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이 흔히 애용하는 레토릭에 "통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통합 앞에 국민 혹은 사회를 왕왕 붙이죠. 그런데 저는 그 용어를 들을 때마다 정말 구시대적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독재/군부 정권 때는 물론이고 지난 참여정부와 현 정부에서도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되는 것을 보면 정치 레토릭으로서는 탁월한 효험이 있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무엇을 통합해서 어떤 결과를 이뤄낼 것인지 애매하기 짝이 없습니다. 통합은 하나로 모은다는 뜻입니다. 예컨대 남한과 북한으로 나뉘어 있다 통일이 되면 통합이죠. 그런데 굳이 한 단계 위의 하나로 모을 필요도 없고, 모을 가능성도 별로 없는 상황에서 통합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어색합니다.
구체적인 예로, 논란이 되는 미디어법이나 은행법을 살펴보면 찬성하는 쪽도 있고 반대하는 쪽도 있습니다. 이런 문제에서 통합을 이뤄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유신헌법을 선포했을 때 "우리식 민주주의를 하자!"라고 주장했던 것과 유사한 궤변을 동원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런 통합은 통합이 아니고, 오히려 분열이 될 가능성이 크게 보이는 것이 제 기우이면 좋겠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자유민주주의와 경제발전 단계를 고려하면 "통합"이라는 표현보다는 "협력"이라는 개념이 훨씬 더 유용합니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주요 사안에서 당사자들이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지킬 것은 지키는 협력을 유도하는 것이 더 적절합니다. "나를 따르라!"는 통합의 수사가 아니고, "내가 먼저 내놓겠다!"라는 협력 실천의 기폭제가 더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죠.
이 교수님의 시론이 이 중요한 화두를 쉽게 설명해주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김윤
답글삭제(2009/03/06 17:30) 언제 읽어봐도 교수님의 글은 정말 개념을 쉽고도 재미있게 풀어내신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매번 시론이 언제 업데이트 되나 기다리고 있다는 ^^
안박사님, 혹시 교수님 시론의 맨 마지막에 나와있는, 처칠이 왜 패했는지에 대해 혹시 아시면 설명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그냥 갑자기 궁금해져서요 ^^
이준구
(2009/03/06 18:23) 안박사, 지나친 칭찬에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정치에 문외한이 정치 얘기를 조금 했더니 뒤가 켕기네요. 큰 미스테이크가 없었기를 바랍니다.
안병길
(2009/03/07 01:00) 저도 영국 정치에 대해서 전문가는 아니지만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말씀드립니다. 처칠이 이끄는 보수당이 1945년 총선에서 대패를 했는데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보는 편입니다. 그 중에서 전시와 평화시를 다른 잣대로 평가한 유권자들의 선택, 노동당의 잘 짜여진 정책, 보수당의 선거전략 실패 등을 주요 원인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처칠이 그 선거 결과에 크게 실망하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소회를 드러낸 유명한 경구를 남겼죠.
마지막 부분에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추측은 일종의 강조법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오랜 동안 전쟁 수행에 전력투구를 하였다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하신 말씀으로 보입니다. 글 속에서 그 점을 밝혀놓으신 것이구요.
선배님, 전혀 켕기실 이유가 없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