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31일 월요일
[수필] 두서없는 영어 이야기
[작성자]
안병길晴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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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2:37
제가 청운의 꿈을 안고 유학을 떠나서 처음 도착한 곳이 시카고 오헤어 국제공항이었습니다. 비행기를 갈아타는 시간이 남아서 공항 내부의 가판대에 음료수를 사러 갔었습니다. 우유를 주문했습니다. 그런데 맥주가 나오더군요. 아마도 milk를 beer로 알아들었던지, 아니면 그 근처의 Milwaukee(밀워키 맥주가 있음)로 알아들었던 모양입니다. 영어는 제법 한다고 생각하고 미국으로 갔었는데 초전에 구겨진 셈이었죠. 다시 m-i-l-k를 외쳐서 새로 우유를 받을 수도 있었는데, 쑥스러워서 맥주도 사고 우유도 샀습니다.
맥주를 마셔서 벌거스럼한 얼굴로 최종 목적지로 향하는 비행기를 탔습니다. 구겨진 자존심을 만회하고자 비행기 안에서 만난 미국인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로체스터와 롸체스터, 어느 발음이 맞습니까?" 이렇게 물어봤는데, 그런데, 그런데, 돌아온 답이... "What's the difference?"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제가 미국에서 처음 사용했던 영어들은 처참한 몰골이 되고 말았습니다.
더 심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루는 급하게 병원에 갈 일이 생겨서 차를 몰고 가던중, 아내가 배고프다고 해서 맥도날드에 들어갔습니다. 그 때 병원에 빨리 가야된다는 생각에 많이 당황했었습니다. 음식을 주문하고 나서 포크가 필요해서 종업원에게 달라고 했죠. 그런데 안 주는 것입니다. 못 알아 듣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차, 내 포크 발음을 알아듣지 못하는구나"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철자를 불러줬습니다. 그런데 그만 p-o-r-k로 불러줬던 것입니다. 종업원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고 저를 멀뚱멀뚱 쳐다봤습니다. 당연하지요. 맥도날드가 정육점이 아닌데 어떻게 돼지고기가 있었겠습니까. 또 다시 아차 싶어서 철자를 정정하여 겨우 포크를 받았습니다.
제가 학위논문 발표를 할 때 위원장으로 들어온 교수님께서도 마지막에 제 발음을 지적했습니다. 그 때도 너무 긴장이 되어서 model을 우리나라에서 했듯이 모델(뒤에 강세)로 계속 발언했던 것입니다(정확하게 표기는 안되지만, 앞에 강세를 둔 '마들' 식으로 주로 발음합니다). 그 교수님은 프랑스인이어서 그 발음이 신기했던 모양입니다. 불어로는 모델이거든요. 그래서 그 교수님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너는 왜 프랑스 사람같이 모델을 그렇게 발음하냐?"라고 저를 놀리셨습니다. 마땅히 대답할 꺼리도 없고 해서, "한국의 남쪽 시골 출신이라서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죠. 모 친구 교수가 저에게 영어도 우리말 사투리 식으로 한다고 가끔 놀리곤 했거든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기 때문에, 특히 당황하게 되면 아차하는 순간에 이전 습관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 말에 없는 th, f, v 발음 등은 신경을 써서 반복 습득해야 제대로 된 발음 습관이 생길 수 있겠습니다. 아래의 어느 댓글에서 이 교수님께서 유성음 b와 d 발음 경우도 말씀하셨지만, 이런 발음들을 처음에 가르칠 때, 우리말로 가르치는 것이 효율적인지 영어로 가르치는 것이 효율적인지를 잘 따져봐야 합니다. 어릴 때부터 원어민들과 같이 생활하지 않은 경우라면, 제 생각에도 그런 발음들은 발음시 구강구조와 치아 위치 등을 우리말로 설명해주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원봉사자로 영어를 가르치면서 th는 혀 끝을 이빨로 약간 물어야 된다든지, f나 v는 윗 대문니가 아래 입술을 살짝 건드려야 된다든지 등을 설명하고 발음을 시켜보니 훨씬 정확하게 그 발음들을 해내더군요. 그런 것들을 영어로 설명했다면 수강생들이 그 영어 자체를 알아듣지 못했을 것입니다. 결국 영어로 영어를 가르치는 것도 옥석을 가려서 해야 될 것입니다. 독해나 문법 등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2년 뒤에 일제히 영어로 영어 교육을 한다는 식의 발상보다는, 적절한 준비 기간을 거쳐서 어떤 영어 수업은 우리말로 하고, 어떤 영어 수업은 영어로 할 것인지 잘 검토해서 점진적으로 영어 공교육 개선을 이뤄나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현재 교육 현장에 계신 영어 선생님들의 영어로 수업하기 딜레마도 해소될 수 있을 것입니다.
(선배님께서 말씀하신 그 오렌지 발음을 저도 TV에서 들었습니다. 거의 같더군요. 오렌지나 오렌쥐나... 미국에서 흔히 발음하듯이 했다면 앞에 강세를 두고 아린지 이런 식으로 했어야 되었겠죠. 강세만 정확하면 오렌지도 잘 알아 듣는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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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ge
답글삭제(2008/02/24 09:46) 첫단추가 잘못 잚겨졌으니 그기 잘 될낍니까. 솔직히 말해^ 자격있는 원어민 선생들을 잘 뽑아서 단계별로 다시 시작 하는수 밖에요. 국내에 있는 내국인 발음으로는 백날 해봐야 그거 연속성이지요..반대하는 이유는 말안해도 뻔한 기고 뭐 ..
안병길
(2008/02/24 10:57) orenge님, 영어 교육과 관련하여 이곳의 방장께서 쓰신 글들을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영어 교육이라는 것이 님이 생각하듯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닐겁니다.
이준구
...XXX
(2008/02/24 12:31) 안박사 글은 언제 읽어도 재미있군요. 개그계로 진출해도 될듯 합니다.
사실 영어는 액센트와 인토네이션으로 알아듣는 것인데, 표기법 운운하는 무식한 사람을 보면 한숨이 나오지요.인도사람 영어 형편없는 것 같아도 미국사람이 잘 알아듣지 않아요? 그 대신 우리나라 사람 영어 할 때 보면 우리말 인토네이션에 영어 단어만 꿰어맞추는 셈이지요.
뉴욕주립대학 있을 때 내 옆 미국인 교수 방에 한국 학생 찾아오면 참 재미있어요. 경상도 녀석은 경상도 영어 하고, 충청도 녀석은 충청도 영어 하는 것이 들려오더군요.
그런데 영어, 영어 외치는 사람은 미국사람 한테 영어 배우면 그런 게 자동적으로 고쳐지는 줄 오해하는 것 같아요. 오랜 내공을 쌓아 그 미묘한 이치를 깨달아야 영어 잘 할 수 있는데요.
그리고 영어 단어 외우고 문법 배우는 것을 무시하는데, 그거 무시할 게 아니죠. 안박사도 경험하셨지만, 미국사람이 우리 영어 하는 걸 듣고 어디서 그렇게 정확한 영어를 배웠냐고 놀라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나는 그것이 바로 토종 된장영어의 힘이라고 믿어요.
영어를 제대로 공부해 보지도 못한 사람들이 나대는 걸 보면 정말로 한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안병길
(2008/02/24 13:09) 선배님께서 말씀하신 토종 된장영어의 대표적 예가 반기문 총장일 것 같습니다. 발음 등은 별로인데 하고 싶은 얘기는 모두 전달할 수 있으니까요. 우리말이 영어와 구조적으로 완전히 다른데, 유럽 국가들이나, 인도, 필리핀 등과 막바로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영어 교수법도 원어민, 원어민 하면서 막무가내로 갈 것이 아니라 우리 실정에 맞는 방식을 잘 고안해야 될 것입니다. 이 점은 영어교육 전공하시는 분들이 계속 연구하고 계시겠죠.
개그계 진출을 위해서 연습을 하나 해보겠습니다. 스코틀랜드 출신 여학생 후배가 제가 있던 방에 처음 와서 저와 대화를 나누던 중, "아이 아이트 마이 브렉파스트 앗 더 바이커리"라고 하더라구요. 한참 생각하니 "I ate my breakfast at the bakery."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영어 발음, 발음하시는 분들이 그 여학생을 영어 못 하는 것으로 몰아부칠지도 모르겠습니다. ^^
이준구
(2008/02/24 14:05) 오스트레일리아나 뉴질랜드 사람들도 '에이'를 '아이'로 발음하더군요. 안박사처럼 처음엔 적응이 힘들데요. 정말이지 반총장 영어 발음은 정말로 충청도식이더군요. 그런데도 UN 사무총장까지 되었으니.
해법~
(2008/02/24 19:21) 이래서 새술은 새푸대에 넣어야 푸대가 찢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나봐요......... 단순하게 해결 될수있는 것도,왜?이렇케도 복잡한지?/
안병길
(2008/02/24 20:44) Karl님이 지적하신 점은 적절합니다. 일반적으로 영어라는 것이 일종의 "도구"이기 때문에, 그것을 어디에 쓸 것인지에 따라서 개인적으로 공부하는 방법도 달라져야 될 것입니다.
해법~님의 의견은 무슨 내용인지 잘 모르겠네요.
ㅎㅎ
(2008/02/24 23:56) 잼있네요~ 이야기 많이 많이 해주세요~~ 맨날 수험공부만 하고 있으니 답답하네요.
영어 발음공부를 아주 제대로 하는 방법은 미국 통신회사의 자동응답써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제가 아는 어느 분의 말씀인즉, 그 달 전화요금이 너무 많이 나와 회사에 항의전화를 하려고 하였는데, 자동응답기가 자기말을 도통 알아듣지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나절을 전화통 붙들고 난리친 끝에 과다 청구된 전화요금도 시정 받고 영어발음도 고치는 망외의 소득을 얻었다고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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