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8/06/08, 그림을 클릭하시면 확대됩니다.)
주말입니다. 잘 모르지만 그림 이야기도 한번 해볼까 합니다. 고등학생 시절 영어 선생님 한 분이 하루는 취미생활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왠지 음악을 듣는 취미는 바보스럽지만 그림 감상은 괜찮은 것 같다고 하셔서, 그림 감상도 배워놓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림은 아무리 들여다봐도 음악을 듣는 만큼 정이 들지 않더군요. 물론 교과서에 소개되는 명화들 정도 되는 그림들을 쳐다보면 정말 잘 그렸다는 느낌은 들었죠. 예컨대 고흐의 그림들을 보면 특이하게 잘 그렸다는 감상 정도였습니다. 본격적인 취미 생활로 개발하지는 못했습니다.
음악이 친구가 될 수 있듯이 그림도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친구는 다다익선이므로, 다양한 건설적인 활동을 통해서 오래갈 수 있는 취미를 여럿 갖는 것은 틀림없이 인생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제가 그림을 알지는 못하지만 좋아하는 화가는 있습니다. 화가 이중섭입니다. 이중섭은 어려운 시절 힘들게 창작활동을 한 예술인으로서 독특한 기법의 명작들을 많이 남긴 우리나라의 대표적 화가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래전에 고은 씨의 이중섭 평전을 매우 흥미있게 읽었습니다. 그중에서 아직 유난히 기억이 남는 부분이 몇 있는데, 일본인 아내의 한국 이름을 남쪽에서 얻었다는 뜻으로 南得(인터넷에 찾아보니 이남덕으로 나오네요)으로 지었다는 부분, 한국전쟁 시절 제주도에 피난가서 바닷가 게와 애들을 열심히 그리는 부분, 그리고 그 유명한 소 그림들을 그리는 부분 등입니다.
이중섭은 유난히 우리나라 소에 심취되었다고 합니다. 요즘 온통 쇠고기 얘기라서 그런지 이중섭의 소 그림들이 다시 보고 싶은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을 찾아보니 어렵지 않게 공개된 소 그림 사진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인터넷이 정말 편리하고 좋습니다.^^) 위에서 오른쪽 두 그림이 이중섭의 "황소"와 "흰 소"입니다. 우렁찬 힘을 그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왼쪽 두 그림은 피카소의 "Guernica"와 "The Bull"입니다. 게르니카는 스페인 내전 당시 나찌의 폭격을 당해서 초토화된 게르니카 마을의 참상을 그린 것인데, 스페인 정부가 의뢰해서 1937년 파리 세계박람회에 벽화로 출품되었다고 합니다. 이 벽화 그림에 피카소의 소가 왼쪽 윗부분에 나오죠. 왼쪽 아래 그림은 피카소가 스페인 소 전체를 그린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제가 그림에는 무지하지만 제 느낌을 과감하고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저는 이중섭의 소 그림이 훨씬 마음에 쏙 들어옵니다. 아마도 제가 한국인이기 때문이겠죠. ^^
(혹시 그림 감상 취미를 가지신 분 계시면 작품 해설 부탁해도 될까요?)
신비아
답글삭제(2008/06/08 10:35) 그런의미에서 안병길님이 한국인이기때문에 이중섭의 소가 더 맘에 든다는 것은 작품을 접할때 작품이 전해준 느낌에 근거한 감상이라는 생각이 드네요.^^우리만이 갖고 있는 한국인의 정서가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이중섭의 소를 민중으로 해석하기도 하는데 그의 작품들을보면 힘있고 거칠지만 어딘가 모르게 애환이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우리 민중들처럼요....^^
안병길
(2008/06/08 12:37) 제 원래 전공이 전쟁/분쟁 이론이라서 게르니카는 이전부터 그 명성을 익히 들었습니다. 한국전쟁을 연구한 부르스 커밍스의 책 표지에도 실린 것으로 기억합니다. 신비아님의 친절한 해설을 참조하니 도움이 많이 됩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역시 그림도 음악과 마찬가지로 감상자의 느낌이 가장 중요한가 봅니다. "힘있고 거칠지만 어딘가 모르는 애환"이라는 표현은 정말 공감이 됩니다.
이준구
(2008/06/08 14:09) 야, 신비아양의 권위 있는 해설이 곁들여지니 더욱 멋있는걸.
유학시절 MOMA에서 한 벽을 가득 채운 Guernica를 보고 느낀 감동이 아직도 진하게 남아 있습니다. 스페인이 민주화된 후 고국으로 보내달라는 Picasso의 요청에 따라 그 때까지는 뉴욕 생활을 하고 있었지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그림 중 하나입니다. 내 방에 그것의 모사품 액자가 걸려 있는 것 못 보셨나요?
장피에르세르
(2008/06/08 16:43) 안녕하세요~.
신비아
(2008/06/08 21:05) 와... 선생님 게르니카를 직접 보셨다니 너무 부럽네요. 전 아직 못봤는데 직접 보면 눈물날거 같아요. 그리고 선생님 방에 걸린 그림 을 어떻게 지나쳤겠습니까? 제가 처음 선생님 방에 들렸을때 벽에 걸린 그림과 또 문을 열자마자 오른편에 쌓여 있는 수많은 CD들 중 제일 위에 브랜델 CD가 있는 것을 보고 선생님께 반했었거든요~ㅋㅋ
이준구
(2008/06/08 21:58) 비아양, 브랜델 CD 중 듣고 싶은 것 있으면 언제든 빌려가도 좋아.
이준구
(2008/06/09 22:21) 내가 MOMA에서 그 그림을 봤던 것은 70년대 후반으로 박 대통령의 독재정치가 극성을 부리던 때였습니다. 난 미국에 나와 있어 그 폭력을 피할 수 있었지만, 고국에서 연일 들려오는 우울한 소식에 마음 아파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국 스페인이 민주화되면 그 그림을 고향으로 보내 달라는 Picasso의 유언이 더욱 가슴에 와 닿았을 겁니다. 나도 민주화된 나라에서 한번 살고 싶다는 것이 내 간절한 소망이었습니다.
지금은 누가 뭐래도 남부럽지 않은 민주화를 이루어냈고, 난 그것만으로 크게 만족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그런 어두운 시절이 다시는 오지 않아야 하겠지요.
Massacre in Korea 를 보시면 과연 피카소 그림에 한국인의 애환이 있는지 확인이 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답글삭제제가 생각하기로는 아무리 피카소가 전설적인 화가이더라도 한국인의 애환을 한국인 만큼 풀어놓진 못 하더군요.
다만 보편적인 가치를 잘 표현한다는 것은 인정하겠습니다만은...
덧. 저도 비슷한 걸 연구실에서 '엇!! 저건' 한것 같은데 그게 게르니카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스페인 사람이 어떻게 우리 정서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을 기대하는 것은 기대수준이 좀 높은 것이라고 봐야겠죠? ^^
답글삭제안교수님 안녕하세요. 키즈의 햇살입니다. 너무 오랫만에 인사드리는 듯합니다. 그래서, 댓글이지만 인사부터 크게 하고 시작합니다. 많은 것을 베풀어 주셨고, 그 수혜자중에 한명이었다는 것이 항상 교수님께 고마운 맘을 놓지 않게 합니다.
답글삭제오늘 교수님 블로그가 있다는 것을 알고, 어느분 말처럼, 정치를 모르니 음악 관련 글만 죽 보다가, 우연찮게 그림에 이르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남들이 다 그러듯, 그림은 직접 보지 않고는 그 느낌을 이야기 할 수 없다는 식상한 이야기나 남길까 합니다.
저도 꽤 이중섭의 소를 좋아합니다. 오래전이고, 무지할때 보았지만 (뭐, 지금도 그렇게 다르진 않습니다) 그 힘찬 느낌은 아직도 남아 있거든요. 반면, 왜 훼르니카가 유명한지는 알지 못합니다. 그 덕에, 마드리드에 있는 그의 그림 앞에 비교적 오랫동안 서 있었지요. 뭔가 감동적이긴 한데- 우선 그 규모가 사람들 압도하니까요 - 숨을 막히게 하는 그런 감동은 없더라구요. 찾아 보려고 애를 썻지만, 숨을 일부러 막히게 할 수는 없나 봅니다. 훼르니까 이상 절실한 그림들도 많은데...하는 생각. 아마도 역사와 문화를 모르는데서 오는 짧은 생각이었겠지요.
저를 숨막히게 하는 그림은 엘 그레꼬예요. 단순히 그의 빨간색이 너무 좋아서. 그리고 그리운 것은 먹으로 그린 우리네 풍경화~ 뭐가 그리 바빠 지척에 전시관을 두고도 그림 한, 두점 시간을 두고 보지 못하는지,하는 아쉬움도 글을 보고 들었구요. 다양한 관심사와 지식과 생각을 나눠주시는데 감사 인사 다시 드립니다.
처음 썼던 댓글이 등록이 않되어서, 다시 쓰다 보니, 맘이 급합니다. 말도 투박히 짧아 졌습니다. 나중에 다시 들러, 들러서 다양한 음악, 미술, 사회, 문화, 정치 이야기 보고 가야 겠어요. 8월의 마지막 자락, 시원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햇살님, 반갑습니다. 오랜만이죠? 피카소 대작 그림을 직접 보셨군요. 부럽습니다. 자주 오셔서 햇살님 특유의 재미있고, 유익한 말씀을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에게 이메일 보내주시면 회원으로 초청하겠습니다. 왕림해주셔서 거듭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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