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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 8일 화요일

[수필] 어떤 미국 11학년 학생의 생활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8/11/16)

교수님께서 며칠 전에 우리나라 교육을 걱정하시는 시론을 한겨레 신문에 올리셨습니다. 여러모로 공감하는 글이었습니다. 미국 고등학교 고학년 입시생과 우리 학생의 생활을 비교해보면 흥미있을 것 같아서 어떤 미국 11학년 학생의 생활을 소개합니다. 미국에서는 대학교 입학 전까지 K(유치원), 1학년, 2학년... 11학년, 그리고 12학년으로 학년을 매깁니다. 지역마다 다르지만 보통 유치원, 초등 5년제, 중등 3년제, 고등 4년제를 흔히 채택하고 있습니다. 소개하는 고교 11학년 학생은 우리나라로 치면 고등학교 2학년입니다. 평준화이지만 우리와는 다른 교육제도의 사례로 소개합니다. 재미삼아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편의상 현재 시점으로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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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학생이 수강하는 과목은 수학, 물리학, 영문학, 미국역사, 스페인어, 오케스트라(바이올린), 웹페이지 만들기 등이다. 수업은 오전 7시 50분에 시작하여 오후 3시경에 끝난다. 방과 후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학교 테니스 2부(junior varsity)에서 운동을 하는데 오후 3시 반쯤에 시작하여 오후 6시쯤에 끝난다. 테니스부 활동은 일주일에 이틀은 다른 학교 팀과 시합을 하고, 이틀은 연습하는 식이다. 운동부 활동은 시즌이 있어서 일 년 중 한 학기만 한다.

이 학생이 바이올린을 한다고 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음대 보낼 겁니까?"라고 묻는 이들이 많았고, 테니스부 선수라고 하면 "테니스 특기생으로 대학에 입학할 겁니까?"라고 묻는 이들이 많았다. 미국 고등학교 교육에서 예능, 운동, 실기 등은 전공으로 연결된다기보다는 다양한 소양을 배양한다는 측면이 더 크다. 또한, 대학 입학 때 학과목 학점도 중시하지만 여러 방면에서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점도 보여주는 것이 유리하다. 교육열이 높은 학부모들은 자식들을 더 좋은 대학교에 보내기 위해서라도 예능과 운동을 각각 하나씩은 대부분 시키고 있다. 이 학생도 그런 고려를 무시하지는 못한다.

예능과 운동과 함께 대학 입학 때 중요한 입학 사정 기준은 사회봉사활동과 리더십이다. 이 학생은 부정기적으로 시립 도서관과 미술관, 시에서 주최하는 행사 등에 자원봉사를 한다. 또한, 리더십 함양을 위해서 학교 학생회 활동과 거주하는 도시의 청소년협의회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 이 리더십 활동에 들어가는 시간은 일주일에 약 4시간 정도이다.

이 학생은 어릴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웠다. 지금은 제법 잘하는 편이라서 학교 오케스트라의 악장(Concertmaster)이며, 외부 청소년 오케스트라의 공동 악장으로도 활약하고 있다. 개인 레슨은 일주일에 한 번 45분을 받으며 외부 오케스트라 연습은 토요일 오후 1시 반부터 4시까지이다. 그 외에도 현악 4중주단 활동도 하고 있다.

학과 공부의 특징은 숙제가 매우 많다는 것이다. 이 학생이 다니는 공립 고등학교는 학과 공부를 많이 시키는 편이다. 미국 고등학교의 수업은 각 학생의 능력별로 다른 반에 편성된다. 즉, 수학을 잘하는 학생은 학년에 상관없이 수준에 맞춰서 수강한다. 그래서 고급 수학반에는 2학년, 3학년, 4학년이 섞여 있다. 다른 과목들도 우등(honor) 혹은 고급(AP, advanced placement)반을 따로 두어서 일정한 성적이 되지 않는 학생은 해당 과목 수강을 금지하고 있다. 일종의 다양한 수준별 교육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학생은 이번 학기에 수학과 미국역사를 AP 과목으로 듣고 있으며 영문학, 물리학, 스페인어는 우등 과목으로 수강하고 있다.

이 학생은 다양한 활동과 학과 수업을 따라가기 위해서 잠을 서너 시간밖에 자지 못하는 강행군을 자주 하고 있다. 테니스에 쏟는 시간이 없다면 조금은 여유가 생길 수도 있는데, 자신이 테니스를 무척 좋아하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고 잠을 줄여가면서 생활하고 있다. 우리나라 입시생과는 다른 모습의 "미국형" 입시생을 보여주는 것이다.

미국 대학교의 입시는 크게 조기전형과 일반전형의 두 가지가 있다. 이 학생이 목표로 하는 조기전형은 11학년 성적까지만 고려하기 때문에 우리나라로 치면 고3 막바지에 이른 것과 마찬가지이다. 미국의 수능시험인 SAT를 준비하기 위해서 반년 동안 매주 말 세 시간 정도 학원에서 SAT 공부를 한 것을 제외하면 학업과 관련된 어떤 과외도 받은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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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스탠포드 대학교 맞은 편에 있는 Palo Alto High School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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