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Notice) | 방 명 록 (GuestBoard)

2009년 8월 7일 금요일

[단상] 권위가 없는 사회

우리 사회는 총체적으로 권위가 없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다. 현대 민주주의는 삼권 혹은 이권 분립에 따라 작동하는데, 우리나라의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 어디에서도 권위는 찾아보기 어렵다. 행정부 최고책임자인 대통령도 권위가 없어서 국정운영에 애로사항이 많고, 입법부는 영양가 없는 정치인들이 모인 곳이라는 국민적 인식이 팽배해 있다. 권위적("권위주의적"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임) 판단의 최후 보루가 되어야 할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도 크게 다른 것 같지 않다.

권위가 없는 사회에서는 갈등의 요인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기고, 그 해법을 정치적으로 찾으려는 경향이 생긴다. 즉, 사회 모든 분야가 정치판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되겠다. 정치판의 기본속성 중 중요한 것이 "힘겨루기"이므로, 잘못되면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 혹은 "힘센 놈이 장땡이다."라는 반 자유민주주의적인 대세가 생길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모든 사람이 불편해지므로, 제대로 된 권위를 열심히 찾게 되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한때 매달 국정토론회를 열어서 우리의 갈등문제를 푸는 통로로 이용하려고도 했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그런 토론회를 통해서 갈등 해소의 권위를 세우려고 했을까. 권력기관을 동원해서 권위주의적으로 눌러서 갈등을 잠재울 수도 있었겠지만, 시대가 바뀌었으니 그 방법이 더는 통하지 않는다는 올바른 역사인식에 기초한 발상이었다. 그러나 그 국정토론회가 권위를 세우기보다는 여러 갈등요인을 드러내 보이는 정도밖에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혹은 대통령이 여러 갈등에 대한 견해를 알리는 장소가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 것도 솔직한 심정이다.

권위가 세워지려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노력도 많이 필요하다. 예컨대, 자연과학계에 노벨상을 받은 학자가 있다면 상대적으로 권위를 인정할 것이다. 현재 우리 실정상 노벨상을 받기까지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입법, 사법, 행정부도 마찬가지다. 없는 권위가 갑자기 합의를 통하여 짠~ 하면서 나타날 가능성은 매우 작다. 과도기에는 서로 권위라고 주장하면서 갈등이 증폭될 수도 있다.

권위가 없는 곳에서 사회 갈등을 극복하기 위한 연구는 필연적이다. 객관적으로 잘된 연구를 통해서 어떤 해법을 제시한다면, 이전투구식의 정치적 논란보다는 훨씬 권위를 세우는 것이다. 권위가 없는 사회의 갈등 해소를 위한 협력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지역, 계층, 직능, 세대 간 갈등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 그리고 그 연구에 입각한 갈등극복의 구체적인 정책제시를 한다면, 물론 한계는 있겠지만, 시민이 그 권위를 어느 정도 인정해주지 않을까라는 생각이다. 적어도 아무런 구체적인 분석도 없이, 목소리만 높여서 자신의 뜻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주장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갈등극복 정책연구를 민간 연구에서 장기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정부가 도와준다면, 없는 권위를 서서히 세워나갈 수 있을 것이다. 갈등요인이 많을수록 그 해법을 찾기 위한 연구는 다각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정부부처 산하의 연구소가 그동안 정책연구를 많이 했지만, 그 연구와 함께 진행했어야 하는 민간 정책연구는 매우 부족했다. 갈등이 많은 사회에서 권위는 오히려 정부와 관련없는 독립적인 연구에서 세울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민간 연구에 의한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고급 정책연구를 통해서 갈등극복의 권위를 세우면 좋겠다.

그림 출처: http://www.aecom.yu.edu/iphs/images/think_tank.jpg

댓글 4개:

  1. 박사님 미국 정부에는 협상을 전문으로 하는 관료들도 있나요?
    용산참사때도 그렇고 쌍용차사건도 그렇고.. 그 일에 정말 휘말려들면 어느 입장에 서있건 객관적이라함을 유지하기도 힘들거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일단 교착상태에 이른 것이 발단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일부러 그렇게 만드는 힘의 논리도 있겠지요.. 이럴때 어떤 뾰족한 수가 잘 안떠오를텐데.. 이런 걸 전문으로 해서 원칙적인 접근들을 만들고 그런 룰대로 진행하는 전문가들이 있는지 괜히 궁금해졌습니다..

    우리는 세심히 관찰함 없이 교착에 이르면 공권력을 투입하는데, 법적으로도 그렇게 되도록 한다고 하죠, 아.. 잘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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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미국에는 없는 것이 없다고 보면 될까요? ^^ 다양하니까 협상전문 관료도 있을 것입니다. 국제협상 부문에는 분명히 있습니다.

    갈등 해소 매뉴얼도 있습니다. 미국 경찰은 권위가 있습니다. 사회적 합의에 의해서 그 권위는 인정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그 권위가 허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제법 있을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평균적으로 경찰의 권위르 인정하고, 경찰이 갈등 해소 매뉴얼대로 집행하면 별 시비가 걸리지 않습니다.

    우리도 경찰 매뉴얼이 있는데, 그 권위를 잘 인정하지 않죠. 경찰이 권위주의의 하인 역할을 한 적이 많아서 그럴 겁니다. 앞으로 나아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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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갈등 해소 매뉴얼 같은 것도 있군요..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는 분들이 또 경찰들인데.. 게다가 위험도 높은 직업이고...

    권위있는 경찰.. 멋질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 이럴땐 막 이미지같은게 떠올라요.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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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지금은 활동이 거의 없지만, 제가 아이디어를 내서 2003년 5월에 발족한 사단법인 우리정책협력연구원이 그런 매뉴얼을 만드는 민간 연구기관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예컨대, 대형재난이 발생하면 청와대부터 소방서, 파출소까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매뉴얼을 만드는 것입니다. KTX 사고가 큰 것이 하나 터지면 아직 우왕좌왕할 것 같습니다. 또한, 이권이 걸린 큰 프로젝트를 정부가 추진하려면 어떤 절차를 거치는 것이 좋고, 적절한 전략은 어떤 것이 있는지 등도 연구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죠. 제 바람대로 그 연구원은 굴러가지 않더군요. 원장 능력 부족과 돈이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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