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대 사회교육학과 김석준 교수님은 진보신당 부산시 위원장입니다. "약자가 강자를 어떻게 이길 수 있나요?" 시리즈 글을 김 교수님 홈페이지에 옮겨서 의견교환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기 때문에, 또 김 교수님이 좋아하는 사민주의(사회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는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했습니다. 김 교수님은 제 주장의 핵심에 동의하시면서, 그래도 힘을 모으는 "방법과 절차에 대해서 따질 것은 따지고 정할 것은 정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좋은 의견을 주셨습니다. 또한, 단기적으로는 패배해도, 장기적으로 이길 수 있으면 생고생(풍찬노숙)도 각오할 수 있어야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문제도 정답이 없습니다. 결국, 개인의 정치적 신념에 의해서 각자 갈 길을 가더라도 자유주의에서는 궁극적으로는 비난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단, 사회적 결정은 민주주의로 하는 것이 해법이죠. 진보신당이 주장하는 그 방법과 절차가 다수의견이 아니면, 소수의견으로 남습니다. 물론 그 소수가 다수가 될 날을 학수고대하겠죠.
김석준 교수님과 의견 교환하면서 진보신당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진보신당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소개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강령을 읽으면서 의문이 생겼습니다. 제가 의아하게 생각하는 진보신당 강령의 표현은 다음과 같습니다. 2009년 3월에 채택한 강령입니다.
"나의 자유는 그 만남의 공동체가 확장되는 만큼 넓어지고, 그 만남의 온전함만큼만 온전할 수 있다. 이처럼 자유로운 삶을 위해, 너와 내가 평등하게 만나 서로 주체로서 우리가 되고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활동이 바로 정치이다."
"하지만 국가는 만남의 최종적 전체가 아니므로, 더 큰 전체인 인류공동체를 향해 자기의 한계를 넘어서야 하며,"
"세계시민적 국제주의는 편협한 민족국가의 경계를 넘어 보편적인 인류 공동체의 건설을 추구하고 있다."
기타 등등... 제가 공동체라는 단어를 정치에서, 구성원 수가 "많은" 사회집단에 사용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진보신당 강령은 왠지 우리 도덕/윤리 교과서 분위기를 풍깁니다. 전체주의 주춧돌을 놓았다고 평가되기도 하는 룻쏘가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도대체 진보신당 정치단체가 추구하는 공동체가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진보신당의 강령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공동체인가요? 만약 그렇다면 그 강령에 찬성하지 않는 사람들은 어떻게 됩니까? 공동체 밖에 존재하는 멀리 해야 하는 인생입니까? 생각이 옳지 않은 사람들인가요? 아니면 생각이 다른 시민일까요? 생각이 다르면 그 공동체에 속할 수 없겠죠?
그 강령의 초안을 작성한 진보신당의 대표적 이데올로그에게 조만간 문의를 해야겠습니다. 강령에서 나의 자유는 "공동체"가 확장되면 넓어진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만약 그 과정에서 남의 자유가 훼손되면 어떻게 됩니까? 유감스럽게도 진보신당 강령에서는 제 의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ㅜ.ㅜ
예전에 진보신당 강령을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지인이 권유해서... 그 때 들었던 느낌은 박사님이 말씀하신 것과 거의 유사했던 듯 합니다. 그리고, 공동체 개념과는 좀 핀트가 다른 언급이지만, 그 때 당시에 헌법책을 넘겨보고 있을 때였는데, '제한받을 수 없다'는 표현이 종종 등장하는 측면이나, 자본 자체를 상당히 죄악시하는 표현들이 상당히 많아서 불편했었고, 그래서 내린 결론이 진보신당이 지향하는 공동체의 방향이 제 가치관과는 상당히 달라서 거리감을 확인했던 기억이 납니다..
답글삭제같은 강령에 자본주의를 극복한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수정자본주의를 지향하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