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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 2일 수요일

[정치] 2008 미국 대선 (1)

(2008년 9월 28일부터 11월 5일까지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에 올린 미국 대통령 선거 관련 글 시리즈입니다.)

1. 옥스포드와 미국 대선 첫 번째 토론 (2008/09/28)

남부 미시시피주의 조그만 대학 도시인 옥스포드에서 미국 대선 첫 번째 토론이 있었습니다. 옥스포드라고 하니 제가 job interview를 하러 오래전에 방문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주립 대학교 University of Mississippi를 흔히 Ole Miss라고 부릅니다. Ole Miss의 Miss는 미시시피의 준말이 아니고 옛날 노예들이 주인마님을 부를 때 사용했던 용어라고 합니다. 1897년 첫 학생연람이 발간될 때 이름을 공모했는데 Ole Miss가 당첨되었고, 그 이후 학교 애칭으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정식 명칭보다 Ole Miss 애칭이 언론에서는 더 많이 사용됩니다.

테네시주 멤피스 공항에서 남쪽으로 1시간 반 정도 자동차로 이동해서 미시시피주 북쪽 옥스포드에 있는 Ole Miss를 방문했습니다. 도착한 다음 날 그 학교 교수님의 안내를 받아서 조그만 전통 남부식 식당에 아침식사를 하러 갔는데, 식당에 들어서니 식사를 하고 있던 모든 손님들(100% 백인)이 일제히 저를 쳐다보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매우 당황했습니다. 동양인이 그 식당을 들어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을 테니 그런 반응이 나왔을 것입니다. 동네 구경 중에 흑인들의 집단거주지(Ghetto)를 볼 수 있었는데 성냥갑 모양의 군대막사를 연상시켰습니다. 노예 해방은 오래전에 되었지만 많은 흑인은 아직 하층민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저녁때 우리나라 사람들끼리 테니스를 했는데, 솔방울이 제법 날아오더군요. 어떤 때는 백인들이 돌멩이를 던질 때도 있다고... 남부에는 아직도 눈에 보이는 인종차별이 남아있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살아본 동부, 중서부, 서부에는 눈에 드러나는 그런 차별은 없습니다.

옥스포드는 윌리엄 포크너가 마지막 저작 활동을 한 집이 있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조그만 가정집이더군요.^^ 안내한 유학생의 말이 하루는 서울에서 오신 한 영문학자 교수님을 그 집에 안내했더니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셨다고 하더군요.

들어가는 말이 쓸데없이 길어졌습니다. 분량을 어느 정도 채웠으니 본 주제에 대해서는 짧게 말씀드려도 되겠습니다. ^^

재미없는 토론이었습니다. 크게 최근 금융 위기와 외교안보에 대해서 토론을 했는데, 언론 보도에서 읽으셨듯이 별실수도 없었고, 별 결정타도 없는 밋밋한 토론이었다는 것이 제 감상입니다. 미국 언론에서는 오바마가 미세하게 이긴 토론으로 보는 것 같은데, 그것은 매케인이 토론을 연기하려다 허겁지겁 토론에 임한 것을 고려하면 오히려 매케인이 선방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원래는 외교안보만 다루려고 했지만, 금융 위기가 초미의 관심사여서 첫 부분에 7천억 달러 구제안과 연방 재정에 대해서 질문이 나왔습니다. 이 부분에서는 오바마가 당연히 점수를 땄습니다. 점수를 더 얻을 수도 있었지만, 오바마가 매케인을 완전히 뭉갤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오바마도 연방 정부의 구제안에 대해서 모니터링을 철저히 해야 한다는 태클을 걸고 있기는 하지만 원칙적으로는 찬성하고 있죠.

쟁점 자체의 구조적 한계는 외교안보 영역에서도 드러났습니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매케인은 이라크 전쟁을 완전한 승리로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고, 오바마는 이라크 전쟁을 될 수 있으면 빨리 마무리 짓고 아프가니스탄에 병력을 증파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토론 와중에 노련한 매케인이 오바마의 외교안보 분야의 내공 부족을 직간접적으로 찌르는 전술을 자주 사용하더군요. 대표적인 예가 오바마가 쿠바나 이란과 같은 국가 원수들과도 전제 조건 없이 만나겠다고 한 적이 있는데, 매케인은 그런 발상이 경험 부족으로 말미암은 "위험한" 것이라고 공격한 것이죠. 오바마는 전제 조건이 사전 준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매케인을 자문했던 키신저도 그렇게 발언한 적이 있다는 식으로 반박했고, 키신저의 언급은 국가 정상들 얘기가 아니라는 매케인의 재반박이 있었습니다.

제 감상을 요약하자면, 첫 번째 토론의 경제 부문에서는 오바마가 약간 앞섰고, 외교안보 부문에서는 매케인이 약간 앞서서 전체적으로는 무승부의 별 재미 없는 토론이었습니다. 최근 금융 위기는 오바마에게 유리한 소재이고, 그동안 있었던 오바마의 외교안보 부문 내공 부족 논란은 매케인에게 유리한 소재임을 참작하면 서로 선방한 것으로 끝난 1회전이었습니다.


2. 미국 부통령 후보 토론 감상 (2008/10/05)

토론의 상세 내용은 언론보도에 잘 나와 있으니 생략하고, 제 감상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번 토론의 관심사는 역시 지난주에 있었던 페일린 해프닝이 재현될 것 인지였습니다.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아서 공화당 지지자들이 한숨 돌렸다고나 할까요. CNN 조사에 의하면 기대했던 것보다 토론을 잘했다는 평가가 페일린은 84%, 바이든은 64%가 나왔습니다. 역설적으로 페일린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서 반사이익을 얻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페일린이 사퇴해야 한다는 공화당 지지자 내부의 일부 의견은 한층 약화될 것으로 모두 예측하고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평가하면 60:40으로 민주당 바이든이 우세한 토론이었습니다. 상원에서 오랜 연륜을 쌓은 바이든에게 페일린은 적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줬죠. 그런데 페일린은 원론적인 주장, 알래스카 이야기, hockey mom 유의 감성 등을 동원해서 어려운 토론에서 살아남았습니다. 그 점까지 고려하여 일반 대중의 시각에서 점수를 매기자면 55:45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토론 직후 CNN이 발표한 여론조사는 51%가 바이든이 잘한 것으로, 36%가 페일린이 잘한 것으로 나왔더군요. 애널리스트 6명의 평가를 보여줬는데, 공화당 지지자 1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바이든이 더 잘한 것으로 평가했습니다.

페일린이 부통령감의 인상을 그 토론에서 보여줬느냐에 대해서 저는 부정적입니다. 동문서답도 나왔고, 구체적인 부분에 들어가야 되는 부분에서도 원론적인 주장만 되풀이하는 모습도 보여줬습니다. 지난주 해프닝 이후 열심히 공부하여 어느 정도 커버는 했는데, 더 이상은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 제 소감입니다. 매케인이 젊고 매우 건강한 후보라면 그나마 봐줄 만하겠는데, 연세도 그렇고 큰 수술도 받은 적이 있음을 참작하면 페일린에 대한 의구심은 계속 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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