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10일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에 올린 글을 정리했습니다.)
[설명] 사회과학의 합리성 개념에 대해서 설명하는 글이다. 주류 경제학과 정치학의 합리적 선택이론의 토대를 이루는 합리성 개념은 논란이 될 때도 있지만, 매우 유용한 개념인 것은 틀림없다. 어떤 사회가 합리적 인간이 주로 모여 있다고 해도, 전체 사회의 결정은 비합리적으로 내려질 수 있다. 대운하나 4대 강 사업이 그 예이다. //
(1) 엄정한 합리성 개념
오늘은 경제학의 전가보도, 합리성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 교수님께서 미시경제학 5판, 68 쪽에서 72 쪽까지 상세히 설명하고 계신 것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미시경제학은 합리적 행위자를 다룬다는 것으로 간주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일상 용어로 합리성은 이성적인 좋은 것이라는 조금 애매모호한 뜻을 내포하고 있지만, 경제학이나 정치학의 합리적 선택이론에서 말하는 합리성은 그와 같이 엄정하게 정의합니다. 그 함의는 행위자가 이기적인 개인주의자라는 뜻입니다.
(2) 현실과 모형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인간이 그런 합리적인 인간이 아닌 것은 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면 자유주의에 어긋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펜실베니아 주 산골에 가면 외부와 접촉을 꺼리면서 매우 청빈하게 살아가는 종교 공동체가 있는데(영화 위트니스에 나오는 그런 마을이죠), 그런 사회에서도 마을 주민들이 모두 이타적이라든지, 이기적이라든지 일반화시키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따라서 경제학에서 가정하는 합리적 경제 행위자는 "현실" 그 자체 얘기가 아니고 "모형" 얘기라고 봐야 될 것입니다.
현실에서는 합리적, 비합리적 행위자가 모두 존재하지만, 경제학 주류 모델에서는 비합리적 행위자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비합리적 행위자를 경제학 주류 모델로 분석해봤자 별 신통한 답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사과보다 감, 감보다 배, 배보다 사과를 더 좋아한다면 효용함수를 어떻게 그려낼 수 있겠습니까. 또 무엇을 선택할지 어떻게 예측할 수 있겠습니까. 그냥 다트로 찍어서 예측하는 식으로 할 수 밖에 없죠. 사과, 감, 배 순서로 좋아한다고 해야 그 사람은 사과를 먹을 것이라고 예측 가능한 것이죠. 그렇게 가정해야 과학적으로 일반화된 지식의 축적이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모형이 현실을 얼마나 적절하게 반영하고 있는가도 관건이 될 것입니다. 모형은 합리적 행위자를 가정했는데, 현실에서는 주로 비합리적 행위자들이 오리무중으로, 혹은 랜덤하게 움직인다면 설명이나 예측이 제대로 되지 않겠죠. 그런데 다행히도 경제 현상은 인간의 원초적인 탐욕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현실에서 관찰해봐도 합리적인 인간군상의 모습은 쉽게 드러납니다. 만 원권 보다는 새로 나온 오만 원권을 대부분 좋아하시겠죠.
정치 현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치에서는 손에 잡히지 않는(intangible) 부분도 상당히 개입되지만, 인간이 일반적으로 추구하는 정치적 자원이 분명히 있습니다. 공금의 예는 말할 것도 없고, 권력욕도 인간사회에 편재되어 있다고 봐야죠. 따라서 다른 분야는 제가 과문해서 모르겠는데, 적어도 경제학과 정치학에서 합리성을 가정하는 것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3) 정치학과 합리성 개념
주류 경제학에서는 이런 합리성 문제를 갖고 시비가 걸리는 일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정치학에서는... 아직까지도,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비일비재할 것입니다. 그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정치학이 여러 분과로 나뉘는데 보통 정치 사상/이론, 비교 정치, 국제 정치, 한국(미국은 미국) 정치, 정치학 방법론, (실증정치이론=합리적 선택), 등 다섯 (여섯) 분과로 나뉩니다. (미국에서는 괄호 안의 분과도 대세이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표시했습니다.) 예컨대 비교 정치는 여러 나라의 정치 행태를 비교하는 것이라서 굳이 합리적 행위자를 가정하지 않아도, 겉으로 드러난 데이타를 갖고 충분히 연구할 수 있습니다. 물론 특정 정치 행태가 왜 나왔느냐를 분석할 때는, 저로서는 합리적 행위자를 가정하는 것도 괜찮다고 봅니다.
따라서 연구자가 어떤 세부 전공에서 주로 활동하느냐에 따라서 합리성을 고민할 필요가 없는 경우가 정치학에서는 충분히 가능하죠. 정치사를 주로 연구한 분들은 역사학에 가까운 방법론을 동원합니다. 역사 기술을 하는데도 일종의 틀로서 합리성 잣대를 이용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훌륭한 작품이 나올 수 있죠. 그러나 과학은 아닐 겁니다.
(4) 정치학의 합리적 선택이론
정치학자들 사이에서도 정치는 있습니다. 합리적 선택이론이 무슨 절대 진리도 아니니, 예컨대 미국 정치학계에서 주류가 되려면 더 많은 학자들이 동참해줘야 되었을 것 아닙니까. 그래서 처음에는 전통적 방법론을 고수하는 쪽과 새 물결인 합리적 선택 쪽이 세게 부딪혔습니다. 합리적 계란이 나중에 전통적 바위를 깨는 현상이 벌어진 것을 참조하면, 합리성이라는 가정이 정치학에서도 과학적인 일반화된 지식을 축적하는 데 분명히 장점이 많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문제는, 합리적 선택이론(공공선택이론, 게임이론, 공간모형이론)이 전부 모형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합리적 선택이론은 일단 모형을 분석하고, 그 다음에 현실을 이해하고, 설명하고, 예측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전통적 방법론을 활용하는 학자들은 현실을 곧바로 쳐다본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연구자의 연구 프레임이라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마저 모형으로 간주하지는 않기로 합시다. 그것까지 모형으로 끌어들이면 투키디데스도 합리적 선택이론 쪽에 속한다고 강변할 수 있습니다. 용의자의 딜레마 게임을 활용했다고요. 제가 말씀드리는 합리적 선택이론은 경제학과 그 방법론이 동일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5) 합리적 선택이론에 대한 전통주의자들의 비판
따라서 전통적 방법론 쪽은 합리적 선택이론 쪽을 비판할 때, 모델이 엉성하다는 뜬 구름 잡는 얘기를 꺼내는 경우가 제법 있습니다. 현실을 직접 쳐다보니 엄청 복잡하죠. 그런데 게임이론에 나오는 2x2 보수행렬을 보니 한심스럽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단순한 표 하나로, 그렇게 많은 정치 현상을 설명하려는가 하시면, 시비가 걸립니다. 그 분들은 수요 공급 곡선은 시비걸지 않습니다.^^ 기득권이 있는 곳에서 복잡한 현실 중 일 부분을 쓰윽 꺼집어 내어서, 이런 것도 있는데...라고 말씀하시죠.
모형은 다른 모형과 비교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리고 모형을 이용한 과학적 분석이 무엇을 보여줬는지를 따져보는 것이 적절한 평가이지, 모형이 현실과 얼마나 다른가를 갖고 시비가 붙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결과가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미국 학계에서도 60년대, 70년대에는 조각배가 록키 산맥에 걸리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전통 쪽과 합리 쪽이 서로 다른 얘기를 하면서 감정 싸움에 가까운 일들이 벌어졌다는 것이죠.
(6) 합리성 찬양론자 BDM 교수님
제 미국 은사이신 Bruce Bueno de Mesquita(BDM) 교수님은 평소에는 그렇게 자상하실 수 없습니다. 운전수 노릇까지 자청하시면서 학생들을 캘리포니아 해안을 구경시켜주신 적도 있습니다. 저는 뒷자리에서 편하게 딩가딩가했죠. 그런데 그런 유하신 분이 세미나 장에서, 적절한 근거도 없이 당신 모델이 현실과 다른데...라는 얘기를 들으시면, 그 날은 난리가 납니다. 얼굴이 벌개지면서 특유의 달변으로 우렁차게 당신의 연구를 방어합니다. 궁금하시죠? 한번 보십시오. 2009년 2월 캘리포니아에서 대중을 상대로 짧게 합리성을 설명하고, 이란을 어떻게 예측할 것인지에 대해서 공개 강좌를 하신 동영상입니다.
“이란의 미래를 예측하는 BDM (Bruce Bueno de Mesquita predicts Iran's future.)”
청산유수시죠? 경제학자들이 보시면 뭐하러 합리성을 저렇게 장황하게 설명하나, 그냥 인간들이 합리적이라고 한 마디만 하면 될 것을...이라고 말씀하실 수도 있지만, 정치학이나 정치 현상을 바라보는 일반인들은 안타깝게도 아직 그 수준에 이르지를 못했습니다.
17분 경에 마무리 멘트로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한 줄 요약은, 뭔가 옳다고 믿는 일을 할 때, 주위에서 모두 당신에게 불가능이라고 얘기하면, 그것은 당신들이 잘 몰라서 그런 것이다라고 되받아 돌려주라는 말씀입니다. 합리적 선택이론이 살아남은 방법을 한 마디로 요약하신 것이고, 저에게 건설적 비판은 필요하니, 네가 맞다고 믿으면 주위에서 모두 반대해도 감행해라고 얘기하신 그 맥락입니다.
자유주의적 아이디어입니다. 양심, 표현의 자유와 함께 애로우(Arrow) 교수님의 보편적 영역(Universal Domain)도 함께 들어가 있습니다. 권위주의에서는 가공의, 정체 불명의 권위에 따라가게 되겠죠. 자신의 양심을 거역하면서까지 말입니다.
(7) 현실에는 비합리성도 존재함
BDM 교수님이 비합리적 행위자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현실에서는 충분히 존재할 수 있고, 정치 현상에 비합리성이 개입할수 있다는 것은 당연히 아시죠. 이 교수님께서 미시경제학 교과서에 행태/행동 경제학을 분석하고 계신 것을 봐도 이 점은 명확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수요 공급 곡선에 비합리성을 넣어서 분석할 수는 없는 것이죠. 따라서 합리성이라는 도구를 언제,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위하여 활용할 것인가라는 점이 핵심입니다. 현실과 다른 것은 원래 그렇습니다.
정치나 경제에서 몫(stake)이 크게 걸리면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계산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겠죠. 엄청난 부자가 매일 로또를 사는 그런 비합리적인 경우도 있기는 있을 것입니다. 비합리적 행위는 비합리적 연구 방법론을 적용하면 될 것입니다. 그것이 심리분석이 되었든, 최면술이 되었든 말입니다.
(8) 드디어 본론
휴~ 또 서설이 이렇게 길어졌습니다. 본론은 짧게 말씀드릴게요. 자유민주주의가 합리적인 개인을 상정합니다. 직관적으로 자유주의는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유의 극대화라고 표현할 수 있겠죠. 민주주의에서 합리성은 조금 애매모호합니다. 절대적인 기준으로 사회적 합리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을 애로우 교수님이 증명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니까요. 그래서 민주주의는 다수의 지배라는, 듣기에 따라서 애매모호한 개념을 사용합니다.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과반수 득표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과반수인지 아닌지를 형식적으로나마 확인하려면 결선투표가 필요했죠. 그래도 다수의 지지를 합법적으로 받은 것으로 간주하여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만약입니다, 결선투표를 해서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지 못 했다면, 현행 대선제도가 심각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단순 과반수 원칙에 어긋나는 대통령 당선자가 나왔다는 것을 의미하니까요. 단순 과반수 원칙이란 후보가 두 명일 때, 보다 많은 득표(자동으로 과반수)를 한 후보가 당선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이 대통령의 경우는 이렇게 1, 2 등이 결선에서 바뀔 가능성은 높지 않았던 것 같지만, 앞으로 그런 비합리적인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겠습니다.
이런 경우가 발생하면, 개인들은 합리적인데, 사회는 비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내릴 수 있습니다. 대운하나 4대강 살리기를 보시죠. 각종 여론조사에서 추진하지마라는 개인들의 합리성이 집단으로 표출된 것으로 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합리적 사회가 되려면 그 개인들의 선호가 제대로 사회적 선호로 관철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그렇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합리적인 개인과 비합리적인 사회로 보입니다만...
이 교수님께서 <쿠오바디스 한국 경제>에서 제발 합리적으로 하자는 말씀을 통절하게 하시죠... 그 뜻을 그들은 제대로 이해나 했을까요?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힘찬 하루를 보내시기 바랍니다.) //
[토론]
[회원1] 일반 대중은 정책에 대한 적절한 이해를 하고 찬반을 하지 않는다. 특정 지역에서는 감정적 투표를 한다. 따라서 합리적 인간의 가정은 낭설이라고 생각한다. 조중동에서 종부세를 좌파정책이라고 덮어씌우면 서민이 따라가는 것을 봐도 합리성 가정은 비현실적이다. 정도 차이는 있지만, 미국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필자] 제가 원용한 합리성 개념은 회원1님이 생각하시는 그 합리성과 일치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경제학에서 합리적이라 함은 자신의 선호에 따라서 효용을 극대화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옳고 그른 기준이나, 정책을 잘 따지는 기준이 아니고, 좋고 싫음이 기준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회원2] 경제학을 처음 접했을 때 혼동했던 부분이다. ‘합리적’을 ‘合理’가 아닌 ‘合利’로 생각하면서 공부했다. 언론이 시민의 선호를 왜곡할 때, 그것이 시민의 진정한 이익을 위하는 것이 아님을 알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필자] 회원2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합리적이지만 비이성적인 혹은 감정적인 투표 행위가 시정될 수 있도록 사회지도층이나 언론에서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일부 언론을 보면 정치인보다 더하죠. 이런 경우는 건전한 이기주의가 아니고, 편협한 이기주의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장기적으로는, 편협한 이기주의는 오히려 자신에게 손해를 더 끼친다는 것이 제 입장입니다.
[회원3] 우리나라 정치에서는 오로지 ‘지역’만이 절대적인 고려 요소라서, 합리성이란 단어는 너무나도 멀게만 느껴진다. //
[토론 소감] 이 글에서 합리적이라는 용어는 좋고 싫은 선호에 관한 것임을 밝혔음에도, 회원1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이성적이라는 의미로 합리성을 받아들였다. 회원2는 경제학을 공부할 때 합리성 개념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하면서, 원 글에서 필자가 뜻한 합리성을 제대로 설명했다. 회원3도 회원1과 비슷한 오해를 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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