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8/07/22)
학부 3학년 때 뒤늦게 농촌 활동을 갔었습니다. 저희 때는 보통 학부 1, 2학년 때 주로 농촌 활동을 갔었는데 저는 3학년이 되어서야 참여했습니다. 정치학과와 외교학과가 합동으로 약 20명의 인원이 전라남도 구례군 신촌에 갔는데, 계단식 논과 밭, 그리고 산자락에 있는 밤나무 밭이 그곳 농민들의 생업 무대였습니다. 지리산이 멀리 보이는 조용하면서도 개발이 잘되지 않은 외진 마을이었습니다.
80년대 초반 그 당시 농활은 농촌의 모자란 일손 돕기, 현실 공부, 그리고 소위 농민 계몽활동 측면이 복합적으로 섞여 있는 양상이었습니다. 그런데 현지에서 금방 알 수 있었던 것은 농민들을 계몽할 것은 별로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학생들이 농민들로부터 농업과 관련된 여러 정책적 쟁점들을 배워야 할 정도였습니다.
저는 현실 공부는 별 관심이 없었고, 맨몸으로 노력 봉사하는 데 주안점을 뒀습니다. 낮에는 논과 밤나무 밭에서 일하고, 밤에는 준비해간 자료들을 읽고 토론했는데, 저는 낮에 너무 "열심히" 일해서 밤 공부 시간에는 꾸벅꾸벅 조는 식이었죠. 가뭄이라서 논에 물을 대지 못해 모내기를 한여름까지 못 하고 있었는데, 저희가 갔을 때 더 미룰 수 없어서 양수기로 냇가의 물을 여러 번 퍼올린 다음 모내기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가을에 밤이 떨어지면 수확하기 쉽게 밤나무 밑의 잡초를 베는 일에 많이 동원되었는데, 제가 낫질 시범조교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왠지 낫으로 키 큰 잡초들을 팍팍 베어나가는 것이 재미있더군요. 종일 일해서 조그만 언덕 고지를 점령하고 나면 뭔가 해냈다는 성취감에 기분이 뿌듯했습니다.
농활이 끝날 무렵에 주민들께서 막걸리 잔치를 열어 주셨는데, 몇몇 후배들은 피곤한 몸에 술이 들어가서 그런지 어른들 앞에서 그냥 드러눕더군요. 제가 고학년이라서 폼 잡고 그런 후배들의 군기를 잡았던 쑥스런 기억도 납니다. 제가 워낙 엄한? 가정교육을 받고 자라서?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동네 어른들은 나이 차가 많이 났음에도, 서울 학생들에게 깍듯이 대해 주셨습니다. 인상 깊었던 것은 술을 주실 때, 일단 술잔에 술을 채운 다음 두 손으로 공손히 상대방에게 건네는 예법이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방식이 예법에 더 맞는 것 같더군요. (술잔을 상대방에게 먼저 주고 술을 따르는 것과 비교해 보시길...)
동네 어르신들의 일하시면서 주고받는 고차원의 해학 등 농촌활동의 여러 모습이 젊은 날의 좋은 추억으로 뇌리에 남아 있습니다. K 본부의 3일 농활 취재를 보고 그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사진: 경남 창원시 대산면 벌판. 아버님 고향입니다. 2004년 촬영.
이준구
답글삭제(2008/07/23 18:28) 내가 경제학부 부학부장일 때 충청도로 농활을 간 학생들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현지 분들이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많이 시켰는지 고생스러운 얼굴들이더군요. 한 가지 인상 깊었던 사실은 농활이 학생운동의 연장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군기'가 상당히 엄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마침 그 날 점심 식사당번이 밥통 스위치 켜는 것을 깜빡 잊어 대소동이 벌어졌지요. 그 당번의 준엄한 자아비판과 우두머리 학생의 훈시가 한 동안 이어지더군요. 안박사 농활 때는 그런 일이 없었나요?
안병길
(2008/07/23 19:37) 그 당시 학생운동이 농활을 주도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고학년들과 의견 차이가 조금 있었습니다. 저는 농촌에서 학생운동할(농민들께 시국 현안들을 알려드림) 것이 별로 없다는 입장이어서 바쁜 일손 돕기와 농사일 배우기에 주안점을 뒀습니다. 다른 고학년들은 밤에 후배들과 학습하는 것에 더 주력하더군요.
82년이었는데 농민들의 수준이 이미 상당히 높아졌기 때문에 실제로 현안 토론을 해보니 학생들보다 더 현실감 있게 잘 알고 계신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학생운동 했던 고학년들은 밤에 공부할 때 폼 잡고, 저는 낮에 일할 때 폼 잡는 식이었습니다. 제가 갔던 그룹은 "군기"가 그렇게 있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원 글에서 제가 오버한 에피소드가 가장 심하게 "군기" 잡았던 사례였던 것 같습니다. 어르신들 앞에 누워 있는 후배 한 명을 심하게 야단쳤거든요. 나중에 그 후배에게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같이 나이 먹어 가는 주제에 제가 건방을 떨었던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