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9/06/25)
자유민주주의의 공고화가 국가경쟁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 있는데, 대체로 맞는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자유민주주의가 경제발전의 충분조건이나 필요조건이 아닌 것도 사실이다. 권위주의도 마찬가지이다. 정치학의 국제정치경제학이나 비교정치학에서는 이 주제를 권위주의와 경제발전의 상관관계로 오랫동안 연구해왔다.
권위주의가 경제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은 아시아의 경험에서 비롯된다. 흔히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고 불렸던 한국, 대만, 홍콩, 그리고 싱가포르의 성공 사례에서 발전 국가(developmental state)라는 개념을 도출하여 권위주의적인 국가가 경제발전을 주도하여 성공한 것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이 성공사례는 특정 기간에 국한된다는 특성이 있다. 즉, 일정 기간이 지나면 경제력의 성장과 함께 권위주의 국가가 더는 지속적으로 경제 발전을 주도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가 갖고 있던 권력 일부를 시장에 얼마나 순조롭게 양도하느냐가 발전 국가 이후의 관건이 되며, 아울러서 민주화가 동반되는 것이다. 한국은 발전 국가 및 민주화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지금까지 학계에서 인정받고 있다.
권위주의가 경제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근거는 남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1960년대와 70년대에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 페루 등에서 연쇄적으로 발생한 권위주의 정권들의 경제 성적표는 매우 초라하다. 부패와 부의 집중이 일어나면서 경제가 곤두박질 쳤고 사회적 갈등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 심화되었던 것이다. 80년대 이후 남미는 민주화가 이뤄지면서 과거 권위주의의 어두운 그림자를 걷어내고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이룩하려고 노력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자유민주주의 자체가 경제발전에 순기능을 하는 면모를 갖고 있음은 물론이다. 대표적인 것으로 자유로운 기업활동과 경제권(economic rights)의 증진을 들 수 있다. 현 시점에서 생각해볼 만한 것은 일정한 수준 이상의 민주화가 달성된 다음 권위주의로 변경하려면 상당한 비용을 지급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실 자유민주주의는 “너나 나나 별 차이 없다(1인 1표).”라는 원리를 갖고 있어서 권위주의적인 움직임이 생기면 반발하는 시민이 생기기 마련이다. 사람이 아니라 로봇이 시민이라면 국가가 나서서 무슨 일을 해도 별문제 없이 지나치게 되겠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헌법에 규정한 양심, 표현, 결사의 자유가 바로 그것이다. 자유민주주의적 시민이 권위주의로 가려는 움직임에 반발하는 과정에서 여러 비용이 발생한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의 후퇴 때문에 경제발전이 저해되거나 국가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주장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물론 플라톤의 철인 왕과 같은 정치인이 등장하여 정치를 잘해서 시민의 불만이 없고, 등 따시고 배부를 수 있다면 자유민주주의를 약화시킨 권위주의가 경제발전을 북돋고 국가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철인 왕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고, 있더라도 그 사람이 최고권력자가 된다는 보장이 없다(민주주의로 선출된 대통령은 “너나 나나”중 한 명임). 오히려 철인 왕을 명분으로 내세워 결국 독재자의 길을 걸으면서 경제를 망치게 되는 역사상의 수많은 예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또한, 경제발전 수준이 일정 이상이 되면 단순히 경제적 혜택만 관건이 되는 것도 아니다.
마음도 편해야 한다.
(이 글은 자유민주주의와 경제의 상관관계를 정치적이 아닌, 정치학적으로 살펴본 짧은 생각입니다. 정파적/당파적 입장에서 작성된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믿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구차합니다만...^^)
소민우
답글삭제(2009/06/25 13:15) 시의적절한 玉稿 감사합니다. 근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분들이 많이 계시니 참 문제가 많네요...... ㅠㅠ
안병길
(2009/06/25 23:24) 민우씨, 응원 고맙습니다. 그 분들은 헌법을 다시 읽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눈에 뭔가 씌이면 아무리 정독해도 문리가 잘 들어오지 않는 경우가 많죠. 자유민주주의는 장기전이니 희망을 갖고 삽시다.
이준구
(2009/06/25 23:29) 박정희 대통령을 예로 들면서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독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보면 한심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세포적인 논리지요.
어찌 되었든 나는 박대통령 치하의 경제성장이 자유와 인권 유린을 상쇄하지 못한다고 믿습니다. 그때가 좋았다고 말하는 사람들 숨막히던 그시절로 돌아가 한 번 살아 봐야 합니다.
안병길
(2009/06/25 23:58) 선배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경제발전의 공도 있지만 자유와 인권 분야에서 과는 너무나도 큽니다.
김윤
(2009/06/26 07:32) 잘 읽어보았습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영도스키
(2009/06/26 11:25) 생각의 깊이를 더욱 깊게 해 주시는 안박사님의 글을 매번 감사히 잘 읽고 있습니다. 지금 주무시고 계시겠죠? 안녕히 주무세요 :)
안병길
(2009/06/26 23:58) 김윤씨, 영도씨, 좋게 봐주셔서 고마와요.
[댓글 소감]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인권 유린이 경제 성장보다 더 위중하다는 게시판 주인의 지적은 매우 타당하다. 자유와 인권은 돈으로 바꿀 수 없는 가장 소중한 인간의 기본 자산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