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이 재신임 여부를 국민에게 묻겠다고 한다. 그 명분은 국정수행에 있어서 대통령의 도덕성이 필수적이라는 전제하에, 대통령의 최측근 참모가 부패했다고 검찰의 조사결과가 나오든 아니든, 국민의 대통령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져 있음이 분명하니 이 상태에서 국정 책임자로서 대통령의 도덕성을 국민이 인정해줄 것인지 아닌지를 알아보겠다는 것이다.
아쉬운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정치에도 도덕성은 있다. 청렴할수록, 원리 원칙을 존중할수록, 불편부당할수록 그 도덕성은 제고된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도덕성은 유교, 불교, 기독교, 천주교, 천도교, 혹은 일상생활의 도덕성과 다른 점이 많다는 것도 사실이다. 대통령은 국헌을 준수하고 국가의 발전을 도모해야 할 책임이 있다. 국정 운영이 바라는 대로 수행되지 않으면 그 원인을 분석하고 고칠 것은 고쳐 나가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 책임과 의무가 일반적인 도덕률보다 오히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일찌감치 설파한 것이 마키아벨리이다.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시기의 이탈리아의 군주들과 현재 한국의 대통령은 내용상 크게 다르지만, 국정 최고책임자라는 측면에서 근본 원리는 유사한 것이 많다. 군주론에서 마키아벨리가 주장한 것은 국가가 존재해야지만 군주의 사랑도 있고 도덕도 있는 것이지, 국가가 망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었다.
정치권의 부패는 이제는 상식에 가깝다. 현 정치권이 부정부패라는 측면에서 합격점을 받는 도덕성을 갖고 있다고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표적 정치인인 노 대통령도 그 문제에 있어서는 자유롭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정치권의 관행이 그랬으니 노 대통령이 원하지 않았어도 대선 참모들의 일부는 현실성을 고려하여 부정적인 정치자금을 모았을 가능성이 있다. 그것은 반대진영도 마찬가지이다. 정치권의 부정부패를 절대적인 도덕성의 기준에 의하여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앞으로 바로잡아 나가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그만이지, 헌법에 명시된 조건이 아닌 도덕성을 문제 삼아서 대통령직을 거는 것은 뭔가 석연치 않은 결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치는 결과와 상대성의 논리가 강하게 지배하는 영역이다. 아무리 국정수행에 난맥상이 보이더라도 적절한 리더십을 발휘하여 추스를 것은 추스르고, 고칠 것은 고치면서 정책으로 승부를 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옳다. 절대적으로 옳은 정책은 있을 수 없다. 정책을 수행하여 이전보다 상대적으로 더 바람직한 결과로 조금씩 개선해 나가면 그것이 잘 된 정치이다. 대통령 재신임 절차에서 합격점을 받았다고 해서, 대통령의 도덕성이 확보되는 것도 아니고 정책에서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낙관할 수도 없다.
국헌에도 명시되어 있지 않은 재신임 여부에 대한 문제제기는 철회되는 것이 마땅하다. 노 대통령이 설정한 역사적 방향성에 대해서 기대를 거는 국민이 아직은 많다. 스스로 권력의 칼을 놓았으며,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을 많은 부분에서 포기했고, 중앙의 권력을 지방으로 이양하는 매우 중요한 작업을 추진하는 이 시점에서, 더 고심해야 할 점은 세부적인 전략/전술이지 애매모호한 도덕성 논란이 아님을 노 대통령은 깨달을 필요가 있다.
헌법에 규정된 바대로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권한을 행사하고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 이 시점에서 노 대통령에게 가장 필요한 정치적 도덕성이다. 대통령이 스스로 인정한 신뢰도 하락 원인이 무엇인지를 뼈저리게 성찰하여 바꿀 것은 바꾸어서 새 출발을 하는 기분으로 국정운영에 임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대통령을 보좌했던 측근들은 대통령이 그런 엄청난 결심을 국민에게 발표하게끔 사태를 악화시킨 원인을 잘 분석하여 처신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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