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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21일 월요일

[정치] 사회통합위원회 출범

고건 씨를 위원장으로 하는 사회통합위원회가 23일 출범한다는 뉴스를 읽고 참여정부 초기의 일이 생각났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정치개혁연구실 활동을 끝내고 캘리포니아 집에 돌아왔는데 서울에서 연락이 왔다. 그때 출범 예정이었던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서 프로젝트 검토를 요청했다. 그 주제가 "사회통합"이었다. 노 대통령의 문제의식이 그대로 반영된 아이디어였다. 대통령이 무소불위의 권한을 휘둘렀던 과거의 제왕적 대통령을 탈피하는 와중에 발생할 수 있는 사회갈등을 어떻게 완화 혹은 극복할 것인지 고민한 것이었다. 아주 기초적인 방안도 있었는데, 16개 시도를 대표하는 특정 수의 명망 있는 인사들로 구성하는 국가 원로원과 비슷한 조직 제안도 포함하고 있었다. 새로 출범하는 사회통합위원회도 지역을 안배한다고 하니 비슷한 아이디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미국 의회의 상원은 영어로 Senate이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원로원을 뜻한다. 2003년에 나는 그 프로젝트가 오히려 사회갈등을 부추길 수 있다고 판단하여, 정부에서 추진하지 말 것을 건의했다. 왜냐하면, 그 조직이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려면 원로원 격인 상원의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단원제인 우리 국회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원로원을 추진하는 과정에 국회와 정부가 맞서는 모양새가 될 것이며, 사회통합은 물론이고 사회협력도 아닌 불협화음이 생길 여지가 크다고 봤다. 

우리 사회가 과연 통합이 더 필요한지도 여전히 의문이다. 정치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대표적인 레토릭이 몇 개 있는데, 약방의 감초처럼 통합도 자주 등장한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는 구호를 연상시키는 이 통합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지금 우리나라 상황에서 통합이라는 정치 구호를 주장하는 것은 남북통일에나 적용하는 것이 옳다. 남한만 국한한다면 이미 통합된 사회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이미 통합된 사회에서 무엇을 더 통합하자고 주장하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만약 사회통합위원회의 통합이 여러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을 뜻한다면 그것은 사회협력이지 통합이 아니다. 굳이 통합이라는 용어에 집착하는 것은 우리 정치인이나 정당이 "공동체" 개념에 과도하게 몰입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뭔지는 몰라도 개인이 아닌, 전체를 위하는 것이 더 옳다는 이미지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닌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자유민주주의에서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는 토양에서 출발하여 공공/국가/전체 이익을 추구해야지, 막무가내로 공동의 이익을 주장하면 그것이 다수 이익이 아니라 소수 이익으로 귀결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새로 출범하는 사회통합위원회는 각각 다른 이해관계가 우리 사회에서 표출될 수 있음을 제대로 인식하면서, 제 사회세력이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확보할 것은 충분히 확보하는 사회협력을 목표로 제대로 기능을 하기 바란다.  그 권위가 인정받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보지만, 내 희망사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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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 21일 월요일

[정치] 통합과 협력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9/03/06)

이 교수님 옥고를 읽을 때마다 놀라는 것이 여럿 있지만 그중에서 특히 핵심 개념을 쉽게 잘 설명하신다는 점이 있습니다. 이번 시론("피와 땀과 눈물")에서도 "협력"이라는 시의적절한 본질적인 문제를 알기 쉽게 던져주셨습니다.

정치인들이 흔히 애용하는 레토릭에 "통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통합 앞에 국민 혹은 사회를 왕왕 붙이죠. 그런데 저는 그 용어를 들을 때마다 정말 구시대적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독재/군부 정권 때는 물론이고 지난 참여정부와 현 정부에서도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되는 것을 보면 정치 레토릭으로서는 탁월한 효험이 있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무엇을 통합해서 어떤 결과를 이뤄낼 것인지 애매하기 짝이 없습니다. 통합은 하나로 모은다는 뜻입니다. 예컨대 남한과 북한으로 나뉘어 있다 통일이 되면 통합이죠. 그런데 굳이 한 단계 위의 하나로 모을 필요도 없고, 모을 가능성도 별로 없는 상황에서 통합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어색합니다.

구체적인 예로, 논란이 되는 미디어법이나 은행법을 살펴보면 찬성하는 쪽도 있고 반대하는 쪽도 있습니다. 이런 문제에서 통합을 이뤄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유신헌법을 선포했을 때 "우리식 민주주의를 하자!"라고 주장했던 것과 유사한 궤변을 동원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런 통합은 통합이 아니고, 오히려 분열이 될 가능성이 크게 보이는 것이 제 기우이면 좋겠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자유민주주의와 경제발전 단계를 고려하면 "통합"이라는 표현보다는 "협력"이라는 개념이 훨씬 더 유용합니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주요 사안에서 당사자들이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지킬 것은 지키는 협력을 유도하는 것이 더 적절합니다. "나를 따르라!"는 통합의 수사가 아니고, "내가 먼저 내놓겠다!"라는 협력 실천의 기폭제가 더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죠.

이 교수님의 시론이 이 중요한 화두를 쉽게 설명해주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