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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16일 월요일

[수필] 어느 정치학도의 유학 이야기 (게임 공부)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8/02/12, 이 교수님 게시판에 올린 첫 번째 글입니다.)

주저리주저리 가볍게 제 유학 초창기 공부와 관련하여 여담 한마디 할게요. 저는 이전에 정치학을 공부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은 이 교수님 후배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정치학을 공부하면 게임이론 배울 기회는 거의 없습니다. 우리 정치학계가 전통적인 역사/기술적(記述的) 연구나 정치사상 등에 치중하고, 행태주의적인 통계기법을 원용하는 연구 등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죠. 따라서 정치외교학과 학생은 개인적인 관심이 있어서 게임이론을 공부했다면 모를까, 일반적인 정치학과 커리큘럼을 따라간다면 게임이론을 공부할 가능성이 매우 낮은 것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죠.

유학을 와서 첫 학기 수강신청을 하려고 하니 필수과목 중에 수학적 모형화(Mathematical Modeling)라는 과목이 눈에 띄더군요. 음, 어렵소, 이것 봐라. 정치학과에서 수학이라? 정치학과 수학이 무슨 상관이 있나? 그리고 모형이라고라 고라? 무슨 집 지을 일 있나? 이런 기타 등등의 생각이 드는 것은 자연스런 반응이었습니다.

더 기가 막히는 것은 그 과목을 들었더니 중학교에서 배웠던 인수분해, 고등학교 저학년 수준의 미분 등을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더욱 기가 막히는 것은 그것도 헤매는 동기생들이 있다는 것이었죠. 저로서야 우리나라의 대입에 단련된 몸이라 그 정도는 날로 먹는 것이었으니, 매주 내어주는 숙제는 채점되어서 받아볼 때마다 100점. 동기들이 저를 수학의 귀재로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간단한 인수분해 같은 것은 그냥 눈으로 봐도 할 수 있었으니, 그들이 보면 마냥 신기할 따름이었죠. 미국 고등학교 교육이 우리와 같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동기생들의 배경을 알고 보니 놀랍더군요. 동기생 한 명은 알래스카에서 변호사 하다 무슨 해괴망측한 신이 들렸던지 때려치우고 정치학과에 왔던 것입니다. 법과 정치는 밀접한 관련이 있으니 이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수학과 출신 동기생도 있었고요, 생물학과 출신도 있는 것이었습니다. 재미있죠? 정치학과 대학원 과정에 수학과 출신, 생물학과 출신이 들어온 것, 저는 너무 신기했습니다. 그런 자연계 출신들이 거뜬히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그 정치학과가 전통적인 정치학 방법론을 중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합리적 선택 방법론을 위주로 학생들을 훈련하는 박사과정이었습니다.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세뇌되었던 머리를 갖고 그 커리큘럼을 따라가자고 하니 적응이 어려웠다는 것입니다. 전통적 방법론으로 정치학을 5년 넘게 공부한 사람이 인수분해나 미분을 하고 있었으니, 이게 제대로 온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죠. 행정학 쪽 강의를 들어갔더니, 내주는 문제가 고속도로 제한속도를 올리는 것의 손익을 계산하라는 것입니다. 그것까지는 괜찮죠. 그런데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 가르쳐주는 것 중 하나가 사람의 생명을 돈으로 환산하는 것입니다. 대 정치학을 공부하는데 인간의 존엄성을 논해야지, 그깟 고속도로 제한속도 문제를 풀려고 사람 생명을 돈으로 치환해? 이건 모야?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죠.

교수님들 영어도 잘 들리지 않았죠, 기타 등등으로 마음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처음에는 동기생들이 강의 시간에 샬라샬라 떠드는 것이 너무 부러웠습니다. 영어가 잘되지 않아서 교수님 강의내용 확인하는 것도 버거운데 토론은 꿈도 못 꾸는 제가 너무 위태위태해 보였습니다. (6개월 정도 지나니 조금씩 들리더군요. 한참 뒤에 동기생들 이야기하는 것도 들리더군요. 좋은 내용도 많았지만, 헛소리도 많았습니다. ^^) 때려치워? 이런 생각도 많이 들었죠.

1년 정도 지나니 우리나라에서 세뇌되었던 머리가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들었던 두 강의가 제 머리를 반대 방향으로 세뇌시켰습니다. 그 중 한 강의는 정치학의 합리적 선택 방법론의 태두이신 라이커(William H. Riker) 교수님의 강의였습니다. 그 강의를 들으면서 저는 정치적 조작(Political Manipulation)이 어떤 것인지 공부하게 됩니다. 또한, 스탠포드 경제학과 애로우(Kenneth Arrow) 교수의 불가능성 정리(The Impossibility Theorem)를 배우면서 “자유민주주의에는 정답이 있나, 없나?”를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다른 강의가 뱅스(Jeffrey Banks) 교수님의 게임이론이었습니다. 첫 시간에 들어갔더니 청바지 입은 형님뻘 되는, 조교 정도로 보이는 사람이 분필 하나만 들고 달랑달랑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그때는 뱅스 교수님이 실력이 있는지, 유명한지 어떤지를 몰랐으니, 그냥 덤덤하게 제자리에 앉아서 “자, 이 과목 학점은 어떻게 잘 받아야 되나?”라는 잔머리만 굴리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가르치시느냐면요, 게임을 강의하시고 게임 푸는 숙제를 매주 내주는 식입니다. 예를 들어서, 내쉬(John Nash) 균형을 설명하고 게임 푸는 논리를 가르쳐주신 다음, 간단한 2x2 게임들을 여러 개 주시면서 집에 가서 풀어봐, 이런 식이죠.

그 간단하게 보이던 매트릭스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용의자의 딜레마 게임에서 둘 다 침묵을 지키면 더 좋은데, 둘 다 자백하는 상호배반이 균형이 되는 것입니다. 고민 고민하다 한국에서 먼저 공부하러 온 선배형 댁으로 창피를 무릅쓰고 찾아갔습니다. 그 선배는 제가 청운의 꿈을 안고 미국에 도착하여 처음에 인사드리러 갔더니 껄껄 웃으시면서, “첫 학기는 저하고 고스톱만 치면 됩니다.”라고 해서 저를 깜짝 놀라게 했었죠.

숙제를 보여주면서 도움을 요청하니, 저보고 먼저 어떻게 머리를 굴렸는지 설명해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차여차 이렇게 저렇게 하면 요게 균형 아닙니까? 라고 말했죠. 그랬더니, 그랬더니, “허허, 상대방의 대안 선택을 딱 잡아 놓고 보수(payoff)를 비교해야지, 그렇게 양쪽 선택을 한꺼번에 움직이면 어떡하오.”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을 딱 들으니 제가 내쉬 균형의 정의에 벗어나는 머리 굴리기를 했다는 것이 팍 들어왔습니다.

그다음부터는 게임 공부가 재미있어졌습니다. 그래서 동시 게임(simultaneous game)도 배우고, 순차 게임(sequential game)도 배우고, 급기야는 시그널링 게임(signaling game)의 순차 균형(sequential equilibrium)도 배우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게임이론 공부는 무척 어렵습니다. 어떤 때는 머리가 지끈지끈하죠. 균형은 있다는 것을 약 50년 전 내쉬가 알려줬으니, 분명히 있는데 계산을 틀리지 않고, 균형 정의에 딱 맞춰서 찾아내는 것이 헷갈릴 때가 잦습니다. 그래서 재미를 못 붙이면 견뎌내기가 좀 어렵습니다.

게임이론을 가르쳐주신 뱅스 교수님께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분은 왕성한 활약을 보일 수 있는 젊은 시기인 여러 해 전에 하느님께서 데려가셨습니다. (뱅스 교수님의 명복을 빕니다...)

저는 게임이론을 포함하는 경제학이 참 부럽습니다. 이곳에 이 교수님 제자분들을 비롯한 경제학을 공부하고 계신 분들이 많이 오시는 것 같습니다. 아래 이 교수님 글에서 우리 경제학계 수준이 미국과 비교하면 한참 떨어진다고 한탄하시는데, 안타깝지만 현재는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제가 보기에 우리 사회과학계에서 조금이라도 국제경쟁력을 갖춘 분야는 경제학밖에 없습니다. (미국에 계신 한국 경제학자들까지 포함해서요) 자부심을 느끼시고 열심히 하셔서 이 교수님을 행복하게 해 드리시기 바랍니다. (조금 주제넘었습니다. 미안해요.)

2009년 8월 31일 월요일

[수필] 두서없는 영어 이야기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8/02/24)

제가 청운의 꿈을 안고 유학을 떠나서 처음 도착한 곳이 시카고 오헤어 국제공항이었습니다. 비행기를 갈아타는 시간이 남아서 공항 내부의 가판대에 음료수를 사러 갔었습니다. 우유를 주문했습니다. 그런데 맥주가 나오더군요. 아마도 milk를 beer로 알아들었던지, 아니면 그 근처의 Milwaukee(밀워키 맥주가 있음)로 알아들었던 모양입니다. 영어는 제법 한다고 생각하고 미국으로 갔었는데 초전에 구겨진 셈이었죠. 다시 m-i-l-k를 외쳐서 새로 우유를 받을 수도 있었는데, 쑥스러워서 맥주도 사고 우유도 샀습니다.

맥주를 마셔서 벌거스럼한 얼굴로 최종 목적지로 향하는 비행기를 탔습니다. 구겨진 자존심을 만회하고자 비행기 안에서 만난 미국인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로체스터와 롸체스터, 어느 발음이 맞습니까?" 이렇게 물어봤는데, 그런데, 그런데, 돌아온 답이... "What's the difference?"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제가 미국에서 처음 사용했던 영어들은 처참한 몰골이 되고 말았습니다.

더 심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루는 급하게 병원에 갈 일이 생겨서 차를 몰고 가던중, 아내가 배고프다고 해서 맥도날드에 들어갔습니다. 그 때 병원에 빨리 가야된다는 생각에 많이 당황했었습니다. 음식을 주문하고 나서 포크가 필요해서 종업원에게 달라고 했죠. 그런데 안 주는 것입니다. 못 알아 듣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차, 내 포크 발음을 알아듣지 못하는구나"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철자를 불러줬습니다. 그런데 그만 p-o-r-k로 불러줬던 것입니다. 종업원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고 저를 멀뚱멀뚱 쳐다봤습니다. 당연하지요. 맥도날드가 정육점이 아닌데 어떻게 돼지고기가 있었겠습니까. 또 다시 아차 싶어서 철자를 정정하여 겨우 포크를 받았습니다.

제가 학위논문 발표를 할 때 위원장으로 들어온 교수님께서도 마지막에 제 발음을 지적했습니다. 그 때도 너무 긴장이 되어서 model을 우리나라에서 했듯이 모델(뒤에 강세)로 계속 발언했던 것입니다(정확하게 표기는 안되지만, 앞에 강세를 둔 '마들' 식으로 주로 발음합니다). 그 교수님은 프랑스인이어서 그 발음이 신기했던 모양입니다. 불어로는 모델이거든요. 그래서 그 교수님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너는 왜 프랑스 사람같이 모델을 그렇게 발음하냐?"라고 저를 놀리셨습니다. 마땅히 대답할 꺼리도 없고 해서, "한국의 남쪽 시골 출신이라서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죠. 모 친구 교수가 저에게 영어도 우리말 사투리 식으로 한다고 가끔 놀리곤 했거든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기 때문에, 특히 당황하게 되면 아차하는 순간에 이전 습관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 말에 없는 th, f, v 발음 등은 신경을 써서 반복 습득해야 제대로 된 발음 습관이 생길 수 있겠습니다. 아래의 어느 댓글에서 이 교수님께서 유성음 b와 d 발음 경우도 말씀하셨지만, 이런 발음들을 처음에 가르칠 때, 우리말로 가르치는 것이 효율적인지 영어로 가르치는 것이 효율적인지를 잘 따져봐야 합니다. 어릴 때부터 원어민들과 같이 생활하지 않은 경우라면, 제 생각에도 그런 발음들은 발음시 구강구조와 치아 위치 등을 우리말로 설명해주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원봉사자로 영어를 가르치면서 th는 혀 끝을 이빨로 약간 물어야 된다든지, f나 v는 윗 대문니가 아래 입술을 살짝 건드려야 된다든지 등을 설명하고 발음을 시켜보니 훨씬 정확하게 그 발음들을 해내더군요. 그런 것들을 영어로 설명했다면 수강생들이 그 영어 자체를 알아듣지 못했을 것입니다. 결국 영어로 영어를 가르치는 것도 옥석을 가려서 해야 될 것입니다. 독해나 문법 등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2년 뒤에 일제히 영어로 영어 교육을 한다는 식의 발상보다는, 적절한 준비 기간을 거쳐서 어떤 영어 수업은 우리말로 하고, 어떤 영어 수업은 영어로 할 것인지 잘 검토해서 점진적으로 영어 공교육 개선을 이뤄나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현재 교육 현장에 계신 영어 선생님들의 영어로 수업하기 딜레마도 해소될 수 있을 것입니다.

(선배님께서 말씀하신 그 오렌지 발음을 저도 TV에서 들었습니다. 거의 같더군요. 오렌지나 오렌쥐나... 미국에서 흔히 발음하듯이 했다면 앞에 강세를 두고 아린지 이런 식으로 했어야 되었겠죠. 강세만 정확하면 오렌지도 잘 알아 듣는 것 같습니다. ^^)

2009년 8월 10일 월요일

[단상] 미국 박사과정 선발

사진: Michigan State University, http://www.residenceinneastlansing.com/images/univ.jpg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8/03/01, http://jkl123.com/)

유학을 준비하고 계시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미국 대학교의 박사과정 선발을 어떻게 하는지 제 경험을 참조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학교마다 다르겠지만, 제가 재직했던 학교에서는 크게 네 가지를 고려했습니다. 학부/대학원 성적(GPA), GRE 점수, 추천장, 그리고 에세이입니다. 외국인은 TOEFL 점수를 요구하는데, 이 점수는 일정 수준 이상이면 패스이고, 점수가 아무리 높아도 선발의 주요 기준이 되지는 않습니다.

미국 박사과정 대부분이 학생 선발은 교수의 권위에 의존합니다. 즉, 특정한 합격/불합격 기준이 없고, 교수들이 서류를 검토하고 나서 A 학생은 합격, B 학생은 불합격 식으로 판정합니다. 입학 희망자가 서류를 제출하면 각 응모자 별로 폴더가 만들어집니다. 그다음에 박사과정 입학심사 위원회에 속한 교수들에게 차례로 회람시키고, 각 교수는 평가합니다. 제가 있었던 학과에서는 백분위 점수를 주는 것이 아니고, 5단계의 등급을 두어서 총체적인 평가를 하도록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특정 학생을 반드시 뽑아야겠다고 판단되면, 의견란에 별도 메모를 적습니다. "이 학생은 GRE 점수도 낮고, GPA도 좋지 않지만 나와 관련된 연구에서 반드시 필요한 학생임" 식의 유별난 코멘트도 있었습니다. 이 경우는 특별한 하자가 없다면, 동료 교수들이 유사한 평가들을 대부분 인정해줬습니다. 최종 심사회의에서는 위원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세부 전공별 안배도 고려하면서 학생 선발을 결정했습니다.

따라서 어떻게 보면 매우 자의적인 방식으로 박사과정 학생을 선발한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학부 성적과 GRE 점수는 정해져 있는 것이지만, 추천장과 에세이는 평가하는 교수에 따라서 조금씩 차이가 날 수 있겠습니다. 제 경우에도 드러난 점수보다는 추천장과 에세이를 더 비중 있게 다뤘습니다. 그런 점수들이야 차가 조금 나더라도 박사과정 이수에 큰 지장이 없지만, 추천장과 에세이에 드러난 자질들이 오히려 더 중요하다는 판단이었습니다. 다른 교수들도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점수들이 큰 차이가 나면 당연히 고려 대상이 됩니다.

추천장을 많이 읽다 보면 뻥튀기한 것인지, 정확한 평가를 해준 것인지 어느 정도 감이 잡힙니다. 우리나라에서 오는 추천장들은 대부분 학생을 매우 높게 평가했는데, 손해 볼 것은 없지만 별로 변별력이 없는 추천장으로 취급했습니다. 과목에서 B를 받았는데, 적절한 설명 없이 그냥 학업 능력이 아주 우수하다는 식으로 적은 추천장을 보면 일반적으로 믿지 않게 됩니다. 따라서 특별한 사유가 없는 이상, 가장 좋은 학점을 받은 과목 교수님을 뵙고 추천장을 부탁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리고 사정에 의해서 학점이 잘못 나온 경우가 있다면, 왜 그렇게 학점이 나왔는지 별도로 설명하는 메모를 학생이 덧붙이는 것이 좋습니다. 예를 들어서, 아팠다든지, 학점보다 더 중요한 활동(예컨대, 민주화 데모 ^^)을 했다든지 등의 억울한 사유가 해당됩니다. 이것은 심사 교수에 따라서 고려해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거짓말만 아니라면 손해 볼 것은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에세이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점수나 추천장은 비슷한 경우가 많아서 에세이에서 판가름날 때가 잦았습니다. 학교에서 지정해준 양식이 있다면, 그 양식은 반드시 지키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몇 자 이내라고 하면 워드 프로세서의 자수 헤아리기 기능을 활용해서 그 이내로 작성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손해 볼 수 있습니다. 에세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어떤 분야를 어떻게 공부하고 싶다는 아이디어입니다. 교수들 대부분이 허리 멍텅한 구름 잡기 식 설 풀기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될 수 있으면 자신의 문제의식이 확연히 드러날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작성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세부적으로 분야를 좁힐 필요는 없겠습니다. 그 세부 분야 교수가 있으면 괜찮지만, 그런 전공 교수가 없으면 선발을 꺼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세부적인 분야에서 작성된 좋은 논문이 이미 있다면, 그것은 별도로 첨부하여 큰 득을 볼 수 있겠습니다. 에세이 영어는 매끄러워야 합니다. 따라서 에세이를 작성하고 나서 원어민이나 영어를 아주 잘하는 분에게 맡겨서 proof-reading을 거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한순구 교수님 게시판을 보니 우리 학생들이 최근 5년 동안에 경제학으로 스탠포드, 하바드, MIT로 간 경우가 없다고 하는데, 저도 놀랐습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제가 보기에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입학 사정하는 교수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세 곳은 전 세계적으로 최우수 인재들이 몰리는 곳이라서 점수들과 추천장은 엇비슷할 것이고, 따라서 에세이나 연구 논문 등에서 밀렸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기타 사항들이 일부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그것이 문제였을 것입니다. 우리 학생들이 좀 더 노력하고 입학신청 서류에 신경을 더 써서 미국의 최우수 경제학과 박사과정에 여러 명 입학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