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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 18일 금요일

[독후감] 보배가 된 구슬 서 말: <36.5℃ 인간의 경제학>

대학교수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단 두 단어로 답할 수 있다. 그것은 교육과 연구이다. 표현은 간단하게 했지만, 두 단어가 뜻하는 바는 깊고 넓다. 둘 중 하나라도 제대로 하면 좋은 대학교수로 평가해도 괜찮다는 것이 필자의 평소 생각이다. 그만큼 잘해내기 어려운 것이 교육과 연구이다. 이 둘을 모두 제대로 해낸 책이 나왔다. 서울대 경제학부 이준구 교수의 <36.5℃ 인간의 경제학>이다. 흩어져 있던 구슬 서 말이 잘 꿰어져서 보배가 되었다는 감상이 필자가 이 교수의 새 연구 결과를 처음 만난 느낌이었다.

필자는 정치학을 공부했지만, 이 교수의 새 저서가 다루는 행태경제학의 주 관심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정치학의 합리적 선택이론이 인간의 합리성을 기본 가정으로 채택하기 때문이다. 사회과학에서 합리성 가정은 유용한 것이라는 견해를 필자는 계속 갖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항상 합리적이지는 않다는 사실을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합리적이기도 하고 비합리적이기도 할 것이다. 사회과학이 지향하는 일반화된 지식을 축적하는 데 합리성 가정이 비교우위가 있다고 생각해왔지만, 비합리적인 인간 행위를 사회과학적으로 분석할 필요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사실, 비합리적 인간에 대한 분석은 비경제학 사회과학 분야가 이미 해왔던 것이다. 대표적으로 심리학이 그랬고, 정치학도 역사기술적인 연구방법론을 채택한 연구에서 비합리적 정치 행위를 분석해왔다. 근현대 경제학도 예컨대 아담 스미스부터 인간의 비합리성 문제를 인지했지만, 심리학이나 정치학만큼 비합리성을 폭넓게 다루지는 못했다. 그 결과, 경제학이 합리성에 기반을 둔 과학적 지식을 축적하는 데 성공했지만, 왠지 뭔가 빠진 듯한 찜찜한 기분을 많은 경제학자가 느꼈던 것으로 안다. 최근 주목받는 행태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이 바로 그런 석연찮은 기분을 해결하려는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제1장 '경제적 인간'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실상과 허상).

합리성과 비합리성은 어쩌면 동전의 양면과 같이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처럼 인간과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인간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하여 그 둘을 모두 잘 분석하면 금상첨화이다. 이런 면에서 정치학 배경을 가진 필자는 합리성에서 출발하여 비합리성 영역까지 과학적 연구를 확대하는 경제학을 부러운 눈초리로 쳐다봤었다. 그 부러움에 이제는 "학문적 질투"까지 느끼게 하는 저작이 이 교수의 <36.5℃ 인간의 경제학>이다.

이준구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알아주는 대표적인 주류 미시경제학자이다. 이 교수가 집필한 <경제학 원론>(이창용 교수와 공저)과 <미시경제학>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채택하는 주류 경제학 교과서이다. 이 교수도 합리적 호모 이코노미쿠스를 가정한 경제 분석을 주로 해왔음을 알 수 있다. <미시경제학>에서 비합리성 문제를 다룬 행태경제이론이 새로 소개된 것은 바로 작년에 개정 출판한 제5판인 것을 참작하면 그 점은 명백하다. 따라서 경제학의 합리성 대가가 비합리성 문제를 제대로 파헤치는 연구를 우리 경제학계에 최초로 내놓았다는 점에서 그 가치는 더욱 빛난다. 어설프게 비합리적 경제적 인간만을 과도하게 부각시키려는 반쪽 짜리 연구가 아니라는 말씀이다. 우리나라 경제학계에서 합리성 연구와 비합리성 연구가 상호보완하는 길을 보여주는 첫 번째 행태경제학 저서로서 그 높은 가치를 일단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 교수의 <인간의 경제학>은 재미있다. 허무 개그에서 느끼는 그런 재미가 아니고 우리가 아직 생각하지 못한, 허술한 경제적 인간을 적나라하게 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큰 종이를 50번 접으면 그 높이가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의 정답에 당황하면서 재미있다고 느끼는 독자를 쉽게 상상할 수 있다(1-2 "우리는 얼마나 합리적일까?"). 필자와 같이 합리성에 찌든 사람도 동네 슈퍼마켓에 가서 "Buy One, Get One Free(하나를 사면 같은 제품 하나는 공짜)"라는 안내문을 보면 그 물건 두 개를 금방 장바구니에 주워담는데, 왜 그런지를 이 교수는 재미있게 설명한다(3-2 "슈퍼마켓 백배 즐기기"). 어떤 때는 단돈 만 원에 절절매지만, 똑같은 사람이 몇십 만 원을 펑펑 쓰고도 태연한 이유를 깨닫고 미소 짓고 싶으면 이 교수 책을 읽으면 된다(3-6 "돈마다 주소가 따로 있다?") 어렸을 때 읽었던 교과서 해설용 만화책을 보는 듯한 재미에 빠져들 수 있는 책이다.

<인간의 경제학>은 어렵게 보이는 경제를 쉽게 설명한다. 경제학의 할인율 개념이 생소한 독자도 제7장 "내일을 향해 쏴라"를 읽으면 쉽게 그 뜻을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주식 투자에 대한 제8장과 금융시장의 특이현상을 소개하는 제9장도 어렵게 느껴왔던 실물 경제의 이모저모를 쉽게 풀고 있다. 이 교수 저서의 일관된 특성인 쉽게 설명하기가 신간에서도 돋보인다.

이 교수의 저서에서 무엇보다 두드러지는 것은 제목과 걸맞게 다양한 인간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제2장 "주먹구구는 우리 삶의 현실이다"에서는 대충 살아가는 휴리스틱 인간을 만난다.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딱딱한 호모 이코노미쿠스가 아니고, 예컨대 배우자를 선택할 때 다양한 휴리스틱을 활용하는 현실형 인간을 만날 수 있다(2-4 "첫눈에 반한 사람을 결혼 상대로?"). 제4장에서는 계산기가 아닌, 갈대와 같이 흔들릴 수 있는 연약한 인간을 만나기도 한다. '귀차니즘'에 빠진 우리 자화상을 볼 수도 있다.

제5장 "우리는 얼마나 이기적인가?"에서는 주류 경제학이 가정한 이기적 인간과는 다른 인간 유형을 만난다. 지금까지 있었던 여러 실험 결과를 참조하여 인간이 생각보다 덜 이기적임을 보여준다. 또한, 경제학 교과서의 가정과는 달리 남이 가져가는 몫에 따라서 자신의 효용이 바뀌는 인간형도 본다. 제6장 "돈이 전부는 아니다"에서는 공정성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인간을 만난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 근로자의 임금을 무조건 내리려고만 하는 고용주는 6-3 "받은 만큼 일한다"를 꼭 읽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런 다양한 인간의 소개는 경제학이 엄정한 분석을 위해서 활용하는 ceteris paribus(with other things the same, 다른 조건을 동일하게 가정함)를 파헤치고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하게 합리적 인간이라고 가정하여 생기는 여러 문제에 대해서 행태경제학의 다양한 인간관은 그동안 미흡했던 설명을 보충하는 방안을 타진한다.

지금까지 설명한 장점을 두루 갖춘 <36.5℃ 인간의 경제학>은 교육적으로도 매우 높은 가치를 갖고 있다. 이 교수는 상대적으로 연구보다는 교육에 더 관심을 둔다고 스스로 밝힌 바 있다. 더 전문적으로 집필할 수도 있었겠지만, 일반인이나 청소년이 읽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책 내용을 꾸린 것은 아마도 교육에 대한 높은 개인적 관심 때문일 것이다. 성년뿐만 아니라 청소년까지 염두에 둔 것은 사회 교육이라는 측면을 일단 고려했을 텐데, 그것이 경제학 연구 자체에 미칠 파급 효과도 무시하지 못한다.

이 교수는 노벨 경제학상을 받지 못한, 또한 앞으로도 가까운 장래에 받지 못할 것으로 보이는 우리 경제학계의 실상에 실망을 가끔 토로했다. 노벨상을 받으려면 노벨상을 받을 만한 저변이 형성되어야 할 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이 교수의 행태경제학 저서는 우리 경제학의 저변을 넓히는 데 크게 이바지할 것은 거의 틀림없다. 이것은 이 교수 홈페이지 게시판에 이미 올라온 어떤 고등학생의 행태경제학에 대한 관심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먼 훗날 대한민국 출신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가 이 교수의 저변 확대 노력의 긍정적 파급 효과로 탄생할 수도 있다고 본다. 이 글 서두에 말한, 교육과 연구를 모두 해낸 책이라는 설명이 바로 그 의미이다.

이 교수의 연구가 완벽한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 경제학계의 최초 행태경제학 저작이라서 당연히 더 연구하여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이 교수가 밝혔듯이 앞으로 연구해야 할 과제는 무궁무진하다고 볼 수 있다. 합리성과 비합리성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기 마련인데, 그 해석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연구과제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예컨대 공정성을 장기적 합리성으로 해석할 여지는 없는지, 일정 기간의 기다림을 편익계산으로 해석할 수는 없는지 등은 주류 경제학과 행태경제학이 협력해서 검토해볼 만할 것이다.

우리 경제학의 발전은 이 교수 혼자 힘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이 교수도 더 노력해야 할 것이지만, 동료나 후학들이 이 교수의 학문적, 그리고 교육적 취지에 힘을 보태거나 동참하여 뭔가 작품을 만들어내고자 용맹정진해야 할 것이다. 이 교수의 <36.5℃ 인간의 경제학>이 그 기초 토양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먼 훗날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또한 그렇게 되기를 희망한다. 이런 중요한 학술적 의미와 함께 교양서로도 높은 가치가 있는 이준구 교수의 신간을 꼭 읽어보시길 권한다.

댓글 6개:

  1. 애정과 존경이 녹아있는 아름다운 서평이네요.
    사실 이제껏 한번도 경제학 서적을 읽을려고 시도하지 않았는데, 이 책은 읽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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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쉽고 재미있습니다. 강추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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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청해님 추천에 일단 샀고요.
    출퇴근길에 짬짬이 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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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실망하지 않으시리라 확신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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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Thank you a million times, Dr. 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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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You are very welcome, Sir! It's my pleasure.

    Your new book deserves outstanding review.

    I hope that it will be a million se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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