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으로 유명한 노스트라다무스나 우리나라의 용하다는 점쟁이들을 우리는 사회과학자로 간주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원용한 방법론을 다른 사람들이 객관적으로 재현해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과학의 여러 속성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일반화된 지식의 축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점쟁이들의 "척 보면 압니다." 식의 방법론은 개별적인 특정 사안에 있어서는 "족집게"라는 감탄을 간혹(우연히) 자아낼지는 몰라도 일반화된 지식을 제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게임 이론에서 행위자(플레이어)를 합리적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과학적 방법론의 추구라고 보면 됩니다. 비합리적이라고 가정하는 것보다는 합리적이라고 가정하는 것이 "일반화된 지식의 축적"에 당연히 더 큰 도움을 줍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OO씨는 사과보다는 배를 좋아하고, 바나나보다는 사과를 좋아합니다. 세 과일이 앞에 있다면 OO씨가 어떤 과일을 먹을 것인지 예측해봅시다. 합리적 행위자라면 배를 선택할 것이라는 예측을 할 수 있겠죠. 그런데 만약 비합리적 행위자라면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예컨대, (배 > 사과 > 바나나 > 배)라는 선호도를 갖고 있다면 OO씨가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오리무중이 되죠.
게임 이론 자체는 비합리적 행위자를 분석하지 않습니다. 게임 이론을 응용하여 분석이나 예측을 했는데 잘 맞지 않으면 그 가능성 중 하나로 행위자가 비합리적일 수도 있다는 추정을 할 수는 있겠죠. 만약 비합리적 행위자로 설명이 더 잘 된다면 게임 이론 모형은 과감히 버려야 합니다. 서울의 제 은사께서 오래전 어떤 사석에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안박, 사랑은 게임 이론으로 어떻게 설명하나?"라는 질문을 던지셨을 때, 제 대답은 그 사랑이 합리적 선택과 연관되어 있으면 설명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으면 제대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답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아낌없이 주는 사랑"을 게임 이론으로 설명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죠. 그런 사랑에 게임을 갖다대는 것은 일종의 모독이죠. 반면에 "혹시 내가 낚시에 걸려든 것일까?"라는 전략적 사고를 하는 애정은 게임 모형을 적용할 여지가 충분히 있습니다. ^^
김정일을 비합리적 행위자로 간주한다면 게임 이론을 적용하지 않는 것이 맞습니다. 김정일이 합리적 "미친" 행위자이면 적절한 게임 모형을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비합리적 "미친" 행위자이면 게임 이론을 적용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OO씨가 "미친"이라는 용어를 어떻게 정의했는지 불분명한데, 저는 "미친" 합리적 행위자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치킨 게임을 한번 살펴봅시다. 치킨 게임에서 순수전략 내쉬균형은 한쪽이 돌진하고 다른 쪽은 피하는 것입니다. 2x2 행렬에서 순수전략 균형이 두 개 생기죠. 그런데 치킨 게임에 혼합전략 균형도 있습니다. 혼합전략 균형을 적용하면 모든 결과가 균형이 될 수 있습니다. 즉, 양쪽이 돌진하는 것도 균형 결과가 되죠. 따라서 양쪽이 돌진하여 함께 망하는 결과가 생겼다고 해서 행위자들이 비합리적이라고 일방적으로 추정할 수는 없습니다. 용의자의 딜레마 게임 상황에서 배신하지 않고 협력하는 행위자는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전쟁을 일으킨다고 해서 비합리적이라고 볼 수도 없습니다. 작년에 제가 싸움보다 평화를 더 선호하는 두 행위자 사이에서도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순차게임 모형을 포스팅한 적이 있죠. (http://tinyurl.com/ahn-wargame) 전쟁을 일으켜서 더 나쁜 결과를 피할 수 있다면 합리적 행위자가 선제공격을 합니다. 가능성도 크지 않고 또한 그렇게 되면 안 되겠지만 경우에 따라서 김정일도 그런 결정을 내릴 수도 있겠죠. 물론 비합리적 행위자라서 그런 결정을 내리는 시나리오도 가능할 것입니다.
북한 지도자로서 김정일이 합리적 행위자이냐 아니냐는 정확하게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비합리적 행위자로 가정하기보다는 합리적 행위자로 가정하는 것이 일반화된 지식을 축적하는 데 장점이 더 많다는 것은 제가 보기에는 자명합니다. "김정일은 비합리적인 미친놈이라서 어디로 튈지 모른다."고 가정하면 점쟁이가 점괘 뽑듯이 김정일을 설명해야겠죠. 또한, 그동안 북한이 보여준 행태를 참조하면 합리적이라고 가정하는 것이 전혀 무리가 없습니다. 이 점은 작년에 올렸던 남북한 관계 포스팅에서 설명했습니다. (http://tinyurl.com/ahn-nsk2)
이번에 발사한 로켓은 이미 예견되었던 것입니다. 북한이 대포동 1호인지 광명성인지를 쏘아 올렸다고 몇 년 전에 자랑했는데, 그 로켓을 더 향상시키려고 당연히 노력했겠죠. 합리적 행위자라면 핵무기에서 재미를 봤듯이 장거리 운반수단 기술개발에서도 재미를 보려고 했겠죠. 그 돈으로 죽어가는 인민들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논평 보도를 봤습니다만, 북한으로서는 안전보장용 군사기술(핵무기+장거리 운반수단) 및 앞으로 협상카드로 유용한 것이죠. 이전 로켓 발사로 만족하고 업그레이드시키지 않았다면 오히려 비합리적 행위자인지 의심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미국, 일본은 호들갑을 떨 수밖에 없습니다. 위성을 운반할 수 있는 기술이 가진 군사적 의미는 불문가지이니까요. 또한, 앞으로 있을 협상에서 조금이라도 더 유리한 위치를 잡으려고 노력해야 하니까요. 저는 북핵 위기와 비슷한 경로를 밟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즉, 처음에는 치킨 게임 양상을 보이다 상호 커뮤니케이션에 의해서 협상 테이블로 나아가는 것이죠. 김정일이 합리적 행위자라서 그럴 것 같습니다.
히틀러와 비교하는 것은 별로 설득력이 없는 것 같아요. 북한이 핵무기를 초보 수준에서 갖고 있지만, 북한을 둘러싸고 있는 미국(+일본+한국), 중국, 러시아 모두 초대형 핵무기 보유 강대국들이죠.
일단 이 정도로 답변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