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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28일 금요일

[수필] 80학번 글을 읽으면서 80학번을 생각함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8/02/28, 아래 글을 작성하고 나서 이 교수님 게시판에 올릴지 말지 고민을 제법 했습니다. 실제로 한번 올렸다 내리기도 했습니다. 이 교수님 게시판 성격에 맞지 않은 것 같아서 걱정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도 꼭 하고 싶은 말이라서 용기를 내서 결국 올렸고, 제자*오님께서 비슷한 소회를 밝히는 댓글을 주셨습니다. 지금은 그 댓글을 볼 수 없어서 아쉽습니다. 우리 사회가 너무 좌로 가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너무 우로 가는 것도 적절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글에 나오는 동기 동창 창균이에게 그때 이메일로 아래 글을 보내줬습니다. 답은 받지 못했습니다.)

80학번들이 대학교 1학년 때인 1980년에 광주 민주화 항쟁이 있었습니다. 5.17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을 때, 저는 운 좋게도 누나 집에서 외박하고 있어서 기숙사에 진입한 군인들의 곤봉 맛은 못 보았습니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들은 소문 중에는 경제학과 모 교수님께서 기숙사 사감이셨는데, 학생으로 오인 받아서 황당한 경험을 하셨다는 것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동안이시지만 젊은 시절에 그 교수님께서 청바지를 입으시면 영락없는 조교 형이셨죠. ^^ 아마 군인들이 "당신이 교수면, 나는 육군 참모총장이다."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다음 날 기숙사에 전화해서 사물을 챙겨 나올 수 있느냐고 문의했더니, 들어올 수는 있는데 안 들어 오는 것이 몸에 이로울 것이라는 충고를 듣고 곧바로 고향으로 갔던 기억이 납니다.

80 학번들에게 80년대 초반은 민주화와 관련된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공부를 해야 하느냐, 밖으로 나가서 데모해야 하느냐로 서로 다툰 적도 많았지요. 그런 와중에서도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들은 공부했고, 언더 운동을 하는 친구들은 나름대로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물론 둘 다 수행한 친구들도, 둘 다 하지 않은 친구들도 있었겠지요.

경제학과 친구 중에 언뜻 생각나는 공부를 잘했던 이들로 서울대의 R 교수, K 교수, 서강대의 S 교수, W 교수, 한양대의 K 교수 등이 생각나는군요. 지금은 우리 경제학계의 중진 이상이 되어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학자의 길로 나아간 다른 전공 동기들은 서울대만 보더라도 외교학과의 S 교수, 정치학과의 R 교수, 사회학과의 L 교수, J 교수, S 교수 등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많은 80학번들이 학자의 길을 걷고 있네요. 학자들을 학번으로 분류하는 것이 별 의미는 없습니다. 모두 보고 싶은 친구들입니다.

우종원이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대학교 1학년 때 서울대 기숙사인 관악사에서 처음 만난 그 친구는 해맑은 미소와 자그마한 체구가 인상 깊었습니다. 한참 뒤에 그 친구의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경부선 철로변에서 유명을 달리했다는 슬픈 소식이었습니다. 종원이의 죽음은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결과 민주화 운동과 관련된 타살로 판명되었습니다.

전두환 정권 시절에 저는 간헐적으로 시국 데모에 참여는 했습니다만, 마음이 약해서 언더 학생활동은 하지 못했습니다. 그 당시 민주화 운동을 했던 친구들에게는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 친구들이 자신들을 희생하면서 우리나라 민주화에 이바지한 바가 상당하고, 그 당시에 제가 더 적극적으로 그들을 도와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래의 창균이가 마음 놓고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마 그런 친구들의 희생에 바탕을 두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종원이와 창균이는 동기 동창생입니다. 창균이 글을 보면서 종원이가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종원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마음 속으로 되뇌면서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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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균 칼럼] 08학번에 들려주는 80학번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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