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9일에 올렸던 "[수필] 같이 놀면서 공부했던 학생 친구들"의 주인공들을 어제 만났습니다. 이제는 모두 "훌륭한" 교수님이 되신 모습이 아주 좋았습니다. 선생 같지도 않은 선생에게서 지도 같지도 않은 지도를 받았지만, 그래도 외면하지 않고 오랜만에 반갑게 대해준 옛 학생 친구들에게 깊은 고마움을 느꼈습니다.
흥에 겨워서 쓸데없는 말을 주저리주저리 한 것 같아서 약간 걱정도 되기는 하지만, 매우 유쾌한 대접을 받았던 것은 틀림없습니다. 모두 더 "훌륭하고" 탁월한 학자가 될 것을 기원합니다.
2009년 10월 15일 목요일
2009년 8월 29일 토요일
[수필] 같이 놀면서 공부했던 학생 친구들
[작성자]
안병길晴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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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3
1990년대 말에 어느 장학재단의 대학원 장학생 전공 지도를 맡은 적이 있었습니다. 정치학과 법학 분야를 맡으라는 요청을 받고, 제 능력에 걸맞지 않은 역할이라서 고사할까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기회가 아니면 대한민국의 최우수 중 최우수 학생과 친구가 될 기회가 영영 없을 것 같아서 덜컥 맡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약간 과욕이었던 것 같습니다.
정치학 2명, 법학 2명으로 구성된 조촐한 공부 모임이었습니다. 모두 미국 유명대학 유학이 확실시되는 인재였습니다. 전공이 정치학과 법학으로 나뉘고, 어쩌면 저보다 공부를 더 잘하는 학생들이라서 처음 만날 때는 겁이 제법 났습니다. 교수가 언제 가장 겁나는지 아십니까? 교수마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우수한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하는데 뒷좌석에 앉은 학생이 뜬금없이 씨익 웃는 순간이 가장 겁날 때라는 강호의 전설이 있습니다. 강의 내용이 틀렸을까 봐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다는 것이죠. ^^
저는 그런 겁나는 순간을 피하고자 처음부터 솔직하게 인간선언을 했습니다. 더 가르칠 것이 없으니 하산해도 된다고... 이 글을 읽으면 저에게 학생들을 부탁한 그 장학재단은 매우 불쾌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ㅎㅎㅎ 공부도 했습니다. 과제도 내주고 토론도 했습니다.
학생지도비가 제법 나왔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그 돈이 부담스러웠습니다. 별로 가르쳐주는 것도 없었고, 오히려 그런 최우수 학생들을 만나는 영광을 입었는데 돈까지 받으니 황송했습니다. 그래서 그 돈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했습니다. 어떻게? 그 학생들과 제가 밥 먹고 노는 데 다 썼습니다. ㅋ
그 부작용이 최근에 드러났습니다. 세월이 흘러서 네 명 모두 유수 대학의 교수님이 되어 있습니다. 오랜만에 연락했더니 다행히 잊지 않았더군요. 사람이 잊히는 것이 가장 좋지 않은 일이라고 하는데, 기억을 해줘서 매우 고마웠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일을 회고하면서 공부한 기억은 별로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신나게 놀았던 기억만 떠오른다는 겁니다. ㅜ.ㅜ 저는 분명히 공부를 시켰습니다. 어려운 영문 논문 작성도 시켰거든요. 억울합니다. 억울해도 어떻게 하겠습니까. 모두 제가 저지른 일 때문에 생긴 업보입니다. ㅜ.ㅜ
정치학 2명, 법학 2명으로 구성된 조촐한 공부 모임이었습니다. 모두 미국 유명대학 유학이 확실시되는 인재였습니다. 전공이 정치학과 법학으로 나뉘고, 어쩌면 저보다 공부를 더 잘하는 학생들이라서 처음 만날 때는 겁이 제법 났습니다. 교수가 언제 가장 겁나는지 아십니까? 교수마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우수한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하는데 뒷좌석에 앉은 학생이 뜬금없이 씨익 웃는 순간이 가장 겁날 때라는 강호의 전설이 있습니다. 강의 내용이 틀렸을까 봐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다는 것이죠. ^^
저는 그런 겁나는 순간을 피하고자 처음부터 솔직하게 인간선언을 했습니다. 더 가르칠 것이 없으니 하산해도 된다고... 이 글을 읽으면 저에게 학생들을 부탁한 그 장학재단은 매우 불쾌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ㅎㅎㅎ 공부도 했습니다. 과제도 내주고 토론도 했습니다.
학생지도비가 제법 나왔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그 돈이 부담스러웠습니다. 별로 가르쳐주는 것도 없었고, 오히려 그런 최우수 학생들을 만나는 영광을 입었는데 돈까지 받으니 황송했습니다. 그래서 그 돈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했습니다. 어떻게? 그 학생들과 제가 밥 먹고 노는 데 다 썼습니다. ㅋ
그 부작용이 최근에 드러났습니다. 세월이 흘러서 네 명 모두 유수 대학의 교수님이 되어 있습니다. 오랜만에 연락했더니 다행히 잊지 않았더군요. 사람이 잊히는 것이 가장 좋지 않은 일이라고 하는데, 기억을 해줘서 매우 고마웠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일을 회고하면서 공부한 기억은 별로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신나게 놀았던 기억만 떠오른다는 겁니다. ㅜ.ㅜ 저는 분명히 공부를 시켰습니다. 어려운 영문 논문 작성도 시켰거든요. 억울합니다. 억울해도 어떻게 하겠습니까. 모두 제가 저지른 일 때문에 생긴 업보입니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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