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노 대통령과 소위 주류 정치학자들 사이의 비협조관계가 학자들 잘못이냐, 참여정부 잘못이냐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정치가 매우 상대적인 개념임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양쪽 모두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학자 문제는 어느 정도 짐작하실 수 있을 테니, 참여정부 쪽과 관련된 일화를 말씀드리죠.
하루는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라는 사람과 점심을 같이했습니다.
측: “대통령을 도와주십시오.”
나: “이미 도와 드리고 있습니다. 인수위에서 자원봉사도 했습니다.”
측: “코드에 딱 맞춰서 도와주십시오.”
나: “그렇게는 못 합니다. 제가 대통령의 스탭이면 그렇게 할 수도 있겠지만, 학자 배경을 가지고 외부에서 활동하는 사람으로서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 있다고 판단하면 그대로 자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물론 그 측근이 노 전 대통령 자신은 아니지만, 그 정도면 분위기를 대충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다른 일화가 또 생각나는군요. 취임식이 있었던 직후에 새로 생긴 위원회 측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특정 프로젝트를 맡아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주로 연구한 분야가 아니라서 2주 정도 내용을 검토한 다음에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겠다고 했습니다. 학자인 위원장은 그 프로젝트가 대통령의 아이디어이고 따라서 대통령의 관심이 매우 높다고 설명해줬습니다.
검토했습니다. 취지는 매우 훌륭한데 추진방안이 무리가 있다는 것이 제 판단이었습니다. 그래서 2주 뒤에 위원장을 만나서 무리한 프로젝트이므로 추진하지 않는 것이 좋으니, 대통령께 그렇게 보고하고 설득하라고 조언했습니다. 그 위원장 말씀이 대통령이 그렇게 설득될 스타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는 크게 실망했습니다. 학자로서 제일 가까이 있는 사람인데 그런 식으로 얘기하니 어떤 학자가 대통령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을 것인지 안타까웠습니다. 그 프로젝트는 이런저런 변형을 거쳤지만 원래 아이디어대로는 현실화되지 못했습니다.
그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홍보책임자가 연구실장과 만난 기자회견 당일 날, 그 책임자가 연구실장에게 당선자의 허락을 받았느냐고 재확인하려고 했는데 연구실장이 애매모호하게 얘기해버린 것입니다. 연구실장이 정치인이었다면, 당선자가 허락했는데 홍보책임자가 재확인할 필요가 무엇이 있느냐고 강하게 나갔을 것입니다. 일종의 기선 제압이죠. 그런데 그 학자분이 어정쩡한 태도로 나가니 홍보책임자가 재확인해야겠다고 나온 것입니다.
문제는 그때가 기자회견을 불과 몇 시간 남겨놓은 시점이었고, 당선자는 지방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 앉아 있어서 연구실장이 기자회견 전에 당선자를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홍보책임자의 전언을 들은 정무책임자가 당선자에게 전화를 걸어서 구체적 내용에 대한 설명 없이, 정치개혁연구실에서 기자회견을 한다고 하니 확인해달라고 했답니다. 당선자가 구체적 내용을 모르니 오케이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무산됐습니다.
그 자초지종을 전해 들은 저는 연구실장에게 그 일로 우리 정치개혁의 앞길이 매우 험난할지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머릿속에서 어쩌면 우리 정치발전 역사에 흠이 이미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정치개혁 청사진을 빨리 국민에게 알려야 국민의 지지도 받을 수 있고 추진동력을 얻을 수 있다는 제 평소 입장 때문이었습니다.
기자실로 내려갔습니다. 큰 소리로 저와 식사를 같이할 기자분 계시느냐고 물어보니, 세 명의 기자가 따라나섰습니다. 자원봉사자가 조금 오버했죠. ^^ 식사하면서 정치개혁연구실장을 잘 취재하면 건수가 있을 것이라고 귀띔해줬죠. 그런 식으로라도 알려야 한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지난 시간을 되새김해보면 안타까운 일들이 많았습니다.
저는 2005년 가을에 참여정부와 당시 여당에 가끔 자문하는 역할과 서울에서 활동을 접고 캘리포니아로 돌아왔습니다. 그 이후 우리나라 정치에 아무런 직접적인 관계도 하지 않고 무당파 “관찰자”로서 우리 정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제가 지난 정치에 대해서 적는 글들은 두서없이 소회를 뇌까리는 정도로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전체적으로 주요 사항들을 모두 고려하면서 글을 적으려면 시간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입니다. 양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의견교환은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