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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5일 수요일

[정치] 2008년 5월 대통령 담화문 유감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8/05/25)

며칠 전에 대통령 담화가 있었습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라는 우리 옛말도 있습니다만, 말은 인간사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특히 국정의 최고책임자가 국민에게 사과를 하기 위해서 내놓는 담화의 중요성은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100분 토론 시청자 여론조사를 보면 의견을 개진한 참여자의 99%가 대통령의 담화를 시원찮게 여기고 있습니다. 정부를 비판하는 시청자가 더 많이 참여한 조사였음을 참작해도, 취임 3개월밖에 되지 않은 대통령의 담화에 대한 평가는 매우 심각한 수준입니다.

담화 내용 중 국민을 "뿔 나게" 할 개연성이 있는 부분을 일부 발췌해보겠습니다.

>쇠고기 수입으로 어려움을 겪을 축산 농가 지원 대책 마련에 열중하던
>정부로서는 소위 ‘광우병 괴담’이 확산되는 데 대해 솔직히
>당혹스러웠습니다.

미국 쇠고기 수입에 관한 100분 토론의 다른 시청자 투표결과를 보면, 96%의 참여자가 미국 쇠고기에 대해서 부정적입니다. 이것도 또한 여론조사의 바이어스를 고려해도, 정부의 쇠고기 수입정책에 대해서 국민이 얼마나 부정적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 여론을 "괴담"으로 표현한 것과 마찬가지인데, 이렇게 되면 마음이 상할 국민들이 상당수 생기기 마련입니다.

>무엇보다도 제가 심혈을 기울여 복원한 바로 그 청계광장에
>어린 학생들까지 나와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것을 보고는
>참으로 가슴이 아팠습니다.
>부모님들께서도 걱정이 많으셨을 것입니다.

이 부분도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제가 심혈을 기울여 복원한" 이 표현은 불필요한 부분입니다. 치적을 홍보하는 담화가 아니었으니까요. 읽기에 따라서 청계천이 대통령의 홈그라운드인데, 불청객들이 들어왔다는 식으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또한, 부모님 얘기를 하면서 청소년들이 "철없는" 행동을 한 것으로 느낀 것은 아닌지 의혹을 느끼게 합니다. 이것도 사과문에서는 필요 없는 부분입니다.

>정부가 국민들께 충분한 이해를 구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노력이
>부족했습니다.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데 소홀했다는 지적도 겸허히
>받아들입니다.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이 사과가 앞의 불필요한 언어들에 의하여 그 빛이 바래졌습니다. 담화 내용에 잘못된 정책추진에 대한 자초지종이나, 앞으로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지가 빠졌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아도, 담화문의 부실한 말들은 한눈에 들어옵니다.

먼 이국 땅에서 고국을 쳐다보면 당연히 우리나라가 잘 되기를 바라게 됩니다. 특히 대통령이 잘 해주기를 진정으로 학수고대하게 되죠. 그런데 인수위원회부터 지금까지 대통령과 그 근처에서 흘러나온 말들을 곱씹어 보면 걱정이 많이 됩니다. 요즘 제가 특히 걱정하는 것은 혹시 대통령 보좌진에게 문제가 있지는 않을까라는 것입니다. 이번 담화문을 읽으면서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제대로 된 보좌진이라면 "괴담"이나 "제가 심혈을" 등의 표현은 미리 빼지 않았을까 싶네요.

우리나라가 잘 되어야 할 텐데요...

(사진 출처: http://img.hani.co.kr/imgdb/resize/2008/0523/121143487207_20080523.JPG)

댓글 1개:

  1. 제자*오
    (2008/05/25 10:34) 누가 연설문 작성하는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밑에서 작성해 올라오면 첨삭을 하는 정도인지, 모두 직접 펜으로 쓰시는지 말이죠. 제가 간접적으로 들은 바로는 청와대 소속원들 모두가 '괴담'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국민들의 인식과는 동떨어져 표현되는 것에 제동을 걸만한 인물이 없다는 것이 정답일 듯 합니다.

    이준구
    (2008/05/25 12:45) 그러게요. 나도 청계천 운운 할 때 살짝 기분 나빴답니다.


    (2008/05/25 16:38) 제자*오님, 여태껏 이명박 대통령 연설문의 상당수를 류우익씨가 써왔다고 하죠. (이 분은 참 이름이 제대로 되신 듯합니다.) 연설문, 담화문 올리면 "이거 류우익씨가 검토했나?" 라고
    습관처럼 묻는다고 하더군요. 조선일보인가 어디선가 본 기억이 납니다.


    (2008/05/25 16:38) 참고로 류우익씨는 한반도대운하의 주요 추진인물이라나요.

    김형균
    (2008/05/25 19:42) WEST WING을 보면 연설문 작성하는 Staff들의 눈물겨운 노력이 실감나게 드러납니다. 그러다보니 연설문도 멋드러지게 나오겠죠. 도대체가 우리는....흑;;

    안병길
    (2008/05/25 22:28) 언론정보학에 정치커뮤니케이션이라는 분야가 있습니다. 대통령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 쟁점분야 전문가와 언론정보학자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을듯 합니다. 우리 대통령들에게는 간결하면서 알차고 감동을 주는 명문장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미국의 경우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과 케네디의 취임사를 대표적인 명연설문으로 간주하지요.

    현광희
    (2008/05/26 01:44) 저글을 보니까 지적하신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대통령의 식견이중요하다고생각되네요 저걸 누가써던 그걸 발표했다는건 대통령이 그렇게 생각한다고 봐도 무방하지않나요?

    안병길
    (2008/05/26 02:27) 당연히 최종 책임은 대통령이죠. 대통령 담화문이니까요. 가장 이상적인 조합은 훌륭한 리더십을 갖춘 대통령과 올바르고 실력있는 보좌진이겠죠?

    영도스키
    (2008/05/26 02:37) 정말 사과아닌 사과를 했죠. 물론 정치가 쇼이긴 하지만 너무 티가 나더라는. 진심 없이 미안하다면 미안한데,,,이런식이었지 않나 합니다 ㅠ

    안병길
    (2008/05/26 09:46) 한겨레 신문이 보도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응답자 62%가 대통령 담화가 미흡했다고 답했고, 78%가 미국 쇠고기 수입은 재협상해야 한다고 답했다고 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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