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9/08/18)
김대중 대통령이 서거하셨습니다. 또 한 명의 자유민주주의 정치인이 가셨습니다. 삼가 조의를 표하면서 애도합니다.
지난 8.15 경축사에서 이 대통령은 행정구역 개편과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선을 묶어서 던졌습니다. 저는 두 사안 모두 개별적으로는 찬성하지만, 둘을 묶어서 던진 것은 잘된 의제 설정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정치적 지역주의 완화를 명분으로 내세워서 국회의원 선거제도만 던졌으면 모양새도 더 나았고, 추진력도 더 생겼을 것이라는 느낌입니다.
선거제도와 행정구역 개편을 함께 던지면, 자동으로 게리맨더링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정치적 지역주의 완화라는 선거제도 개선 명분의 빛이 바래질 수 있죠. 이미 그런 조짐이 정치권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면 이런 전략적 실수가 나옵니다. 대표적인 것이 참여정부 때 노 전 대통령이 같은 명분의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선 요청을 대연정과 연계한 것이었다고 봅니다. 대연정을 굳이 연계할 필요는 없었던 사안입니다. 노 전 대통령도 나중에 실수였음을 스스로 인정했죠.
민주당은 이 사안과 관련하여 중대선거구제를 카드로 제시하는 모양입니다. 이것도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제 블로그에 올렸습니다.
http://ahnabc.blogspot.com/2009/08/blog-post_18.html
2009년 10월 6일 화요일
2009년 10월 1일 목요일
[정치] 옳고 그름과 승리와 패배
[작성자]
안병길晴海
//
오전 12:28
(2005년 8월 26일에 작성한 메모입니다. 정치적 지역주의 완화를 위한 선거구제 개편과 대연정을 연계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제안에 대한 소감입니다.)
이긴 자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것은 상식이다. 마찬가지로 졌다고 해서 항상 틀렸다고 얘기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 이런 간단한 상식 혹은 진리가 현실에서 무시되는 경우를 볼 때 안타깝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옳고 그름이라는 잣대와 승패의 잣대는 다르다. 또한, 선호의 잣대와도 다르다.
대통령 권력은 권력으로, 지역주의 완화를 위한 선거구제 개선은 개선으로 구분하는 방법도 있다. 그것이 오히려 더 올바른 길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정치적 지역주의 극복의 중요성에 대한 대통령의 문제의식은 충분히 공감하지만, 승부사적으로 협상 테이블에 부자연스럽게 올리려는 대통령의 전략이 너무 안스럽다. (그 전략은 이미 2003년 2월 당선자였던 인수위원회 시절에 암시한 바 있다.) 지역구도 완화를 위한 선거구제 개편 자체가 대의명분이므로 그 정치적 의제 자체에 국민의 적극적인 지지와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데 왜 그런 무리수를 두는지, 어렴풋이 이해는 되지만 그래도 어색해 보인다.
대통령 주위에 정치 선생이 몇 명 있어야 된다는 참여정부 초기의 내 진단이 다시 생각나는 시점이다. 아직 2년 반이나 남아 있다.
이긴 자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것은 상식이다. 마찬가지로 졌다고 해서 항상 틀렸다고 얘기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 이런 간단한 상식 혹은 진리가 현실에서 무시되는 경우를 볼 때 안타깝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옳고 그름이라는 잣대와 승패의 잣대는 다르다. 또한, 선호의 잣대와도 다르다.
어제(2005년 8월 25일)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를 보고 나서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정치에서 흔히 말하는 올바른 길과 잘못된 길의 구분은 승리, 패배, 좋음, 싫음 등의 다른 기준에 의해서 강변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승리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승리가 올바른 길을 보장해주지는 못한다. 지역구도 극복 방안 마련이라는 정치권의 타협에 대통령 권력 양도 혹은 포기라는 대통령의 개인적 선호를 계속 설파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 선호가 정치적으로 올바른 길을 또한 보장해주지는 못한다.
대통령 권력은 권력으로, 지역주의 완화를 위한 선거구제 개선은 개선으로 구분하는 방법도 있다. 그것이 오히려 더 올바른 길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정치적 지역주의 극복의 중요성에 대한 대통령의 문제의식은 충분히 공감하지만, 승부사적으로 협상 테이블에 부자연스럽게 올리려는 대통령의 전략이 너무 안스럽다. (그 전략은 이미 2003년 2월 당선자였던 인수위원회 시절에 암시한 바 있다.) 지역구도 완화를 위한 선거구제 개편 자체가 대의명분이므로 그 정치적 의제 자체에 국민의 적극적인 지지와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데 왜 그런 무리수를 두는지, 어렴풋이 이해는 되지만 그래도 어색해 보인다.
대통령 주위에 정치 선생이 몇 명 있어야 된다는 참여정부 초기의 내 진단이 다시 생각나는 시점이다. 아직 2년 반이나 남아 있다.
2009년 8월 20일 목요일
[자유]현 정치판에서 "공룡" 정당 쪼개기 전략이란? (상)
[작성자]
안병길晴海
//
오전 12:15
(故 William H. Riker 교수님)
약자가 강자를 어떻게 이길 수 있느냐는 시리즈 글 마지막에 한나라당 쪼개기 문제제기를 했었습니다. 현 정치판에서 제1당인 한나라당을, 가만히 있는 공당을 왜 쪼개느냐 마냐는 문제를 던지는가? 라는 의견이 올라올 것으로 기대했는데, 무플의 굴욕을 맛봤습니다. ㅜ.ㅜ 그런 의견에 대한 제 답은, 한나라당은 쪼개질 거리라도 있지만, 다른 정당은 그런 거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정당들은 오히려 연합해야 될 것입니다. 연합할 명분도 있고, 약자이니까요.
1. 호텔링과 블랙: 중위 투표자 정리
1929년에 호텔링(Harold Hotelling)이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에 대한 중요한 정치적 해석을 제시합니다. 두 정당의 정책이 비슷하다는 것이죠. 이 아이디어를 논리적인 공간모형으로 제시한 것이 1948년 블랙(Duncan Black)의 "중위 투표자 정리(Median Voter Theorem)"입니다. 아시듯이, 선거 쟁점 하나(일차원), 단봉(single-peaked) 선호순서를 가진 합리적 유권자들, 정당 혹은 후보자 둘이라는 가정에서 중위 투표자에 더 가까이 가는 정당이나 후보자가 이긴다는 내용입니다. 호텔링의 해석을 논리적으로 잘 정리한 것이죠.
듀베르제(Maurice Duverger)는 영국 정치를 관찰하여 이 정리가 경험적으로도 말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영국 선거를 살펴보니, 2, 3백만의 중도 성향 유권자가 보수당과 노동당의 선거 승패를 좌지우지했다는 것입니다. 즉, 그들이 선거에 결정적인(decisive)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죠. 미국 정치에서는 무당파 스윙(independent swing) 유권자라는 존재입니다.
중위 투표자 정리의 기본 가정에도 합리성이 역시 들어갑니다. 유권자의 합리성과 정당/후보자의 합리성이죠. 유권자는 자신의 선호순서에 따라서 효용을 극대화하려고 투표하며, 정당은 표를 더 많이 모으려고 한다는 가정이 들어 있습니다. 이 가정에 의문을 제기한 정치학자가 제 미국 사부님 중 한 분인 故 라이커(William H. Riker) 교수님입니다.
2. 라이커: 최소 승리연합 정리 (The Theorem of Minimum Winning Coaltion)
라이커 교수님은 정당이나 후보가 이길 정도만 표를 모으면 되지, 더 많은 표를 모을 필요는 없다는 매우 중요한 아이디어를 제시합니다. 예컨대 후보자가 둘일 때는 단순과반수만 확보하면 이기므로, 그 이상의 표는 필요 없다는 다른 내용의 합리성을 제시합니다. 표를 모으는 데 비용이 들어간다는, 더 경제학적인 분석입니다. 비용-편익 분석이죠. 경제학의 재정학이나 공공선택 분야에서 이런 문제의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학자로 부캐넌(Buchanan)과 툴락(Tullock)이 있다고 합니다. 다음은 라이커 교수님의 최소 승리연합 정리에 대한 설명입니다.
"First he says that the intentional exploitation of the outsiders is maximized when the deciding coalition is as small as possible, but still decisive. Then he predicts that exactly for this reason such minimal coalitions will form."
http://www.mobergpublications.se/arguments/ideology.htm#minimal
조금 살벌한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한나라당 예를 들어서 위 인용이 암시하는 바를 살펴보겠습니다. 지난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압승을 거뒀습니다. 민주주의에서 다수의 지배라고 하면, 과반수만 확보하면 되는데, 과반수를 훨씬 넘는 국회의원을 한나라당이 확보한 것이죠. 그런데 정치판의 이익은 무한한 것이 아니죠. 파이는 일정한데 그것을 나눠 가져야 한다는 "탐욕"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파이를 나눠 먹을 수 있는 그룹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각자가 챙길 몫은 작아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나라당의 압승은 파이를 챙길 수 있는 국회의원 각자의 이해관계 잣대를 따르면, 그들에게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라고 해석하는 것이 라이커 교수님의 최소 승리연합 정리입니다. 효용의 극대화를 이루려면 승리연합이 최소화되어야 하고, 현실에서 그런 양상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미국 정치를 경험적으로 살펴보면 라이커 교수님의 정리는 매우 일리가 있습니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거의 반반으로 의원수를 나눠 갖습니다. 이것이 유권자의 선호순서 때문에 그렇게 된 측면도 있지만, 정치인들의 합리적 효용 극대화 추구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지난 18대 총선을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국회의원 숫자는 다다익선이라는, 거의 일당독재를 향하는 정치세계의 냉혹함을 엿볼 수 있는 것이 우리 정치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라이커 교수님의 정리가 우리 정치판에 전혀 무의미한 것은 아닙니다. 정권을 잡고 나면 그 내부에서 항상 권력투쟁이 벌어졌습니다. 이것을 최소 승리연합을 향한 움직임으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박근혜 씨가 한나라당을 뛰쳐 나가지 않는 이유도 라이커 교수님 정리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이라는 정치 이권을 차지하기 위한 최소 승리연합 요건에 한나라당이라는 브랜드가 있다고 볼 수 있죠. 이명박 대통령의 집권 초부터 지금까지 친박계, 친이계라고 하면서 권력투쟁이 있었던 셈이죠. 친이계는 현재 최소 승리연합을 구축하기 위해서, 친박계는 미래 최소 승리연합을 달성하기 위해서 그런 행보를 보여줬다고 저는 봅니다.
이런 구조적 특성 때문에 한나라당은 내부적 요인에 의해서 쪼개질 가능성은 크지 않습니다. 따라서 한나라당이 쪼개지려면 외부의 충격이 가해져야 가능할 것입니다. 어떤 충격이 가능할까요?
3. 정치적 지역주의를 쪼개기
지역주의도 건설적인 것이 있습니다. 각 지역의 특색을 살리는 전통과 문화가 우리 삶을 더 풍요롭게 할 수 있죠. 전라남도 담양의 대나무 문화라든지, 경상북도 안동의 하회탈 전통문화 등의 지역주의는 더 살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정치적 지역주의는 긍정적인 측면보다는 고질적 병폐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그 부작용이 심각합니다. 이 글에서 앞으로 지역주의는 정치적 지역주의를 말합니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 지역주의 혜택을 받았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 지역주의를 완화 혹은 극복해야 하는 이유는 자유민주주의 정치에 비이성적인 왜곡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프레시안>에 장문의 기고문을 연속으로 게재한 전북대 박동천 교수는 이 지역주의를 "허위문제"라고 주장했는데,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박 교수의 주장은 지역주의 문제 자체가 정치인들이 만들어낸 괴물이기 때문에, 문제의 핵심은 그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일부 일리가 있지만, 원인이 어디에 있든 현재 우리 정치의 발목을 잡는 "물귀신"이라는 점만 들어도 저로서는 허위가 아닌 진짜 문제입니다. 지역주의 해소를 외치면서 속으로는 딴 주머니를 차는 정치인이 허위이지요. 박 교수도 아마 그런 의미에서 지역주의가 허위라는 주장을 펼쳤을 것으로 봅니다.
한나라당이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지역주의에 기대서 그렇게 많은 의석을 차지했습니다. 물론 참여정부에 대한 실망감, 경제를 살려주겠다는 장밋빛 약속, 뭘 상실했는지 모르지만 하여튼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정치적 수사 등도 크게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그래도 지역주의 영향이 결코 적지 않았다는 것이 제 소견입니다. 따라서 공룡을 만든 한 원인인 지역주의를 깨면서 한나라당을 쪼개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4. 지역주의를 지역주의로 쪼개기: 친노 신당?
며칠 전에 드디어 친노 신당의 출범을 알리는 뉴스가 들려왔습니다. 헌법에는 정치적 결사의 자유를 명시하였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라도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규합하여 정당을 만들 수 있죠. 따라서 친노 신당도 노 전 대통령의 유지를 계승한다는 대의명분을 걸고, 전국 정당을 목표로 나아가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분들의 정치적 결사의 자유를 존중합니다.
대의명분도 좋고, 전국 정당 목표도 좋습니다. 문제는 현재 정치 지형입니다. 야권이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으로 삼분되어 있는데, 신당까지 실제 정치세력으로 작동하면 사분되는 것이죠. 사분오열이라는 표현이 생각나지 않습니까? 선거에서 연합하면 된다고 간단하게 정리할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지난 재보궐 선거에서 진보신당의 조승수 후보가 선거 연합을 이뤄내서 이긴 것을 보면, 앞으로도 그렇게 하면 되겠다는 판단이 설 수도 있겠죠. 그러나 그런 성공 사례가 얼마나 되며, 그 사례마저도 여러 고비를 넘기면서 힘들게 성사된 것도 고려해야 합니다.
친노 신당이 구색을 갖춘다면 PK 지역에서는 선전할 것입니다.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며, TK 지역과는 원래 정서도 다르다고 평가할 수 있죠. 또한,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PK 지역의 현 정부 지지도가 TK보다 훨씬 낮다고 합니다. 따라서 친노 신당이 제대로 작동하면, 내년 지방 선거나 2012년 총선에서 PK 지역 일부를 한나라당에서 쪼개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만약 그렇다면, 이것이 지역주의를 지역주의로 쪼개는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죠.
그런데 다른 지역은 어떻게 될까요? 예컨대 서울/경기 지역에서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친노 신당이 전반적인 선거 연합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요? 저는 어렵다고 봅니다. 야권표가 분산되는 효과가 더 클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렇게 되면 친노 신당은 전국 정당이 아니고 지역 정당이 되죠.
정치에서는 결과가 중요합니다. 친노 신당에 아무리 좋은 명분과 목표가 있어도, 결과적으로 선출직 당선자가 특정 지역에 몰린다면, 그것은 지역 정당입니다. 특정 정치문화에 따라서 지역 정당이 건설적인 순기능을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연방제를 채택한 나라에서는 그런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같이 지역주의가 이미 심각한 문제인 사례에서 새로운 지역 정당이 생긴다는 것은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지역주의를 깨는 효과가 설사 있더라도, 또 다른 지역주의를 만드는 것이니까요. 친노 신당이 전국 정당으로 성공하여 제 예측이 빗나가면 좋겠습니다.
괴물을 상대하기 위해서 자신이 괴물이 되면 곤란합니다. 지역주의를 지역주의로 쪼개는 것이 비슷한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 공룡 정당을 쪼개는 다른 방법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약자가 강자를 어떻게 이길 수 있느냐는 시리즈 글 마지막에 한나라당 쪼개기 문제제기를 했었습니다. 현 정치판에서 제1당인 한나라당을, 가만히 있는 공당을 왜 쪼개느냐 마냐는 문제를 던지는가? 라는 의견이 올라올 것으로 기대했는데, 무플의 굴욕을 맛봤습니다. ㅜ.ㅜ 그런 의견에 대한 제 답은, 한나라당은 쪼개질 거리라도 있지만, 다른 정당은 그런 거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정당들은 오히려 연합해야 될 것입니다. 연합할 명분도 있고, 약자이니까요.
1. 호텔링과 블랙: 중위 투표자 정리
1929년에 호텔링(Harold Hotelling)이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에 대한 중요한 정치적 해석을 제시합니다. 두 정당의 정책이 비슷하다는 것이죠. 이 아이디어를 논리적인 공간모형으로 제시한 것이 1948년 블랙(Duncan Black)의 "중위 투표자 정리(Median Voter Theorem)"입니다. 아시듯이, 선거 쟁점 하나(일차원), 단봉(single-peaked) 선호순서를 가진 합리적 유권자들, 정당 혹은 후보자 둘이라는 가정에서 중위 투표자에 더 가까이 가는 정당이나 후보자가 이긴다는 내용입니다. 호텔링의 해석을 논리적으로 잘 정리한 것이죠.
듀베르제(Maurice Duverger)는 영국 정치를 관찰하여 이 정리가 경험적으로도 말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영국 선거를 살펴보니, 2, 3백만의 중도 성향 유권자가 보수당과 노동당의 선거 승패를 좌지우지했다는 것입니다. 즉, 그들이 선거에 결정적인(decisive)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죠. 미국 정치에서는 무당파 스윙(independent swing) 유권자라는 존재입니다.
중위 투표자 정리의 기본 가정에도 합리성이 역시 들어갑니다. 유권자의 합리성과 정당/후보자의 합리성이죠. 유권자는 자신의 선호순서에 따라서 효용을 극대화하려고 투표하며, 정당은 표를 더 많이 모으려고 한다는 가정이 들어 있습니다. 이 가정에 의문을 제기한 정치학자가 제 미국 사부님 중 한 분인 故 라이커(William H. Riker) 교수님입니다.
2. 라이커: 최소 승리연합 정리 (The Theorem of Minimum Winning Coaltion)
라이커 교수님은 정당이나 후보가 이길 정도만 표를 모으면 되지, 더 많은 표를 모을 필요는 없다는 매우 중요한 아이디어를 제시합니다. 예컨대 후보자가 둘일 때는 단순과반수만 확보하면 이기므로, 그 이상의 표는 필요 없다는 다른 내용의 합리성을 제시합니다. 표를 모으는 데 비용이 들어간다는, 더 경제학적인 분석입니다. 비용-편익 분석이죠. 경제학의 재정학이나 공공선택 분야에서 이런 문제의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학자로 부캐넌(Buchanan)과 툴락(Tullock)이 있다고 합니다. 다음은 라이커 교수님의 최소 승리연합 정리에 대한 설명입니다.
"First he says that the intentional exploitation of the outsiders is maximized when the deciding coalition is as small as possible, but still decisive. Then he predicts that exactly for this reason such minimal coalitions will form."
http://www.mobergpublications.se/arguments/ideology.htm#minimal
조금 살벌한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한나라당 예를 들어서 위 인용이 암시하는 바를 살펴보겠습니다. 지난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압승을 거뒀습니다. 민주주의에서 다수의 지배라고 하면, 과반수만 확보하면 되는데, 과반수를 훨씬 넘는 국회의원을 한나라당이 확보한 것이죠. 그런데 정치판의 이익은 무한한 것이 아니죠. 파이는 일정한데 그것을 나눠 가져야 한다는 "탐욕"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파이를 나눠 먹을 수 있는 그룹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각자가 챙길 몫은 작아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나라당의 압승은 파이를 챙길 수 있는 국회의원 각자의 이해관계 잣대를 따르면, 그들에게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라고 해석하는 것이 라이커 교수님의 최소 승리연합 정리입니다. 효용의 극대화를 이루려면 승리연합이 최소화되어야 하고, 현실에서 그런 양상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미국 정치를 경험적으로 살펴보면 라이커 교수님의 정리는 매우 일리가 있습니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거의 반반으로 의원수를 나눠 갖습니다. 이것이 유권자의 선호순서 때문에 그렇게 된 측면도 있지만, 정치인들의 합리적 효용 극대화 추구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지난 18대 총선을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국회의원 숫자는 다다익선이라는, 거의 일당독재를 향하는 정치세계의 냉혹함을 엿볼 수 있는 것이 우리 정치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라이커 교수님의 정리가 우리 정치판에 전혀 무의미한 것은 아닙니다. 정권을 잡고 나면 그 내부에서 항상 권력투쟁이 벌어졌습니다. 이것을 최소 승리연합을 향한 움직임으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박근혜 씨가 한나라당을 뛰쳐 나가지 않는 이유도 라이커 교수님 정리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이라는 정치 이권을 차지하기 위한 최소 승리연합 요건에 한나라당이라는 브랜드가 있다고 볼 수 있죠. 이명박 대통령의 집권 초부터 지금까지 친박계, 친이계라고 하면서 권력투쟁이 있었던 셈이죠. 친이계는 현재 최소 승리연합을 구축하기 위해서, 친박계는 미래 최소 승리연합을 달성하기 위해서 그런 행보를 보여줬다고 저는 봅니다.
이런 구조적 특성 때문에 한나라당은 내부적 요인에 의해서 쪼개질 가능성은 크지 않습니다. 따라서 한나라당이 쪼개지려면 외부의 충격이 가해져야 가능할 것입니다. 어떤 충격이 가능할까요?
3. 정치적 지역주의를 쪼개기
지역주의도 건설적인 것이 있습니다. 각 지역의 특색을 살리는 전통과 문화가 우리 삶을 더 풍요롭게 할 수 있죠. 전라남도 담양의 대나무 문화라든지, 경상북도 안동의 하회탈 전통문화 등의 지역주의는 더 살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정치적 지역주의는 긍정적인 측면보다는 고질적 병폐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그 부작용이 심각합니다. 이 글에서 앞으로 지역주의는 정치적 지역주의를 말합니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 지역주의 혜택을 받았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 지역주의를 완화 혹은 극복해야 하는 이유는 자유민주주의 정치에 비이성적인 왜곡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프레시안>에 장문의 기고문을 연속으로 게재한 전북대 박동천 교수는 이 지역주의를 "허위문제"라고 주장했는데,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박 교수의 주장은 지역주의 문제 자체가 정치인들이 만들어낸 괴물이기 때문에, 문제의 핵심은 그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일부 일리가 있지만, 원인이 어디에 있든 현재 우리 정치의 발목을 잡는 "물귀신"이라는 점만 들어도 저로서는 허위가 아닌 진짜 문제입니다. 지역주의 해소를 외치면서 속으로는 딴 주머니를 차는 정치인이 허위이지요. 박 교수도 아마 그런 의미에서 지역주의가 허위라는 주장을 펼쳤을 것으로 봅니다.
한나라당이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지역주의에 기대서 그렇게 많은 의석을 차지했습니다. 물론 참여정부에 대한 실망감, 경제를 살려주겠다는 장밋빛 약속, 뭘 상실했는지 모르지만 하여튼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정치적 수사 등도 크게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그래도 지역주의 영향이 결코 적지 않았다는 것이 제 소견입니다. 따라서 공룡을 만든 한 원인인 지역주의를 깨면서 한나라당을 쪼개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4. 지역주의를 지역주의로 쪼개기: 친노 신당?
며칠 전에 드디어 친노 신당의 출범을 알리는 뉴스가 들려왔습니다. 헌법에는 정치적 결사의 자유를 명시하였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라도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규합하여 정당을 만들 수 있죠. 따라서 친노 신당도 노 전 대통령의 유지를 계승한다는 대의명분을 걸고, 전국 정당을 목표로 나아가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분들의 정치적 결사의 자유를 존중합니다.
대의명분도 좋고, 전국 정당 목표도 좋습니다. 문제는 현재 정치 지형입니다. 야권이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으로 삼분되어 있는데, 신당까지 실제 정치세력으로 작동하면 사분되는 것이죠. 사분오열이라는 표현이 생각나지 않습니까? 선거에서 연합하면 된다고 간단하게 정리할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지난 재보궐 선거에서 진보신당의 조승수 후보가 선거 연합을 이뤄내서 이긴 것을 보면, 앞으로도 그렇게 하면 되겠다는 판단이 설 수도 있겠죠. 그러나 그런 성공 사례가 얼마나 되며, 그 사례마저도 여러 고비를 넘기면서 힘들게 성사된 것도 고려해야 합니다.
친노 신당이 구색을 갖춘다면 PK 지역에서는 선전할 것입니다.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며, TK 지역과는 원래 정서도 다르다고 평가할 수 있죠. 또한,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PK 지역의 현 정부 지지도가 TK보다 훨씬 낮다고 합니다. 따라서 친노 신당이 제대로 작동하면, 내년 지방 선거나 2012년 총선에서 PK 지역 일부를 한나라당에서 쪼개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만약 그렇다면, 이것이 지역주의를 지역주의로 쪼개는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죠.
그런데 다른 지역은 어떻게 될까요? 예컨대 서울/경기 지역에서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친노 신당이 전반적인 선거 연합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요? 저는 어렵다고 봅니다. 야권표가 분산되는 효과가 더 클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렇게 되면 친노 신당은 전국 정당이 아니고 지역 정당이 되죠.
정치에서는 결과가 중요합니다. 친노 신당에 아무리 좋은 명분과 목표가 있어도, 결과적으로 선출직 당선자가 특정 지역에 몰린다면, 그것은 지역 정당입니다. 특정 정치문화에 따라서 지역 정당이 건설적인 순기능을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연방제를 채택한 나라에서는 그런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같이 지역주의가 이미 심각한 문제인 사례에서 새로운 지역 정당이 생긴다는 것은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지역주의를 깨는 효과가 설사 있더라도, 또 다른 지역주의를 만드는 것이니까요. 친노 신당이 전국 정당으로 성공하여 제 예측이 빗나가면 좋겠습니다.
괴물을 상대하기 위해서 자신이 괴물이 되면 곤란합니다. 지역주의를 지역주의로 쪼개는 것이 비슷한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 공룡 정당을 쪼개는 다른 방법들을 살펴보겠습니다.
2009년 8월 19일 수요일
[정치] 이 정치적 지역주의를 어찌할꼬?
[작성자]
안병길晴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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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2:09
(2007년 12월 19일 작성)
이번 대선에서도 정치적 지역주의는 줄기차게 살아남았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렇게 완화하려고 노력했던 것을 비웃기나 하듯이 동과 서는 그렇게 투표했다. (노 대통령이 노력해서 오히려 역효과가 생겼나?)
내년 총선에서도 그놈의 지역주의는 맹위를 떨칠 것이다. 이명박 당선자가 대통령이 되어서 몸만 조금 사린다면, 총선에서도 한나라당은 지역주의에 편승하여 승리할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 취임이 2월이고 총선이 4월이니 야당 프리미엄이 작동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이명박 당선자는 태생적 약점 때문에 오히려 몸조심을 해서 취임 한두 달 안에 결정적 실수는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검이 이명박 당선자를 기소하고, 재판은 퇴임 후로 미뤄지고, 대통령 취임 후 국회가 이명박을 탄핵하느니 마느니 등으로 시끄러워지더라도, 이것은 오히려 총선에서 한나라당에 호재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정치적 지역주의가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정치적 지역주의를 어찌할꼬?
이번 대선에서도 정치적 지역주의는 줄기차게 살아남았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렇게 완화하려고 노력했던 것을 비웃기나 하듯이 동과 서는 그렇게 투표했다. (노 대통령이 노력해서 오히려 역효과가 생겼나?)
내년 총선에서도 그놈의 지역주의는 맹위를 떨칠 것이다. 이명박 당선자가 대통령이 되어서 몸만 조금 사린다면, 총선에서도 한나라당은 지역주의에 편승하여 승리할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 취임이 2월이고 총선이 4월이니 야당 프리미엄이 작동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이명박 당선자는 태생적 약점 때문에 오히려 몸조심을 해서 취임 한두 달 안에 결정적 실수는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검이 이명박 당선자를 기소하고, 재판은 퇴임 후로 미뤄지고, 대통령 취임 후 국회가 이명박을 탄핵하느니 마느니 등으로 시끄러워지더라도, 이것은 오히려 총선에서 한나라당에 호재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정치적 지역주의가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정치적 지역주의를 어찌할꼬?
2009년 7월 29일 수요일
[정치] 공공선택으로서 국회의원 선거제도
[작성자]
안병길晴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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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4:06
(지금 적고 있는 책의 일부분입니다. 원 글은 2008년 4월 9일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에 올렸습니다.)
[설명] 필자는 노무현 제16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정치개혁연구실에서 상근 자문위원으로 “정치적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선방안 연구”에 참여한 바 있다. 아래 글은 그 당시 참여한 학자들이 최종적으로 합의한 개선안인 소선거구제 + 일률배분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간략하게 설명한 것이다. 제18대 총선을 맞이하여 지난 시절의 소회가 떠올라서 작성한 글이다. //
공공선택(Public Choice) 측면에서 선거는 개인 선호를 특정 사회 전체 선호로 모으는 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애로우(Kenneth Arrow) 교수의 불가능성 정리를 참조하면 이 선호 전환 과정에서 완벽한 제도를 고안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 우리를 우울하게 만듭니다. 따라서 어느 특정 선거제도가 모든 점에서 우월하다는 주장을 할 수는 없습니다. 미국 대통령 선거제도를 살펴보면 가관입니다. 간접선거에 각 주의 선거인단 획득 규칙은 승자독식(winner-takes-all)이 대부분이므로 민주주의 기본원칙을 어길 가능성이 있는 제도입니다. 제도개선 주장이 제법 있지만, 그래도 그 제도를 유지하는 것은 결국, 미국의 정치/사회/문화적 요인이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습니다.
소선거구제와 전국단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가 섞인 우리나라 국회의원 선거제도도 그 나름대로 존재 이유가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 정치의 고질적 병폐로서 흔히 언급되는 정치적 지역주의를 완화할 대안을 검토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작업입니다. 이 문제의식과 관련하여 그동안 검토되었던 국회의원 선거구제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중대선거구제입니다. 지역구에서 2~5명을 선출하는 제도인데,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우리 정치적 지역주의를 완화하기에는 미흡합니다. 그 효과가 미흡함에도 채택해야 할 장점이 별로 없는 제도입니다.
둘째, 독일식 선거구제 변형입니다. 원래 독일식은 지역구와 정당명부 비례대표의 기준 정원이 1:1입니다. (이 기준은 우리 현실을 고려하여 2:1 정도로 변형시킬 수 있음.) 유권자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지역구 선출투표 한 표와 정당투표 한 표를 행사합니다. 전체 정당득표율로 각 정당의 의석수를 일단 결정하고, 각 정당이 권역별로 의석을 배분하는데, 특정 권역의 지역구 당선자 수가 권역 배당을 초과하면 그 초과분을 인정해주는 제도입니다.
예를 들어서, A 권역의 전체 기준 의석수가 40석이고, X 정당의 그 권역 지역구 당선자 수가 20명이며, X 정당의 해당 권역 배분 의석수가 15석이면(전체 정당득표에 대한 그 권역 득표의 비율로 계산), 5석의 초과의석을 인정해주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되면, 선거 전 기준의석이 40석이던 A 권역은 선거 후 전체 의석이 45석이 됩니다.
이 제도는 일단 상대적으로 복잡하며, 전체 의석수가 유동적이라는 단점이 있습니다. 또한, 정책정당이 뿌리내리지 못 하는 우리 정치를 참작할 때, 현 제도를 독일식 변형으로 송두리째 바꿀만한 제도개선 유인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지역구는 갑 정당후보, 정당투표는 을 정당 식으로 투표하는 경우가 우리나라에서는 상대적으로 많이 나오는 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셋째, 소선거구제 + 일률배분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입니다. 전국을 서울 / 인천 경기 / 강원 / 충청 / 광주 호남 / 부산 울산 경남 / 대구 경북 / (제주), 7~8개 권역으로 나눠서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적용합니다. 지역구 200석, 비례대표 99석으로 하며(현행 법률상 국회의원 수 상한선은 299석), 각 권역 비례대표 배분은 각 정당의 권역 내 득표율이 아닌, 전국득표율을 기준으로 하는 내용입니다.
이 방안은 이론과 현실(국민 설득, 여야합의 가능성 등)을 심층적으로 고려한 것으로서, 정치적 지역주의 완화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권역별 비례대표를 전국 정당득표율로 배분하는 점에서 시비가 걸릴 수 있지만, 국회의원은 국가 전체를 대표하는 헌법기관이므로, 그렇게 배분해도 괜찮습니다. 이 제도를 도입해서 우리 정치의 발목을 잡는 정치적 지역주의를 점진적으로 완화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가 이 교수님 게시판에 국내정치와 관련된 글은 올리지 않으려고 조심하고 있습니다만, 오늘은 날이 날인 만큼 정치 얘기를 한번 해봤습니다. 공공선택 분야의 선거제도에 대한 의견으로 간주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토론]
[게시판 주인(이준구 교수님)] “이런 아카데믹(academic)한 글은 많이 올라오면 올수록 좋은 것 아닙니까? 비합리성(irrationality)을 발휘해 조금 전에 투표를 하고 왔습니다.”
[필자] 저는 투표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불쌍한 인생입니다. ^^ 재정학에서도 선거제도 등 공공선택을 다루는지 궁금합니다.
[게시판 주인] “공공선택은 재정학의 중요한 이슈 중 하나입니다. 예를 들어 뷰캐넌(J. Buchanan) 같은 사람에게 재정학이 무엇을 연구하는 분야라고 물으면, 공공선택 문제를 연구하는 분야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회원1] 세 번째 방안이 좋아 보인다. 현실화하려면 여론의 힘이 필요한 것 같다. 이 쟁점과 관련해서 정치학계 목소리가 작은 이유가 궁금하다.
[필자] 궁극적으로 법률을 개정해야 하므로 국회의원들 목에 방울 달기가 되겠습니다. 참여정부 시절 노 전 대통령이 대연정과 연계하면서 선거구제 개편을 걸었는데, 잘못된 것이라고 본인도 인정했죠. 타이밍도 늦었고요.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주도하면 야당들이 선뜻 합의하기 어렵습니다. 국회에서 논의해서 법률개정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 국회의원들에게 기대하기도 어렵죠. 결국, 학자들과 시민사회가 여론을 일으켜서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유력한 방법일 것입니다.
그런데 선거구제는 정답이 없어서 학자나 시민사회의 한목소리를 이끌어내기가 어렵습니다. 상당수 학자와 진보 측이 독일식을 선호하는데, 제가 보기에는 현실감각이 모자랍니다. 독일식으로는 대국민 설득도 어렵고 국회 합의도 어렵습니다. 정치적 지역주의 완화 효과도 적고요. 이번 선거 결과도 결국 정치적 지역주의를 재확인한 것이니, 학자들이 우선 그 문제를 더 부각해서 선거구제 개선 여론을 일으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토론 소감] 2003년 인수위 정치개혁 연구에 필자가 뒤늦게 합류했을 때, 당선자에게 가는 1차 보고서를 독일식 변형 위주로 정리하고 있었다. 필자는 초과의석 문제를 지적하여 독일식 변형이 현실적이지 않음을 주장했다. 결국, 최종보고서에서 제1안으로 채택된 안은 세 번째 방안이다. 그 연구에 참여한 학자들도 합의하는 데 애로사항이 많았을 정도로 선거구제 개선은 힘든 작업임에 틀림없다. 선거제도 전문 학자들이 앞장서서 여론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정치적 지역주의 극복이라는 뚜렷한 대의명분이 있기 때문에, 다른 정치적 이해와 연결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본다. 노 전 대통령은 선거구제 개선을 대연정과 연계했는데, 정치적 판단 실수였다고 필자는 평가한다.
[설명] 필자는 노무현 제16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정치개혁연구실에서 상근 자문위원으로 “정치적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선방안 연구”에 참여한 바 있다. 아래 글은 그 당시 참여한 학자들이 최종적으로 합의한 개선안인 소선거구제 + 일률배분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간략하게 설명한 것이다. 제18대 총선을 맞이하여 지난 시절의 소회가 떠올라서 작성한 글이다. //
공공선택(Public Choice) 측면에서 선거는 개인 선호를 특정 사회 전체 선호로 모으는 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애로우(Kenneth Arrow) 교수의 불가능성 정리를 참조하면 이 선호 전환 과정에서 완벽한 제도를 고안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 우리를 우울하게 만듭니다. 따라서 어느 특정 선거제도가 모든 점에서 우월하다는 주장을 할 수는 없습니다. 미국 대통령 선거제도를 살펴보면 가관입니다. 간접선거에 각 주의 선거인단 획득 규칙은 승자독식(winner-takes-all)이 대부분이므로 민주주의 기본원칙을 어길 가능성이 있는 제도입니다. 제도개선 주장이 제법 있지만, 그래도 그 제도를 유지하는 것은 결국, 미국의 정치/사회/문화적 요인이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습니다.
소선거구제와 전국단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가 섞인 우리나라 국회의원 선거제도도 그 나름대로 존재 이유가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 정치의 고질적 병폐로서 흔히 언급되는 정치적 지역주의를 완화할 대안을 검토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작업입니다. 이 문제의식과 관련하여 그동안 검토되었던 국회의원 선거구제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중대선거구제입니다. 지역구에서 2~5명을 선출하는 제도인데,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우리 정치적 지역주의를 완화하기에는 미흡합니다. 그 효과가 미흡함에도 채택해야 할 장점이 별로 없는 제도입니다.
둘째, 독일식 선거구제 변형입니다. 원래 독일식은 지역구와 정당명부 비례대표의 기준 정원이 1:1입니다. (이 기준은 우리 현실을 고려하여 2:1 정도로 변형시킬 수 있음.) 유권자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지역구 선출투표 한 표와 정당투표 한 표를 행사합니다. 전체 정당득표율로 각 정당의 의석수를 일단 결정하고, 각 정당이 권역별로 의석을 배분하는데, 특정 권역의 지역구 당선자 수가 권역 배당을 초과하면 그 초과분을 인정해주는 제도입니다.
예를 들어서, A 권역의 전체 기준 의석수가 40석이고, X 정당의 그 권역 지역구 당선자 수가 20명이며, X 정당의 해당 권역 배분 의석수가 15석이면(전체 정당득표에 대한 그 권역 득표의 비율로 계산), 5석의 초과의석을 인정해주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되면, 선거 전 기준의석이 40석이던 A 권역은 선거 후 전체 의석이 45석이 됩니다.
이 제도는 일단 상대적으로 복잡하며, 전체 의석수가 유동적이라는 단점이 있습니다. 또한, 정책정당이 뿌리내리지 못 하는 우리 정치를 참작할 때, 현 제도를 독일식 변형으로 송두리째 바꿀만한 제도개선 유인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지역구는 갑 정당후보, 정당투표는 을 정당 식으로 투표하는 경우가 우리나라에서는 상대적으로 많이 나오는 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셋째, 소선거구제 + 일률배분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입니다. 전국을 서울 / 인천 경기 / 강원 / 충청 / 광주 호남 / 부산 울산 경남 / 대구 경북 / (제주), 7~8개 권역으로 나눠서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적용합니다. 지역구 200석, 비례대표 99석으로 하며(현행 법률상 국회의원 수 상한선은 299석), 각 권역 비례대표 배분은 각 정당의 권역 내 득표율이 아닌, 전국득표율을 기준으로 하는 내용입니다.
이 방안은 이론과 현실(국민 설득, 여야합의 가능성 등)을 심층적으로 고려한 것으로서, 정치적 지역주의 완화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권역별 비례대표를 전국 정당득표율로 배분하는 점에서 시비가 걸릴 수 있지만, 국회의원은 국가 전체를 대표하는 헌법기관이므로, 그렇게 배분해도 괜찮습니다. 이 제도를 도입해서 우리 정치의 발목을 잡는 정치적 지역주의를 점진적으로 완화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가 이 교수님 게시판에 국내정치와 관련된 글은 올리지 않으려고 조심하고 있습니다만, 오늘은 날이 날인 만큼 정치 얘기를 한번 해봤습니다. 공공선택 분야의 선거제도에 대한 의견으로 간주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토론]
[게시판 주인(이준구 교수님)] “이런 아카데믹(academic)한 글은 많이 올라오면 올수록 좋은 것 아닙니까? 비합리성(irrationality)을 발휘해 조금 전에 투표를 하고 왔습니다.”
[필자] 저는 투표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불쌍한 인생입니다. ^^ 재정학에서도 선거제도 등 공공선택을 다루는지 궁금합니다.
[게시판 주인] “공공선택은 재정학의 중요한 이슈 중 하나입니다. 예를 들어 뷰캐넌(J. Buchanan) 같은 사람에게 재정학이 무엇을 연구하는 분야라고 물으면, 공공선택 문제를 연구하는 분야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회원1] 세 번째 방안이 좋아 보인다. 현실화하려면 여론의 힘이 필요한 것 같다. 이 쟁점과 관련해서 정치학계 목소리가 작은 이유가 궁금하다.
[필자] 궁극적으로 법률을 개정해야 하므로 국회의원들 목에 방울 달기가 되겠습니다. 참여정부 시절 노 전 대통령이 대연정과 연계하면서 선거구제 개편을 걸었는데, 잘못된 것이라고 본인도 인정했죠. 타이밍도 늦었고요.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주도하면 야당들이 선뜻 합의하기 어렵습니다. 국회에서 논의해서 법률개정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 국회의원들에게 기대하기도 어렵죠. 결국, 학자들과 시민사회가 여론을 일으켜서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유력한 방법일 것입니다.
그런데 선거구제는 정답이 없어서 학자나 시민사회의 한목소리를 이끌어내기가 어렵습니다. 상당수 학자와 진보 측이 독일식을 선호하는데, 제가 보기에는 현실감각이 모자랍니다. 독일식으로는 대국민 설득도 어렵고 국회 합의도 어렵습니다. 정치적 지역주의 완화 효과도 적고요. 이번 선거 결과도 결국 정치적 지역주의를 재확인한 것이니, 학자들이 우선 그 문제를 더 부각해서 선거구제 개선 여론을 일으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토론 소감] 2003년 인수위 정치개혁 연구에 필자가 뒤늦게 합류했을 때, 당선자에게 가는 1차 보고서를 독일식 변형 위주로 정리하고 있었다. 필자는 초과의석 문제를 지적하여 독일식 변형이 현실적이지 않음을 주장했다. 결국, 최종보고서에서 제1안으로 채택된 안은 세 번째 방안이다. 그 연구에 참여한 학자들도 합의하는 데 애로사항이 많았을 정도로 선거구제 개선은 힘든 작업임에 틀림없다. 선거제도 전문 학자들이 앞장서서 여론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정치적 지역주의 극복이라는 뚜렷한 대의명분이 있기 때문에, 다른 정치적 이해와 연결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본다. 노 전 대통령은 선거구제 개선을 대연정과 연계했는데, 정치적 판단 실수였다고 필자는 평가한다.
2009년 7월 28일 화요일
[수필] 藝田 (예전)
[작성자]
안병길晴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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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2:36
藝田(예전), 이름 멋있죠? 블로그 초기인 요즘, 부산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해서 조금 망설여지기는 하지만, 글이라는 것이 필이 꽂히면 줄줄^^ 나가기 때문에 다시 할 수밖에 없네요. 양해 부탁합니다.
사실, 저는 다른 인터넷 공간에서는 고향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습니다. 공개를 꺼리는 편이라고 보셔도 됩니다. 그것은 제가 정치적 지역주의 완화 혹은 극복에 관한 주장을 자주 하기 때문입니다. 제 출신지역을 독자가 알면 괜한 선입견이 생길 수도 있겠다는 걱정에 그렇게 해왔습니다. 이곳은 제 개인 블로그이니, 저에 대해서 가능한 한 솔직하게 많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이 저에게도 편합니다. 사적으로 남 욕하는 것보다 저에 대해서 주저리주저리 하는 것이 더 낫죠.^^
藝田은 제가 대학교 1학년일 때 자원봉사를 했던 클래식음악 커피숍 이름입니다. 부산 부심지인 서면 뒷골목에 있었습니다. 부산은 도심이 자갈치 시장이 있는 남포동/광복동 일대, 부심지가 부전동이 있는 서면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럴 것입니다.
1980년 5.18이 터졌을 때, 저는 다행히 서울대 기숙사에 있지 않았고, 외박을 했습니다. 누님이 이사하신다고 해서 인사차 그 집에 들렀는데, 때맞춰서 군인들이 서울대 캠퍼스로 들어왔죠. 나중에 들으니 사감 교수님부터 학생까지 큰 봉변을 당했더군요. 새벽에 자고 있는데 곤봉이 날아들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아찔하시죠? 저는 사주팔자가 좋았는지, 그 인권유린 현장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ㅜ.ㅜ 학교출입이 봉쇄되었습니다. 고향으로 내려가기 전에 제 물건을 기숙사에서 가져 나올 수 있는지 행정실에 전화했습니다. 들어갈 수는 있는데, 전혀 권유할 마음은 없다고 친절하게 안내하시더군요. ㅋ
그다음 날 부산으로 내려갔습니다. 가방도, 책도 없는 맨몸 귀향이었습니다. 나중에 학교에서 이러저러한 숙제를 제출하면 학점 준다고 해서, 리포트는 고향집에서 열심히 적었습니다. 시간이 제법 남더군요. 시간이 남으니 대략난감 상태가 되었습니다. 외교관이 되고 싶은 생각에, 미리 준비한답시고 알리앙스 프랑세즈에 불어를 배우러 다녔는데, 그래도 시간이 남았습니다.
하루는 친구가 서면에서 만나자고 해서 나갔더니, 藝田이라는 아담한 클래식음악 커피숍이었습니다. 새로 개장했는데 음향시설이 좋아서 제가 혹했습니다. 그래서 무료로 DJ를 해주겠다고 주인에게 말씀드렸죠. 이미 DJ가 있어서 필요 없다는 냉정한 답을 처음에 들었지만, 저는 한다면 하는 사람입니다. ^^ 적당한 의제 설정(agenda setting)과 정치적 조작(political manipulation)을 했습니다. DJ도 점심은 드셔야 될 것 아니냐고 하면서, 그 시간대에 두 시간 정도 봐 드리겠다고 했죠. 무!료!를 강조했습니다. ^^
드디어 허락이 떨어졌고, 저는 하루에 세 시간 정도 훌륭한 음향시설에서 커피 대접을 받으면서 클래식 음악감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원래 점심 식사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는데, 나중에는 점심 도시락도 DJ 박스에 넣어주시더군요. 함께 DJ를 했던 누나는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는 소식을 한참 뒤에 들었는데, 그렇다면 저와 같은 나라에 있는 셈이네요. 이 글을 보시면 연락해주세요. ㅋ
그 당시 부산에서 가장 유명했던 클래식음악 커피숍은 남포동의 전원(田園)이었습니다. 藝田보다 훨씬 컸습니다. 이름이 비슷하네요. 베토벤 6번 교향곡에서 따왔었겠죠. 저에게 전원보다 아담한 藝田이 더 좋았을 것은 독자께서 쉽게 짐작하시겠죠. 藝田에서 자주 틀었던 프랑스 작곡가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가 오늘따라 듣고 싶습니다. 베토벤 전원 교향곡과 구노 오페라 파우스트에 나오는 "병사의 합창"을 듣겠습니다.
SOLDIERS CHORUS, FROM GOUNOD´S "FAUST"
WIENER STAATSOPER, ERICH BINDER CONDUCTING.
Karajan - Beethoven Symphony No. 6 In F Major 'Pastoral'
사실, 저는 다른 인터넷 공간에서는 고향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습니다. 공개를 꺼리는 편이라고 보셔도 됩니다. 그것은 제가 정치적 지역주의 완화 혹은 극복에 관한 주장을 자주 하기 때문입니다. 제 출신지역을 독자가 알면 괜한 선입견이 생길 수도 있겠다는 걱정에 그렇게 해왔습니다. 이곳은 제 개인 블로그이니, 저에 대해서 가능한 한 솔직하게 많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이 저에게도 편합니다. 사적으로 남 욕하는 것보다 저에 대해서 주저리주저리 하는 것이 더 낫죠.^^
藝田은 제가 대학교 1학년일 때 자원봉사를 했던 클래식음악 커피숍 이름입니다. 부산 부심지인 서면 뒷골목에 있었습니다. 부산은 도심이 자갈치 시장이 있는 남포동/광복동 일대, 부심지가 부전동이 있는 서면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럴 것입니다.
1980년 5.18이 터졌을 때, 저는 다행히 서울대 기숙사에 있지 않았고, 외박을 했습니다. 누님이 이사하신다고 해서 인사차 그 집에 들렀는데, 때맞춰서 군인들이 서울대 캠퍼스로 들어왔죠. 나중에 들으니 사감 교수님부터 학생까지 큰 봉변을 당했더군요. 새벽에 자고 있는데 곤봉이 날아들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아찔하시죠? 저는 사주팔자가 좋았는지, 그 인권유린 현장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ㅜ.ㅜ 학교출입이 봉쇄되었습니다. 고향으로 내려가기 전에 제 물건을 기숙사에서 가져 나올 수 있는지 행정실에 전화했습니다. 들어갈 수는 있는데, 전혀 권유할 마음은 없다고 친절하게 안내하시더군요. ㅋ
그다음 날 부산으로 내려갔습니다. 가방도, 책도 없는 맨몸 귀향이었습니다. 나중에 학교에서 이러저러한 숙제를 제출하면 학점 준다고 해서, 리포트는 고향집에서 열심히 적었습니다. 시간이 제법 남더군요. 시간이 남으니 대략난감 상태가 되었습니다. 외교관이 되고 싶은 생각에, 미리 준비한답시고 알리앙스 프랑세즈에 불어를 배우러 다녔는데, 그래도 시간이 남았습니다.
하루는 친구가 서면에서 만나자고 해서 나갔더니, 藝田이라는 아담한 클래식음악 커피숍이었습니다. 새로 개장했는데 음향시설이 좋아서 제가 혹했습니다. 그래서 무료로 DJ를 해주겠다고 주인에게 말씀드렸죠. 이미 DJ가 있어서 필요 없다는 냉정한 답을 처음에 들었지만, 저는 한다면 하는 사람입니다. ^^ 적당한 의제 설정(agenda setting)과 정치적 조작(political manipulation)을 했습니다. DJ도 점심은 드셔야 될 것 아니냐고 하면서, 그 시간대에 두 시간 정도 봐 드리겠다고 했죠. 무!료!를 강조했습니다. ^^
드디어 허락이 떨어졌고, 저는 하루에 세 시간 정도 훌륭한 음향시설에서 커피 대접을 받으면서 클래식 음악감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원래 점심 식사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는데, 나중에는 점심 도시락도 DJ 박스에 넣어주시더군요. 함께 DJ를 했던 누나는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는 소식을 한참 뒤에 들었는데, 그렇다면 저와 같은 나라에 있는 셈이네요. 이 글을 보시면 연락해주세요. ㅋ
그 당시 부산에서 가장 유명했던 클래식음악 커피숍은 남포동의 전원(田園)이었습니다. 藝田보다 훨씬 컸습니다. 이름이 비슷하네요. 베토벤 6번 교향곡에서 따왔었겠죠. 저에게 전원보다 아담한 藝田이 더 좋았을 것은 독자께서 쉽게 짐작하시겠죠. 藝田에서 자주 틀었던 프랑스 작곡가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가 오늘따라 듣고 싶습니다. 베토벤 전원 교향곡과 구노 오페라 파우스트에 나오는 "병사의 합창"을 듣겠습니다.
SOLDIERS CHORUS, FROM GOUNOD´S "FAUST"
WIENER STAATSOPER, ERICH BINDER CONDUCTING.
Karajan - Beethoven Symphony No. 6 In F Major 'Pasto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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