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Notice) | 방 명 록 (GuestBoard)

2009년 8월 10일 월요일

[자유] 약자는 강자를 어떻게 이길 수 있나요? (끝)

드릴 말씀은 많지만 제가 조금 바빠서, 간단한 발제를 하는 것으로 시리즈를 마무리 짓겠습니다. 정답이 없는 열린 문제제기입니다. 저는 한나라당을 근본적으로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자유민주주의에서 잘 작동하는 보수 정당이 있으면 바람직합니다. 한나라당이 비록 과거 권위주의와 인연을 맺고 있고, 지금 현재도 그런 분위기를 일부 내보이지만, 앞으로 제대로 된 보수 정당으로 거듭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그럼 시작합니다.

한나라당은 이미 브랜드 가치를 갖고 있습니다. 제 추측으로, 그것은 박근혜 씨가 한나라당을 뛰쳐나올 상황이 되었어도, 대통령이 되려고 버텼던 것을 보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한나라당을 전면 부정하거나, 아예 없애려고 노력하는 것은 비현실적입니다. 자유주의에서는 어떤 정당도 원칙적으로 허용되며, 그것은 한나라당도 마찬가지입니다. 더구나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국민도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존재하는 정도가 아니라, 정당 지지도 조사를 하면 1위를 계속 달리고 있지 않습니까. 물론, 심정적으로는 꼴도 보기 싫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치 현실은 냉엄합니다.

이 시점에서 링컨이 어떻게 대통령이 되었는지 살펴볼 가치가 있습니다. 제가 최근에 적은 링컨 이야기를 그대로 인용합니다. 긴 인용이지만, 중요한 설 풀기이기 때문에 읽는 분이 인내심을 발휘하실 것을 부탁합니다. 출처는 서울대 경제학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입니다. http://tinyurl.com/ahn-lincoln 마지막 단락은 보충설명으로 추가했습니다.

(1) 드디어 링컨

그리 하야, 마키아벨리가 정치와 도덕을 구분한 것을 참조해서 링컨을 바라보면 그 사람도 정치인이라는 데 착안하게 됩니다. 정치인의 합리성이 있죠. 자유민주주의에서 정치인은 표를 바라보고 삽니다. 링컨도 그 점에서 다른 정치인과 다를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씨 질문에 제가 예스도 되고 노도 된다고 일단 답했던 것입니다. 거시는 이창용 교수에게 잘 배우셨을 테니 제가 미시 부분을 설명드리겠습니다. 이준구 교수님이 계시면 미시를 저보다 훨씬 더 잘 가르쳐 주시겠지만, 지금 부재중이라서 제가 대신하겠습니다.^^ 성에 차지 않으시더라도, 사이비가 그 정도면 됐다는 평가를 해주시면 대단한 영광이겠습니다.

(2) 의제 설정

이곳에 법을 전공하시는 분들도 오시니까, 제가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법을 다루는 곳입니까, 정치를 하는 곳입니까? 저는 그것이 알고 싶었습니다. 아래에 고정논객 OO씨가 정성껏 정보를 줘서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고맙습니다. 링컨이 법률가 변호사 출신이죠.

위의 제 질문은 어설픈 의제 설정(agenda setting)입니다. 왜냐구요? 제가 정치학 쪽 아닙니까. 당연히 정치도 하는 곳이다는 답을 기대한다는 것이 눈에 뻔히 보이죠. 우리 정치사에서 최근의 대표적인 의제 설정으로 저는 “잃어버린 10년”을 듭니다. 잃어 버렸는지, 아닌지 증명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제법 많은 국민은 뭔가 상실했다고 느꼈죠. 마찬가지로 헌재의 관습헌법 논리 채택은 정치학으로 분석하면 일종의 의제 설정입니다. 저는 어설픈 의제 설정이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헌재 결정 소수 의견으로 나온 전효숙 재판관의 의견서를 찾아서 한번 읽어 보십시오. 다수 의견보다 훨씬 논리적이고 이치에 맞습니다. 세상에 연성헌법도 아니고, 경성헌법을 채택하는 나라에서 공화국도 아닌 왕조 시대 서울을 갖고 헌법 운운하는 것이 도대체 말이 되느냐는 것이죠.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고 증명할 수도 없습니다. 정치에서 전형적으로 등장하는 의제 설정이죠.

(3) 링컨의 의제 설정

링컨이 대통령이 된 것이 1860년인데, 그 언저리 링컨의 정치적 행보를 보면 의제 설정을 잘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링컨이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공화당 쪽은 이합집산을 거듭합니다. 당명도 여러 번 바뀌었죠.
Federalist => National Republican => Whig => Republican

어떤 의제설정을 해야 선거에서 이길 것인지 공화당은 심각하게 고민을 했습니다. 노예해방이라는 좋은 쟁점이 있기는 한데 전국 이슈로 만들기에는 역량이 부족했던 것입니다. 그 즈음에야 농업 위주였으니까 남부의 입김이 셌고, 그 여파로 공화당 쪽 일부도 표심을 잡기 위해서 갈대같이 흔들렸던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때 링컨이 공화당의 구세주 역할을 합니다.

미국이 서부로 팽창하면서 주들이 늘어났죠. 땅을 확보하면 모두 곧바로 주가 되는 것이 아니고, 많은 경우 테러토리(Territory)라는 임시정부 형태를 거쳐서 주가 되었습니다. 그 테러토리에 노예제를 허용하느냐 마느냐가 그 당시 초미의 관심이었습니다. 그 문제를 일리노이주 연방 상원의원인 더글라스(Stephen A. Douglas)가 해결했습니다. 그것이 1854년 캔사스-네브래스카 법(Kansa-Nebraska Act)입니다. 내용은 테러토리 의회가 노예제를 허용하든 안 하든 알아서 결정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민주당이 바라고 있었던 대로 노예해방 이슈를 로컬에 묶어놓는 데 성공했습니다. 민주당 상원의원 더글라스의 공으로 칩니다.

그런데 캔사스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캔사스는 해방구(Free Soils)가 되었는데, 연방 대법원의 판결에 의하여 흑인은 연방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지 못한다고 결정해버린 것입니다. 1857년 드레드 스캇(Dred Scott) 판례입니다. 그 당시 연방 대법원을 남부 출신 판사들이 장악하고 있었거든요. 모순이 생겼습니다. 해방구를 연방정부가 인정하지 않은 셈이니, 캔사스-네브래스카 법의 연원이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이 점을 링컨이 파고들어서 노예해방 이슈를 전국화시키죠.

그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1858년에 연방 상원의원을 선출하는 선거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는 간선이라서 일리노이주 의회에서 선출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민주당 대표는 현역 더글라스, 공화당 대표에는 삐쩍 마른 링컨이 나왔습니다. 두 후보가 일리노이 전역을 돌면서 8차례 토론회를 했습니다. 그 중 프리포트(Freeport)라는 조그만 도시에서 열렸던 토론회에서 링컨은 더글라스에게 다음과 같이 묻습니다.

“Can the people of a United States Territory, in any lawful way, against the
wish of any citizen of the United States, exclude slavery from its limits prior
to the formation of a state constitution?”

음... 영어가 조금 고풍스럽습니다. 요체는 더글라스 당신은 테러토리가 정식 주가 되기 전에, 연방정부가 반대해도, 노예제를 폐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정도가 되겠습니다. 정확하게 위에서 설명드린 모순을 지적한 것입니다. 2년 뒤인 1860년 대통령 선거에 대해서 더글라스는 관심이 많았습니다. 민주당 후보가 되려면 남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죠. 그런데 일리노이주는 북부에 있습니다.

그 당시 이미 민주당은 북부와 남부로 분열의 조짐이 있었습니다. 저 질문에 예스(Yes)로 대답하면 더글라스는 상원의원직을 쉽게 유지할 수 있지만, 남부 쪽의 외면을 받게 되는 것이었죠. 링컨이 설정한 의제는 상원의원을 쉽게 계속 유지할래, 아니면 대통령에 도전해볼래, 둘 중 하나만 골라 보라고 압박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더구나 더글라스 자신이 주도한 캔사스-네브래스카 법도 걸려 있죠. 결국, 더글라스는 쉽게 상원의원직을 유지하는 쪽으로 결정합니다. 링컨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2년 뒤를 기약합니다.

1860년에 민주당은 쪼개집니다. 북부민주당은 더글라스를 후보로 내고, 남부민주당은 자체로 다른 후보를 냅니다. 링컨의 의제 설정이 성공적으로 좋은 결과를 얻었죠. 제16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노예해방을 이끌어 냈고, 그 이후로 미국 정치의 주도권은 당분간 공화당으로 기울게 됩니다. 링컨이 사용한 의제 설정은 의제 추가(Issue Addition)입니다. 공화당의 고민이 노예해방을 전국 이슈로 끌어들여야 하는데 여의치 않았죠. 그런데 링컨이 프리포트에서 토론 한번 잘해서 전국화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TV나 라디오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서, 정당이 유권자에게 정책을 호소할 때 종이 홍보에 의존했습니다. 링컨이 논리를 제공했고, 홍보는 공화당 조직이 맡았습니다. 프리포트 토론 내용의 핵심을 잘 요약해서 신문이나 당 홍보지를 통해서 열심히 뿌렸다고 합니다. 일반인은 링컨의 정치적 조작을 말 그대로 읽으면 무슨 뜻인지 모를 수 있기 때문에, 공화당 조직이 친절하게 해설을 해서, 시민이 드시기 좋게 메뉴를 개발한 것이죠. 대선까지 2년의 기한이 있었기 때문에 시간도 충분했습니다. 링컨은 1860년 대선 때 선거 유세도 별로 많이 하지 않았습니다. 남부는 아예 포기했죠. 링컨이 아이디어 토스를 잘했고, 그것을 받아서 공화당 조직이 잘 움직여서 노예해방 쟁점을 전국화했습니다.

여러분은 이 글을 읽으면서 뭔가 느끼시지 않았습니까? 약자 공화당이 노예해방이라는 쟁점을 이용해서 강자 민주당을 쪼개고 그 당시 미국정치 주도권을 잡았음을 참조하면, 한나라당도 쪼갤 수 있지는 않을까라는 전략적 생각은 혹시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림 설명: 제 미국 사부님 중 한 분인 故 William H. Riker 교수님의 책 The Art of Political Manipulation 표지입니다. 그 책의 제1장 "Lincoln at Freeport"를 나름대로 요약한 것이 인용 부분입니다. 그림을 클릭하면 책 내용을 디지털 자료로 보실 수 있습니다.

댓글 3개:

  1. 비슷한 내용을 다른 곳에도 올렸습니다. 지금까지 올라온 의견과 제 답을 소개합니다.

    (누리꾼1)
    "한나라당은 없어져야 할 정당이고 한반도엔 민주당과 노동당이 선의의 경쟁시대로 가야할 것임."

    (안병길)

    "노동당이라 하시면 북한의 그 노동당인가요? 아니면 우리 민주노동당인가요? 전자라면 양 쪽에서 일당 독재를 하면서 경쟁을 해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한나라당이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면, 오히려 그쪽을 도와주는 것 같네요. 한나라당 내부 결속이 더 강해질 테니까요. 그러면 안 쪼개질 것 같습니다. 감정을 앞세울 것이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고 냉철하게 분석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누리꾼2)
    "현직 대통령이 "선거 때면 무슨 말인들 못 하겠느냐."라는 말을 자랑스럽게 하는 우리나라에 청해 님이 말씀하신 링컨 사례의 접근 방법을 적용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언제쯤 우리나라 유권자도 그렇게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투표를 하게 될까요? 답답한 일입니다.

    하지만, 2012년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분열할 가능성은 크다고 봅니다. 박근혜의 지지자는 매년 자연감소합니다. 그 수가 수십만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3년 후면 50대의 상당수가 60년대 생이고 70년대 생도 40대 초반으로 진입합니다. 유권자 세대교체가 상당 수준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한나라당 안에서 그런 점을 고려해서 박근혜 필패론이 제기될 것이고, 만약 허접한 상대를 만나 집권한다고 해도 집권기 동안 바뀔 인구 구성을 고려할 때 원활한 정국 주도가 어렵다고 생각해서 신진 인사를 내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을 것 같습니다.

    이런 식으로 한나라당이 쪼개짐을 예상하는 것이 한국적일 것 같습니다."

    (안병길)
    "박근혜 진영은 그 중간에 손 놓고 있을까요?
    젊은 유권자들을 끓어 들이려고 짱구를 열씨미 굴리겠죠.
    그렇지 않아도 젊은 유권자가 보수적이라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던데요...

    누리꾼 님의 추정도 일리는 있습니다만, 제가 발제한 것은 정치적 조작(나쁜 의미의 공작이 아니고, 정당한 의제 설정)에 관한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아이디어가 없으신지요? 이것이 열린 질문이라서 정답이 없을 가능성이 큽니다. 제 입장에서는 집단 이성의 도움을 받고 싶은데..."

    (누리꾼2)
    "외교 관련 문제를 가지고 자충수를 두게 할 수도 있겠고... 그쪽 사람들의 외교가 편협한 면이 있어 용이할 것 같습니다. 개헌, 남북문제, 지역개발, 복지정책... 생각해보면 많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이런 것이 안통하니 문제입니다. 일반 국민에게 그런 헛점을 일러주는 것이 언론이고 지식인인데 그것이 작동하지 않으니 문제입니다. 노 대통령께서도 그것을 답답해 하셨고, 한나라당은 그것을 공고히 하려고 미디어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컴퓨터 하드웨어도 좋고 소프트웨어도 좋은 것이 많은데, OS가 아직 DOS입니다. 난감한 일이지요."

    (안병길)
    "의견 고맙습니다. 생각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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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지난 2007년 대선 전 상황에서 당시에도 약자가 아니라 강자라고 봐야하겠지만, 오히려 한나라당의 의제가 민주당을 갈라놓았던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집중적으로 공격하고,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나갔죠.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카피 대상 감의 구호도 내세웠고요. 거기에 결정적으로 이른바 '참여정부 실패론'을 던집니다.

    국정실패를 기정사실화하는 한나라당의 화법에 민주당은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한 것이죠. 그러는 순간 그것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그 의제는 그리 쉽게 기정사실화되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대통령 후보를 정하는 시기에 민주당은 말려듭니다.

    대통령 후보 경선주자들은 '실패한 (것으로 기정사실화시킨) 참여정부를 계승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딜레마에 빠진 것입니다.

    사실 같은 당 출신이라도 선거국면에서는 '그것보다 더 잘할 수 있다'고 해야 하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현 집권자를 공격하는 모양새가 됩니다. 그 보다 더 잘하려면, '그가 사실은 못했다'를 기정사실화 하는 게 유리하겠죠.

    민주당은 갈라집니다. "참여정부의 실패를 거울삼아~" "참여정부의 공은 잇고 과는 개선하여~" "참여정부가 실패라는 주장은 억지~".... 이런 식으로 적전분열을 하게 됩니다.

    당시의 정황을 안박사님의 설명에 맞춰보았습니다. 물론 이 경우는 약자가 강자를 쪼개어 이긴 경우는 아닙니다. 당시에도 한나라당이 약자라고 보기는 그럴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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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ssha1005님의 해석이 일리가 있습니다. 야당은 항상 정부의 실정을 부각시키는 의제 설정을 합니다. 참여정부는 출범부터 소수파 정권이었기 때문에 그런 의제 설정이 더 잘 먹혀 들어갔던 측면이 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대선 즈음에는 여당 쪽이 분열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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