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8/05/25)며칠 전에 대통령 담화가 있었습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라는 우리 옛말도 있습니다만, 말은 인간사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특히 국정의 최고책임자가 국민에게 사과를 하기 위해서 내놓는 담화의 중요성은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100분 토론 시청자 여론조사를 보면 의견을 개진한 참여자의 99%가 대통령의 담화를 시원찮게 여기고 있습니다. 정부를 비판하는 시청자가 더 많이 참여한 조사였음을 참작해도, 취임 3개월밖에 되지 않은 대통령의 담화에 대한 평가는 매우 심각한 수준입니다.
담화 내용 중 국민을 "뿔 나게" 할 개연성이 있는 부분을 일부 발췌해보겠습니다.
>쇠고기 수입으로 어려움을 겪을 축산 농가 지원 대책 마련에 열중하던
>정부로서는 소위 ‘광우병 괴담’이 확산되는 데 대해 솔직히
>당혹스러웠습니다.
미국 쇠고기 수입에 관한 100분 토론의 다른 시청자 투표결과를 보면, 96%의 참여자가 미국 쇠고기에 대해서 부정적입니다. 이것도 또한 여론조사의 바이어스를 고려해도, 정부의 쇠고기 수입정책에 대해서 국민이 얼마나 부정적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 여론을 "괴담"으로 표현한 것과 마찬가지인데, 이렇게 되면 마음이 상할 국민들이 상당수 생기기 마련입니다.
>무엇보다도 제가 심혈을 기울여 복원한 바로 그 청계광장에
>어린 학생들까지 나와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것을 보고는
>참으로 가슴이 아팠습니다.
>부모님들께서도 걱정이 많으셨을 것입니다.
이 부분도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제가 심혈을 기울여 복원한" 이 표현은 불필요한 부분입니다. 치적을 홍보하는 담화가 아니었으니까요. 읽기에 따라서 청계천이 대통령의 홈그라운드인데, 불청객들이 들어왔다는 식으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또한, 부모님 얘기를 하면서 청소년들이 "철없는" 행동을 한 것으로 느낀 것은 아닌지 의혹을 느끼게 합니다. 이것도 사과문에서는 필요 없는 부분입니다.
>정부가 국민들께 충분한 이해를 구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노력이
>부족했습니다.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데 소홀했다는 지적도 겸허히
>받아들입니다.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이 사과가 앞의 불필요한 언어들에 의하여 그 빛이 바래졌습니다. 담화 내용에 잘못된 정책추진에 대한 자초지종이나, 앞으로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지가 빠졌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아도, 담화문의 부실한 말들은 한눈에 들어옵니다.
먼 이국 땅에서 고국을 쳐다보면 당연히 우리나라가 잘 되기를 바라게 됩니다. 특히 대통령이 잘 해주기를 진정으로 학수고대하게 되죠. 그런데 인수위원회부터 지금까지 대통령과 그 근처에서 흘러나온 말들을 곱씹어 보면 걱정이 많이 됩니다. 요즘 제가 특히 걱정하는 것은 혹시 대통령 보좌진에게 문제가 있지는 않을까라는 것입니다. 이번 담화문을 읽으면서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제대로 된 보좌진이라면 "괴담"이나 "제가 심혈을" 등의 표현은 미리 빼지 않았을까 싶네요.
우리나라가 잘 되어야 할 텐데요...
(사진 출처: http://img.hani.co.kr/imgdb/resize/2008/0523/121143487207_20080523.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