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파병안이 국회의 대다수 지지를 받아서 통과되었지만, 아직도 많은 정치인과 국민은 파병 결정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공식적인 파병 결정이 대한민국의 도덕성에 큰 흠집을 내었다는 의견은 결국 국민분열 양상으로 갈 수도 있다는 우려로도 이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 시점에 우리는 자유민주주의가 현실 세계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이라크 파병 결정에 대한 지지와 비판을 평가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는 상대주의에 입각한 정치 이념이다. 이것은 과연 절대적 자유가 현실에서 가능한지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면 자명하다. 절대적 자유는 각 개인의 생각 안에서나 가능한 것이고, 여러 사람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는 "나"와 "남"의 자유가 어긋날 수 있는 상대적 자유일 수밖에 없다. 자유민주주의는 어떤 정치적 선택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거의 없다."는 것을 원론적으로 인정한다. 종교에 있어서는 어떤 행위가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편이지만, 절대자를 인정하지 않는 자유민주주의적 정치란 결국 어느 특정인 혹은 집단의 생각이나 제안을 절대적 진리로 받들 수는 없다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를 합리적 선택으로 재해석한 윌리엄 라이커(William H. Riker)교수는 룻쏘의 "일반의지"를 자유민주주의와는 잘 융합할 수 없는 절대성의 가면을 쓴 것으로 설파하였다. 그렇다면 자유민주주의에서 정치적 선택은 어떤 것이나 정당화될 수 있느냐는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자칫 잘못 생각하면 자유민주주의에서는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 없으므로 아무렇게나 결정해도 된다는 식으로 유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적용되는 절대적으로 옳은 기준은 없더라도 일정한 원칙을 잣대로 채택하여 어느 것이 상대적으로 옳은 것인가라는 논의는 자유민주주의에서 항상 가능하다.
이라크 파병안 통과라는 정치적 선택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그 사안에 적용하는 특정 잣대가 필요하다. 파병을 지지하는 견해는 정치적 선택의 현실적 한계와 손익계산서라는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반면, 파병을 반대하는 견해는 이라크 전쟁의 비도덕성과 반국제법성을 그 판단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것은 자유민주주의적 정치 행위에서 그 평가 기준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고 다른 기준을 다양하게 제시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때에는 어떤 기준이 더 중요한지, 각 주장이 과연 일관성이 있고 논리적인지 등을 따져서 타협되면 바람직하겠지만, 만약 합의가 되지 않는다면 매우 곤란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갑과 을이 논쟁한 다음 자유민주주의적으로 갑의 의견을 최종 결정으로 채택했는데, 을은 계속해서 자신의 평가 기준을 고수하겠다고 하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을의 의견을 존중하여 을을 계속 설득하지만, 사회적 선택으로는 채택하지 않는 것이 옳다. 즉, 을의 견해가 절대적으로 옳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으므로 "네가 옳을 수도 있지만, 지금은 너의 의견을 전체 사회적 결정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음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정도가 자유민주주의적인 결론이 될 것이다.
몇 명 되지 않는 소수의 인원으로 구성된 사회라면 어떤 사회적 결정이 쉽게 내려질 수도 있다. 그러나 현대 국가처럼 매우 많은 인원이 전체 결정에 참여하는 경우에는 그 결정과정이 복잡하고 어떤 원칙이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지 애매모호할 때가 잦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최종 결정이 절대적으로 옳은지를 보려고 하기보다는 국민이 그 결정을 좋아하는지 아닌지를 더 많이 참조하는 것이다. 이라크 파병안을 직접민주주의의 한 방식인 국민투표에 부치자는 주장이 그런 인식의 현실적 방안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현대 민주주의의 기본은 대의민주주의이므로 이라크 파병안을 국회의 의결에 붙여서 국민적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이 국민의 선호도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정당하다. 그렇다면 그 결정에 반대했던 정치인이나 국민은 자신의 뜻이 옳음을 개인적으로 믿더라도 정당한 절차에 의한 국민적 결정은 존중해야 한다. 물론 파병을 찬성한 정치인이나 국민도 파병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식으로 강변해서는 안 되고, 소수 의견으로서 파병 반대를 충분히 존중해야 한다. 단, 사회적 결정은 파병이다. 자유민주주의에서는 상호존중의 원칙을 항상 잊지 않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파병에 대한 찬반 의견이 국민분열로 가지 않고 민주주의의 자연스런 모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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