 준엄하게 꾸짖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주제넘었나요? 저는 이런 말을 할 자유가 일단 있는데, 모르겠습니다. 두 분 중에 저에게 방종이다!라고 태클거실 분이 없길 바랄 뿐입니다. 저는 이런 것으로 논쟁하기 싫거든요. 저는 앞으로 권위주의자 위주로 태클을 걸 생각입니다.

그리고 진보를 우상화한다든지, 무슨 만병통치약이나 특효약으로 생각한다든지, 어떤 특정 범주 안에 딱 고정된 것으로 파악하는 것도 위험합니다. (신촌 S대 교수님이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유연할 필요가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머릿수 싸움일 때가 잦거든요. 무엇이 옳다고 계속 주장하면서 딱딱하게 굴면 사람이 잘 모이지 않습니다. 또한, 정치이념이 종교가 아닌 이상, 절대적 진실을 주장할 수는 없죠. 보수나 진보나 유연해야 사람을 모을 수 있고, 이념 내적 결함을 수정하면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영국의 보수가 꽉 막힌 것이 아닙니다. 유럽의 사민주의도 고인 물과 같았으면 여러 나라에서 집권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제3의 길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유연! 그것 아니겠습니까?

휴~ 또 말이 많아졌습니다. 내일 계속 하겠습니다. 약자는 머리를 잘 굴리자, 그리고 힘을 합치자! 그래야 강자를 이길 수 있다! 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림: 김승근 화백, 상생(相生), 243 x 114Cm, 광목 + 혼합채색http://pds10.egloos.com/pds/200901/18/17/a0101817_4972378c91beb.jpg

2009년 8월 5일 수요일

[자유] 약자는 강자를 어떻게 이길 수 있나요? (1)

그림: Battle_of_Koniggratz_by_Georg_Bleibtreu.jpg

약자는 강자를 이기기 어렵죠. 단어 그 자체에 약, 강으로 힘의 균형이 깨져 있으니까요. 그러나 약자가 모든 면에서 약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제대로 전략을 짠다면 강자를 이길 수도 있습니다.

1866년에 있었던, 오스트리아와 프러시아 사이의 7주 전쟁(독일 전쟁, 통일 내전이라고도 합니다.)을 약자 프러시아가 강자 오스트리아를 꺾은 전쟁으로 평가하기도 합니다. 미국 제 사부께서 그렇게 평가합니다. ^^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오스트리아는 "강성대국"^^이었죠. 프러시아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독일 통일을 어떻게 이뤄볼까 눈치를 보는 시기였습니다. 나라 이름도 오스트리아는 제국이었고, 프러시아는 왕국이었습니다. 오스트리아가 힘이 셌던 것을 금방 느낄 수 있죠?

나라 전체에 동원력을 내려서 모든 국력을 동원하면 프러시아가 오스트리아를 이길 재간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프러시아가 이겼습니다. 그래서 역사 교과서 표현대로, 오스트리아 중심의 대통일이 아니고, 프러시아 중심의 독일 소통일이 이뤄졌습니다. 신기하죠? 어떻게 약한 프러시아가 더 강한 오스트리아를 이겼을까요?

성서에 유명한 싸움 이야기가 있습니다. 작은 체구의 다윗이 덩치 골리앗을 이긴 이야기입니다. 다윗이 머리도 잘 돌리고, 돌팔매라는 적절한 도구를 활용하여 골리앗을 거꾸러뜨린 감동 가득 사건이죠. 프러시아도 비슷한 방법을 썼습니다. 그 당시 병사와 전쟁물자 수송은 주로 철도가 담당했습니다. 프러시아는 자기네 수송에 유리한 전장을 선택했던 것이죠. 프러시아 쪽에서는 여러 방면에서 그 전장으로 병력과 물자를 보낼 수 있었던 반면, 오스트리아는 거의 한쪽에서만 수송해야 하는 장소였습니다. 오스트리아가 다른 쪽으로 쳐들어가면 되지 않았느냐고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무슨 사정이 있었겠죠. 그것까지 제가 시시콜콜 설을 풀 수 있다면 유럽사 전공을 겸해도 되겠죠?

하여튼, 제 사부님 논문을 보면, 프러시아는 동원에 필요한 수송기술과 지리도 잘 활용하고, 전략도 잘 짰기 때문에 오스트리아 강성대국을 이길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그 이후 오스트리아는 현재 독일 땅을 포기하고, 대통일 꿈을 접습니다. 독일이 역사의 전면에 떡 하니 등장하게 된 것이죠. 7주 전쟁에 대해서 여전히 미심쩍으시다고요? 그러면 인터넷을 보시죠. ^^


다윗-골리앗 다툼이나, 1866년 오스트리아-프러시아 전쟁에서 우리는 일단 머리를 잘 굴려야 약자가 강자를 이길 수 있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짱구를 아무리 굴려도 별 뾰족한 수가 없어서 계속 당해야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다음 방법을 고안합니다. 그것은 힘을 합치는 것입니다. 연합입니다.

(내일 계속 하겠습니다. 먹고 사는 제 할 일도 해야죠. ㅜ.ㅜ 양해 부~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