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8/03/18, 원본을 약간 수정했습니다.)
제가 PC를 처음 접한 것이 1987년이었습니다. 그 당시 IBM의 초창기 PC가 보급되면서 제 호기심을 많이 자극했습니다. 처음 부팅 하려면 넓적한 DOS 디스켓을 먼저 집어넣고 한참 기다리는 식이었죠. 개인적 사정이 생겨서, 집에 꼭 PC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큰 마음 먹고 그 당시로는 최신형에 가까운 386SX 컴을 장만하게 되었습니다. 학생 신분에 간이 밖으로 나왔던 것이죠.
제 호기심을 충족시키려는 음흉한 흉계도 있었습니다. 286이 16비트이고, 386이 32비트인데, 386SX는 16비트와 32비트의 짬뽕 보급형 모델이었습니다. 사양은 메모리 2MB^^에 하드 20메가 바이트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금은 메모리 단위가 기가 바이트로 올라갔으니 격세지감이죠.
그런데 메모리 체크를 해보면 2메가로 나오지 않고 1메가 정도로 표시해주는 것입니다. 우편 주문으로 구매해서 속은 것은 아닌지 며칠을 고민하다, 같은 학교 경제학과에 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친구에게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그 친구가 나머지 메모리는 extended memory로 취급되어서 그렇다고 말해주면서 저를 맘껏 "능멸"하더군요. 그래서 제 무식에 한이 맺혀서 하던 공부를 일부 뒤로 미룬 채 PC 공부에 돌입하게 되었습니다.
한 달 뒤, 그 친구와 얘기를 하던 중 다시 PC 얘기가 나왔습니다...
안: expanded memory는 뭔지 아냐?
친구: ..... 잘 모르겠는데?
안: (폼 잡으면서) expanded는 말이야, 어쩌고 저쩌고... (지금은 모두 잊었습니다.)
친구: 음, 한 달 만에 인간이 이렇게 바뀔 수도 있구나. 놀랍도다. ㅋㅋㅋ
제가 기계에 친화력이 조금 있는 편입니다. 기계는 거짓말을 잘 안 하더군요. 요즘은 게임을 하지 않지만, 저희 애가 어렸을 때는 함께 슈퍼마리오 형제들을 도와서 공주님 구하기에 많은 시간을 들였습니다. 게임이 잘 진행되지 않으면 애가 신경질을 낼 수 있다는 핑계를 계속 대면서, 갇혀 있는 공주님이 얼마나 갑갑하겠느냐는 인류애적인 사명감도 주장하면서, 게임기와 함께 재미있는 시간을 제법 보냈습니다. 결국, 가장 최근 버전을 제외한 모든 슈퍼마리오 게임에서 갇혀 있던 공주님들을 모두 구했습니다! (비슷한 종류의 게임들에서 슈퍼마리오와 젤다 이외의 게임은 별로 끌리지 않더군요. 스타크가 그렇게 재미있다는데...)
나중에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워보겠다고 겁도 없는 생각을 해봤는데, 정신 추스르고 하던 공부나 마저 끝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죠. ^^ 그때 프로그래밍 언어를 공부했다면, 제 인생이 바뀌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때 제 결정에 대해서 감사해야 할지, 야속하게 생각해야 할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
컴퓨터를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real memory 용량도 높아야 하고, 하드디스크의 virtual memory도 적정 크기로 설정해줘야 합니다. 물론 컴퓨터 켤 때 암호도 잘 입력해야 하고요. 요즘 정부에 관한 얘기 가운데 컴퓨터나 메모리 얘기가 가끔 나와서 메모리 생각이 났었습니다...
얘기를 끝내고 보니 또 다시 두서없는 주저리주저리였네요. ㅎㅎㅎ
(컴퓨터 값 많이 내렸지요. 커다란 회의용 탁자와 의자들 구매하는 비용으로 최신형 노트북 몇 대는 쉽게 장만할 수 있을 겁니다. 그 정부 예산이 없다면 제가 한 대 선물할 수도 있고요. 주문하면 하루 이틀 만에 설치해주지 않을까요? 열흘 동안 컴퓨터 사용 못 했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메모리나 그것을 그대로 받아 적어 보도하는 메모리나 참 신기하기만 합니다. 저는 남 칭찬도 많이 하고, 될 수 있으면 긍정적으로 생각하려는 편인데... 향후 제 성정이 이전과 조금 달라지면 그것은 전적으로 제 책임만은 아닐 것 같습니다. -.-+)
사진 출처: http://www.mymemory.co.uk/images/product_shots/6676_1233582311.jpg
김영삼
답글삭제(2008/03/18 13:06) dos시절 640kb로 제한된 메모리를 base, user, conventional 이라 불렀고 1MB까지의 384kb는 upper memory 불렀습니다. MS DOS에서 메모리공간을 1MB로 제한했었던 겁니다. 1MB 초과분은 다시 확장메모리라 불렸구요. 확장메모리 사용은 ext, exp가 있는데, 둘의 차이점은 호환성에 있었던 걸로 기억이 납니다. 어쨋든 실사용 가능한 기본메모리는 640kb이었으니 각종 램상주 프로그램(특히 마우스 드라이버)를 어떻게 다른 메모리로 집어넣느냐가 관건이었습니다. 당시 기본메모리를 600kb 이상 확보하면 고수 취급을 받기도 했습니다. 마우스, smartdrv, 한글bios까지 띄우고도 말이죠. 이러한 메모리 제약은 비단 과거의 일만은 아닙니다. 현재 사용되는 대표적 OS인 윈도XP, 비스타는 대부분 32bit 운영체제라서 4GB의 메모리제약을 받습니다. 실 사용 가능한 메모리는 3.xGB이구요. Server OS나 64bit OS를 사용해야 4GB 이상의 메모리를 원활하게 쓸 수 있는데, 이들 OS는 호환성 문제가 있기 때문에 실사용이 요원한 실정입니다.
안병길
(2008/03/18 13:19) 전문가가 계셨네요. ^^ 메모리 문제는 MS 운영체제의 아킬레스건이었죠. 이공계에서는 Unix/Linux나 맥 OS 같은 운영체제를 사용하기도 하구요. 요즘은 PC 공부를 별로 안 해서... 친절한 부연설명 감사드립니다.
안병길
(2008/03/18 21:53) 요즘 언론보도에 대한 재미있는 글: http://airzine.egloos.com/
컴퓨터 로그인 보도 수정 해프닝: http://osnews.kr/254
이준구
(2008/03/18 22:03) 안박사가 생각 밖으로 컴퓨터에 정통하시군요. 이 홈피 관리하는 학생 곧 유학 떠나는데 안박사가 도움이 될 수 있으려나요?
안병길
(2008/03/18 22:15) 최근 실력으로는 미흡합니다만, 어느 정도는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요즘은 문과 학생들 컴 실력도 상당하니 쉽게 도우미를 구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일어나
(2008/03/18 23:54) 안병길님 젊으신줄 알았는데... 결혼을 오래전에 하셨나봐요~,,스타크래프트를 안해보셨다니.... 너무너무 안타까워요~ 강력추천합니다.. 이렇게 완벽한 게임은 없습니다.
안병길
(2008/03/19 00:07) 제가 결혼한다고 하니 대략 두 가지 반응이 나오더군요. 반응 1: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 반응 2: 속도위반 아냐? ㅎㅎㅎ 둘 다 틀린 추정이었습니다. 계속 젊게 봐주시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스타크는 그래픽이 별로라서... 또 너무 복잡하구요. 옛날에 옆방 조교실에서 조교들이 겁도 없이 공용 컴퓨터로 스타크를 하더군요. ^^ 야단치려다 슈퍼마리오가 생각나서 적당히 해라고 얘기해줬죠.
류동석
(2008/03/19 10:25) 개인적으로 슈퍼마리오는 3가...젤다의 전설은 슈퍼패미콤 판 '신들의 트라이포스'가 젤 재밌다고 생각합니다만... 오사카의 덴덴타운에서 예전엔 구할래야 구할 수 없었던 게임팩들을 수북히 쌓아 놓고 파는 걸 보고 저도 옛 추억에 젖어들었던 기억이납니다..ㅋㅋ 10년 전에만 갔어도 천국이었다고...ㅋㅋ
안병길
(2008/03/19 12:05) 저는 둘 다 닌텐도 3D 버전을 제일 좋아했습니다. ^^ 게임에 나오는 음악도 좋았구요.
이준구
(2008/03/19 13:59) 안박사, 염려 마세요. 학생들 중 관리자 역할 해줄 수 있는 애들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류동석
(2008/03/19 18:33) 안박사님 연배가 어떻게 되시는지 궁금하긴 합니다...^^
세헌
(2008/03/19 18:52) 그래도 단순한 2D 그래픽 덕분에, 한국에서는 오히려 워3은 맥을 못추고 스타가 계속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는 분석도 본 듯 합니다. 스타2는 엄청 화려하던데... 덕분에 처음 스타2 스샷 공개되었을 때, 화려한 화면에 대해 꽤나 시끄러웠죠;;
87년...ㄷㄷㄷ 저 돌잔치 하고 있을 때네요...;; 제가 이만큼 자란(?) 것도 신기하지만, 컴 발달속도는 정말 엄청나네요. 알파벳도 잘 모르던 저에게 도스게임 실행을 가능케 해준 Mdir은 이제 추억 속으로... (저 역시 그 때 자꾸 메모리부족으로 게임 실행안되서 이해도 안되는 책들 뒤져가며 별 쇼 다했던 기억이...)
안병길
(2008/03/19 20:58) 동석님, 한번 알아 맞춰 보세요. ^^ 정답은 이 게시판에 이미 제가 올린 적이 있습니다. ㅎㅎㅎ
(글 제목: 80학번이 어쩌구 저쩌구)
세헌님, 제 큰 애보다도 어리네요. ㅋㅋㅋ 그래도 이곳에서 우리는 게시판 동료죠?
이준구
(2008/03/19 22:01) 세헌이, 큰 영광이네. 고명하신 안박사가 동료로 인정해 줬으니.
이때는 제가 교수님 게시판과 그리 안친했을때라서 처음 읽는 글이에요.ㅋ
답글삭제결정적으로 제가 컴과 친해질 수 없는 부분이 전 게임이에요. ㅋ 컴게임을 하지도 않을 뿐더러 취미를 못 붙이겠어요. 근데 제 동생은 스타여왕이라는;; 가족인데 서로 너무 달라요.
저는 네트워킹은 그냥 그런가보다하고.. 프로그래밍은 PHP나 자바를 읽어내는 수준밖에 안되는데요... 그러니 제가 그만큼을 혼자 공부하는게 얼마나 어려웠겠냐구요.. ㅜ ㅠ
게임에 친화력이 없는 것은 와사비님이 복 받은 것입니다. 그것에 빠져서 헤매는 우리 청소년이 얼마나 많습니까? 심하면 하루 온종일 한다더군요.
답글삭제와사비님이 독학으로 프로그래밍 언어를 습득한 것은 저로서는 놀랍습니다. 저는 학부 4학년 때 포트란을 배워서 프로그래밍 재미를 붙였는데(만능 달력 만들기 ㅋ), 지금은 HTML도 가물가물 합니다. ^^
아, 하나 더 있네요. 제 박사학위 논문에 수식이 많이 들어가서 일반 워드프로세서로는 감당이 되지 않더군요. 정치학에 웬 수식? ㅋ 그래서 LaTex을 사용했습니다. 일반 워드프로세서보다는 편했는데, 그래도 악몽이었습니다. ^^
ㅎㅎㅎ 괜히 뜨끔했어요..
답글삭제뭐 좋아하면 좀 빠지는 성격이라서.. 게임을 좋아했으면 부작용이 심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첨 해봤어요.
아 일전에 게임을 하다가 죽은 학생이 언론에 기사화된적이 있었는데 알고보니 옆집 꼬맹이의 친구라고 하더라구요. 몇
일 밤을 새서 게임만하다가 진짜 그냥 그렇게 죽었어요.. ;
우리나라에서는 부모님이 관용을 베풀어야 할 것에는 베풀지 않고, 관용을 베풀면 안 되는 것에는 관용을 베푸는 예가 제법 있죠. 청소년의 컴퓨터 게임은 부모님이 콘트롤하는 것이 자유주의에 맞다고 저는 봅니다. 미국에서는 아이가 방종을 범하는 기미가 보이면 부모가 곧 태클을 겁니다. 심할 때는 grounding이라고 해서 벌칙을 내리죠. 때리는 것은 금기사항입니다. 아이를 때리는 부모가 제법 있는 연유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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