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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29일 토요일

[수필] 같이 놀면서 공부했던 학생 친구들

1990년대 말에 어느 장학재단의 대학원 장학생 전공 지도를 맡은 적이 있었습니다. 정치학과 법학 분야를 맡으라는 요청을 받고, 제 능력에 걸맞지 않은 역할이라서 고사할까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기회가 아니면 대한민국의 최우수 중 최우수 학생과 친구가 될 기회가 영영 없을 것 같아서 덜컥 맡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약간 과욕이었던 것 같습니다.

정치학 2명, 법학 2명으로 구성된 조촐한 공부 모임이었습니다. 모두 미국 유명대학 유학이 확실시되는 인재였습니다. 전공이 정치학과 법학으로 나뉘고, 어쩌면 저보다 공부를 더 잘하는 학생들이라서 처음 만날 때는 겁이 제법 났습니다. 교수가 언제 가장 겁나는지 아십니까? 교수마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우수한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하는데 뒷좌석에 앉은 학생이 뜬금없이 씨익 웃는 순간이 가장 겁날 때라는 강호의 전설이 있습니다. 강의 내용이 틀렸을까 봐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다는 것이죠. ^^

저는 그런 겁나는 순간을 피하고자 처음부터 솔직하게 인간선언을 했습니다. 더 가르칠 것이 없으니 하산해도 된다고... 이 글을 읽으면 저에게 학생들을 부탁한 그 장학재단은 매우 불쾌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ㅎㅎㅎ 공부도 했습니다. 과제도 내주고 토론도 했습니다.

학생지도비가 제법 나왔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그 돈이 부담스러웠습니다. 별로 가르쳐주는 것도 없었고, 오히려 그런 최우수 학생들을 만나는 영광을 입었는데 돈까지 받으니 황송했습니다. 그래서 그 돈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했습니다. 어떻게? 그 학생들과 제가 밥 먹고 노는 데 다 썼습니다. ㅋ

그 부작용이 최근에 드러났습니다. 세월이 흘러서 네 명 모두 유수 대학의 교수님이 되어 있습니다. 오랜만에 연락했더니 다행히 잊지 않았더군요. 사람이 잊히는 것이 가장 좋지 않은 일이라고 하는데, 기억을 해줘서 매우 고마웠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일을 회고하면서 공부한 기억은 별로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신나게 놀았던 기억만 떠오른다는 겁니다. ㅜ.ㅜ 저는 분명히 공부를 시켰습니다. 어려운 영문 논문 작성도 시켰거든요. 억울합니다. 억울해도 어떻게 하겠습니까. 모두 제가 저지른 일 때문에 생긴 업보입니다. ㅜ.ㅜ

댓글 16개:

  1. 제 억울한 심정을 호소했더니, 글에 등장하는 어느 교수님은 그것이 제 잘못이 아니라, "선택적 기억" 때문이라고 위로해줬습니다. 고마운 위로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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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서로에게 정겨운 느낌이 남아 있는 건, 그 때 열심히 놀았던 기억 덕분이 아닌가 합니다. 저는 저녁먹고, 술먹고 (그것도 많이 먹고), 가무를 즐겼던 아련한 기억만이 있습니다. 그래도, 나름 좋은 것만 선택적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후로 아주 오랫동안 그렇게 놀아보진 못한 것 같습니다. 시간도 없었겠지만, 자기 돈 내면서 놀 여유도 없어서 그랬지 않나 싶습니다. 늦었지만, 많이 사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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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어익후, 이럴 줄 알았습니다. ㅜ.ㅜ
    그동안 이준구 선생님께서 주신 후한 점수가 일순간에 다 날아가는 듯한 이 느낌...
    최근 몇 년 동안 저도 그렇게 놀 기회가 없었습니다, Bluenote님. 메뚜기도 한철이라고 하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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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아, 저희가 영문논문 작성도 했었습니까? 함께 책상에 둘러앉아 있었던 적도 있기는 있었던 듯한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데, 함께 술상에 둘러앉아 있었던 기억이 묻히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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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중심잡기님은 한 술 더 뜨시네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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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君子三樂 중 하나인 '천하의 영재를 얻어 가르침'을 풍성하게 누리셨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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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君子라는 단어에서 뒷머리가 많이 켕깁니다. 영재였음은 틀림없습니다. 지금은 영재들을 가르치고들 계시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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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안박사님같은 분과 인연을 맺은 당시의 대학원생들이 무지 부럽습니다. 같이 노는 일도 공부하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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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나도 그 재단에서 몇 년 동안 가르쳤습니다.
    안박사 말씀처럼 최고의 인재들을 만나고 가르치는 재미가
    아주 좋았습니다.
    그 사람들도 지금 대부분 교수가 되어 있구요.
    그런데 이창용 교수는 그때 내 강의 수강 대상이었는데,
    무슨 핑계를 대고 오지 않아 나에게 미운 털이 박혔습니다.
    그런 사람은 공저자로 영입한 것은 내가 무척 너그러운
    사람이라는 증거라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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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선생님, 그런 학생은 F를 줘서 탈락시키실 수도 있으셨을 텐데 정말 너그러우십니다. 저라면 재단에 통보해서 장학금을 주지 말라고 요청했을 것입니다. ㅋ

    BeA님, 솔직히 제 이기심의 발로가 컸습니다. 제가 함께 놀고 싶었거든요. 학생들의 이기심도 맞장구가 잘 되었다고 봐야겠죠? 물론 명분으로 엘리트는 노는 것도 여러 수준에서 잘 알고 있어야 된다는 것을 내걸기는 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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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교수님께서 겁나신다는 전설같은 순간부터 웃음이 나기 시작했는데 생생한 증언?과 안교수님의 댓글에 푸!훕! 좀 했습니다.^^ 절대적으로 공부 시간이 많은 초중고의 경우에도 어쩌다 기억나는 것은 공부 외에 즐거웠던 순간인 것 같아요. 환원을 작정하시고 실천하셨으니 그나마 덜 억울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ㅋㅁ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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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ㅎㅎㅎ 파란봄님 말씀이 맞습니다. 저도 함께 신나게 놀았으니 덜 억울하다고 봐야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신나게 놀았던 기억보다는 학생들 지도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던 기억이 더 생생합니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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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마지막 선생님 댓글 보고 사실 좀 웃었습니다. 그럼, 안되는 거죠?

    언젠가 다들 한 자리에 모일 날이 다시 있으리라 믿습니다.그 땐 술도 한 잔하고, 아니, 두 잔 이상 하고, 가무도 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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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Bluenote님의 웃을 자유를 존중합니다. 제가 명색이 자유주의자입니다. ^^

    고구려의 동맹, 부여의 영고였던가요? 가무를 즐기는 것은 역시 조상님들이 물려주신 찬란한 유산이라고 봐야겠습니다. 술, 노래, 춤, 모두 하지 않은지 몇 년이 지났지만, 그때 그 학생들을 다시 만나면 어느 정도는 즉시 회복될 것으로 봅니다. 그런데 정말 가무를 했던 것은 기억이 가물가물 한데...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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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저도 사회적으로 많은 것을 환원하고 싶습니다.

    방법을 찾았으니 실천만 남은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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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ㅎㅎㅎ 형석 씨의 사회 환원을 기대합니다. 저에게도 혜택이 쪼끔 돌아오면 안 될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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