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Notice) | 방 명 록 (GuestBoard)

2009년 9월 4일 금요일

[정치] "예비 정치인" 정운찬 총리 내정자에 대해서

이 글은 학자나 항간의 좋은 이미지로서 정운찬 내정자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고, 이 대통령의 총리 내정을 받아들인 "예비 정치인"에 대한 제 생각을 적은 것입니다. 저는 정 내정자의 경제원론 강의를 들은 적은 있으나 그와 아무런 직접적인 친분관계가 없는 사람입니다. 우리 정치를 계속 관찰하면서 정 내정자 같은 분이 정치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은 제법 오랫동안 해왔습니다. "예비 정치인"이란 표현은 제 주관이 강하게 들어간 것인데, 총리가 대표적인 정무직이라서, 또한 지난 대선에서 정 내정자의 민주당 후보 가능성이 제기되어서 그 표현을 썼습니다. 저는 정 내정자가 학문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얼마나 훌륭한지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런 것을 잣대로 정 내정자의 행보를 평가하지는 않겠습니다. 정치적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자로서 정 내정자를 나름대로 바라보겠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정 내정자가 정치적 이익만 추구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당연히 아닙니다. 총리직 제안을 받아들인 계기는 복합적이겠죠.

몫(stakes)이 크게 걸렸을 때 인간은 합리적으로 판단할 가능성이 큽니다. 여기서 합리적이란 경제학에서 정의하는 그 합리성입니다. 이번 정운찬 내정자의 입각도 저는 인간의 합리적 행위로 해석하고 싶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합리성과 정 내정자의 합리성이 일단 박자가 맞았다고 보는 것이죠.

들은풍월로는 이 대통령은 정치판에서 박근혜 씨를 싫어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정황으로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 서로 험악하게 치고받는 사이였죠. 한나라당에 계파는 없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친이계와 친박계가 서로 아옹다옹하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죠. 또한, 지금부터 1년 정도만 지나면 레임덕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레임덕을 최소화하려면 대권 후보를 두고 복수의 승부사가 용호상박 하는 모양새가 현직 대통령에게는 유리합니다. 한 명이 독주하면 사람들이 그쪽으로 쏠리고 레임덕은 그만큼 일찍 찾아오게 되죠. 제가 보기에 이 대통령이 정 내정자를 그런 상황에 끌어들이려는 고려도 했던 것 같습니다. 정 내정자에게 총리라는 날개를 달아주면 자연히 그쪽으로 사태가 발전할 수 있으니까요.

게다가 정 내정자는 명망 있는 학자로 알려져 있으며, 정치 경력이 없어서 상대적으로 깨끗한 이미지를 갖고 있고, 지역도 중립이라고 볼 수 있죠. 따라서 정운찬 카드는 이 대통령에게는 호재 중의 호재입니다.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었다면 서로 핀트가 잘 맞지 않는 지난 언행이 있겠습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성취하기 위해서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저는 봅니다.

한쪽만 노력한다고 해서 거사가 성립되는 것은 아니죠. 어떤 예비 정치인이 권력 근처에 갈 가능성을 보았다면, 권력에 대한 희망을 완전히 접기까지 기회를 노리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강금실 전 장관의 예를 보시죠. 강 전 장관은 제가 보기에는 정치와 어울리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그래도 서울 시장에 출마했죠. 그만큼 권력은 매력적입니다. 돈이 매력적인 것과 마찬가지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겉으로는 이런저런 수사가 난무하지만, 정치에서는 권력을 차지하는 단계적 목표를 세울 수도 있습니다. 권력이 있으면 자신이 원하는 바를 펼치기가 더 수월하니까요.

정운찬 내정자가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대선후보 타진을 받았지만, 그 길로 가지 않은 것도 합리적 판단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리 몫이 크더라도 확률이 매우 낮으면 아무 소용이 없죠. 이번에 총리직을 수락한 것은 정치적 합리성이라는 측면에서 시의적절했다고 저는 평가합니다. 초대 총리가 약 1년 반을 재임했습니다. 지금부터 1년 반이 지나면 제18대 대선 국면에 본격적으로 들어갑니다. 박근혜 씨의 대항마가 이 대통령으로서 필요한데, 친이계의 면면을 살펴보면 상대가 될 만한 인사가 보이지 않았겠죠. 다크호스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이런 정황을 참조하면 정 내정자가 이 대통령의 지원을 받을 최적 시기에 총리직 제안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 대통령과 정 내정자의 이해관계가 잘 맞아떨어진 행보인 것 같습니다. 저는 이것에 대한 선악 잣대 갖다대기는 하지 않습니다. 정치는 상대주의 세계라서 선악 잣대보다는 좋고 싫음의 잣대가 더 중요하게 작동하는 사례가 많으며, 이번 경우가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 협력관계의 결과를 섣불리 예단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역사가 단선으로 흐른다고 믿으면 인간의 자유의지가 너무 불쌍하니까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저는 그 협력관계가 저에게 득이 되는 쪽으로 가면 좋겠습니다. 저는 박근혜 씨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독재자의 딸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고, 유신 독재에 적극적으로 협조한 정치인이라서 그렇습니다. 자의든 타의든 특정 정치적 행위에 대한 책임은 져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충 넘어가는 문화가 있지만, 앞으로 그 문화가 바뀌면 좋겠습니다. 수평적 정권교체가 다시 일어나면 더 좋겠지만, 박근혜 씨가 아닌 정운찬 내정자가 한나라당의 차기 대선후보가 되는 것도 저에게는 좋은 것입니다. 정 내정자가 처신을 잘해서 적어도 박근혜 씨를 한나라당 대선후보에서 밀어내면 좋겠습니다.

정 내정자에게는 앞으로 좋은 참모가 필요합니다. 제자 중에서 실력 있고 현실 감각이 뛰어난 인재들을 자주 만나서 훌륭한 아이디어와 전략을 많이 얻기를 바랍니다. 언론 인터뷰에서 4대 강 사업을 긍정적으로 언급한 것과 이 대통령과 경제를 보는 시각이 비슷하다고 설명한 것은 초기 립서비스로 이해할 수는 있지만, 보는 시각에 따라서 너무 구체적으로 들어간 것으로 평가할 수도 있겠습니다. 총리라는 지위와 차기 대권도전 가능성을 고려하면 이 대통령과 불가근불가원에 유사한 포지션을 잡는 것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정 내정자에게도 득이 되고, 저에게도 득이 되고, 우리나라에도 득이 되는 좋은 사례를 기대합니다. 매우 어려운 길이라고 생각하지만, 희망을 품습니다.

댓글 13개:

  1. "트로이의 목마"라는 표현은 유시민 씨 사례에서 먼저 언급했습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인용 시작)
    글 쓴 이(By): clearsea (晴海)
    날 짜 (Date): 2009년 06월 06일 (토) 오전 04시 50분 28초
    제 목(Title): 유시민에 대해서

    2004년 어느 날 국회에 용무가 있어서 갔던 기억이 난다. 유시민과는 약속이 없었지만 특유의 장난기가 돌아서 용무를 마친 뒤 유시민 의원 사무실을 찾았다. 정치인으로서 그 자질을 높게 평가했었는데 그 당시 아쉬운 점이 있어서 한 마디 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비서관에게 명함을 건네주니 다행스럽게 만나주었다. 미디어 출연을 조금 자제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줬는데, 여러 경로로 그런 조언을 많이 받고 있다는 대답을 들었다. 인터넷에 올릴 글을 적고 있던 중이라 시간이 별로 없다고 하여 돌아서서 나오면서 왠지 그런 류의 조언을 별로 받아들일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이후에도 미디어 출연을 참 많이 하더군.

    그 이후 2005년 초에 있었던 열린우리당 당의장 경선기간 중에 유시민을 제법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다. 대중적 지지를 받을만한 이미지 구축에는 미흡하다는 것을 느꼈다. 요즘은 나아졌다는 얘기도 있던데 앞으로도 노력을 많이 해야 할 것이다. 정치인에게 이미지는 매우 중요하니까.

    노통이 유시민에게는 실질적인 위대한 유산을 남겨준 셈이다. 그 유산을 잘 살려서 정치인으로 대성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향후 유시민에게 닥칠 결정적인 선택은 민주당에 다시 돌아가느냐 마느냐일 것 같다. 민주당에 복귀하면 서울 시장에, 복귀하지 않으면 대구 시장에 도전해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열린우리당과 같은 시도를 다시 해볼 수 있는 여건이 아님을 감안하면 자신의 소신과 차이는 있더라도 민주당에 들어가서 트로이의 목마와 비슷한 역할을 노려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민주당에 복귀하면서 노통의 유산을 살리기 위한 행보라는 점을 홍보하면 괜찮을 것 같은데...
    (인용 끝)

    답글삭제
  2. 강금실씨가 왜 정치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시는지 혹시 좀 들을 수 있을까요? ^^

    개인적으로 08년도 신입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정운찬 교수님의 강연이 열린다기에 어디서 듣고 08년도 수시 오리엔테이션 강연을 뒤에서 청강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1시간이 넘는 강연 시간 중에 딱 한번 '품격있는 나라'를 말씀하시면서 대통령부터 말을 좀 함부로 하신다는 이야기를 위트섞어서 하신 적이 있었는데...(아직 노무현 정부 시절) 그 때 수첩을 들고 어슬렁 거리던 분들이 몇 분 있었습니다.

    집에 돌아와보니, 네이버 1면 기사에 "정운찬 전 총장, 대통령 품격없다고 강하게 비판"이란 제목으로 쫙 깔렸더군요. 1시간 넘는 강연 중에 한 3초 정도 하신 말이었습니다. 3초가 a4 2장 분량의 비평문으로 바뀌어 있더군요. 그 떄.. 정치란 이런 것인가.. 하는 회의가 물밀듯이 몰려왔었습니다. 이제 전 총장보다 더 사회의 세간이 쏠리는 자리에 가셨으니.. 걱정이 앞섭니다.

    아무쪼록 국가에 도움이 되도록 일이 잘 되기를 빌 뿐입니다. 박근혜 대표에 대한 상대적 포지션에 대한 의견은 깊이 공감합니다.(제가 경제학부 교수님들이 대해서 팔이 이미 틀어질대로 틀어져서 안으로 굽은 상태라... '합리적 행위'의 틀로 아마 보고 있는 것 같진 않습니다.. ^^;;;;)

    답글삭제
  3. 매우 예리한 상황 분석입니다.
    미국에 있으시면서도 어떻게 여기 있는 사람들보다 더 잘 파악하고 계신지요?

    그런데 '트로이의 목마'라는 말은 적합치 않다는 지적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정총장의 지인 중에서)
    왜냐하면 트로이의 목마라면 일단 성문을 열었을 때 밀려 들어올 우군이 있어야 한댜는 것이지요.
    그런 것 하나도 없이 단기필마로 들어갔으니 '닌자'라고 해야 적합하다는 지적입니다.

    긴 말은 생략하겠습니다.
    왜 그런지는 안박사가 너무도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ㅣ

    답글삭제
  4. SapereAude님, 실제 경험과 느낌을 알려 주셔서 매우 감사합니다. 강금실 씨에 대한 제 주관은 언론 인터뷰(전 남편 인터뷰 포함)와 강금실 씨를 잘 아는 주위 지인들에게서 들은 정보를 토대로 생겼습니다. 대표적인 것을 말씀드리자면, 강금실 씨는 자유분방하고, 요즘 말로 slow living 스타일인 것 같습니다. 이 정도만 하겠습니다.

    아이고, 선생님, 제 허접한 주저리주저리를 예리하다고 하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트로이의 목마"는 그야말로 레토릭입니다. 두루뭉술한 표현으로 봐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닌자"라는 레토릭이 재미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정말 그런 측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소중한 고견을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답글삭제
  5. 상대적으로 정몽준 의원 마음이 불편하겠군요. 현재와 같이 박근혜 전대표 독주체재가 정몽준 의원은 친이계의 지원을 홀로 받을 수 있는 구도일테니 말입니다.

    안교수님께서는 "너무 구체적으로 들어간 것으로 평가할 수도 ..."라고 하셨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아직은 정치적 책임을 온전히 떠안지 않은 상태에서 '4대강 살리기에 대한 원론적인 동의와 세종시에 대한 원론적인 걱정'을 밝힘으로써 오히려 운신의 폭을 넓혀놓았다고 보는 시각도 있더군요.

    우선은 기존 정치인이 아닌 분이 새롭게 총리로 지명되었으니, 잘 되기를 희망하면서 지켜보렵니다. 구체적으로 정책을 수행하게되면 자연스럽게 '정치인 정운찬'에 대한 평가들이 나오게 되겠죠.

    답글삭제
  6. 산바람님, 소중한 의견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정치가 신진 정치인에 대한 진입 장벽을 매우 높게 쳐놓은 셈입니다. 정치도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죠. 따라서 정치를 개선하려면 정치에 새로운 참신한 정치인들이 더 많이 들어와야 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는 정 교수님이 원하신다면, 힘들고 어려운 길이 되더라도 시도하는 것이 자신이나 우리 정치를 위해서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타성에 젖은 기존 정치인들과 대비하면 비교우위가 확실하게 있다고 저는 보기 때문에 정 교수님이 정치를 하신다면 일단 응원할 것입니다.

    정 교수님의 입각에 대해서 실망이나 배신감을 느끼는 분들은 각자가 가진 처지에 따라서 그 이유가 다를 것입니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 진영에 가깝다고 여겼는데 엉뚱한 진영으로 갔다고 분개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고매한 원로 학자로 생각했는데 결국 권력을 쫓는 평범한 사람이라고 느껴서 실망한 분들도 있겠죠.

    이래나 저래나 그런 분들이 한 가지 고려해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치를 도덕적 잣대로, 특히 선악의 잣대로 바라보지 않는 것입니다. 근현대 정치는 일반 도덕과 구분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흔히 얘기합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유교적 문화나 생각이 여전히 효력을 발휘하고 있어서 유력 정치인이 성인군자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제법 있습니다. 그런 절대적인 잣대를 적용하면 살아남을 정치인이 누가 있겠습니까. 이중 잣대도 문제가 되죠. 정 교수님이 예비 혹은 본격 정치인이라면 그 세계의 잣대로 평가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또한, 그 평가는 절대평가가 아닌 상대평가 위주로 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로서는 조용히 마음으로 응원하면서 지켜보는 것이 답입니다. 그다음에 정 교수님의 활동 내용을 참작해서 적극적으로 지지하든지, 소극적으로 응원하든지, 무덤덤하든지, 비판하든지, 배척하든지 결정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답글삭제
  7. 현 총리지명자의 등용은 박근혜보다는 유시민을 염두에 둔 포석이라 봅니다. 주호영을 동시에 입각시킨 이유(주호영은 지난 총선에서 유시민과 대결했던 자)도 거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3년 후 당내 후보 경선에서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누가 유시민을 꺾을 것인가?'를 두고 최종 대권 주자를 결정할 것입니다. 그 동네가 원래 명분보다는 이기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데라서 그럴 겁니다. 그렇다면 답은 쉽게 나오죠. 유시민은 대구 수성구에서 30%가 넘게 득표한 자고 전국적 지지를 받지만, 박근혜는 대구에서 표가 갈라지면 꼼짝 못한다는 주장이 먹힐 것이고, 그러면 정 총리지명자 쪽으로 기울 것입니다. 게다가 본선에 나가서는 군사부일체 운운하면서 유시민의 공격을 스승에 대한 배은망덕으로 몰면 된다고 생각하겠죠. 한나라당과 정 총리지명자 모두 이것을 염두에 두고 3년 후 대선은 이미 이긴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일어나는 반발은 작은 소요 정도로 치부할 것입니다.

    3년이라는 시간이 꽤 길기에 장담은 불가능하지만 지금 저의 대선 구도 전망은 이렇습니다.

    답글삭제
  8. 저나 생각의 정원님이나 지금은 주관에 의한 추정을 할 수밖에 없죠. 현 시점에서 이 대통령이나 여권이 유시민 씨를 그 정도 강적으로 고려하고 있지는 않는 것으로 저는 봅니다. 특히, 이 대통령에게 발등의 불은 유시민 씨가 아닌 것 같습니다.

    답글삭제
  9.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에 글을 올린 계기는 '기회주의'에 대한 비판에 물타기를 시도하는 듯한 글이 있어서였습니다. (청해 님의 '권위주의'와 같은 것이 저에게는 '기회주의'거든요.) 그래서 얼떨결에 이번 총리지명 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인 듯한 글이 되어 버렸는데, 사실은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현 정권에도, 유시민에게도, 그리고 총리지명자 당사자에게도, 그리고 국가에게도 모두 잘 된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은근히 "유시민이 부각될수록 정 총리지명자가 박근혜를 이기기에 유리하다."라는 주장이 널리 퍼지길 바라고 있습니다. 일거양득이죠.

    답글삭제
  10. 저도 유시민 씨를 염두에 둔 포석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난 대선 후보 경선때 이명박 후보는 이후 야당 후보와 경쟁할 때보다 박근혜 후보와 더 극렬하게 대립했습니다. 거기에 현재로서는 차기 대통령에 가장 근접해 있는 사람이 박근혜 씨고요. 지금 당을 같이하고 있는 것은 '정권의 안정'이라는 이명박 측의 계산과 '차기 대권 확보'를 위한 박근혜 측의 계산이 어울린 결과일 뿐이고, 이들은 그런 계산이 끝나는 즉시 서로의 목에 칼을 들이댈 수도 있다고 봅니다.
    임기 후 보장이란 측면도 있겠으나, 본글에서 안교수님이 지적했듯이... 이명박 대통령 측은 정권의 안정을 위해서도 박근혜 측이 위협으로 느낄만한 상대를 내세우는 것이 절실한 일입니다.

    답글삭제
  11. 생각의 정원님의 의도를 보충설명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제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답글삭제
  12. 그런데 너무 팔이 안으로 굽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드네요. 사제지간이고 동문이시라 그런 것인지, 아니면 제가 생각이 짧아서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정운찬이 한나라당으로 들어가는 것에서 YS가 삼당 합당하던 때를 떠올리는 사람은 별로 없나요? 그때도 YS를 트로이의 목마와 유사한 레토릭으로 미화하는 사람도 있었겠지요. 하지면 결과적으로 영남을 통째로 수구보수화 시켜서 그 이후로는 극복하기 힘든 부동의 한나라당 지지 세력을 만들어 준 것이 바로 YS죠.

    정운찬 단신이 YS와 YS의 민주당과는 여러모로 다르겠으나 결과적으로 비슷한 효과를 낼 확률이 크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결국 좀 더 합리적인 (혹은 청해님이 좋아하시는 자유주의 원칙에 더 부합하는) 정치 세력인 현재의 민주당쪽이 큰 타격을 받을 것이고 한나라당은 그에 힘입어 또 집권할 것이고 정운찬 단신은 (아무리 여우라고 해도) 날고 기는 프로 정치인들과 그들의 기득권 안에서 이리저리 치이다가 별 뚜렷한 역할도 없이 시대의 한 페이지를 채우고 내려올 확률이 크지 않을까요. 대통령이 되든 안 되든 말이죠.

    그런데도 별로 확률이 커 보이지도 않는 트로이 목마, 닌자 등의 역할을 기대하며 그의 이러한 행보를 '도덕의 기준'으로는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시는군요. 제 미천한 견해로는 훌륭한 정치인에게 요구되는 최소한의 요건이 일관성인데 자신의 학문적/정치적 철학(혹자는 케인즈 좌파라고 하던데)과 완전히 배치되는 진영의 총리로 갑자기 가는 사람에게, 너무 말을 곱게들 쓰시는 것 같은데, 아니라면 제가 오해를 단단히 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앞으로 저 같은 식견의 사람도 정운찬의 행보를 이해할 수 있는 글들을 더 올려 주시기를 기대해 보겠습니다.


    뭐 박근혜 보다 낫다는 걸로 억지로 조금 위안은 되네요.

    답글삭제
  13. 일단 익명님이 동문, 사제지간이라서 팔이 안쪽으로 굽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적어도 저에 대해서는 오해임을 밝혀 드립니다. 저는 정 교수님을 스승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과도 다른데 한 과목 듣고 사제지간이 되는 것은 제 기준으로는 맞지 않습니다. 또한, 동문이라서 정 교수님을 좋게 평가하는 것도 아닙니다. 서울대 동문, 정치인과 관료 중에 엄청나게 많습니다. 제가 좋게 보는 이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이도 있습니다.

    저는 정 교수님을 예비 정치인으로서 바라보지 다른 기준으로 평가하지 않는다고 이미 원 글에서 밝혔습니다. 정 교수님도 예비 정치인으로서 일반적인 평가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학자 출신이라서, 그동안 이미지가 좋았다고 해서 다른 예비 정치인과 다른 두드러진 기준을 요구하는 것이 오히려 이중잣대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정 교수님은 지금까지 정당 활동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 점에서 YS와 뚜렷하게 구분됩니다. 또한, YS는 전두환의 후견을 업은 노태우 진영과 연합한 것이라는 점도 큰 차이점입니다. 민주당 진영을 선택하든, 한나라당 진영을 선택하든 정 교수님의 자유에 해당합니다. 한나라당이 독재나 확연한 권위주의 정당이라서 완전히 배척해야 할 상대라면 익명님의 의견에 제가 동의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유신 독재나 5공 권위주의 정권이 아니라서 한나라당을 그렇게 극단적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 제 견해입니다. 한나라당은 수구부터 중도까지 뒤섞여 있는 오락가락 정당이라는 진단을 저는 했습니다.

    진보와 보수, 이분법으로 나누면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보수 정당입니다. 정 교수님이 총리직 내정을 받아들였다고 해서 이념이 전혀 다른 진영으로 간 것이 아닙니다. 저는 정 교수님을 중도 우파 정도로 파악합니다. 한나라당 내부에 있는 중도 성향 정치인들과 협력 관계를 구축할 가능성도 있다고 저는 봅니다.

    미래에 벌어질 일을 섣불리 예단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익명님은 정 교수님이 총리 내정을 받아들인 것을 안 봐도 비디오라고 단정 짓고 몰아붙이는데, 그것은 보는 시각에 따라서 다릅니다. 자유주의에서는 다른 이의 견해나 시각도 존중하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익명님 의견이 틀렸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저와 다른 견해이며,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미래를 열어 놓으려고 하지 않고, 닫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정 교수님의 선택을 존중하고 싶고, 참신한 정치인으로 성공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응원하고 싶습니다. 다른 분들도 현 시점에서는 그렇게 하면 좋겠습니다. 정 교수님에게 힘을 보태서 우리 정치가 조금이라도 나아지면 그것도 좋은 일이 아닌가요? 벌써 태클을 걸고, 무슨 큰 배신이나 자기부정을 한 것처럼 비난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정 교수님의 앞으로 행보가 더 험난할 것입니다. 정 교수님의 선택을 어떻게 되돌릴 수가 있겠습니까? 어쨌든 벌어진 일입니다. 차선이라도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정치판에 덜떨어진 정치인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흔히 정치는 결과가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일단 관망하면서, 적어도 중간결과라도 나온 다음 정 교수님의 행보에 대한 평가를 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미리 부정적으로 볼 이유나 명분이 충분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 토론은 미래에 대한 주관적 추정이 들어갈 수밖에 없어서, 견해 차이가 있으면 그 차이를 서로 인정하고 마무리 짓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각자 옳다고 주장하기 시작하면 서로 감정만 상할 뿐입니다. 그리고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등의 표현은 가능한 한 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토론의 내용이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경우에 따라서 본질에서 벗어나려는 어설픈 의제 설정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