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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 7일 월요일

[정치] 이라크 파병

(2003년 9월 18일, 이전 홈페이지에 올린 글입니다.)

미국의 요청에 의해서 이라크에 전투병을 파병해야 되는지 말아야 되는지 논란이 심하게 일고 있다. 국정 최고책임자와 관련 실무책임자들도 아직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손익계산을 계속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는 미국의 국내정치, 세계정치, 한반도정치, 한국의 국내정치와 경제 등이 뒤섞여 있는 복합상황으로서 그만큼 계산서 작성이 어렵다.

전쟁이론에 "Rally-Round-the-Flag(국기주위에 모임)"이라는 명제가 있다. 전쟁의 초기에는 그 수행에 대해서 국민이 매우 높은 지지율을 보여주지만, 장기화하면 그 지지율이 급락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의 베트남전쟁이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을 응징하기 위해서 미국이 벌였던 중동전쟁에서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가장 우려했던 것이 바로 그 효과였다. 따라서 미국은 전쟁개시 이전에 주도면밀한 계획을 세워서 단기간에 전쟁이 끝나도록 했다. 현재 아들 부시 대통령의 지지도는 높지 않은 편이다. 전쟁에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후 처리가 단기간에 완료되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 국내정치에서 낮은 점수를 받는 것이다. "Rally" 효과가 없어지는 시점에 도달한 것이다.

이러한 국내정치의 난맥상을 어느 정도 탈피하기 위해서 미국은 다른 국가들에게 이라크 전후 처리의 부담을 나눠주려 하고 있고, 한국은 세계정치나 한반도정치를 고려할 때 공동의 짐을 질 수 있는 적절한 목표물이다. 미국의 전투병 파병요청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것으로서 한국정부가 미리 검토하고 있었다면 파병 손익계산서 작성이 더 쉬울 것이다.

우선 이라크에서 미국이 어떤 상황에 부닥처 있는지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필요하다. 파병을 해서 우리 젊은이들의 희생이 얼마나 나올지가 가장 큰 관건이므로, 과연 언론에서 보도하듯이 게릴라들에 의한 살상위험이 매우 큰지 아닌지를 분석해야 한다. 우리 외교부나 국방부 혹은 국정원에서 얼마나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지 의문이다. 국방부가 파견하는 현지조사단의 단기적인 활동으로는 전체 그림을 그리기가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평소에 정보를 잘 수집하는 것이 중요하다.

파병을 해서 인명손실이 별로 없을 것이라면, 일단 파병의 최소한 근거를 확보하게 되지만 파병으로 말미암은 국내 정치적, 경제적 손익과 국제정치적 손익을 덧붙여서 계산해야만 할 것이다. 군사적 전후처리가 1년 정도의 단기간에 완료되는 것과 몇 년을 한국군을 주둔시켜야 되는 것과는 천양지차가 있다. 장기화하면 한국에서도 국정수행에 대한 지지율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이득도 마찬가지이다. 군사적 전후처리가 단기간에 완료되어야 한국이 얻어낼 수 있는 경제적 이득이 현실화되는 시점이 당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한국의 이라크파병을 반대하고 있기 때문에 파병을 하면 특히 북핵문제와 관련된 남북한 관계 혹은 국제관계에서 일정 비용을 내야 한다. 그 비용과 한국이 대미 관계에서 얻어낼 이익과의 비교도 군사적 전후처리가 언제 완료될 것인지와 직결되어 있다. 장기화하면 중동의 다른 나라들에서도 한국 외교가 어려운 지경에 처할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이라크파병을 국내정치적 힘겨루기가 아닌 손익계산에 의해서 결정하려면 이라크전쟁이 발발한 시점부터 지금까지 미국과 동참한 국가들이 이라크 내에서 어떻게 전쟁을 수행했고 현재 상황은 어떤지에 대한 매우 구체적인 정보가 있어야 되는 것이다. 실무진들이 그 정보들을 주도면밀하게 분석하여 파병과 관련된 대안들에 대한 평가를 국정 최고책임자에게 제시하여 결정하는 것이 적절하다. 어느 정당이 주장하듯이 국민투표에 의해서 파병을 결정하면 그것은 정치적 해법이 되며, 자칫 잘못되면 중우정치의 사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외교정책과 같이 고도의 정보를 요구하는 정책결정에 국민투표를 도입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왜냐하면, 일반 국민은 정책결정에 필수적인 그런 고급 정보에 잘 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보는 힘이다. 더 정확하고 광범위한 정보수집은 올바른 외교정책 수행의 밑받침이다. 이런 의미에서 국가정보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고, 바로 이 방향이 앞으로 국가정보원이 가야할 길이라고 생각한다.)

2009년 8월 4일 화요일

[자유] 이라크 전쟁과 칸트의 영구평화론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시작한 지 꽤 오래되었다. 그동안 미국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전쟁에 대한 찬반 논란이 들끓었다. 이라크 전쟁을 보면서 나는 다시 자유민주주의를 생각하게 된다. 특히, 독일의 유명한 철학자 칸트의 영구평화론을 되새기게 된다.

칸트는 국제평화에 대한 자신의 생각에서 출발하여, 영구평화를 이룰 수 있는 국제질서를 선언적으로 기술했다. 그는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을 영구적인 국제평화를 이룩하기 위한 초석으로 파악했다. 따라서, 군주국이라든지, 독재국가가 아닌,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으로 구성한 세상이 있다면 영구평화가 이룩되는 것으로 파악했다.

칸트의 영구평화론을 경험적으로 뒷받침하는 증거로서, 국제정치학에서는 지금까지 자유민주주의 국가 사이에 전쟁이 없었다는 사실을 주목한다. 이것을 "칸트적 평화(Kantian Peace)"라고 부른다. 물론 자유민주주의와 전쟁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서, 자유민주주의 국가 사이에 전쟁이 있었다는 주장도 있었으나, 보편적인 정의(예컨대, 미시간 대학교의 Correlates of War(COW) Project에서 내린 전쟁 정의)를 원용하면 자유민주주의 국가 사이에는 전쟁이 없었다. 이 현상을 "쌍방 자유 명제(Double-Freedom Proposition)"로 국제정치학에서는 규정한다. 즉, 쌍방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면 평화가 보장된다는 명제이다.

그렇다면, 지구의 모든 국가가 자유민주주의를 채택하면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작아진다고 할 수 있겠다. 이것은 귀납적 추론이므로 전쟁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지금까지는 자유민주주의 국가 사이에 전쟁이 없었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미국 대통령 부쉬의 이라크 징벌론은 대테러 전쟁, 대량살상무기 확산금지 등의 명분을 내세웠지만, 명분 자체도 애매모호하다. 이라크가 알 카에다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증거도 찾기 어려우며, 이라크가 대량살상 무기를 만들었다는 확증도 찾지 못했다. 오히려 개전을 앞둔 시점에 사담 후세인은 일부 중거리 미사일을 유엔 협조를 얻어서 파기함으로써 대량살상무기 비확산에 협조할 수도 있음을 내비쳤다. 물론 사담 후세인의 그런 움직임의 진위는 알 수 없다. 부쉬가 주장했듯이 시간벌기였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독일, 프랑스, 러시아, 중국 등 강대국이 찬성하지 않았던 이라크 전쟁은 왠지 어색하기만 했다. 따라서 많은 관측이 앵글로 아메리칸들이 중동 석유에 대한 지배권을 재확인하기 위해서 벌이는 "십자군 전쟁"이 아니냐는 의혹을 보였다.

이라크에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이 자리를 잡는다면 중동 평화는 상대적으로 더 보장될까? 칸트 영구평화론을 원용한다고 해도 그 가능성은 별로 높아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한쪽만 자유민주주의가 되는 것은 별 효과가 없다는 경험적 결과도 있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인 미국을 보자. 통계적으로 미국은 전쟁을 많이 치른 국가에 속한다. 방어적 전쟁만 치른 것이 아니고, 선제공격을 한 경우도 많다. 태평양 전쟁은 방어적 전쟁의 예이지만, 최근의 아프가니스탄과 지금의 이라크 전쟁만 보더라도 미국이 선제공격을 한 전쟁 건수도 많았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칸트의 영구평화론을 읽고, 국제평화에 있어서 자유민주주의 역할에 환상을 하고 있다면, 일찌감치 깨는 것이 좋다. "칸트적 평화"는 "쌍방 자유"라는 특수한 조건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 자체는 국제정치에서 더 평화적이라든지, 덜 평화적이라든지 등 일반화를 이끌어낼 수 없다. 어떻게 보면 자유민주주의가 국제관계에서 더 폭력성을 보일 가능성이 있는데, "칸트적 평화"로 가는 과정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국가를 폭력적으로 체제 변환하는 사례가 될 것이다.

목적도 중요하지만, 과정도 중요한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