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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16일 일요일

[수필] 아버지와 나의 눈물

(즐거운 주말을 보내고 계신지요? 주말에는 소소한 이야기를 주로 하겠습니다. 1997년과 2003년에 적은 글을 약간 수정하여 묶었습니다.)

아마 초등학교 3학년인가 4학년 때 생긴 일이었다. (1970년? 1971년? 고등학교 2학년 때 집에 불이 나서 그 당시 일기장이 모두 탔기 때문에 정확한 연도는 아물 아물하다.) 아버지는 그 때 모 은행 동대문지점 차장을 하고 계셨다. 어머니는 아들들 학업을 보살피시느라 부산에 계셨고, 아버지는 성수동의 자그마한 집에서 대학생이었던 누나와 함께 지내셨다.

방학이 되어서 나는 지병이었던 축농증도 치료할 겸 셋째 형과 함께 서울에 놀러 갔다. 매일 동대문 근처에 있는 한 이비인후과에서 치료를 받고 성수동으로 돌아오는 길에 동대문 시장도 구경하고, 어떤 때는 어린이 월간지를 사서 집에서 만화를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는 매우 검소한 분이셨다. 오락, 영화, 연극, 음악회, 미술전시회, 기타 등등의 entertainment와는 전혀 거리가 먼 분이셨다. 그런데 그런 메마른 정서를 가지고 계셨던 분이, 그 방학의 어느 주말, 나에게 영화를 보자고 제안하셨다. 코치료를 받고 난 직후라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아버지의 놀라운 제안을 듣고 나는 어안이 벙벙하였다. 평소 한 푼이라도 아끼시는 편이라서, 농담을 하신 것으로 생각하고 영화를 보자는 제안을 거절하였다. 아버지는 다음과 같이 다시 나에게 영화보기를 권하셨다.

"길아, 집에 가면 네 엄마도 없고, 누나도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았을 테니 너하고 아버지하고 둘이서 뭘 하겠니. 그러니 요 근처 영화관에서 영화나 한 편 보고 들어가자꾸나."

아버지가 나의 축농증 치료에 쓰시는 돈도 상당한 것이라고 평소 마음 아파했었던 나였지만, 그 정도가 되자 제안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느 극장인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종로 단성사였을 것 같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이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 영화 내용을 지금 자세하게 되살리 수는 없다. 가족영화였고 조금 슬픈 내용도 있었던 것은 기억 난다. 그 영화를 보면서 나는 하염없이 울었다. 객지에서 혼자 쓸쓸하게 생활하는 아버지가 영화 속에서 자꾸 나타나는 것 같았다. 또, 한 푼이라도 평소 아끼시던 분이, 아들이 서울에 왔다고 해서, 가시지도 않던 영화관에 앉아 계신다는 생각을 하니, 왠지 아버지가 너무 처량해 보였다. 그래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드디어 방학이 끝날 무렵, 셋째 형과 나는 다시 부산으로 내려와야 했다. 아버지는 고속버스를 타도록 해주셨다. 경부 고속도로가 개통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우리는 고속도로를 달린다는 신기한 기분에 조금 들떠 있었다.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일명 "개그린" 버스로 불렸던 그레이하운드 터미널(지금 대우빌딩이 있는 자리)이 있는 서울역 앞으로 갔다. 그 당시에는 그레이하운드가 인기가 좋아서(버스 안에 화장실이 있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사람들이 많이 밀려 있었다. 출발 시간까지는 제법 여유가 있어서, 아버지는 근처의 허름한 삼계탕 집으로 우리를 데리고 가셨다.

아버지는 멋보다 실속을 차리는 분이었다. 서울에 놀러 온 자식들을 근사한 양식 레스토랑에 데리고 가서, 아버지로서 "위엄(?)"도 세우고 자식들로부터 "인기(?)"도 얻는 기회라고 생각했지만, 우리 바람과는 달리 다 무너져 가는 삼계탕 집으로 데리고 가셨다. 아마 먼 길을 가야 하니 든든하게 보신을 시켜주고 싶으셨을 것이다.

병아리에 가까운 자그만 닭이 들어 있는 삼계탕을 먹는데 자꾸 아버지가 쓸쓸해보였다. 어머니와 떨어져 사셔야 하는 아버지, 그리고 방학 중에 두 아들과 같이 생활하다 보내야 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왠지 내 눈에는 처량하게 보였다.

그날 내가 먹은 삼계탕 국물의 반은 눈물이 아니었나 싶다. 아버지의 눈이 휘둥그레하게 할 만큼 많이 울었다. 처음에는 아버지 몰래 울려고 노력했는데, 눈물이 너무 많이 나와서 숨겨지지가 않았다. 아마 그 삼계탕은 내가 지금까지 먹어본 삼계탕 중에 제일 짠 것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제가 가장 존경하는 분입니다. 1994년, 막내인 제가 첫 직장을 잡은 몇 달 뒤에 지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사진은 1986년 부산 남천동 집 마당에서 촬영한 것입니다. 아버지는 화초 가꾸기를 매우 즐기셨습니다.)

댓글 5개:

  1. 사진에 나오신 분이 부친 아니신가요?
    1996년에 촬영한 거라면 큰 형님?

    안박사도 아주 마음이 약한 분이시군요.
    삼계탕 앞에 두고 그렇게 우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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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안박사님, 글 잘 읽었습니다.

    안박사님과 아버님 두 父子간의 사랑에
    제 자신도 절로 숙연해지네요.

    오늘 저녁 간만에 부모님께 전화라도
    한통 드려야 할 듯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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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앗, 제가 큰 실수를 했습니다. 오타가 있었네요. 사진은 1996년이 아니고, 1986년입니다. 죄송합니다. ㅜ.ㅜ

    선생님, 제가 어릴 때 눈물이 조금 많은 편이었습니다. 사진은 아버님 생전 모습입니다. 당신이 가꾸신 화초를 배경으로 손자를 안고 계신 모습입니다.

    영환 씨, 잘 생각하셨습니다. 아버님은 저를 귀엽게 여기시고 사랑하셨는데, 저는 불효를 했던 것 같아서 요즘도 가끔 죄송스런 마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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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안박사님, 저두 글 잘읽었습니다.

    안박사님 글 읽으니 저두 어릴적 아버지와 함께 했던 영화에 관한 추억이 떠오르네요. 저희 아버지는 영화를 무척이나 좋아하셔서 가족들과 또, 저와 단둘이도 자주 영화관 가기를 즐겼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이였던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 아버지께서 종종 저와 동생들을 데리고 극장엘 가셨는데 당시 어린이였던 삼남매가 극장에서 즐길 수 있는 장르는 애니메이션 뿐이였습니다. 그 영향으로 성인이 된 지금도 개봉하는 애니메이션을 놓치지 않고 꼭 보는 취향이 생겼어요.

    성인이 되서 애니메이션을 즐기려니 같이 볼 사람을 구하기가 힘들어 한번은 아버지께 같이 보러 가자고 제안을 하니 싫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옛날엔 자주 갔으면서 왜 싫어하냐며 재밌을거니 같이 가서 보자고 아버지를 졸랐습니다. 그랬더니 아버지께서 하시는 말씀이 그때는 보고싶지 않았지만 저와 동생들을 위해서, 또 가족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꼬박꼬박 챙겨 보여주셨던 거라고 하셨습니다.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고나면 항상 영화 이야기를 나눌뿐 아니라 영화의 OST까지 사주시며 같이 들으면서 즐겼는데 그것이 아버지의 취향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자식들을 위해서 그러셨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부모님의 무한사랑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아버지께서 암으로 몇년 전에 하늘나라에 가셨기 때문에 이제는 같이 영화를 즐길 수 없지만 지금도 극장엘 갈때마다 아빠와 둘이서 손잡고 영화보러 다니던 시절, 또 어릴적 같이 애니메이션을 즐겼던 시절이 생생히 생각이 나요.

    안박사님의 글을 읽으니 아버지의 사랑이 많이 그리워지네요. 아버지께 못다한 효도까지 엄마께 해드려야 하는데 오늘 하루종일 투정만 부린 못난 딸이였어요. 반성하고 착한 딸 노릇좀 해야겠다는 각성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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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비아님 아버님도 자식 사랑이 지극하셨던 분이네요. 그런 참된 부성애가 우리 사회에서 더 필요하죠. 저나 비아님이나 아버님이 계시지 않으니 어머님에게 더 효도해야겠습니다. 저도 반성합니다. 전화라도 자주 드려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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