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8/05/25)
독일어는 딱딱하고 프랑스어는 부드럽다는, 또 프랑스어는 예술에 더 적합하다는 선입견을 불식시키는 슈베르트의 가곡(Lied)들이 있습니다. 슈베르트는 600 곡이 넘는 가곡들을 작곡했습니다. "가곡의 왕"으로 불려질만 하죠. 연가곡집 "아름다운 물레방앗간 아가씨"와 "겨울 나그네"는 아름다운 음률을 간직한 애절한 스토리들을 펼쳐보였습니다. 두 가곡집 모두 실연한 청년 이야기입니다.
다음은 "물레방앗간 아가씨"의 첫 번째 노래, "방랑"입니다.
Pears & Britten - Die Schone Mullerin - n.1 Das Wandern
<가사 개요>
방랑은 방앗군의 즐거움. 방랑을 모르는 방앗군은 풋내기 방앗군이다.
물 흐름은 우리에게 가르쳤다. 밤낮을 쉬지 말고 오직 편력(遍歷)하라고.
물레방아도 쉬지 않고 돌아간다.
가루 빻는 돌은 무겁기도 하지만, 나란히 즐겁게 춤추는구나.
방랑은 나의 즐거움, 주인님도 마님도 평화스러운 여행으로 나를 보내 주오.
제분공인 청년은 장인으로 인정받기 위해서 방랑을 하던 중, 한 물레방앗간에 취직을 합니다. 그 방앗간 아가씨를 사랑하게 되지만, 그 아가씨는 다른 잘 생긴 사냥꾼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그 청년은 실연의 아픔을 겪습니다. 아래의 "내 것(Mein)"은 아가씨의 사랑을 받을 수 있겠다는 청년의 낙관적인 생각을 담고 있습니다. 착각으로 판가름났죠.
Pears & Britten - Die Schone Mullerin - n.11 Mein
<가사 개요>
냇물이여, 조잘대지 말라.
물레방아야, 소리를 내지 말라.
숲속의 쾌활한 새들아, 너희들도 노래를 그쳐라.
오늘은 숲속에서 한 가지만 노래하라.
'사랑하는 그 아가씨는 내것이다'라고.
봄이여, 네 꽃은 모두 그것뿐인가.
태양이여, 네 빛은 더 이상 밝지 못한가.
아, 행복의 말귀를 가슴에 품고 있는 것은 나뿐이다.
이 마음을 아는 사람은 넓은 세상에 한 사람도 없다.
"겨울 나그네"는 "아가씨"보다는 이야기 전개가 일관적이지 않습니다. 제목에 걸맞게 대부분의 곡들이 실연한 청년의 우울한 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문 앞 샘 곁에 서 있는 나무 밑에서 단 꿈을 많이 꾸었다는 내용의 "보리수(Der Lindenbaum)"를 들어보시죠. 친근한 멜로디입니다.
Dietrich Fischer-Dieskau - "Der Lindenbaum" -Die Winterreise
<가사 개요>
성문 앞 샘 곁에 보리수가 서 있다.
나는 그 그늘에서 많은 단꿈을 꾸었다.
줄기에 사랑의 말 숱하게 새겨 넣고,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늘 찾아갔다.
오늘밤에도 그 곁을 지나면서 어둠 속에서 눈을 감았다.
나무 가지는 수선거리며 나에게 말한다.
'벗이여, 이곳에 네 안식이 있다'고.
찬바람이 불어닥쳐 모자를 벗겨 갔지만, 난 뒤돌아보지 않았다.
이제 그곳에서 멀리 떨어졌건만, 나에게는 그 수선거림이 들린다.
'안식은 이곳에 있다'고.
슈베르트의 피아노 5중주 "송어(Die Forelle)"를 들으면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서정을 또한 느낄 수 있습니다. 여유롭게 왔다갔다 하는 물고기를 직접 보는듯 합니다. 이 멜로디도 이미 들어보셨을 것 같습니다.
F. Schubert: Trout quintet - 4. theme and variations
Julian Rachlin, Mischa Maisky, Mihaela Ursuleasa, Nobuko Imai and Stacey Watton perform the famous piano quintet in A major by Franz Schubert.
A film by Jasmina Hajdany
이 5중주의 제목이 "송어"가 된 연유는 4악장의 주제가 앞서 작곡된 가곡 "송어"의 멜로디이기 때문입니다. 가곡의 가사 내용이 재미있습니다.
맑은 시냇물을 송어가 화살처럼 헤엄쳐 간다.
나는 냇가에 서서 고기가 놀고 있는 것을 기분 좋게 보고 있었다.
낚시군이 낚싯대를 들고 냇가에 서서 차가운 얼굴로 고기가 노는 것을 보고 있었다.
나는 냇물이 흐려지지 않는 한 바늘에 고기가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나쁜 사람은 기다리지 않았다.
그는 꾀를 부려서 물을 탁하게 하고 낚싯대가 움직였나 생각했는데,
벌써 고기는 낚여져 몸부림치고 있었다.
나는 흥분한 채로 속은 고기를 보고 있었다.
"아름다운 물레방앗간 아가씨" 해설 및 감상은 여기로
"겨울 나그네" 해설 및 감상은 여기로
좋은 주말 보내세요~
[첨부: 가곡 "송어"와 독일어 가사]
Ian Bostridge - Schubert - Die Forelle
In einem Bachlein helle,
Da schoß in froher Eil
Die launische Forelle
Voruber wie ein Pfeil.
Ich stand an dem Gestade
Und sah in sußer Ruh
Des muntern Fischleins Bade
Im klaren Bachlein zu.
Ein Fischer mit der Rute
Wohl an dem Ufer stand,
Und sah's mit kaltem Blute,
Wie sich das Fischlein wand.
So lang dem Wasser Helle,
So dacht ich, nicht gebricht,
So fangt er die Forelle
Mit seiner Angel nicht.
Doch endlich ward dem Diebe
Die Zeit zu lang. Er macht
Das Bachlein tuckisch trube,
Und eh ich es gedacht,
So zuckte seine Rute,
Das Fischlein zappelt dran,
[Und ich mit regem Blute
Sah die Betrogene an.]1
[ Die ihr am goldenen Quelle
Der sicheren Jugend weilt,
Denkt doch an die Forelle,
Seht ihr Gefahr, so eilt!
Meist fehlt ihr nur aus Mangel
der Klugheit, Madchen, seht
Verfuhrer mit der Angel!
Sonst blutet ihr zu spat!]2
이준구
답글삭제(2008/05/25 13:48) 좋은 주말 선물 감사합니다. 안박사 덕분에 이 게시판이 몇 계단 업그레이드된 느낌입니다.
보리수는 언제 들어도 마음이 잔잔해집니다. 서정적인 분위기 아래 깔린 우울함이 사람을 더욱 잡아끄는 것 같다는 느낌입니다.피셔 디스카우의 멋진 노래가 특히 좋군요.
송어에 그런 재미있는 가사가 붙여져 있는지 몰랐습니다.우리말로는 우습게 들려도 독일말로는 상당히 아름답게 들리겠죠? 고등학교 때 독일어를 제2외국어로 선택한 것이 늘 후회되는데, 오직 독일 가곡 들을 때만 약간의 위안을 찾게 됩니다.
안병길
(2008/05/25 14:14) 저는 고등학교 때 독일어 관사 변형이 너무 복잡해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대학생일 때는 외교학과에 걸맞게 불어를 배웠습니다. 배우는 재미는 불어가 더 나았던 것 같습니다.
선배님께서 제 음악 포스팅을 괜찮아 하시는 것 같아서 저도 기분이 좋습니다. "송어" 가곡과 독일어 가사를 위에 첨부했습니다.
이준구
(2008/05/25 16:32) 수고스럽게 가사를 올려주셨지만 지금 유일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독일어 문장은 'Guten Morgan' 하나밖에 없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일본어나 중국어를 공부했으면 지금쯤 얼마나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었을까요. 그러나 안박사도 잘 아시겠지만 그 때는 그 언어를 선택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했지요.
안병길
(2008/05/25 22:33) ㅎㅎㅎ, 선배님의 유머. ^^ 제 경우에 독어는 거의 머리에서 사라졌는데, 불어는 제법 남아 있습니다. 불어의 복잡한 단어들이 영어와 비슷한 것이 많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영어가 불어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을듯 합니다.
wunderhorn
(2008/05/26 00:43) 슈베르트의 송어를 들으니 한때의 유머가 생각납니다..
어떤 분이 맞선을 보는데, 어떻게 하여 상대남이 가장 좋아하는 곡이 "슈베르트의 송어"인 것을 알게 되어서, 만약에 좋아하는 곡이 무엇인지 질문을 받게 되면 "슈베르트의 송어"라고 대답하려 했는데, 평소에 클래식과 친하지 않아서 잘 외어지지 않아서 작곡가와 곡명의 초성 자음이 같다고 머리속에 되뇌이며 맞선장에 나갔지요..
맞선남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사람됨됨이도 좋고 모두 마음에 들던 차에, 맞선남이 "좋아하는 곡이 무엇이냐"고 물어 보는 거예요..그런데, 이를 어쩌나! 작곡가와 곡명의 초성만 같다는 것만 알고, 정확한 작곡가와 곡명이 생각나지 않는 거예요..
"가만 가만 누구의 무엇이었지?? 베토벤의 붕어였던가? 모차르트의 메기였던가? 왜 이리 생각나지 않지?? 아! 생각났다! 바로 그거야! 슈만의 상어요!!!"
p.s. 한 때 "송어"가 아닌 "숭어"로 잘못 알려진 적이 있지요..송어는 민물고기이고, 숭어는 바다고기로 전혀 친척간이 아닌데^^
안병길
(2008/05/26 01:07) 그리그의 갈치, 드보르작의 도미, 하이든의 한치, 바하의 복어... 계속 가다보면 안드로메다에 도착하겠군요. ^^
영도스키
(2008/05/26 02:38) 와 정말 식견이 안드로메다(긍정적표현) 이십니다. 잘 듣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