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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 30일 수요일

[자유] 정치학과 경제학의 만남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9/07/02)

(1) 자유민주주의를 가르치는 로체스터 대학교 정치학과

때는 바야흐로 1987년 여름, 저는 흔히 자유의 땅이라고 불리는 미국 하고도 시카고에 도착하여, 비행기를 갈아타고, 뉴욕주 로체스터라는 곳에 청운의 꿈을 펼치기 위해서 도착합니다. 정치학 박사과정 유학이었죠. 그곳에서 학생으로 보낸 4년 동안 저에게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전에는 범생이었습니다. 게다가 어릴 때부터 저를 착한 박사로 부르신 부모님들이 계셨으니... 저는 학위를 받은 지 40년이 넘었습니다. 이 교수님보다 먼저 받았습니다. (죄송!) 부모님께 감사드립니다. ㅋㅋㅋ

그냥 착하고 순한 그런 범생이였죠. 우리나라의 유교문화와 권위주의적 사회 분위기에 맹종까지는 안 되더라도 순종한 그런 스타일이었습니다. 성공 사례였죠. 그래서 다른 열성 친구들이 민주화 운동으로 이리 뛰고 저리 뛸 때, 양심에 찔려서 데모에는 동참했습니다만 민주열사가 될 수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로체스터 정치학과가 전형적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제대로 가르치는 학교입니다. 자유민주주의를 이해함에 경제학의 도움이 크게 필요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정치학에도 maximization, saddle point, monopoly, topology, game strategy, 기타 등등의 개념이 적용될 여지가 없겠는지요. 자유주의가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기업 정신과 관련이 없겠는지요. 어떤 저명한 정치학자는 정치를 “권위적 공적 자원 분배(authoritative allocation of public resources)”라고 정의했는데, 이런 모양새가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것과 비슷하지는 않은지요. 또한, 자유민주주의라고 하면 금방 무엇이 떠오릅니까? 자본주의가 떠오르죠.

(2) 자유주의/민주주의/자본주의 삼각편대

자유주의, 민주주의, 그리고 자본주의의 삼각편대(혹은 삼위일체, Trinity)는 환상의 조합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습니다. 서구의 사례를 보시죠. 중세를 거치고 근세로 넘어오면서 봉건 영주들이 갖고 있었던 권력을 부르죠아가 차지합니다. 부르죠아가 누구죠? 자본주의 첨병들 아닙니까. 어떻게 차지했나요? 권력 투쟁을 해서 아예 빼앗았습니다. 어떤 정치이념을 동원했나요? (자유민주주의)입니다. 제가 괄호를 친 것은 그 당시 자유민주주의가 원초적인 형태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태생적으로 궁합이 맞아떨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 뒤에 마르크스가 자본주의를 대체하는 훌륭(?)한 경제이념을 도서관에 파묻혀서 개발해냈지만, 현실에서는 실패했습니다. 왜 실패했을까요? 공산주의 자체도 문제가 있었지만, 공산주의와 궁합이 맞는 정치이념을 고안해내지 못했거나, 고안된 특정 정치이념을 갖다 붙여도 구색이 맞지 않았던 때문으로 저는 추정합니다. 예컨대, 북한은 공산주의, 민주주의, 주체사상의 삼각편대라고 주장하는데 많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세상에 민주주의가 그런 민주주의가 어디 있습니까. 북한에는 김정일 혼자만 선거할 때 약 1,500만 표를 가진다는 이야기인데,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또한, 주체사상 이것은 뭐라 말입니까. 그것을 주도적으로 만든 사람이 자본주의 세상에 살고 있다니, 그럼 자본주의와 주체사상이 궁합이 맞는 것으로 봐야 합니까?

지금까지 살펴봤듯이 역사를 슬쩍 훑어보기만 해도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힌트는 금방 나옵니다. 그 세 이념은 서로 도와주기도 하고 견제하기도 합니다. 자유주의가 자본주의를 도와주는 것은 뻔하죠, 자본가들이 자유가 있어야 자본을 끌어모을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마구 끌어모을 수는 없게 되어 있습니다. 민주주의라는 친구가 옆에 떡 버티고 서 있지 않습니까. 민주주의에서는 빌 게이츠도, 타이거 우즈도, 오나시스도, 스탈린도, 모택동도, 김일성도, 박정희도, 부쉬도, 오바마도, 노무현도, 이명박도, 저도 모두 1인 1표입니다. 따라서 자본가들이 너무 한다 싶으면 표로 응징해버리면 됩니다. 그것을 또 자유주의가 도와줍니다. 그렇게 할 자유를 주거든요. 이런 환상의 조합이 어디 또 있겠습니까. (헌법 119조 2항이 매우 중요합니다. 자본주의를 견제하는 민주주의 조항이거든요. 그것을 없애면 안됩니다. 개헌 논의가 시작되면 없애자는 이야기가 어느 쪽에서 나올 겁니다.)

강호에 떠도는 이야기가 우리나라에도 조선 말기에 자본주의 맹아가 있었다, 없었다, 갑론을박한다는데, 설사 있었다고 칩시다. 그러면 덜렁 자본주의만 싹트면 구렁이가 담 넘어오듯이 근대로 넘어오는 것입니까.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도 동반되어야 될 것 아닙니까. 이 문제에 있어서는 통섭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경제만 분석하지 말고 정치, 사회, 문화, 기타 등등도 함께 바라봐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생각이 번개같이 스쳐 지나갑니다.

(3) 정치학의 합리적 선택이론

저는 자유민주주의+자본주의 팬입니다. 제대로 운영만 된다면 자유와 견제가 적절히 공존할 수 있는 정치경제 질서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다, 이렇게 되었나요? 아, 로체스터 정치학과...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로체스터 정치학과가 정치학계에서 조금 특이한 성격입니다. 경제학의 게임이론과 공공선택이론을 정치학에 접합시키거든요. 그래서 처음에 수학적 모형화라는 과목에서 인수분해, 미적분 등을 가르친다고 전에 말씀드린 적이 있죠. 교재는 치앙(Chiang)을 썼습니다. 그리고 주요 분석 대상은 자유민주주의라고 과도하게 확 줄여서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역사/기술적 공부만 했던 제가 갑자기 그런 커리큘럼에 부닥치니, 요즘 말로 이건 뭥미? 식으로 처음에는 적응이 어려웠던 것입니다. 4 년을 공부하고 나니, 어느 정도 감이 잡히면서 세뇌과정이 끝났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배웠던 역사/기술적 방법론은 희미한 아! 옛날이여~가 되었고, 무시무시한 자유민주주의 이론이 경제학적 방법론과 결합하여 제 머리에 떡 자리 잡게 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박사논문은 국제정치학 분야였습니다. 주제는 전쟁이론이었죠. (고정논객님들 모두 다 합쳐서 저에게 붙어도 제가 이깁니다! 저는 전쟁을 전공했습니다! 쿠데타는 꿈도 꾸지 마세요. ㅋ)

보통 시그널링 게임에서 한쪽의 타입만 모르는 것으로 가정하는데, 저는 멋을 좀! 부려보려고 양쪽이 서로 모르는 것으로 가정하고 풀어봤는데... 나중에 후회했습니다. 머리가 빠개지는 줄 알았습니다. ㅜ.ㅜ 따라서 제가 정치학자 시절에 사용했던 방법론은 이곳 시니어 논객이신 한 교수님이 전공하신 것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같은 부류라는 이야기죠.

(4) 건설적인 비판은 필요함: 경험담

범생이었던 시절에는 이래도 흥, 저래도 흥 스타일이었는데, 합리적 선택이론을 배우면서 논리로 무장된 다음에는 사람 성격이 바뀌더군요.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서 논리적으로 모순이 생기면 기분이 슬쩍 나빠지는 것입니다. 게다가 자유주의자가 된 것 아닙니까. 대의명분을 찾죠. 비판을 해야 지식 축적에 발전이 있다! 그래서 비판합니다. 아주 조심스럽게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어릴 때부터 갖고 있었던 여린(?) 성격이 완전히 바뀐 것은 아닙니다. 자유민주주의가 남을 배려하는 측면도 강하므로 여린 성격과 그런 점이 섞이고, 앞의 논리적 사고가 섞여서 이상야릇한 행태가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제가 미시간 주립대 정치학과에 있을 때 한국국제정치학회에서 초청하여 논문을 한 편 발표했습니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고, 경비 일체를 부담하면서 특정 주제를 주더군요. 헉! 비판하라는 것입니다. 남북한 관계를 게임이론으로 분석한 기존 연구들을 평가하라는 것입니다. 평가를 하다 보면 비판을 할 수밖에 없죠. 처음에는 거절했습니다. 비판 한번 잘못했다 누구 패가망신할 일이 있습니까. 그냥 조용히 미시간 촌구석에서 몸조심하다 우리나라 대학교에 자리가 나면 날름 자리를 옮기는 것이 좋죠. (농담)^^ 우리나라에서 비판 잘못하면 불구대천의 원수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문화와 사회분위기에 그런 요소가 있죠.

그런데 제가 맡지 않으면 어느 다른 학자에게 그 프로젝트가 넘어가는데 전공이 조화되지 않더군요.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시간도 촉박한데 맡았습니다. 뚜껑을 열고 보니, 제가 비판해야 할 연구가 제 친한 친구가 주로 했더군요. 이런 딜레마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 친구가 제 연구를 먼저 대충(제가 보기에는 별로 신빙성 없이) 비판한 것을 어느 방법론 교과서에서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한 페이지였지만 저는 논문의 반 정도는 되겠더군요. 그때부터 고민이 시작되었고, 중간에 동료학자들에게 초안을 보여줬습니다. 한 분만 빼고 모두 발표하지 말라고 말리더군요. 싸움 난다고요. 그런데 비판하라는 그 한 분이 전에 말씀드렸던 제 지도교수였습니다. 학문의 발전을 위해서 필요한 작업이니 사적 감정을 빼고 비판하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저도 하고 싶었습니다. 건설적인 비판이었으니까요. 서울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이상하게 눈물이 그렇게 많이 나더군요. 이놈의 합리적 선택이론이 뭔지, 자유민주주의가 뭔지, 그 친한 친구를 그렇게 자세하게 비판해야 하는지, 제 신세가 처량해지면서 저절로 눈물이 흐르더군요. 스튜어디스가 지나가면서 웬 이상한 사람이라고 쳐다보기도 했습니다. 그 친구와 저는 아주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때는 감정이 상했겠지만, 그 이후로 만나서 잘 풀고 절친으로 돌아갔습니다. 지난주에도 이곳에서 같이 식사를 했죠. 해피 엔딩... (Happy ending...) 남을 비판할 때는 아주 조심해야 합니다. 철두철미하게 검토해야 합니다.

학자였을 때 저는 정치학과 경제학이 반반 정도 섞여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이곳이 저에게는 로체스터 고향 같습니다. 이 교수님, 고맙습니다. 저에게 또 다른 고향을 만들어 주셔서 매우 고맙습니다. 여행 떠나신지 이틀밖에 안 되었는데 벌써 보고 싶습니다... (고정논객님들 보셨죠, 로열티loyalty는 이렇게 자연~스럽게 보여 드리는 것입니다.)

휴~ 끝났습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잡담] 부산 야구의 추억

롯데가 가을 야구 첫 판에서 이겼군요. 저도 고향이 부산이라서 기분이 나쁘지는 않습니다. ^^ 부산 갈매기들에게 축하 말씀을 드립니다.

어린 시절부터 야구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였습니다.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서 야구 경기도 많이 했죠. 바닷가에 나가면 푹신푹신한 모래가 지천으로 널려 있어서 야구를 할 수 있는 천혜의 환경이었습니다. 문제는 야구 글러브였죠. 제가 동네 친구들과 야구를 했을 때가 1970년대 초반이었으니 당시 경제를 참작하면 야구 글러브가 귀했을 것은 쉽게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형들을 많이 둔 저는 다행히 집에 글러브가 몇 개 있었습니다. 야구를 할 때 동네의 모든 글러브를 모아도 모자라서 신문지로 글러브를 만들어 사용했던 기억이 납니다.

프로가 출범하기 전 부산은 고등학교 야구에 열광하는 도시였습니다. 부산을 球都(구도)라고 하는데, 그것은 아마도 부산이 일본과 가까워서 상대적으로 야구를 일찍 받아들인 영향이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은 일반고로 바뀐 부산상고를 포함하여 경남상고, 경남고, 부산고가 각축을 벌이면서 전국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낼 때가 잦았습니다. 부산공고도 한때 야구팀이 있었지만 오래 유지하지는 못했던 것으로 압니다.

최동원이 고등학생일 때 경남고 투수로 큰 활약을 보였죠. 연세대로 진학했고, 나중에 롯데에 입단하여 1984년 코리언 시리즈에서 엄청난 일을 벌였습니다. 롯데가 거둔 4승이 모두 최동원이 던진 것이었죠. 다섯 번 등판하여 4승, 그리고 마지막 7차전은 완봉승이었습니다. 단기 7차전에서 이런 기록이 나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봅니다. 더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웠습니다. 아래 관련 동영상을 올립니다.



1999년 플레이오프 7차전이 명승부였네요. 홈런을 친 호세에게 오물이 날아들어서 격분한 호세가 방망이를 관중석으로 던졌고, 퇴장당했습니다. 9회 삼성이 5-3으로 이기고 있었는데, 창용 불패 임창용이 던진 공을 밀어쳐서 임수혁이 동점 홈런을 쏘아 올렸습니다. 그리고...

[정치] 참여정부: 정치개혁, 어떻게 해야 하나?

(2003년 4월 9일, 서울대 국제대학원에서 정치개혁을 주제로 특강을 했습니다. 며칠 뒤 4월 14일에 적은 관련 글과 특강 내용 요약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회 국정연설에서 정치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다시 한번 피력했다. 취임사에서 정치개혁의 필요성을 표명했던 대통령은 국정연설에서는 다음과 같이 구체적인 정치개혁 방향을 제기하였다.

"정당을 당원들에게 돌려줘야 합니다. ...그러나 지구당 위원장 스스로가 임명한 대의원들이 다시 자신을 선출하는 시스템으로는 진정한 의미의 상향식 공천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 국민들이 참여하는 '국민공천제도'의 도입을 제안 드립니다. 의원 여러분들께서 결심하시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 현행 정치자금 제도로는 누구도 합법적으로 정치를 하기 어렵게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당대표나 후보 경선을 위한 선거자금 제도, 그리고 지방자치선거에 나서는 후보자를 위한 정치자금 제도는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 아울러 뜻있는 젊은이들이 친구나 친지들로부터 도움을 받아 떳떳하게 정치에 입문하고 출발할 수 있는 길도 열어줘야 합니다. ...
... 내년 총선부터는 특정 정당이 특정 지역에서 2/3 이상의 의석을 독차지할 수 없도록 여야가 합의하셔서 선거법을 개정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저의 제안이 내년 17대 총선에서 현실화되면, 저는 과반수 의석을 차지한 정당 또는 정치연합에게 내각의 구성권한을 이양하겠습니다. ..."
요약하자면, 당비를 내는 진성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개혁, 개방형 국민공천제의 도입, 신진 정치인의 진입 장벽 해소, 투명한 정치자금 운용, 정치적 지역주의 구도를 타파하는 선거제도 개선 등이다. 대통령으로서는 더 구체적인 정치개혁 대안을 제시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대통령 자신이 정치인이므로 자칫 잘못하면 개인의 정치적인 이해득실에 따라서 특정 제도를 "강요"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학계, 시민단체, 언론에서 정치개혁의 구체적 방안에 대한 논의를 펼칠 때가 되었다. 국회에 정치개혁특위가 구성되어 있지만, 정치개혁의 주체이자 대상인 국회의원들의 손에만 정치개혁이란 대업을 맡겨 놓을 수는 없다. 학자들은 지금까지 연구한 결과들을 공론화시킴으로써 국회에 정보를 제공해야 하고, 시민단체는 정치개혁에 대한 국민의 중지를 모아야 하고, 언론은 정치개혁에 대한 커뮤니케이션 경로를 활성화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정치개혁의 과정이 투명화되고, 국회의원들이 민의를 정확하게 반영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시절 몇 번의 정치개혁 시도가 별 성과 없이 흐지부지되었던 어두운 기억을 우리는 갖고 있다. 정치적 빚이 별로 없는 노무현 정권 초기는 국민의 뜻에 의한 국민참여형 정치 개혁을 이룰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할 수 있다. 학계, 시민단체, 언론은 시대적 소명 의식을 갖고 정치개혁 공론화에 임하기를 기대한다.

나는 지난 4월 9일 서울대 국제대학원 한국학 특강에서 "한국 정치의 현안과 방향"이라는 주제로 정치개혁의 구체적 방안에 대한 기존 연구결과를 설명한 바 있다. 정치개혁 공론화에 조금만이라도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

서울대 국제대학원 정치개혁 특강 내용

4월 9일 서울대 국제대학원 한국학 특강 "한국 정치의 현안과 방향"에서 정치개혁의 구체적 논의에 대한 활발한 공개 토론의 필요성을 지적하였다. 지금까지 축적된 정치개혁에 대한 많은 연구 결과가 있음에도 구체적인 대안들에 대한 충분한 공개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학계, 시민단체, 언론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정치개혁을 논의하여 정치개혁과정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현재까지 논의된 연구결과를 참조하여 정치적 지역주의 타파가 가능한 선거구제도로서 소선거구제와 권역별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의 혼합형을 제시할 수 있다. 권역별 비례대표 의원수를 100명 정도로 확충하고 권역별 비례대표의원의 배분은 전국정당득표율을 적용함으로써 인위적인 상한선을 두지 않더라도 특정 정당이 특정 지역을 독식하지 못하는 효과를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다.

신진정치인 진입 장벽을 낮추기 위해서 현행 사전선거운동 제한 규정을 대폭 완화하여 선거 1년 전부터 허위사실유포, 비방, 흑색선전 이외의 선거운동을 전면 허용할 필요가 있다. 신진정치인과 무소속 후보자 그리고 지방정치인은 사전선거운동 규정에 묶여 실질적으로 선거운동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후원회를 둘 수 없어서 정치자금모금에서도 차별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신진정치인을 포함한 공직 후보 희망자가 선관위에 정치자금관리인을 지정하고, 그 신고 시점부터 후원회를 결성하여 정치자금을 모금할 수 있는 제도를 검토함으로써 정치적 기회균등을 진작시킬 수 있다. 정치자금관리인을 통해 정치자금의 수입·지출의 관리 및 통제를 일원화하는 방안이 가능하다.

정당 개혁은 참여당원 및 지지자중심의 기반조직 모델을 확립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하여 당비를 내는 참여당원이 중심이 되고 후원자와 자원봉사자를 포함한 지지자가 결합하는 개방형 정당모델의 검토가 가능하다. 참여당원은 모든 공직 후보자와 당 지도부 선출 및 주요 정책결정 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도록 하고 지지자는 공직 후보자 선출에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당 지도부 선출은 직선제로 하며 전 당원 직선제로 당 대표를 선출하는 제도가 적절하다. 일반 국민은 당원 혹은 지지자 자격으로 모든 대표 선출에 참여할 수 있도록 모든 공직후보자의 국민참여 경선방식에 의한 상향식 공천제를 채택할 필요성이 있고, 대통령 및 국회의원 후보와 광역자치단체장 후보 공천은 완전개방형 국민경선을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민과 당원의 추천과 운영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선발된 복수 후보에 대한 전 당원과 지지자의 투표로 확정하는 방안이 가능하며 명부 작성 시 2인마다 여성 1인의 등재를 의무화할 수도 있다.

국민참여형 공천을 현실화시키기 위해서 국민개방형 공천제를 채택하는 정당이 원한다면 정부가 그 선거 비용과 관리를 부담하는 공영제를 도입할 수 있다. 국민경선일을 지정하여 공휴일로 하고 공영제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정당의 후보들을 동시에 선정하는 예비선거제의 검토가 필요하다.

2009년 9월 29일 화요일

[단상] H2O를 공부한 친구의 말

(국회에 새해 예산안이 제출되었다고 합니다. 4대 강 사업에 몇 조의 예산을 배정했다고 하는군요. 많은 전문가가 문제 있는 사업이라고 계속 지적하고 있는데도 밀어붙이기를 할 모양입니다. 걱정입니다. 아래 글은 그 사업과 관련하여 우연히 전문가 의견을 들은 것을 간단하게 옮긴 것입니다.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9/07/28)

제 친지 중에 H2O, 즉 물을 제대로 공부한 친구가 있습니다. 4대 강 사업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합니다. 그것은 상식적으로도 뻔하답니다. 그런데 왜 일부 전공자들은 찬성하는지 물어봤습니다. 집단 이익이 걸려 있어서 그렇다는군요. 예컨대, 어느 세부 전공 집단에서 관련 연구를 맡으면, 개인적으로는 4대 강 사업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하더라도, 집단 이익 때문에 그냥 묻혀 간다는 것입니다. 음... 자유주의가 아니군요.

Groupthinking이 여기서도 작동하는 것 같습니다.
참조: http://en.wikipedia.org/wiki/Groupthink

[단상] 국민협력을 향하여

(2003년 4월 11일에 작성한 메모입니다.)

미국에서 귀국한 지 열흘이 넘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많은 분을 만나면서 우리의 현재에 대한 의견을 들었습니다. 제 나름대로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택시 운전기사: "손님이 없습니다."
음식점 주인: "수입이 현저하게 줄었습니다."
이공계 교수: "과학발전을 이룰 투자가 모자랍니다."
사회과학계 교수: "아주 구체적인, 북한과 미국을 동시에 설득할 수 있는 북핵 해법 제시가 필요합니다."
기업체 사장: "이공계 인력이 부족합니다. 국내 인력보다 오히려 외국인 근로자가 더 성실합니다."
건축업체 간부: "내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고 그에 상응하는 대접을 받는 사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IT관련 고급인력: "나는 착취당하기 싫습니다."
변호사: "내가 고용하는 변호사보다 오히려 수입이 적을 때도 있습니다. 문을 닫는 변호사 사무실이 늘고 있습니다."
판사: "윗물이 맑아야 합니다."
의사: "우리나라 의약분업은 합리적인 방안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폐업하는 개인병원이 늘고 있습니다. 의료수가 책정에 문제가 많습니다."
60대 사장: "연로하신 분이 소외당한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연륜이 높은 분의 의견도 소중한 것입니다."
장애인: "장애인은 약자입니다. 약자가 제대로 보호받는 사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카페 종업원: "내 꿈은 semi-pro 골프선수가 되는 것입니다."
제가 느낀 것은 전반적으로 우리 현재에 대한 불만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쩌면 현재 상황이 파레토 열등(Pareto-inferior)의 상황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파레토 열등이란 더 좋은 사회적 대안이 있음에도 모두가 좋아하지 않는 상황에 부닥쳐 있는 경우를 말합니다. 이때에는 사회 구성원들이 "협력(cooperation)"하여 파레토 최적(Pareto-optimal) 상황으로 갈 수 있을 것입니다.

국민협력의 지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유] 이라크 파병 결정과 국민분열?

(2003년 4월 4일에 작성한 글입니다.)

이라크 파병안이 국회의 대다수 지지를 받아서 통과되었지만, 아직도 많은 정치인과 국민은 파병 결정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공식적인 파병 결정이 대한민국의 도덕성에 큰 흠집을 내었다는 의견은 결국 국민분열 양상으로 갈 수도 있다는 우려로도 이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 시점에 우리는 자유민주주의가 현실 세계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이라크 파병 결정에 대한 지지와 비판을 평가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는 상대주의에 입각한 정치 이념이다. 이것은 과연 절대적 자유가 현실에서 가능한지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면 자명하다. 절대적 자유는 각 개인의 생각 안에서나 가능한 것이고, 여러 사람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는 "나"와 "남"의 자유가 어긋날 수 있는 상대적 자유일 수밖에 없다. 자유민주주의는 어떤 정치적 선택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거의 없다."는 것을 원론적으로 인정한다. 종교에 있어서는 어떤 행위가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편이지만, 절대자를 인정하지 않는 자유민주주의적 정치란 결국 어느 특정인 혹은 집단의 생각이나 제안을 절대적 진리로 받들 수는 없다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를 합리적 선택으로 재해석한 윌리엄 라이커(William H. Riker)교수는 룻쏘의 "일반의지"를 자유민주주의와는 잘 융합할 수 없는 절대성의 가면을 쓴 것으로 설파하였다. 그렇다면 자유민주주의에서 정치적 선택은 어떤 것이나 정당화될 수 있느냐는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자칫 잘못 생각하면 자유민주주의에서는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 없으므로 아무렇게나 결정해도 된다는 식으로 유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적용되는 절대적으로 옳은 기준은 없더라도 일정한 원칙을 잣대로 채택하여 어느 것이 상대적으로 옳은 것인가라는 논의는 자유민주주의에서 항상 가능하다.

이라크 파병안 통과라는 정치적 선택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그 사안에 적용하는 특정 잣대가 필요하다. 파병을 지지하는 견해는 정치적 선택의 현실적 한계와 손익계산서라는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반면, 파병을 반대하는 견해는 이라크 전쟁의 비도덕성과 반국제법성을 그 판단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것은 자유민주주의적 정치 행위에서 그 평가 기준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고 다른 기준을 다양하게 제시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때에는 어떤 기준이 더 중요한지, 각 주장이 과연 일관성이 있고 논리적인지 등을 따져서 타협되면 바람직하겠지만, 만약 합의가 되지 않는다면 매우 곤란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갑과 을이 논쟁한 다음 자유민주주의적으로 갑의 의견을 최종 결정으로 채택했는데, 을은 계속해서 자신의 평가 기준을 고수하겠다고 하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을의 의견을 존중하여 을을 계속 설득하지만, 사회적 선택으로는 채택하지 않는 것이 옳다. 즉, 을의 견해가 절대적으로 옳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으므로 "네가 옳을 수도 있지만, 지금은 너의 의견을 전체 사회적 결정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음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정도가 자유민주주의적인 결론이 될 것이다.

몇 명 되지 않는 소수의 인원으로 구성된 사회라면 어떤 사회적 결정이 쉽게 내려질 수도 있다. 그러나 현대 국가처럼 매우 많은 인원이 전체 결정에 참여하는 경우에는 그 결정과정이 복잡하고 어떤 원칙이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지 애매모호할 때가 잦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최종 결정이 절대적으로 옳은지를 보려고 하기보다는 국민이 그 결정을 좋아하는지 아닌지를 더 많이 참조하는 것이다. 이라크 파병안을 직접민주주의의 한 방식인 국민투표에 부치자는 주장이 그런 인식의 현실적 방안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현대 민주주의의 기본은 대의민주주의이므로 이라크 파병안을 국회의 의결에 붙여서 국민적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이 국민의 선호도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정당하다. 그렇다면 그 결정에 반대했던 정치인이나 국민은 자신의 뜻이 옳음을 개인적으로 믿더라도 정당한 절차에 의한 국민적 결정은 존중해야 한다. 물론 파병을 찬성한 정치인이나 국민도 파병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식으로 강변해서는 안 되고, 소수 의견으로서 파병 반대를 충분히 존중해야 한다. 단, 사회적 결정은 파병이다. 자유민주주의에서는 상호존중의 원칙을 항상 잊지 않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파병에 대한 찬반 의견이 국민분열로 가지 않고 민주주의의 자연스런 모습이 될 것이다.

2009년 9월 28일 월요일

[잡담] 파랑새 한 마리


항상 디지털 카메라를 갖고 다니려고 생각합니다만, 잊을 때가 대부분입니다. 동네에서 산책하다 어느 가정집 앞에 예쁜 파랑새가 앉아 있는 모습을 찍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또 카메라가 몸에 없다는 사실을 알아챘습니다. 결국, 핸드폰에 장착된 카메라로 찍었습니다. ㅜ.ㅜ

초점도 잘 맞지 않았고, 색상도 깨끗하지 않지만 분위기가 좋아서 올렸습니다.
어느 네티즌이 잘 찍은 파랑새 사진은 옆에 퍼왔습니다. ^^
즐거운 한 주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정치] 참여정부: 국민참여에 대해서

(2003년 3월 23일에 작성한 글입니다.)

새로 개편된 청와대의 직제를 보면 국민참여수석실(국참)이라는 생경한 부서가 있다. 노무현 정부가 참여정부이므로 국민참여를 청와대 부서로 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면 과연 국참은 무엇을 하는 부서인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국민이 국정을 감시하고 민원을 제기하는 것을 들 수 있겠다. 그렇다면 국정감시와 민원이라는 것은 오히려 청와대보다는 행정부에 더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든다. 그러면 청와대 국참은 국정감시와 민원처리에 있어서 국민이 불편하게 여기는 것이 있다면, 그 문제가 해결되도록 도와주는 곳이라고 대답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국민고충처리위원회도 있고 부패방지위원회도 있는데 옥상옥이라고 비판할 수 있다.

따라서 국참은 국정감시와 민원처리도 맡겠지만, 그것들을 뛰어넘는 고유 영역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그 고유영역은 두말할 것도 없이 "국민참여"이다. 이렇게 얘기가 되면 동어반복이 되는데, 구체적으로 참여정부의 청와대가 국민참여를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국민참여는 국민이 하는 것이지 청와대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냐는 의문이 든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국참은 국민참여에 직접적으로 개입해서는 안된다. 국민참여는 사회 영역에 속하는 것이지 정부나 청와대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따라서 나는 국참을 매우 한시적인 부서로 보고 있다. 그러면 국참은 필요없는 군더더기 같은 부서인가? 그것도 아니다. 참여정부이므로 국민참여를 간접적으로 돕는 역할을 한시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 자유민주주의의 3대 원칙을 들라고 하면 자유, 평등, 참여를 들 수 있다. 그 중 참여는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참여가 없으면 민주주의는 없다. 참여는 민주주의의 필요조건이다. 우리 민주주의의 역사가 얼마 되지않아 참여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낮고, 참여의 중요성에 대한 국민의 지각도는 더 낮다. 따라서 청와대 국참은 민주주의 발전을 이룩하기 위해서 건설적인 국민참여로 가게끔 돕는 바람직한 역할을 하도록 지혜를 짜내어야 한다.

국참이 주의해야 할 것은 과거의 잘못된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가깝게는 "제2 건국위원회"부터 "국풍", 멀리는 "국민교육헌장" 식의 국민참여로 유도하려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본질적으로 정부나 청와대가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을 했기 때문이다. 국참은 국민참여가 "자발적"으로 그리고 "흥겹게" 일어나는 기반을 닦는 것에서 반드시 그쳐야 한다. 그 이상 한 걸음이라도 더 나아가면 제2의 "제2 건국위원회", "국풍", "국민교육헌장"의 아류가 될 위험성이 내포되어 있음을 한 시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국참이 제공한 기반 위에서 국민참여가 정부나 청와대가 바라는 반대 방향으로 가더라도 절대로 개입해서는 안되고 그대로 두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는 장기적으로 민중의 "합리성"을 믿는 토대 위에 서 있음을 국참은 명심하고 그 활동 범위를 구체적으로 제한해야 할 것이다.

"자발적" 참여, 그리고 "즐거운" 참여의 기반에 대해서는 국참이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을 경청하여 잘 수렴해야 할 것이다.

[정치] 참여정부: 대통령의 재신임?

(2003년 10월 10일에 작성한 글입니다.)

노 대통령이 재신임 여부를 국민에게 묻겠다고 한다. 그 명분은 국정수행에 있어서 대통령의 도덕성이 필수적이라는 전제하에, 대통령의 최측근 참모가 부패했다고 검찰의 조사결과가 나오든 아니든, 국민의 대통령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져 있음이 분명하니 이 상태에서 국정 책임자로서 대통령의 도덕성을 국민이 인정해줄 것인지 아닌지를 알아보겠다는 것이다.

아쉬운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정치에도 도덕성은 있다. 청렴할수록, 원리 원칙을 존중할수록, 불편부당할수록 그 도덕성은 제고된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도덕성은 유교, 불교, 기독교, 천주교, 천도교, 혹은 일상생활의 도덕성과 다른 점이 많다는 것도 사실이다. 대통령은 국헌을 준수하고 국가의 발전을 도모해야 할 책임이 있다. 국정 운영이 바라는 대로 수행되지 않으면 그 원인을 분석하고 고칠 것은 고쳐 나가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 책임과 의무가 일반적인 도덕률보다 오히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일찌감치 설파한 것이 마키아벨리이다.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시기의 이탈리아의 군주들과 현재 한국의 대통령은 내용상 크게 다르지만, 국정 최고책임자라는 측면에서 근본 원리는 유사한 것이 많다. 군주론에서 마키아벨리가 주장한 것은 국가가 존재해야지만 군주의 사랑도 있고 도덕도 있는 것이지, 국가가 망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었다.

정치권의 부패는 이제는 상식에 가깝다. 현 정치권이 부정부패라는 측면에서 합격점을 받는 도덕성을 갖고 있다고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표적 정치인인 노 대통령도 그 문제에 있어서는 자유롭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정치권의 관행이 그랬으니 노 대통령이 원하지 않았어도 대선 참모들의 일부는 현실성을 고려하여 부정적인 정치자금을 모았을 가능성이 있다. 그것은 반대진영도 마찬가지이다. 정치권의 부정부패를 절대적인 도덕성의 기준에 의하여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앞으로 바로잡아 나가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그만이지, 헌법에 명시된 조건이 아닌 도덕성을 문제 삼아서 대통령직을 거는 것은 뭔가 석연치 않은 결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치는 결과와 상대성의 논리가 강하게 지배하는 영역이다. 아무리 국정수행에 난맥상이 보이더라도 적절한 리더십을 발휘하여 추스를 것은 추스르고, 고칠 것은 고치면서 정책으로 승부를 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옳다. 절대적으로 옳은 정책은 있을 수 없다. 정책을 수행하여 이전보다 상대적으로 더 바람직한 결과로 조금씩 개선해 나가면 그것이 잘 된 정치이다. 대통령 재신임 절차에서 합격점을 받았다고 해서, 대통령의 도덕성이 확보되는 것도 아니고 정책에서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낙관할 수도 없다.

국헌에도 명시되어 있지 않은 재신임 여부에 대한 문제제기는 철회되는 것이 마땅하다. 노 대통령이 설정한 역사적 방향성에 대해서 기대를 거는 국민이 아직은 많다. 스스로 권력의 칼을 놓았으며,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을 많은 부분에서 포기했고, 중앙의 권력을 지방으로 이양하는 매우 중요한 작업을 추진하는 이 시점에서, 더 고심해야 할 점은 세부적인 전략/전술이지 애매모호한 도덕성 논란이 아님을 노 대통령은 깨달을 필요가 있다.

헌법에 규정된 바대로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권한을 행사하고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 이 시점에서 노 대통령에게 가장 필요한 정치적 도덕성이다. 대통령이 스스로 인정한 신뢰도 하락 원인이 무엇인지를 뼈저리게 성찰하여 바꿀 것은 바꾸어서 새 출발을 하는 기분으로 국정운영에 임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대통령을 보좌했던 측근들은 대통령이 그런 엄청난 결심을 국민에게 발표하게끔 사태를 악화시킨 원인을 잘 분석하여 처신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2009년 9월 27일 일요일

[단상] 서울역에서

(다음 주말이 한가위 연휴이군요. 2003년 9월 9일 추석 무렵에 작성한 메모입니다. 지방에서 올라오시는 어머니를 마중하러 서울역에 갔을 때 생긴 일입니다.)

추석을 보내기 위해서 지방에서 올라오시는 어머니를 마중하기 위해서 서울역에 나갔습니다. 연로하시기 때문에 첫날을 지내실 작은 형님댁까지 길 찾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안내해 드리러 나갔던 것입니다. 타신 열차의 객차번호를 확인하고 그 앞에서 기다리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서울역에 나가보니 연휴 수송시간 동안에는 입장권을 발부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난감해진 저는 안내 데스크 앞에 있는 서울역 직원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입장을 할 수 있는지 문의했습니다. (승객들이 기차에서 내리면 두 군데로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엇갈리면 골치 아픕니다. 어머니는 핸드폰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직원: "그런 사정을 가진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선생님만 사정을 봐 드리기 곤란합니다."
나: "연로하셔서 길을 잃으실 염려도 있고, 저와 객차 앞에서 만나는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 이런 때에는 융통성을 발휘해주실 수 없는지요? 입장을 시켜줄 수 있는 결정은 누가 하는지요?"
직원: "역장님께서 결정권자이십니다. 역장실로 가보시지요."
그래서 저는 서울역 1층에 있는 역장실에 가서 역장님을 만나겠다고 직원께 다시 문의하였습니다. 사정을 설명하고 제가 입장할 수 없으면 서울역 직원이라도 해당 객차에 가서 연로하신 어머니를 밖에 있는 저에게 안내해줄 수는 없는지 문의했습니다.

"아마 안내한 직원이 역장실로 선생님을 잘못 보내신 것 같습니다. 어떤 직원인가요? 지금 모든 직원이 바빠서 직원이 안내해 드리는 것도 힘듭니다. 제가 메모를 적어 드릴 테니 입장하셔서 어머님을 안내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저는 그 직원의 전화번호가 적힌 메모를 소중하게 받아들고 해당 출입구로 갔습니다. 지키는 직원이 아무도 없어서 그냥 입장했고, 어머니를 반갑게 만나서 출구로 모시고 나왔습니다. 기차표를 확인하는 직원이 제지하면 그 메모를 보여주려고 준비했는데 아무런 확인도 하지 않더군요.

역장실에 있는 직원의 설명으로는 안전문제 때문에 대수송 기간에는 입장표를 발부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앞으로 비슷한 경험을 하실 분이 마중을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이 글을 올립니다.

즐거운 한가위 연휴를 보내시기 바랍니다.

후기 ▷ 철도청 홈페이지에 이 글을 옮기고 다음과 같은 사족을 붙였습니다. (9월 9일 매우 바쁘신 와중에도 큰 도움을 주신 역장실 강동희님께 감사드립니다. 고객의 요청에 의해서 노약자를 친절하게 안내할 수 있는 제도를 검토해보실 것을 권해 드립니다. 조그만 서비스 개선에 고객들은 감동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2003/09/12]

[음악] 영화와 음악의 만남

영화 The Deer Hunter(1978)의 주제가인 Cavatina입니다. 영화가 나오기 전에 죤 윌리암스가 이미 연주하여 히트했었습니다. 원래 피아노 곡이었으나 윌리암스의 요청으로 작곡가 Stanley Myer가 기타 곡으로도 편곡했다고 합니다.


John Willams giving a flawless performance of his classic interpretation of Stanley Myer's Cavatina in 1979.

영화 쇼생크 탈출(1994)에서 앤디가 모짜르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에 나오는 듀엣 "산들 바람"을 방송하는 장면입니다.


Andy (Tim Robbins) plays Mozart over Shawshank's public address system in Frank Darabont's Shawshank Redemption (1994). From Castle Rock Entertainment and Columbia Pictures. This video posting is part of an academic project.

톰 행크스 주연의 포레스트 검프(1994)의 주제가입니다. 2008년 11월 부산 지역 선생님 오케스트라 연주입니다. 선생님들께서 좋은 과외활동을 하고 계시는군요.




영화 Big(1988)에 나온 "발 피아노" 연주 장면입니다. 재미있습니다.


We found a scene out of the film big and re recorded all the audio and synced it up with all the visuals.

The Deer Hunter - End Credits

2009년 9월 26일 토요일

자유에 대한 간단한 생각

엊그제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고등학교 친구와 술 한잔을 하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좀 잘난 척을 하였습니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는 두 가지이다. 자유와 합리. 각자가 자유를 추구하다 보면 자유의 충돌이 일어나게 되어 있는데, 이럴 때 합리가 등장한다. 즉 자유의 충돌에는 합리적 조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합리적 조정은 궁극적으로 법과 법원에 의하여 이루어 져야 한다." 뭐 이런 거였죠. 저는 사실 경제학에서 말하는 효율성이 얻어지기 위해서는 법원의 합리적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로 한국에서 경미한 자동차 추돌사고가 일어난 경우 앞 차의 운전자와 승객 중 목이 아프다고 하면서 병원에 가 들어 눕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있습니다. 법원이 합리적 판단과 조정을 해 주지 않기 때문에 '돈 뜯어 먹을려는' 사람들이 생긴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죠. 법관의 합리적 판단을 training 시켜주는데는 경제학이 그만이라고도 생각하죠. 그래서 저는 미국이든 한국이든 law school에는 경제학, 특히 미시 경제학의 여러 topic들을 꼭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거시하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하다니....)


[음악] 트렌드를 쫓아가려니...

이준구 선생님께는 대단히 죄송한 말씀이지만, 제 나이가 나이라서 요즘 대중가요 트렌드를 쫓아가려면 가랑이가 찢어질 수도 있겠습니다. ㅋ

그래도 노력은 해봐야죠. f(x) 에프엑스라는 다국적 가수 그룹이 요즘 인기가 있는 모양입니다. 노래는 잘 모르겠고, 춤은 잘 추는 것 같습니다.




2NE1이라는 그룹도 있다고 해서 들어봤습니다. 우리말도, 영어도 잘 알아 듣지 못했습니다. ㅋ




역시 제 수준에는 90년대 룰라 정도가 최첨단으로 이해할 수 있는 한계인 것 같습니다. ㅜ.ㅜ 요즘 컴백했다고 하더군요.


룰라, 날개 잃은 천사

[음악] 점심값을 냅니다.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9/07/18)

(이준구) 선생님께서 Paris 시리즈로 저희를 즐겁게 해주시고 계십니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습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점심값을 내겠습니다.^^ 점심값을 낼 적극적 자유도 있고, 안 낼 소극적 자유도 있습니다. ㅋ

Paris가 프랑스에 있으므로, 프랑스 음악으로 짝을 맞춰보겠습니다. 그런데 모네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사진도 선생님께서 선사하셨죠. 점심값을 내려면 제대로 내야 합니다. 그래야 생색이 납니다. 그래서 음악에 그림까지 덧붙였습니다. 제가 한 것은 아니지만, 우연히 찾았습니다. 아쉽게도 프랑스 사람이 아니고 이스라엘에서 가장 대중적인 화가였다고 합니다. 제 수준에 그것만 해도 감지덕지합니다.

Paris 출신 Bizet(1838-75)의 아를(루)의 여인(L'Arlesienne, 라흐ㄹ지앙느, 제 불어 발음이 어떻습니까?^^) 모음곡은 1부 네 곡과 2부 네 곡이 있습니다. 원래는 알폰소 도데의 희곡에 맞춘 음악으로 27곡을 작곡했는데, 호응이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비제는 그중에서 네 곡을 골라서 편곡하여 제1 모음곡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번에는 평이 좋았습니다.

비제가 사망하고 나서 파리 국립음악원 작곡학 교수인 친구 기로(Guiraud)가 네 곡을 더 편곡해서 제2 모음곡으로 선보였습니다. 눈물겨운 우정입니다. 아래에 소개하는 제2 모음곡이 더 대중적인 것 같습니다.

첫 번째 곡은 "목가"인데, 시골 전원풍경이 떠오릅니다. 두 번째 곡은 간주곡입니다. 색소폰 연주가 애처롭습니다. 세 번째 곡은, 그 유명한 미뉴에트입니다. 플룻과 하프가 주고받는 선율이 유명하죠. 네 번째 곡은 "파랑돌(Farandole)"이라는 춤곡인데, 프로방스 지방에서 유래하였다고 합니다. 아를이라는 마을이 남부 프로방스에 있다고 합니다. 제가 가본 적은 없습니다. 목성에 가본 적은 없지만, 목성이 있는 것은 믿습니다.^^

부다페스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인데, 연주를 아주 잘했습니다. 제 귀가 호강을 했습니다. ㅋ 편안한 주말 보내시기 바랍니다.

Georges Bizet(1838-1875)
L'Arlesienne Suite No.2

1.Pastorale
2.Intermezzo
3.Minuet
4.Farandole

Budapest Philharmonic Orchestra
Conductor : Zoltan Kovats

Paintings by Sami Briss(1930-)
Sami Briss was one of Israel's most popular artists who combines a cubist style with a Byzantine one. His figures are modem icons - frontal and classic but also humorous and whimsical. Briss' images capture the strength and vulnerability of modem life.


Bizet-L'Arlesienne Suite No.2-Mov.1


Bizet-L'Arlesienne Suite No.2-Mov.2


Bizet-L'Arlesienne Suite No.2-Mov.3/4


Bizet-L'Arlesienne Suite No.2-Mov.4/4

[자유] 비행기 안에서...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9/07/11)

제가 태평양을 몇 번 건넜는지 정확한 숫자는 모릅니다만, 한 때는 일 년에 두세 번은 왕복할 정도로 바쁘게? 살았습니다. 최근에는 3 년 정도 비행기를 타지 않았습니다. 저는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장거리 비행도 별로 지루하게 느끼지 않는 편입니다. 영화를 보든지, 모 외국 항공사 비행기를 타면 슈퍼마리오를 즐기며 혼자서도 잘 놉니다.^^

글을 적을 때도 있었습니다. 한 번은 노트북에 열심히 타이핑을 하고 있었는데,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담배 냄새였습니다. 그 비행기는 전 좌석 금연이었는데, 희한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담배는 기호 식품이라서 애연가는 몇 시간 피지 않으면 금단현상이 오기도 하죠, 이렇게 생각하면서 봐주는 것은 관용의 자유 행위일까요?

우리가 관용이라고 하면 오해할 때가 잦습니다. 무조건 봐주는 것을 관용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무골호인 혹은 핫바지가 관용의 챔피언이죠. 그러나 불관용 대상을 관용하는 것은 방종이 될 수 있습니다. 그냥 놔두는 자유를 남용한 것이죠. 이런 종류의 방종에 경계선을 그어주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담배를 피우는 승객은 외국인이었습니다. 승객들 대부분이 우리나라 사람인데, 그 승객 근처에만 외국인 몇 명이 있더군요. 나중에 보니 화장실에 들어가서 피는 것 같기도 하고, 그 승객은 아예 앉아서 피더군요. 승무원을 포함해서 아무도 그 사람들의 일탈 행위에 시비를 걸지 않았습니다. 국제선 전면 금연을 시행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라서 그랬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전에는 장거리 비행은 뒷좌석 일부는 흡연석으로 지정했었죠.

그나저나 한번 정해진 규정이고, 특히 다른 승객들의 건강권과 직결된 그런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제가 이렇게 얘기하면, 간접흡연이 사람 생명을 단축시킨다는 명시적 증거가 없다더라, 이렇게 얘기하는 분도 있겠죠. 이 문제는 말입니다.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피해에 관한 얘기입니다. 그래서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세상에 무슨 절대적인 진리가 있겠습니까, 많은 학자가 연구를 통해서 그렇게 추정하고, 그것을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으면, 조심하면 되죠. 조심하지 않아서 간접흡연으로 나중에 아무 죄 없는 승객이 건강을 상하게 된다면 그 억울함은 어떻게 합니까. 거기에 담배 피우는 사람의 행복감을 돈으로 계산하고, 기타 등등 해서 효용 대 효용으로 비교하자고 주장하는 우는 범하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어떤 승객이 담배 피는 승객에게 직접 시비를 걸면, 승객끼리 감정이 상할 수 있죠. 그래서 쓰리 쿠션 방법을 써야 합니다. 그날은 제가 총대를 메었습니다. 스튜어디스에게 슬쩍 얘기했죠. 시정되었습니다.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30 초만 신경 쓰면 되거든요. 그런데 승객 대부분은 귀차니즘에 빠졌는지, 영어로 직접 얘기해야 되는데 영어가 고생할 것을 걱정했는지, 지나치게 봐줘서 일종의 방종이 되었던 것이죠.

그 외국인들은 자유를 만끽한다고 생각했겠죠. 결국, 제가 호루라기를 점잖게 불어서 방종의 경계선을 제시해봤던 것입니다. 제 이야기가 기장에게 전달되었는지, 기장이 저에게 직접 와서 고맙다고 인사도 하고, 스튜어디스들은 애들 갖다 주라고 온갖 기념품을 챙겨주고 그러더군요. 호.호.호.

제 도움에 진심으로 감사해서 그랬을까요? 그랬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둘이 뒤섞여 있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기내 흡연을 승무원들이 방조했다는 식으로 제가 고객카드라도 한 장 적어 보십시오. 항공사 본부에서 나중에 난리가 날 걸요? ㅋ

자유주의 세상이 그렇습니다... 만만찮습니다. 즐거운 하루, 시작하시길...

2009년 9월 25일 금요일

저도 이번 헌재결정에 찬성합니다.

이번 헌법재판소 결정의 요지는 다음 주소에 upload되어 있습니다.

http://www.ccourt.go.kr/home/main/xml/month_view.jsp?mainseq=90&seq=2

대체로 우리나라의 '진보적 성향'을 띠는 언론에서는 이번 결정에 대해서 cover-story로 다루었지만, '보수 언론'에서는 1면에 거의 다루지 않았습니다.
지하철에 널부러져 있는 '국민일보'의 사설을 읽어보니 이번 헌재 결정에 대해서 상당히 공격적으로 비판하였습니다. 촛불 시위와 같은 '극렬한 데모'로 주변 상인들의 생계가 위협받고, 근자에 들어 극렬시위꾼이 등장 운운하는 등 낯뜨거워서 읽을 수 없을 정도의 졸렬한 논거를 내세며 비판을 가하였습니다.
국민일보의 논조가 친정부적이라는 점을 감안해 볼 때, 조중동의 반응이 어떠한가를 가늠하기는 '식은 피자 먹기'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는 이번 헌재 헌법불합치 결정이 행복 추구권에 반하는 것이라고 불만을 토로하였습니다.
'헌법불합치'결정은 위헌결정의 한 종류입니다. 헌법재판소는 마치 일도양단 격으로 합헌결정 아니면 위헌결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결정유형을 만들어서 시행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한정 위헌, 한정 합헌 그리고 헌법불합치 결정을 들 수 있습니다.
헌법불합치 결정은 되도록이면 국민의 선거에 의해서 선출된 국회의원으로 구성된 국회가 만든 법에 대해서 무작정 효력을 없애버리지 않고, 국회가 헌법에 맞는 법률을 만들도록 유도하는 취지의 결정이라 할 것입니다. 국회는 이번 결정에서 헌재가 위헌결정을 내리기 보다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취지를 제대로 헤아려서 합리적인 집회, 시위에 관한 법률을 제정할 일이지, 어쭙지 않게 '행복 추구권' 운운하며 주어진 의무를 저버리는 짓을 해서는 않될 것입니다.

[자유] 헌법재판소의 야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결정

어제 헌법재판소에서 야간 집회/시위에 대해서 현행법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취지의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래도 우리 사법부는 괜찮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결정이라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집회와 결사의 자유는 기본권에 해당합니다. 어떤 사전 허가제도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할 수 있죠. 따라서 이번 결정은 자유민주주의 헌법 정신과 상식을 확인한 것입니다. 환영합니다.

아울러서 그 건과 관련된 신영철 대법관 문제도 이제 완결지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잘못이 있었으면 그에 상당한 처분이 있어야 합니다. 대충 어물쩍거려서 일시적으로 여론의 화살만 피하면 일신의 영달을 꾀할 수 있는 관행을 없애야 합니다.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당사자가 알아서 처신하든지, 사법부에서 깨끗하게 마무리 짓기를 바랍니다.

[단상] 참여정부: 외국언론 홍보 대책에 대해서

(2003년 3월 13일 해외홍보원 홈페이지 http://www.korea.net/에 올린 글입니다.)

해외홍보원의 외국언론 오보에 대한 더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합니다. 최근에 NYT의 컬럼리스트 William Safire(강경보수 논객)가 적은 "The Asian Front"를 보면 사실을 잘못 파악한 것이 여러 군데 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NYT에 그 잘못을 지적하는 편지를 보냈습니다만, 국민의 자발적인 노력과 함께 해외홍보원에서도 적극적으로 외국언론 홍보에 대한 대책을 수립해야겠습니다. 제 생각은 다음과 같습니다. "참여정부"의 참여형 외국언론 홍보!

1. 자원봉사자를 모집하십시오. 국내 거주 국민 뿐만 아니라 특히 현지어를 잘 구사할 수 있는 교포들에게 대대적으로 홍보하여 도와달라고 하십시오. 해외홍보원에서 감사장과 함께 기념품을 제공하는 정도면 많은 분이 무료로 애국심을 발휘할 것입니다. 현재 인력이 많이 부족하실 것입니다. 한국 내 국제대학원 학생들의 자발적 참여도 유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순수 자원봉사자라야 합니다. 해외홍보원은 자원봉사자의 활동에 대해서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점을 주지시켜야 합니다.

2. 자원봉사자들이 외국언론 논조에 대해서 의견교환을 할 수 있는 실명 게시판(쓰기는 등록자에 한해서, 읽기는 개방)을 별도로 만드십시오. 예를 들자면 그 게시판에서 오보에 대해 의견교환을 하고 대책을 논의하여 실행에 옮길 수 있을 것입니다.

3. 해외홍보원은 외국 주요 언론의 한국 관련 보도를 자원봉사자들에게 빠른 시간 내로 알리십시오. 구체적인 내용은 필요 없고, 미국이면 미국담당 자원봉사자들에게 어떤 신문에서 어떤 제목의 기사가 났다는 정도를 전자우편으로 알려주시면 됩니다. 물론 그 정보 수집에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어떤 특정 사안에 대해서 정부의 공식입장이 있다면 홈페이지에 빨리 올리십시오. 그것을 참조하여 자원봉사자들이 외국 언론에 편지를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4. 외국 주요 언론사와 opinion leader에 대한 database를 만드십시오. 그리고 그 database를 자원봉사자들에게 지역별로 알려주십시오.

조그만 노력이 모여서 외국 언론에 우리 정부를 정확하게 알릴 수 있을 것입니다. 해외홍보원이 그 기폭제 역할을 해주면 좋겠습니다.

전반적인 국제 홍보에 대한 생각은 다음 기회에 올리겠습니다. 외국 언론 특히 현재 한미관계를 고려한다면, 미국 언론의 오보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것은 매우 시급합니다.

[해외홍보원의 답변]

(해외홍보원의 답변입니다. 이 내용은 http://www.korea.net/ 한글 게시판에 그대로 올려져 있습니다. 이렇게 정성들인 답변을 받고 보니 기분도 좋고 힘껏 도와야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From: Webmaster
Subject: 해외홍보원입니다
Date: Fri, 14 Mar 2003 18:19:18 +0900

안녕하세요?
국정홍보처 해외홍보원에서 운영하는 정부대표 영문 홈페이지 korea.net을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한글 홈페이지에 게시하신 글을 보고 답변을 드립니다.

먼저, 청와대 영문홈페이지는 개편작업이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어 수 일 내에 오픈할 예정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청와대 영문홈페이지 구축이 완료될 때까지 당분간 korea.net 홈페이지로 링크를 거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은 청와대 홈페이지 담당자에게 전달하였습니다.

그리고 외국언론을 대상으로 한 홍보 방법과 관련하여, 자원봉사자들에게 한국 관련 외신 내용을 수시로 제공하고 그들이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줘야 한다는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참고로, 저희 해외홍보원에서는 인터넷상에서 한국에 관한 잘못된 정보를 찾아 시정하기 위한 목적으로 "한국오류바로잡기(http://correct.korea.net/)"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사이트는 일반 네티즌 및 인터넷오류시정모니터들의 자원봉사로 운영되고 있으며, 매월 중점과제를 정하여 외국어 홈페이지를 대상으로 한국 관련 오류정보를 찾고 시정하는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번 달의 주제는 "해외 언론에서 동해 되찾기"입니다. 보내 주신 의견도 이 사이트의 운영 취지와 일맥 상통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희의 오류시정작업과 연계하는 방법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소중한 의견을 보내 주신 데 다시 한번 감사 드리며, 해외홍보 및 korea.net 사이트와 관련하여 제안하실 내용이 있으면 언제든지 의견을 주시기 바랍니다.

국정홍보처 해외홍보원 인터넷홍보팀

[정치] 참여정부: Is the Korean President Roh Conservative or Liberal?

(2003년 3월 13일에 작성한 글입니다.)

노 대통령은 보수인가, 진보(직역하면 progressive겠지만, 한국식으로 해석해서 conservative에 대칭되는 개념으로 liberal)인가라는 질문을 오늘 저녁 식사를 같이한, 한국을 제법 잘 아는 미국인들에게 물었습니다. Intercultural Institute of California라는 한국학 석사과정을 최근에 개설한 교육기관이 WASC(Western Association of Schools and Colleges, 우리나라의 교육위원회 기능, 정부기관은 아님)의 심사를 요즘 받고 있는데, 오늘 저녁 식사에 저도 초청을 받아서 참석했습니다. 심사관들이 한국에 대해서 어느 정도 잘 아는 분들이라서 그런 질문을 던져 보았던 것입니다.

한국 문학을 가르치는 미국인 강사는 liberal이라고 단순하게 대답하더군요. 전반적인 경제/사회 정책을 기준으로 하면 노 대통령은 liberal에 더 가깝겠죠. WASC에서 나온 심사관 한 분은 질문이 너무 broad 하지 않느냐고 정곡을 찔렀습니다. 그래서 제가 국가안보 분야에서 노대통령이 보수인지 진보인지를 재차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심사관은 한미동맹을 강조한 노대통령의 최근 언급들을 인용하면서 conservative라고 평가하더군요.

나: "You are much better than the NYT columnist William Safire!"
심사관: "He is just an idiot. I don't know whether he knows a lot about non-Korean issues, but Korea is not his case. He does not know much about Korea."
표현은 조금 강했지만, 미국 사람이 한국 사정을 잘 아는 것 같아서 무척 반가웠습니다.

저는 현실 정치에서 흔히 언급되는 보수-진보 양분법을 좋아하지 않는 편입니다. 왜 그러느냐고요? 노 대통령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노 대통령은 보수이기도 하고 진보이기도 합니다. 노 대통령은 보수가 아니기도 하고 진보가 아니기도 합니다. 분야에 따라서, 사안에 따라서 견해차가 드러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제가 일전의 어떤 글에서 도매금으로 보수-진보를 구분하는 것은 허구에 기반울 둔 정치 놀음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한 것도 이런 맥락 때문입니다. 보수는 진보를 급진 혹은 좌파로 몰아세우고, 진보는 보수를 수구 혹은 반동으로 몰아세우는 것이 정치 놀음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학술 용어가 정치판에서 악용된 것으로 봅니다. 그것보다는 과도한 일반화를 피해서 데카르트 식으로 쪼갤 것은 쪼개어서 평가해보는 것이 더 적절합니다. 그러면 사실 판단을 잘못하는 것인지 아닌지를 알아내기가 쉬워질 것입니다.

[참조]

(2003년 3월 12일, 뉴욕 타임즈 칼럼리스트 Safire 씨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우리나라 관련 칼럼 내용에 틀린 사실관계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회신은 없었습니다.)

Dear Mr. Safire,

Let me introduce myself. My name is Byeonggil Ahn residing in Palo Alto, CA. My brief bio is as follows. I had taught international politics, Korean politics, and inter-Korean relationship at Michigan State Univ. (1994-97) and Seoul National Univ. (1997-2000). I had been a policy consultant to the Korean Ministry of Unification (1997-2000), and I had worked for the Committee of Presidency Transition last month.

I read your interesting opinion about the North Korean nuke issue at NYT. I would like to respect, although I don't agree with you, your own creative idea to solve the current conflict escalation between the US and North Korea. However I would like to let you know also that some of your explanation about the facts is not correct.

You mentioned, "South Korea's leaders have gained popularity by vilifying Americans stationed along the demilitarized zone and demanding the U.S. accede to the North's demands." It is simply not true. Have you read the inaugural speech of President Roh? He appreciated the US support for the security of Korea. He emphasized also the importance of the strong alliance relationship between the US and Korea in the speech. I remember many South Korean political leaders expressed the same points a lot of times. I have not read or heard of any South Korean leader's "vilifying" the US soldiers along the demilitarized zone. Could you illustrate any case against my claim?

You also wrote, "Previously anti-American politicians are suddenly encouraging pro-American demonstrations." It is not true also. It seems that you have in mind mainly the pro-American demonstrations in Seoul on March 1. The demonstrations were led by religion leaders, opinion leaders and some politicians who had been pro-American for a long time. They have never been anti-American by any meaning. Many Americans, especially conservative ones, guess that there is a high mood of Anti-Americanism in Korea. I am sorry, but it is not true. Significant majority of Koreans respect the US presence in the Korean peninsula and they regard the US as the most important allied country. Please do not distort the popularity of anti-Americanism in South Korea.

You regarded South Korea as a "neutral." I understand it is rhetoric to indicate Korea and the US having a different position for solving the North Korean issue. I would like to point out that the two countries still want and try to maintain strong alliance relationship for the mutual benefits.

I feel very sorry about the misunderstanding between the US and Korea due to insufficient communication. Korean government should do all efforts to let the US people and politicians understand correctly the position of the Korean government, especially about the alliance relationship.

If you want to have my advice about your column on the Korean issues from now on, please don't hesitate contacting me. I am more than willing to help you write a column based on more accurate information of Korea. Thank you very much.

Regards,
Byeonggil Ahn

2009년 9월 24일 목요일

[정치] 참여정부 단상: 다윗과 골리앗

(2003년 3월 10일에 작성한 글입니다.)

아마 1998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인터넷 동호회 이화여대 게시판에 "다윗과 골리앗"이라는 짧은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기록을 찾아보면 정확한 내용을 옮길 수 있겠습니다만 귀찮으니 제 기억 속을 더듬어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여성들은 여성문제의 해법을 스스로 찾는 노력을 열심히 해야 한다. 여성은 사회적 약자이므로 그 노력은 비상한 것이 되어야 한다. 약자가 강자를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윗이 골리앗을 이겼을 때와 마찬가지로 머리를 잘 써야 한다..."

이런 내용의 글을 여성이 많이 볼 것이라고 예상한 이화여대 게시판에 올려서 여성문제 해법에 대한 전략회의를 한번 해볼까 했는데, 안타깝게도 처음에 많은 돌을 제가 맞았습니다. 제 의도가 의심스럽다는 내용의 댓글들이 많았습니다. 그 와중에 제가 느낀 것은 발제를 너무 간결하게 함으로써 토론 시작에 장애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토론은, 소통은 정말 힘든 것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나중에는 제 뜻을 제대로 이해해주고 적당한 토론이 되었습니다만, 시작이 그랬으니 심층적인 의견교환은 잘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남자라는 것도 토론에 지장이 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유사한 예로, "교수, 괴수 논쟁"이 있습니다. 같은 동호회 서울대 게시판에서 있었던 토론입니다. 그 토론 중에 제가 "허심탄회" 하게 서울대 교수가 선생인지 "괴수"인지 의견교환을 해보자고 제의했는데, 제가 많은 돌을 맞았지요. 교수와 학생 사이에는 "허심탄회"라는 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구조적 문제를 우리 대학교는 갖고 있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즉, 교수-학생 사이에는 권력관계가 개입되어 있는데 어떻게 허심탄회하게 의견교환을 할 수 있느냐는, 의사 진행에 대한 반박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곳이 국제지역원 게시판이 아니지 않으냐, 익명으로도 의견을 올릴 수 있지 않으냐 등으로 설명하고 열띤 토론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토론은 정말 어렵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가 토론에 참여하는 이들이 어떻게 대등한 입장에서 자유분방하게, 허심탄회하게, 솔직하게 각자가 가진 뜻이 왜곡되지 않게 의견교환을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인터넷 토론은 그런 대등한 입장이라는 측면에서는 면대 면 토론보다 큰 장점을 갖고 있습니다. 과거 국제지역원의 자유게시판에서 익명을 허용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토론에서 제가 익명 허용 입장을 취했던 것은 인터넷의 그런 장점을 살려보자는 의도였습니다.

어제(2003년 3월 9일) 대통령과 검사들과의 면대 면 토론을 보면서 대통령과 검사들이 대등한 위치에 있다는 생각이 드는 때도 있었고,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는 강자 대통령과 인사 대상인 약자 검사들과의 토론이라고 느낀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부분에서는 대통령이 약자, 검사들이 강자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검사의 모두 발언에서 "토론을 통하여 제압하지 마시라."라는 주문을 대통령에게 했습니다. 이것은 대등하게 토론할 수 있도록 인사권자가 권위주의적인 입장을 취하지 말아 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이 부분에서는 검사가 약자입니다. 그렇다면 머리를 잘 써야 했는데 안타깝게도 그 말을 듣자마자 제가 받은 느낌은 "헉" 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대통령은 "그럼 내가 잔재주를 부려서 너희를 굴복시키려는 야바위꾼으로 보이느냐?"라는 식으로 대응하여 검사가 주문한 핵심 내용보다는 검사의 표현이 가진 뜻이 이슈가 되어 버렸습니다.

대통령은 정치인입니다. TV 공개토론은 국민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검사가 그런 식으로 말하면 정치인은 반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솔직하고 건설적인 의견개진을 하는, 평검사들이 인사권자에게 개혁에 대한 나름의 고심을 토로할 수 있는 열린 토론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정도면 충분하지 않았을까요? 검사들이 모여서 8시간의 마라톤 회의를 했다고 하는데 아마 그런 미세한 전략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검토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약자는 머리를 열심히 돌려야 합니다. 그 머리로 할 수 없는 일들은 남의 머리를 빌려와야 합니다. 토론전문가에게서 토론에서 유의할 점들에 대한 도움을 받을 수도 있었을 텐데요...

토론이 끝날 때까지 이 문제는 검사들에게 악령과 같이 따라다닙니다. 노건평 씨 언급도 마찬가지입니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검찰 스스로 뼈를 깎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주위의 도움도 필요합니다. 특히 고위 공직자나 정치인, 대통령 친인척들이 검찰에 청탁하면 불이익을 받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임기 중 지도자로서 이 문제에 대해서 변함없는 관심을 보여주실 필요가 있습니다." 정도로 표현하면 되었을 것을 대통령 형님을 끌어들여서 쓸데없는 신경전을 유발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악의적으로 대통령 주위의 흠집을 다시 상기시키려고 했다고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부산지검에 대통령이 취임 전에 전화를 한 것을 언급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통령이 "이제 막 가자는 거지요?"라고 크게 반발한 것도 실수지만, 그 원인 제공을 한 검사의 발언은 사실확인도 되지 않은 사례를 대통령을 흠집 내기 위해서 이용하려 했다는 해석도 충분히 가능한 것입니다. 그 검사도 머리를 잘못 돌렸습니다.

대통령 형님, 대통령이 취임 전에 검사에게 한 전화 등의 언급이 있었을 때는 적어도 외양상으로는 대통령이 약자이고 검사들이 강자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면 대통령도 지혜롭게 대응해야 했는데 감정적인 대응이 없지 않았습니다. 진상에 대한 설명을 차분하게 한 다음, "그런 사례들을 잘못 해석하면, 국정 최고책임자이면서 직속 상관인 대통령을 여러분이 음해하려 한다는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정도로 한 차원 위에서 설명하는 것이 옳았습니다.

저로서는 대통령과 평검사들의 대화가 그 정도면 상당히 대등한 입장에서 의견교환이 있었다고 봅니다. 국민에게 공개된 대화라서 인사상 불이익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는지, 잘못되면 옷 벗을 각오가 되어 있었는지, 이것저것 생각 없이 나오는 대로 막 말했는지 그 진실은 제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인사권자이면서 막강한 권력을 가진 대통령 앞에서 평검사들이 그 정도로 얘기했다면 상대적으로 대등한 입장이라고 평가해주는 것이 적절하다고 봅니다. 이 점에서는 토론에 큰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잘 진행된 토론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정제되지 않은 언변, 대통령에 대한 지엽적인 공격, 같은 내용의 반복, 대안에 대한 제시 부족 등에 대해서는 검사 측이 준엄하게 비판받아야 합니다. 우리나라 최고 엘리트 집단 중 하나인 검사들을 토론회에서 보면서 저는 한숨이 몇 번씩이나 저절로 났습니다. 나중에는 "대통령과 국민 여러분, 저희도 사랑해주세요."라는 식으로 몇 명이 언급하는 것을 듣고 한 편으로는 측은하게 생각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지 못하는 유아적인 발상을 보는 것 같아서 참담했습니다. "이제는 학교 가기가 싫어졌습니다."라는 발언은 어떻게 들으면 협박성 발언인 것 같기도 하고, 투정부리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원인 제공을 한 검사 측의 잘못이 크기는 하지만, 대통령의 간헌절인 감정적 대응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감정적 대응을 한 다음 좋은 방향으로 하자고 단락 단락 마무리 지으려고 노력한 것은 고무적이나, 감정적 대응 자체가 토론의 핵심 내용을 가려버릴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합니다. 물론 대통령 측에서는 대통령도 인간이라고 강변할 수 있겠지만, 이 경우 대통령은 대통령입니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습니다. 토론공화국으로 가는 첫 토론회라는 역사적 의미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토론 자체가 매우 힘든 과제이며 우리는 건설적인 토론문화를 정착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는 초기 단계라는 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평검사들이 검찰총장과 함께 그런 내용의 토론을 해본 일이 있었을 까요? 있었다면 몇 번 있었을까요? 앞으로 검찰도 자체적으로 그런 토론회를 여러 번 가져서 다음에 있을 대통령과의 토론을 준비하는 것도 괜찮은 아이디어입니다. 대통령도 시간을 내서 어제 했던 토론을 다시 한번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 중간에는 서면 질의와 서면 답변 형식으로 의견교환을 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언로는 열려 있어야 하니까요.

토론에도 전략적 상호작용이 들어 있기 마련입니다. 어제 토론을 보면서 대통령은 전략적 사고를 했는데, 검사 측은 전략적 사고가 모자랐다는 점도 느꼈습니다. 전략적 사고는 상대방이 어떻게 나올 것인지를 살펴서 나의 언행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대통령은 검사들이 어떤 질문을 할 것인지를 고려하여 답변을 준비해온 것 같았지만, 검사들은 대통령이 어떻게 설명하고 반박할 것인지에 대한 대비가 소홀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8시간 동안 무엇을 했을까요? 검사들이 가진 정보의 부재에서 기인할 것일까요? 그렇다면 타협이든 비타협이든, 가능한 몇몇 시나리오에 대한 검토는 과연 했을까요?

국제지역원에 있을 때 학생들에게 했던 얘기를 되뇌면서 이 글을 마칩니다.

"나는 예의도 깍듯이 지키면서, 선생에 대한 비판일지라도 하고 싶은 말은 당당하게 또박또박 개진하는 그런 제자들이 많으면 좋겠다."

[단상] '대통령님'이라는 용어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는 대통령을 부를 때 '각하'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요즘 그 용어는 구 시대의 유물이 되어 버렸다. 그만큼 '제왕적' 대통령의 허물이 벗겨졌다고나 할까.

개인적으로 '대통령님'이라는 용어도 어색하다고 생각한다. "국민이 대통령입니다."라는 지난 참여정부 캐치프레이즈에도 나타나 있듯이 대통령은 매우 높임말이다. 역설적인 설명이지만,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에서 국민보다 더 높은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굳이 '님'을 붙이지 않아도 가장 높은 수준의 예의갖춤 뜻은 충분히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언어는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문화적으로 편한 방향으로 대다수가 사용하면 그만이지만, 용어가 혼동스러울 때는 대통령 스스로가 정리해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창동 씨가 참여정부 문화관광부 장관에 취임했을 때, 관료들의 상관에 대한 과도한 예절차림을 빗대서 '조폭문화'같다는 취임사를 발표했었다. 아마 그 장관을 부를 때 장관님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서 본인이 어색하게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조폭 우두머리에게 '큰 형님' 식으로 부르는 것으로 들렸을 테니까. 그 정도는 아니였을까? 장관님은 그래도 괜찮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상대적으로 국민, 대통령, 대법원장, 국회의원, 총리 기타 등등보다는 '낮은' 위치이니까. 너무 분석적으로 생각하면 머리가 아파질 것이다. 지엽적인 문제라고 무시하자는 의견도 있을 수 있겠다.

아무래도 '대통령님'은 아닌 것 같다. 대통령과 직접대화할 때나 경어법을 사용하여 대통령을 지칭해야 할 경우의 적절한 용례는 다음과 같다고 생각한다.

대통령님께서는... 혹은 대통령은... 혹은 대통령님은... => 대통령께서는...

참여정부 초기에 있었던 대통령-검사 토론에서 검사들은 앞 부분에서는 '대통령'이라는 용어를 제법 사용했는데, 뒤로 갈수록 '대통령님'이라는 용어가 대부분 쓰였던 기억이 난다.

2009년 9월 23일 수요일

[자유]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의견 교환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에서 있었던 의견 교환입니다. 2009년 7월 4일)

회원: 중국은 공산독재와 자본주의가 결합해서 잘 운용되는 것으로 본다.

(안) 중국은 현재 공산주의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권위주의에 "수정 사회주의(제가 만든 용어임)"가 결합한 형태라고 저는 봅니다.

회원: 나는 100% 자유민주주의자는 아니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이야기를 보면 전제군주가 좋은 뜻을 관철한 적이 있다.

(안) 음... 100% 자유민주주의자를 정의하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정의하려면 "역사의 끝"이 있어야 하는데, 자유민주주의는 그 끝을 상정하지 않습니다. 발전하든지, 정체하든지, 퇴보하든지, 셋 중의 하나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자유민주주의는 지적 상대주의를 취합니다. 따라서 회원님보다 제가 더 자유민주주의자냐 아니냐, 이런 식으로 비교하면 됩니다. 주위에 독불장군이 있다면 그 사람보다는 회원님이 더 자유민주주의자가 되는 것입니다.

회원: 이순신 장군은 자유민주주의자가 아니었지만 훌륭한 전과를 냈다. 이 점을 일반 사회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안) 물론 조선시대에 자유민주주의자를 찾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군주가 존재하면 그것은 자동으로 권위주의이고, 군주를 인정하는 사람은 자유민주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이죠. 자유민주주의 군대도 군율이 대단히 센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계약을 그렇게 하면 됩니다. 역사의 가정은 참 힘들죠.^^

회원: 자유민주주의가 optimal decision을 담보하지는 못하는 것 아닌가? 전쟁 상황에서는 생존이 중요하다.

(안) 미군이 전형적으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군대죠. 전쟁 잘하죠. 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유민주주의는 더 나쁜 정치적 상황을 피하는 것을 염두에 둔 정치이념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플라톤의 철인왕과 같은 지도자를 계속 가질 수 있으면 자유민주주의 안 해도 됩니다. 그런데 그런 보장이 없고, 독재자가 나오면 나라를 말아먹기 때문에 장기적 관점에서 자유민주주의가 optimal이 됩니다.

회원: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번영된 국가나 사회의 필요조건도 충분조건도 되지 않는다고 본다.

(안) 그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그 삼각편대가 성적이 아주 좋습니다. 장기적 시계열에서 그만한 환상의 조합은 역사상 없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망해서 히틀러가 등장하기도 했죠.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 헌법이 상당히 잘 짜인 자유민주주의 헌법이었다고 합니다.

회원: 정치이념으로서 홍익인간주의?

(안) 정치이념은 한 사회의 질서를 어떻게 짜느냐는 논의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홍익인간은 과정은 없고 결과만 있기 때문에 정치이념이 되기에는 부족합니다. 그냥 도덕적 슬로건으로 채택하고 계신 것으로 간주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회원: 가르침 바란다.

(안) 저는 이런 clarifying question을 아주 좋아합니다. 우리나라가 자유민주주의 국가인데, 그 교육이 잘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대로 아는 분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요즘 이 부분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제가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도 같습니다.

(이하 생략)

[자유] 퀴즈, 자유는 방종 아닌가요?

(사진의 제목이 "자유와 방종의 갈림길"입니다.^^ 클릭하시면 출처로 연결됩니다. 2009년 6월 27일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에 올린 글과 토론입니다. 자유와 방종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고 나름대로 답을 찾는 과정이 잘 나와 있습니다. 저는 이 토론에서 매우 중요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그것은 간단한 모형을 분석해서 자유와 저항에 대해 설명할 수 있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토론 부분은 직접 관련 있는 내용 위주로 발췌했습니다. 토론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의 도움에 매우 감사합니다.)

[발제] 우리가 소시 적부터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많이 들은 얘기 중 "자유는 방종이 아니다."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자유가 마음대로 한다는 뜻인데, 어떻게 방종이 아닐 수가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그래서 일단 "자유는 방종이다."로 명제를 바꿔봤습니다.

이 명제는 참일까요, 거짓일까요? 이것이 퀴즈입니다. 가장 훌륭한 댓글을 단 분께는 아쉽게도, 경품이 없습니다.ㅜ.ㅜ 그냥 제가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릴게요.^^ 주말에 심심풀이 땅콩으로 한번 생각해보실 것을 권합니다. 유머와 위트가 있으면 더 좋겠죠.

2009년 9월 22일 화요일

[정치] 참여정부에 대한 이런저런 추억거리

제 나름대로 평가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스타일이 적어도 정치 분야에서는 학자에 크게 의존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참여정부에 대해서 정치학자들이 별로 우호적이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 저는 불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실력 있고 명망 있는 정치학자분께 이래나 저래나 국가가 잘 되어야 하니 노 대통령에게 조언을 해주는 것이 좋겠다고 권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분은 언론을 통해서 가끔 비판을 하셨죠.

당시 노 대통령과 소위 주류 정치학자들 사이의 비협조관계가 학자들 잘못이냐, 참여정부 잘못이냐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정치가 매우 상대적인 개념임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양쪽 모두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학자 문제는 어느 정도 짐작하실 수 있을 테니, 참여정부 쪽과 관련된 일화를 말씀드리죠.

하루는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라는 사람과 점심을 같이했습니다.

측: “대통령을 도와주십시오.”
나: “이미 도와 드리고 있습니다. 인수위에서 자원봉사도 했습니다.”
측: “코드에 딱 맞춰서 도와주십시오.”
나: “그렇게는 못 합니다. 제가 대통령의 스탭이면 그렇게 할 수도 있겠지만, 학자 배경을 가지고 외부에서 활동하는 사람으로서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 있다고 판단하면 그대로 자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측근이 노 전 대통령 자신은 아니지만, 그 정도면 분위기를 대충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참여정부 집권 초기에 노 대통령 옆에 실력 있고 명망 있는 학자가 적어도 세 명은 붙어서 대통령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예컨대 제가 인수위에서 읽은 한 자료에는, 정치학자와 의견 교환하던 중 당선자가 자유주의를 잘 모른다고 스스로 고백한 기록이 있었습니다. 대통령이란 직책이 매우 광범위한 영역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슈퍼맨이 아닌 다음에야 항상 빈 곳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노 전 대통령은 제가 보기에는 매우 똑똑한 사람입니다. 똑똑하기 때문에 더 실력 있는 학자들에게 배워야 한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제가 알기에는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다른 일화가 또 생각나는군요. 취임식이 있었던 직후에 새로 생긴 위원회 측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특정 프로젝트를 맡아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주로 연구한 분야가 아니라서 2주 정도 내용을 검토한 다음에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겠다고 했습니다. 학자인 위원장은 그 프로젝트가 대통령의 아이디어이고 따라서 대통령의 관심이 매우 높다고 설명해줬습니다.

검토했습니다. 취지는 매우 훌륭한데 추진방안이 무리가 있다는 것이 제 판단이었습니다. 그래서 2주 뒤에 위원장을 만나서 무리한 프로젝트이므로 추진하지 않는 것이 좋으니, 대통령께 그렇게 보고하고 설득하라고 조언했습니다. 그 위원장 말씀이 대통령이 그렇게 설득될 스타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는 크게 실망했습니다. 학자로서 제일 가까이 있는 사람인데 그런 식으로 얘기하니 어떤 학자가 대통령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을 것인지 안타까웠습니다. 그 프로젝트는 이런저런 변형을 거쳤지만 원래 아이디어대로는 현실화되지 못했습니다.

얘기가 길어지는군요. 또 다른 일화가 생각나네요. 인수위 정치개혁연구실에서 정치개혁에 대한 광범위한 제안을 만들었습니다. 하루는 연구실장이 당선자에게 보고하러 가서 그 주요 내용을 외부에 발표해도 좋은지 문의하니, 좋은 내용은 발표해도 괜찮다는 언질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기자들에게 예고도 했습니다. 그런데 기자회견 2시간 전에 취소되었습니다.

그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홍보책임자가 연구실장과 만난 기자회견 당일 날, 그 책임자가 연구실장에게 당선자의 허락을 받았느냐고 재확인하려고 했는데 연구실장이 애매모호하게 얘기해버린 것입니다. 연구실장이 정치인이었다면, 당선자가 허락했는데 홍보책임자가 재확인할 필요가 무엇이 있느냐고 강하게 나갔을 것입니다. 일종의 기선 제압이죠. 그런데 그 학자분이 어정쩡한 태도로 나가니 홍보책임자가 재확인해야겠다고 나온 것입니다.

문제는 그때가 기자회견을 불과 몇 시간 남겨놓은 시점이었고, 당선자는 지방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 앉아 있어서 연구실장이 기자회견 전에 당선자를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홍보책임자의 전언을 들은 정무책임자가 당선자에게 전화를 걸어서 구체적 내용에 대한 설명 없이, 정치개혁연구실에서 기자회견을 한다고 하니 확인해달라고 했답니다. 당선자가 구체적 내용을 모르니 오케이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무산됐습니다.

그 자초지종을 전해 들은 저는 연구실장에게 그 일로 우리 정치개혁의 앞길이 매우 험난할지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머릿속에서 어쩌면 우리 정치발전 역사에 흠이 이미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정치개혁 청사진을 빨리 국민에게 알려야 국민의 지지도 받을 수 있고 추진동력을 얻을 수 있다는 제 평소 입장 때문이었습니다.

기자실로 내려갔습니다. 큰 소리로 저와 식사를 같이할 기자분 계시느냐고 물어보니, 세 명의 기자가 따라나섰습니다. 자원봉사자가 조금 오버했죠. ^^ 식사하면서 정치개혁연구실장을 잘 취재하면 건수가 있을 것이라고 귀띔해줬죠. 그런 식으로라도 알려야 한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지난 시간을 되새김해보면 안타까운 일들이 많았습니다.

저는 2005년 가을에 참여정부와 당시 여당에 가끔 자문하는 역할과 서울에서 활동을 접고 캘리포니아로 돌아왔습니다. 그 이후 우리나라 정치에 아무런 직접적인 관계도 하지 않고 무당파 “관찰자”로서 우리 정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제가 지난 정치에 대해서 적는 글들은 두서없이 소회를 뇌까리는 정도로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전체적으로 주요 사항들을 모두 고려하면서 글을 적으려면 시간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입니다. 양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의견교환은 환영합니다.

[수필] 기억의 편린과 추모 (노무현 전 대통령)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9/05/29)

조금 뒤에 발인이 시작되겠네요....

2003년 2월 대통령 취임식 초대장을 받았지만, 가족들을 하루라도 빨리 보고 싶어서 취임식 이틀을 남겨두고 캘리포니아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올랐던 기억이 납니다. 인터넷으로 취임식을 봤는데 노 전 대통령이 정치개혁을 언급하는 부분에서 만감이 교차하더군요. 한 달 정도 고생하면서 여러 학자와 함께 연구했던 정치개혁이 어느 정도는 성공할 수도 있겠다는 희망감이 섞인 복잡한 심정이었습니다.

그 이후 정치개혁이 이런저런 사정으로 제가 바랐던 만큼 잘 이뤄지지 않는 것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실망도 많이 했었습니다. 고인의 공적 활동에 대한 다양한 평가는 앞으로 내려지겠죠.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한 것 같습니다. 고인은 우리 민주주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습니다. 가슴으로 슬퍼하면서 보내드려야 하는 대통령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인은 유달리 눈물이 많았던 정치인으로 알려졌습니다. 영결식이 있는 오늘 비록 제 몸은 캘리포니아에 있지만, 그 눈물과 우리 민주주의를 생각하면서 추모의 시간을 보내렵니다.

"이제 편히 쉬소서."

오랜만에 노래 한 곡...


Eric Clapton/Tears in heaven

2009년 9월 21일 월요일

[수필, 정치] 내 탓인가, 네 탓인가?

남 탓하는 것이야 인간의 기본 속성 중 하나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일종의 자기방어 기제에 속한다고나 할까요. ^^ 그런데 유달리 남 탓을 잘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정치와 관련된 분들도 그 부류에 속한다고 저는 봅니다. 언론 매체를 통해서 이 점은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는데, 실제로 만나봐도 그렇더군요.

저는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에 결선투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해왔습니다. 한번은 평소 주장해왔던 결선투표제에 대해서 여당과 야당 연구소 학자들과 따로 의견교환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제 주장을 처음 대하시는 분을 위해서 그 요점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현행 대선제도가 채택하는 단순 다득표제는 유효표의 과반수를 획득하지 않아도 1위 후보가 당선됩니다. 이것은 민주주의 기본 원리인 단순과반수 원칙을 어길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보다는 상대적으로 더 민주적일 가능성이 큰 결선투표제를 채택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 제 주장의 핵심입니다.  (참조: http://ahnabc.blogspot.com/2009/08/blog-post_4732.html)

결선투표제(일차 투표에서 과반수를 획득하는 후보가 없으면 다득표한 두 명을 결선에 올려서 최종 당선자를 뽑는 방식)를 채택하여 기대할 수 있는 혜택으로서 여당에 대한 확실한 평가, 장기적으로는 지역주의 완화, 정당 간 연합을 거쳐서 궁극적으로는 정책대결 조장, 그리고 야당 후보의 자동 단일화가 예측됩니다. 현재 프랑스와 러시아가 대표적으로 대통령 선거에서 결선투표제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미국 대선도 단순과반수 선거인단을 1위 후보가 얻지 못하면 의회에서 대통령을 선출하므로 결선투표제를 포함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오래전 한 저녁 모임에서 우연히 여당 연구소의 한 학자와 마주 앉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던 도중에 야당 대선후보 단일화가 화제가 되었습니다. 저는 그 학자에게 야당 후보 단일화는 결선투표만 도입하면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분은 매우 진지한 태도로 설명을 모두 들은 다음 몇 가지 질문을 저에게 던졌고, 저는 성의껏 대답하였습니다. 그 여당 측 학자의 마지막 언급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장기적인 정치발전을 위해서 반드시 논의해야 하는 중요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다만, 현실적인 문제로 아마 야당에서 결선투표제를 하지 않으려고 할 것입니다."
즉, 제 주장은 맞지만 현실에서 채택되기는 어려울 것인데, 그 원인은 야당 쪽에 있을 것이라는 말씀이지요. 저는 이론적으로 현행 대선제도의 문제점을 분석했던 것이지 현실적으로 결선투표제 추진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당연히 미칠 수가 없었죠. 그저 논문이나 발표하고, 다른 학자들과 토론하고, 인터넷에 글도 올려서 간접적으로 정치인들에게 이런 것도 있다고 할 수는 있었겠죠.

결국, 국회에서 정치인들이 결선투표제 도입에 합의하느냐 마느냐가 관건이 됩니다. 정치인의 이해관계도 그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정치에 관한 아무리 좋은 분석이라도 정치인에게 별로 이익이 되지 않으면 그 분석은 현실적으로 채택되기 매우 어렵습니다. (이럴 때 여론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정치인들이 하기 싫더라도 전체적으로 이득이 되는 제도이면 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이 여론의 중요한 역할입니다. 투표도 같은 역할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 이익만 챙기는 정치인이 있으면 다음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낙선시키는 관행이 확립되면 정치인은 자신의 이익뿐만 아니라 유권자의 권익도 염두에 둘 것입니다.) 저와 대화를 나눈 그 학자는 결선투표제가 야당 측 정치인들의 이해관계와 어긋나므로 현실에서 채택되기 어렵다는 주장을 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이번에는 공교롭게도 야당 연구소의 한 학자와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또 우연히 대선과 야당 후보 단일화가 화젯거리가 되어서 제가 결선투표제를 그 학자에게 설명했습니다. 그분의 마지막 언급이 또한 인상적이고 흥미로웠습니다.

"아주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주장입니다. 이론상으로는 거의 하자가 없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다만, 현실적인 문제로 아마 여당 측이 결선투표제를 하지 않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 야당 연구소 학자의 입장은 결선투표제가 이론상으로는 옳은데 현실에는 채택하기 어려울 것이고, 그 원인은 여당 측에 있다는 주장이었지요. 어떻습니까? 두 학자의 주장이 재미있지 않습니까? 물론 두 학자가 여당과 야당의 공식 견해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치계의 분위기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지 않습니까?

"내 탓이오, 모두 내 탓이오."가 아니고 "네 탓이오, 모두 네 탓이오."라고 주장하는 것이 정치의 본질일까요?

[정치] 통합과 협력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9/03/06)

이 교수님 옥고를 읽을 때마다 놀라는 것이 여럿 있지만 그중에서 특히 핵심 개념을 쉽게 잘 설명하신다는 점이 있습니다. 이번 시론("피와 땀과 눈물")에서도 "협력"이라는 시의적절한 본질적인 문제를 알기 쉽게 던져주셨습니다.

정치인들이 흔히 애용하는 레토릭에 "통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통합 앞에 국민 혹은 사회를 왕왕 붙이죠. 그런데 저는 그 용어를 들을 때마다 정말 구시대적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독재/군부 정권 때는 물론이고 지난 참여정부와 현 정부에서도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되는 것을 보면 정치 레토릭으로서는 탁월한 효험이 있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무엇을 통합해서 어떤 결과를 이뤄낼 것인지 애매하기 짝이 없습니다. 통합은 하나로 모은다는 뜻입니다. 예컨대 남한과 북한으로 나뉘어 있다 통일이 되면 통합이죠. 그런데 굳이 한 단계 위의 하나로 모을 필요도 없고, 모을 가능성도 별로 없는 상황에서 통합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어색합니다.

구체적인 예로, 논란이 되는 미디어법이나 은행법을 살펴보면 찬성하는 쪽도 있고 반대하는 쪽도 있습니다. 이런 문제에서 통합을 이뤄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유신헌법을 선포했을 때 "우리식 민주주의를 하자!"라고 주장했던 것과 유사한 궤변을 동원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런 통합은 통합이 아니고, 오히려 분열이 될 가능성이 크게 보이는 것이 제 기우이면 좋겠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자유민주주의와 경제발전 단계를 고려하면 "통합"이라는 표현보다는 "협력"이라는 개념이 훨씬 더 유용합니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주요 사안에서 당사자들이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지킬 것은 지키는 협력을 유도하는 것이 더 적절합니다. "나를 따르라!"는 통합의 수사가 아니고, "내가 먼저 내놓겠다!"라는 협력 실천의 기폭제가 더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죠.

이 교수님의 시론이 이 중요한 화두를 쉽게 설명해주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잡담] 처량한 기분...

(서울에 있는 인터넷 친구에게 장난 전화를 한 이야기입니다. 올해 2월 7일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에 올려서 322개의 댓글을 기록했습니다. 언젠가는 그 기록도 깨지겠죠. ^^ 댓글이 너무 많아서 모두 옮기지는 못합니다.  출처: http://tinyurl.com/ahn-commentsrecord)


어제 오후에 장난기가 들어서 서울로 전화를 한 통 했습니다.

"ㄷㅎ이니?"
"예"

"지금 전화통화 괜찮나?"
"예"

"요즘 공부는 잘하고 있나?"
...... (우물쭈물)

"그런데 내가 누군지 알고 계속 예, 예 하냐? 누군지 알겠나?"
"모르겠는데요."

"그렇게 센스가 없어서 되겠나. 잘 생각해봐."
"글쎄요..."

"한번 알아맞혀봐."
"예?"

"조만간 다시 연락할 테니 그때까지 알아맞혀보라구."
"예."

이런 내용으로 장난전화를 끝냈습니다. 반말을 해서 미안하다고 글을 남겼죠.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제 목소리가 나이가 많이 든 것 같아서 존댓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갑자기 제가 처량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ㅜ.ㅜ 통화를 마치고 나서 생각해보니 다음과 같은 장난을 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말 놓아라. 네 친구다!" ^^

(거짓말은 아니죠. 게시판 친구가 맞으니까요.)

2009년 9월 20일 일요일

[음악] 첼리스트 장한나

인터넷에서 우연히 첼리스트 겸 지휘자 장한나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을 보았습니다. 첼로 연주 잘하는 것이야 전 세계에 알려진 것이니 별로 새로울 것이 없었지만, 활달한 성격을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첼로와 인생을 즐긴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첼로 천재가 공부도 잘해서 하버드에 입학했더군요. 첼로가 싫으면 언제든지 그만두라고 하셨다는 부모님 이야기도 인상 깊었고, 첼로 거장들에게서 레슨을 많이 받았지만 레슨비를 한 푼도 낸 적이 없다는 이야기, 첼로 레슨비는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으로 해라고 스승인 로스트로포비치가 말했다는 이야기, 그래서 pay it forward를 하려고 지휘를 한다는 이야기 등이 아직 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인간미가 있어서 좋았습니다. 장한나가 13살 때 로스트로포비치 콩쿨에서 대상을 받고 케네디 센터에서 연주한 동영상이 있네요. 첼로를 무슨 바이올린 다루듯이 하는군요. 통통 튀는 느낌이 드는 연주가 정말 훌륭합니다.



성인이 된 장한나가 연주하는 림스키-코르사코프의 "꿀벌의 비행"입니다.
중간에 더블 베이스가 다른 곡을 연주하는 우스개를 넣었군요.

2009년 9월 19일 토요일

[음악]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9/03/15, http://jkl123.com)

토요일 아침입니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음악을 듣는 여유를 부려볼까 합니다.

영화 아마데우스를 보면 터키 복식을 갖춘 등장인물들의 흥겨운 장면이 있습니다. 터키를 배경으로 한 모짜르트의 오페라 "세랄리오로부터 납치"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Wolfgang Amadeus Mozart's Turkish Finale
"Die Entfuhrung aus dem Serail" ("The Abduction from the Seraglio") von Wolfgang Amadeus Mozart .
Taken from Milos Forman's "Amadeus".

여기서 "터키풍(Turkish)"이란 터키 전통음악이라는 뜻이 아니고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터키 군악대의 음악 스타일을 유럽식으로 해석해서 원용한 것입니다. 모짜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5번도 마지막 3악장 론도가 터키풍이라서 Turkish라는 부제를 붙이곤 합니다.


Saturday 12 August 2006, Mozart Violin Concerto No. 5 in A major K219,
Artists: Janine Jansen violin, European Union Youth Orchestra, Vladimir Ashkenazy conductor
BBC Proms 39 18.30 - 20.45: Royal Albert Hall

가장 유명한 모짜르트 터키풍 음악은 역시 "터키 행진곡"이죠.^^ 피아노 소나타 A장조 K331의 3악장 Rondo alla Turca입니다.


Mozart 3rd movement from Piano Sonata A major K.331 - ALLA TURCA. Allegretto (Turkish March). Massimiliano Ferrati live recording (2006) Treviso Teatro delle Voci BORGATO GRAND PIANO

베토벤의 터키 행진곡도 있죠.


Evgeny Kissin plays Beethoven´s Turkish March, piano arrangement by Anton Rubinstein. Live at London, 1997.

흥겨운 주말 보내시기 바랍니다.

[잡담] 캘리포니아 방문 기념 말풍선

(아래 신 교수님 가족의 방문을 기념하여 제가 만든 말풍선입니다.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9/01/11)

캐릭터 섭외에 흔쾌히 응해주신 신 교수님 가족께 감사드립니다.^^






<배경 설명>

첫 번째 ~ 세 번째 컷: 캘리포니아 소재 Pescadero State Beach.

마지막 컷: 캘리포니아 요세미티 국립공원 Mariposa Grove 소재 Wawona Tunnel Tree. 높이 69미터, 둘레27 미터, 2,300여 살로 추정. 1881년에 터널을 뚫은 Giant Sequoia 나무였는데 1969년 폭설로 넘어졌음.
출처: http://www.alamedainfo.com/Wawona_Drive_Through_Tree_Yosemite_CA_002.jpg

[잡담] 신 교수 방문, 보고드립니다.

(올해 초에 캐나다에서 귀한 손님이 오셨습니다. 캐나다 웨스턴 온태리어 대학교에서 가르치고 계신 신 교수님 가족이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하면서 저를 찾아주신 것이죠.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에서 친분을 쌓았기 때문에 만남을 알리는 글을 그 게시판에 올렸습니다. 2009/01/06)

선배님, 오늘 훤칠한 신 교수가 어여쁜 부인과 잘 생긴 아들을 대동하고 방문했습니다. 함께 스탠포드 캠퍼스도 구경하고, 점심도 같이했습니다. 매우 반가워서 제가 주접을 제법 떨었습니다. 인증샷과 함께 보고드립니다.

p.s. 게시판에서 약속어음을 여러 장 발행했는데, 이제 겨우 한 장을 처리했습니다.^^


(스탠포드 Quad의 Chapel을 배경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