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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 9일 수요일

[단상] 중앙일보 홍 회장의 경우

삼성 이건희 전 회장의 장인인 홍진기 씨는 슬하에 아들을 네 명 뒀습니다. 모두 경기고, 서울대를 졸업한 인재 중의 인재입니다. 장남은 스탠포드 경제학 박사를 취득했고, 현재 중앙일보 회장입니다. 안기부 X 파일 사건에 연루되어 법원에서 증인으로 출두하라고 했지만, 다섯 달 동안 법정에 나타나지 않아서 재판이 공전했다는 뉴스를 어제 듣고 기가 막혔습니다.

만약 서민이 그런 식으로 재판에 협조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똑같은 양상이 펼쳐졌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힘없고 먹고 살기 힘든 서민이 그렇게 했다면 이해가 되지만, 우리 사회의 최고 엘리트라는 사람이 "생깠다"는 소식을 듣고 분통이 터졌습니다.

우리나라 법치가 참 허술한 모양입니다. 달랑 촛불 하나 들고 인도를 지나가는 어린이에게는 시비를 걸고, 재판을 다섯 달 동안이나 방해하는 사회지도층은 막무가내로 놔두는 그런 법치의 권위를 누가 인정하려고 하겠습니까.

창피한 줄도 모르는 모양입니다. 그런 식으로 살면 행복한 모양이죠?

2009년 8월 10일 월요일

[단상] 미국 박사과정 선발

사진: Michigan State University, http://www.residenceinneastlansing.com/images/univ.jpg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8/03/01, http://jkl123.com/)

유학을 준비하고 계시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미국 대학교의 박사과정 선발을 어떻게 하는지 제 경험을 참조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학교마다 다르겠지만, 제가 재직했던 학교에서는 크게 네 가지를 고려했습니다. 학부/대학원 성적(GPA), GRE 점수, 추천장, 그리고 에세이입니다. 외국인은 TOEFL 점수를 요구하는데, 이 점수는 일정 수준 이상이면 패스이고, 점수가 아무리 높아도 선발의 주요 기준이 되지는 않습니다.

미국 박사과정 대부분이 학생 선발은 교수의 권위에 의존합니다. 즉, 특정한 합격/불합격 기준이 없고, 교수들이 서류를 검토하고 나서 A 학생은 합격, B 학생은 불합격 식으로 판정합니다. 입학 희망자가 서류를 제출하면 각 응모자 별로 폴더가 만들어집니다. 그다음에 박사과정 입학심사 위원회에 속한 교수들에게 차례로 회람시키고, 각 교수는 평가합니다. 제가 있었던 학과에서는 백분위 점수를 주는 것이 아니고, 5단계의 등급을 두어서 총체적인 평가를 하도록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특정 학생을 반드시 뽑아야겠다고 판단되면, 의견란에 별도 메모를 적습니다. "이 학생은 GRE 점수도 낮고, GPA도 좋지 않지만 나와 관련된 연구에서 반드시 필요한 학생임" 식의 유별난 코멘트도 있었습니다. 이 경우는 특별한 하자가 없다면, 동료 교수들이 유사한 평가들을 대부분 인정해줬습니다. 최종 심사회의에서는 위원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세부 전공별 안배도 고려하면서 학생 선발을 결정했습니다.

따라서 어떻게 보면 매우 자의적인 방식으로 박사과정 학생을 선발한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학부 성적과 GRE 점수는 정해져 있는 것이지만, 추천장과 에세이는 평가하는 교수에 따라서 조금씩 차이가 날 수 있겠습니다. 제 경우에도 드러난 점수보다는 추천장과 에세이를 더 비중 있게 다뤘습니다. 그런 점수들이야 차가 조금 나더라도 박사과정 이수에 큰 지장이 없지만, 추천장과 에세이에 드러난 자질들이 오히려 더 중요하다는 판단이었습니다. 다른 교수들도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점수들이 큰 차이가 나면 당연히 고려 대상이 됩니다.

추천장을 많이 읽다 보면 뻥튀기한 것인지, 정확한 평가를 해준 것인지 어느 정도 감이 잡힙니다. 우리나라에서 오는 추천장들은 대부분 학생을 매우 높게 평가했는데, 손해 볼 것은 없지만 별로 변별력이 없는 추천장으로 취급했습니다. 과목에서 B를 받았는데, 적절한 설명 없이 그냥 학업 능력이 아주 우수하다는 식으로 적은 추천장을 보면 일반적으로 믿지 않게 됩니다. 따라서 특별한 사유가 없는 이상, 가장 좋은 학점을 받은 과목 교수님을 뵙고 추천장을 부탁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리고 사정에 의해서 학점이 잘못 나온 경우가 있다면, 왜 그렇게 학점이 나왔는지 별도로 설명하는 메모를 학생이 덧붙이는 것이 좋습니다. 예를 들어서, 아팠다든지, 학점보다 더 중요한 활동(예컨대, 민주화 데모 ^^)을 했다든지 등의 억울한 사유가 해당됩니다. 이것은 심사 교수에 따라서 고려해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거짓말만 아니라면 손해 볼 것은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에세이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점수나 추천장은 비슷한 경우가 많아서 에세이에서 판가름날 때가 잦았습니다. 학교에서 지정해준 양식이 있다면, 그 양식은 반드시 지키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몇 자 이내라고 하면 워드 프로세서의 자수 헤아리기 기능을 활용해서 그 이내로 작성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손해 볼 수 있습니다. 에세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어떤 분야를 어떻게 공부하고 싶다는 아이디어입니다. 교수들 대부분이 허리 멍텅한 구름 잡기 식 설 풀기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될 수 있으면 자신의 문제의식이 확연히 드러날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작성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세부적으로 분야를 좁힐 필요는 없겠습니다. 그 세부 분야 교수가 있으면 괜찮지만, 그런 전공 교수가 없으면 선발을 꺼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세부적인 분야에서 작성된 좋은 논문이 이미 있다면, 그것은 별도로 첨부하여 큰 득을 볼 수 있겠습니다. 에세이 영어는 매끄러워야 합니다. 따라서 에세이를 작성하고 나서 원어민이나 영어를 아주 잘하는 분에게 맡겨서 proof-reading을 거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한순구 교수님 게시판을 보니 우리 학생들이 최근 5년 동안에 경제학으로 스탠포드, 하바드, MIT로 간 경우가 없다고 하는데, 저도 놀랐습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제가 보기에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입학 사정하는 교수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세 곳은 전 세계적으로 최우수 인재들이 몰리는 곳이라서 점수들과 추천장은 엇비슷할 것이고, 따라서 에세이나 연구 논문 등에서 밀렸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기타 사항들이 일부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그것이 문제였을 것입니다. 우리 학생들이 좀 더 노력하고 입학신청 서류에 신경을 더 써서 미국의 최우수 경제학과 박사과정에 여러 명 입학하면 좋겠습니다.

2009년 8월 7일 금요일

[단상] 권위가 없는 사회

우리 사회는 총체적으로 권위가 없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다. 현대 민주주의는 삼권 혹은 이권 분립에 따라 작동하는데, 우리나라의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 어디에서도 권위는 찾아보기 어렵다. 행정부 최고책임자인 대통령도 권위가 없어서 국정운영에 애로사항이 많고, 입법부는 영양가 없는 정치인들이 모인 곳이라는 국민적 인식이 팽배해 있다. 권위적("권위주의적"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임) 판단의 최후 보루가 되어야 할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도 크게 다른 것 같지 않다.

권위가 없는 사회에서는 갈등의 요인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기고, 그 해법을 정치적으로 찾으려는 경향이 생긴다. 즉, 사회 모든 분야가 정치판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되겠다. 정치판의 기본속성 중 중요한 것이 "힘겨루기"이므로, 잘못되면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 혹은 "힘센 놈이 장땡이다."라는 반 자유민주주의적인 대세가 생길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모든 사람이 불편해지므로, 제대로 된 권위를 열심히 찾게 되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한때 매달 국정토론회를 열어서 우리의 갈등문제를 푸는 통로로 이용하려고도 했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그런 토론회를 통해서 갈등 해소의 권위를 세우려고 했을까. 권력기관을 동원해서 권위주의적으로 눌러서 갈등을 잠재울 수도 있었겠지만, 시대가 바뀌었으니 그 방법이 더는 통하지 않는다는 올바른 역사인식에 기초한 발상이었다. 그러나 그 국정토론회가 권위를 세우기보다는 여러 갈등요인을 드러내 보이는 정도밖에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혹은 대통령이 여러 갈등에 대한 견해를 알리는 장소가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 것도 솔직한 심정이다.

권위가 세워지려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노력도 많이 필요하다. 예컨대, 자연과학계에 노벨상을 받은 학자가 있다면 상대적으로 권위를 인정할 것이다. 현재 우리 실정상 노벨상을 받기까지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입법, 사법, 행정부도 마찬가지다. 없는 권위가 갑자기 합의를 통하여 짠~ 하면서 나타날 가능성은 매우 작다. 과도기에는 서로 권위라고 주장하면서 갈등이 증폭될 수도 있다.

권위가 없는 곳에서 사회 갈등을 극복하기 위한 연구는 필연적이다. 객관적으로 잘된 연구를 통해서 어떤 해법을 제시한다면, 이전투구식의 정치적 논란보다는 훨씬 권위를 세우는 것이다. 권위가 없는 사회의 갈등 해소를 위한 협력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지역, 계층, 직능, 세대 간 갈등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 그리고 그 연구에 입각한 갈등극복의 구체적인 정책제시를 한다면, 물론 한계는 있겠지만, 시민이 그 권위를 어느 정도 인정해주지 않을까라는 생각이다. 적어도 아무런 구체적인 분석도 없이, 목소리만 높여서 자신의 뜻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주장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갈등극복 정책연구를 민간 연구에서 장기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정부가 도와준다면, 없는 권위를 서서히 세워나갈 수 있을 것이다. 갈등요인이 많을수록 그 해법을 찾기 위한 연구는 다각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정부부처 산하의 연구소가 그동안 정책연구를 많이 했지만, 그 연구와 함께 진행했어야 하는 민간 정책연구는 매우 부족했다. 갈등이 많은 사회에서 권위는 오히려 정부와 관련없는 독립적인 연구에서 세울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민간 연구에 의한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고급 정책연구를 통해서 갈등극복의 권위를 세우면 좋겠다.

그림 출처: http://www.aecom.yu.edu/iphs/images/think_tank.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