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유민주주의를 가르치는 로체스터 대학교 정치학과
때는 바야흐로 1987년 여름, 저는 흔히 자유의 땅이라고 불리는 미국 하고도 시카고에 도착하여, 비행기를 갈아타고, 뉴욕주 로체스터라는 곳에 청운의 꿈을 펼치기 위해서 도착합니다. 정치학 박사과정 유학이었죠. 그곳에서 학생으로 보낸 4년 동안 저에게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전에는 범생이었습니다. 게다가 어릴 때부터 저를 착한 박사로 부르신 부모님들이 계셨으니... 저는 학위를 받은 지 40년이 넘었습니다. 이 교수님보다 먼저 받았습니다. (죄송!) 부모님께 감사드립니다. ㅋㅋㅋ
그냥 착하고 순한 그런 범생이였죠. 우리나라의 유교문화와 권위주의적 사회 분위기에 맹종까지는 안 되더라도 순종한 그런 스타일이었습니다. 성공 사례였죠. 그래서 다른 열성 친구들이 민주화 운동으로 이리 뛰고 저리 뛸 때, 양심에 찔려서 데모에는 동참했습니다만 민주열사가 될 수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로체스터 정치학과가 전형적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제대로 가르치는 학교입니다. 자유민주주의를 이해함에 경제학의 도움이 크게 필요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정치학에도 maximization, saddle point, monopoly, topology, game strategy, 기타 등등의 개념이 적용될 여지가 없겠는지요. 자유주의가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기업 정신과 관련이 없겠는지요. 어떤 저명한 정치학자는 정치를 “권위적 공적 자원 분배(authoritative allocation of public resources)”라고 정의했는데, 이런 모양새가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것과 비슷하지는 않은지요. 또한, 자유민주주의라고 하면 금방 무엇이 떠오릅니까? 자본주의가 떠오르죠.
(2) 자유주의/민주주의/자본주의 삼각편대
자유주의, 민주주의, 그리고 자본주의의 삼각편대(혹은 삼위일체, Trinity)는 환상의 조합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습니다. 서구의 사례를 보시죠. 중세를 거치고 근세로 넘어오면서 봉건 영주들이 갖고 있었던 권력을 부르죠아가 차지합니다. 부르죠아가 누구죠? 자본주의 첨병들 아닙니까. 어떻게 차지했나요? 권력 투쟁을 해서 아예 빼앗았습니다. 어떤 정치이념을 동원했나요? (자유민주주의)입니다. 제가 괄호를 친 것은 그 당시 자유민주주의가 원초적인 형태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태생적으로 궁합이 맞아떨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 뒤에 마르크스가 자본주의를 대체하는 훌륭(?)한 경제이념을 도서관에 파묻혀서 개발해냈지만, 현실에서는 실패했습니다. 왜 실패했을까요? 공산주의 자체도 문제가 있었지만, 공산주의와 궁합이 맞는 정치이념을 고안해내지 못했거나, 고안된 특정 정치이념을 갖다 붙여도 구색이 맞지 않았던 때문으로 저는 추정합니다. 예컨대, 북한은 공산주의, 민주주의, 주체사상의 삼각편대라고 주장하는데 많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세상에 민주주의가 그런 민주주의가 어디 있습니까. 북한에는 김정일 혼자만 선거할 때 약 1,500만 표를 가진다는 이야기인데,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또한, 주체사상 이것은 뭐라 말입니까. 그것을 주도적으로 만든 사람이 자본주의 세상에 살고 있다니, 그럼 자본주의와 주체사상이 궁합이 맞는 것으로 봐야 합니까?
지금까지 살펴봤듯이 역사를 슬쩍 훑어보기만 해도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힌트는 금방 나옵니다. 그 세 이념은 서로 도와주기도 하고 견제하기도 합니다. 자유주의가 자본주의를 도와주는 것은 뻔하죠, 자본가들이 자유가 있어야 자본을 끌어모을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마구 끌어모을 수는 없게 되어 있습니다. 민주주의라는 친구가 옆에 떡 버티고 서 있지 않습니까. 민주주의에서는 빌 게이츠도, 타이거 우즈도, 오나시스도, 스탈린도, 모택동도, 김일성도, 박정희도, 부쉬도, 오바마도, 노무현도, 이명박도, 저도 모두 1인 1표입니다. 따라서 자본가들이 너무 한다 싶으면 표로 응징해버리면 됩니다. 그것을 또 자유주의가 도와줍니다. 그렇게 할 자유를 주거든요. 이런 환상의 조합이 어디 또 있겠습니까. (헌법 119조 2항이 매우 중요합니다. 자본주의를 견제하는 민주주의 조항이거든요. 그것을 없애면 안됩니다. 개헌 논의가 시작되면 없애자는 이야기가 어느 쪽에서 나올 겁니다.)
강호에 떠도는 이야기가 우리나라에도 조선 말기에 자본주의 맹아가 있었다, 없었다, 갑론을박한다는데, 설사 있었다고 칩시다. 그러면 덜렁 자본주의만 싹트면 구렁이가 담 넘어오듯이 근대로 넘어오는 것입니까.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도 동반되어야 될 것 아닙니까. 이 문제에 있어서는 통섭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경제만 분석하지 말고 정치, 사회, 문화, 기타 등등도 함께 바라봐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생각이 번개같이 스쳐 지나갑니다.
(3) 정치학의 합리적 선택이론
저는 자유민주주의+자본주의 팬입니다. 제대로 운영만 된다면 자유와 견제가 적절히 공존할 수 있는 정치경제 질서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다, 이렇게 되었나요? 아, 로체스터 정치학과...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로체스터 정치학과가 정치학계에서 조금 특이한 성격입니다. 경제학의 게임이론과 공공선택이론을 정치학에 접합시키거든요. 그래서 처음에 수학적 모형화라는 과목에서 인수분해, 미적분 등을 가르친다고 전에 말씀드린 적이 있죠. 교재는 치앙(Chiang)을 썼습니다. 그리고 주요 분석 대상은 자유민주주의라고 과도하게 확 줄여서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역사/기술적 공부만 했던 제가 갑자기 그런 커리큘럼에 부닥치니, 요즘 말로 이건 뭥미? 식으로 처음에는 적응이 어려웠던 것입니다. 4 년을 공부하고 나니, 어느 정도 감이 잡히면서 세뇌과정이 끝났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배웠던 역사/기술적 방법론은 희미한 아! 옛날이여~가 되었고, 무시무시한 자유민주주의 이론이 경제학적 방법론과 결합하여 제 머리에 떡 자리 잡게 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박사논문은 국제정치학 분야였습니다. 주제는 전쟁이론이었죠. (고정논객님들 모두 다 합쳐서 저에게 붙어도 제가 이깁니다! 저는 전쟁을 전공했습니다! 쿠데타는 꿈도 꾸지 마세요. ㅋ)
보통 시그널링 게임에서 한쪽의 타입만 모르는 것으로 가정하는데, 저는 멋을 좀! 부려보려고 양쪽이 서로 모르는 것으로 가정하고 풀어봤는데... 나중에 후회했습니다. 머리가 빠개지는 줄 알았습니다. ㅜ.ㅜ 따라서 제가 정치학자 시절에 사용했던 방법론은 이곳 시니어 논객이신 한 교수님이 전공하신 것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같은 부류라는 이야기죠.
(4) 건설적인 비판은 필요함: 경험담
범생이었던 시절에는 이래도 흥, 저래도 흥 스타일이었는데, 합리적 선택이론을 배우면서 논리로 무장된 다음에는 사람 성격이 바뀌더군요.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서 논리적으로 모순이 생기면 기분이 슬쩍 나빠지는 것입니다. 게다가 자유주의자가 된 것 아닙니까. 대의명분을 찾죠. 비판을 해야 지식 축적에 발전이 있다! 그래서 비판합니다. 아주 조심스럽게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어릴 때부터 갖고 있었던 여린(?) 성격이 완전히 바뀐 것은 아닙니다. 자유민주주의가 남을 배려하는 측면도 강하므로 여린 성격과 그런 점이 섞이고, 앞의 논리적 사고가 섞여서 이상야릇한 행태가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제가 미시간 주립대 정치학과에 있을 때 한국국제정치학회에서 초청하여 논문을 한 편 발표했습니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고, 경비 일체를 부담하면서 특정 주제를 주더군요. 헉! 비판하라는 것입니다. 남북한 관계를 게임이론으로 분석한 기존 연구들을 평가하라는 것입니다. 평가를 하다 보면 비판을 할 수밖에 없죠. 처음에는 거절했습니다. 비판 한번 잘못했다 누구 패가망신할 일이 있습니까. 그냥 조용히 미시간 촌구석에서 몸조심하다 우리나라 대학교에 자리가 나면 날름 자리를 옮기는 것이 좋죠. (농담)^^ 우리나라에서 비판 잘못하면 불구대천의 원수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문화와 사회분위기에 그런 요소가 있죠.
그런데 제가 맡지 않으면 어느 다른 학자에게 그 프로젝트가 넘어가는데 전공이 조화되지 않더군요.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시간도 촉박한데 맡았습니다. 뚜껑을 열고 보니, 제가 비판해야 할 연구가 제 친한 친구가 주로 했더군요. 이런 딜레마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 친구가 제 연구를 먼저 대충(제가 보기에는 별로 신빙성 없이) 비판한 것을 어느 방법론 교과서에서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한 페이지였지만 저는 논문의 반 정도는 되겠더군요. 그때부터 고민이 시작되었고, 중간에 동료학자들에게 초안을 보여줬습니다. 한 분만 빼고 모두 발표하지 말라고 말리더군요. 싸움 난다고요. 그런데 비판하라는 그 한 분이 전에 말씀드렸던 제 지도교수였습니다. 학문의 발전을 위해서 필요한 작업이니 사적 감정을 빼고 비판하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저도 하고 싶었습니다. 건설적인 비판이었으니까요. 서울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이상하게 눈물이 그렇게 많이 나더군요. 이놈의 합리적 선택이론이 뭔지, 자유민주주의가 뭔지, 그 친한 친구를 그렇게 자세하게 비판해야 하는지, 제 신세가 처량해지면서 저절로 눈물이 흐르더군요. 스튜어디스가 지나가면서 웬 이상한 사람이라고 쳐다보기도 했습니다. 그 친구와 저는 아주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때는 감정이 상했겠지만, 그 이후로 만나서 잘 풀고 절친으로 돌아갔습니다. 지난주에도 이곳에서 같이 식사를 했죠. 해피 엔딩... (Happy ending...) 남을 비판할 때는 아주 조심해야 합니다. 철두철미하게 검토해야 합니다.
학자였을 때 저는 정치학과 경제학이 반반 정도 섞여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이곳이 저에게는 로체스터 고향 같습니다. 이 교수님, 고맙습니다. 저에게 또 다른 고향을 만들어 주셔서 매우 고맙습니다. 여행 떠나신지 이틀밖에 안 되었는데 벌써 보고 싶습니다... (고정논객님들 보셨죠, 로열티loyalty는 이렇게 자연~스럽게 보여 드리는 것입니다.)
휴~ 끝났습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