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Notice) | 방 명 록 (GuestBoard)

2009년 9월 14일 월요일

[자유] 투표의 역설과 의제 설정

(투표의 역설을 설명한 18세기 프랑스 철학자/수학자/정치학자 콩도르세입니다.)

정치학의 공공 선택 분야에서는 투표와 선거에 대한 논리적 분석을 많이 합니다. 그중에서 "투표의 역설(Paradox of Voting)"은 아주 재미있고 유익한 시사점을 우리에게 던져줍니다. 어떤 사회 구성원이 특정 사안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선호순서를 가진다고 가정해봅시다.

A 구성원 (30%): 갑 > 을 > 병
B 구성원 (30%): 을 > 병 > 갑
C 구성원 (40%): 병 > 갑 > 을

여기서 갑, 을, 병은 그 사회가 가질 수 있는 대안들(alternatives)이고 부등호 표시는 선호를 나타냅니다. 문제는 전체 사회의 선호순서가 갑 > 을 > 병 > 갑 식으로 순환한다는(circular preference) 것입니다. 갑과 을을 비교해보면 A와 C가 을보다는 갑을 더 좋아하므로 갑 > 을, 을과 병을 비교해보면 A와 B가 을을 더 좋아하므로 을 > 병 => 갑 > 을 > 병이 됩니다. 그런데 갑과 병을 비교해보면 B와 C가 병을 더 좋아하므로 병 > 갑이 되고, 결과적으로 갑 > 을 > 병 > 갑 식으로 선호가 돌고 돕니다.

이럴 때 갑, 을, 병 중에 어느 것을 전체 사회의 선택으로 해야 할까요? 정답에 대한 힌트는 의제 설정(agenda setting)에 있습니다. 전체 사회 선택을 어떤 방법으로 하느냐에 따라서 갑, 을, 병 어느 것도 최종 선택으로 결정될 수 있습니다. 단순 다득표제를 채택하면 병으로 결정되고, 갑과 병을 먼저 붙이고, 그 승자와 을을 붙이면 을로 결정되고, 을과 병을 먼저 붙이고, 그 승자와 갑을 붙이면 갑으로 결정됩니다. 이러한 "투표의 역설"은 개인의 선호순서가 전체 사회의 선호순서로 바뀔 때 의제 설정에 따라서 그 사회의 최종 결정이 판이하게 바뀔 수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토론에서도 의제 설정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문제의 핵심에 대한 토론이 되어야 하는데, 불리한 측은 지엽적인 문제(예컨대 표현 방식 등)를 제시하여 어설픈 의제 설정을 시도하기도 합니다. 일종의 정치적 조작(political manipulation)인데, 말려들면 토론에서 핵심은 사라지고 지엽적인 감정싸움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제 설정이 효력을 발휘하지 않도록 항상 조심하면서 핵심과 본질을 벗어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제 블로그의 특정 사안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고, 이곳저곳에서 토론해본 결과 느낀 점입니다.

댓글 2개:

  1. 마지막 문단... 뜨끔합니다 ㅋㅋ 요즘 드는 생각이.. 아는 게 별로 없으니까 핵심과 본질을 자주 벗어난다는 느낌입니다. ㅎㅎ

    박사님 좋은 일주일의 시작되세요 ^^ 거기는 지금쯤 정말 일주일이 시간상 시작되었겠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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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이곳은 일요일 저녁 다섯시가 거의 되었습니다. 서양에서는 일요일을 시작으로 보죠.
    SapereAude님도 알찬 한 주를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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