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12/04/13, 15)
이번 총선 과정을 보면서 제 책 제목인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법”이 떠올랐습니다. 그 책에서 저는 약자가 강자를 이기려면, 1) 머리를 잘 굴려야 하고, 2) 약자 사이에 힘을 모아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두 사항에서 부족한 점이 제법 있었기 때문에 약자 야권이 이번 선거에서 이기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1. 어느 쪽이 약자였는가?
총선 기간 중 방송 3사 노조가 장기간 파업을 했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방송 3사 노조가 주장한 공정 보도를 위한 사장 퇴임 요구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방송이 여권에 우호적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심하게 표현하면 정부/여당이 방송을 장악했다고도 할 수 있겠죠. 나꼼수의 등장으로 주요 방송의 정치적 영향력이 어느 정도 줄어들었지만, 많은 국민은 여전히 TV 뉴스나 프로그램을 통해서 정보를 전달받습니다. 더구나 발행 부수 1, 2, 3위를 차지하고 있는 신문사들의 논조까지 참작하면 언론 환경이 야권에 매우 불리했습니다. 야권은 분명히 약자였습니다.
그런데 야권은 부분적으로 강자라는 착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야권이 이겼고, 측근 비리와 민간인 사찰을 비롯한 이명박 정부의 여러 실정에 대한 심판이 총선에서 큰 힘을 발휘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이었죠. 반면에 여권은 스스로 약자임을 천명하고 총선에서 질 것이라는 위기감을 드러냈습니다.
여야가 약자인 측면도 있고 강자인 측면도 있었겠죠. 그런데 최근 우리 정치사를 보면 총선에서 현 야권이 이긴 것은 대통령 탄핵 발의라는 매우 특이한 의제가 작동했던 제17대 총선밖에 없습니다. 18대 총선에서는 전체 의석의 약 2/3가 친여 세력으로 채워졌었죠. 부자가 망해도 3대는 간다고 하죠.
2. 머리를 어떻게 굴렸는가?
선거는 전략적 상호작용을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대표적인 정치 행사입니다. 여기서 전략적 상호작용은 상대방이 어떻게 대응할지 미리 계산해서 움직이는 것을 말합니다. 5년 단임 대통령 임기 마지막 연도에 벌어진 이번 총선에서 야권이 들고 나올 유력한 카드가 정권 심판이 될 것임은 쉽게 예측할 수 있었습니다. 야권이 정권 심판을 외치면 여권이 어떻게 대응할지도 고려해서 의제 선정을 전략적으로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약자 야권이 머리를 잘 굴려야 했던 것이죠.
여권과 박근혜 위원장이 준비한 대응책은 현 정권과 적당히 선을 긋는 것이었습니다. 이것도 쉽게 예측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대선에서 박 위원장은 이미 이명박 대통령과 건곤일척의 혈투를 벌였고, 현 정권 기간 중에도 서로 밀당(밀고 당기기)을 했었죠. 박 위원장의 세종시 원안 고수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MB 심판론을 들고 나오면, 박 위원장은 “나는 MB와 다르다!”고 슬쩍 비켜설 여지를 갖고 있었던 겁니다. 이런 대응까지 고려해서 야권은 의제를 설정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야권은 민간인 사찰과 더불어서 방송 3사 파업과 4대강 사업을 더욱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었다고 봅니다. 특히 4대강 사업은 명분도 뚜렷하고, 여권에 딜레마를 안겨줄 수 있는 쟁점이었습니다.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에 4대강 사업이라면 치를 뜨는 분도 있었죠.
박근혜를 모르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거의 없지만, 한명숙을 모르는 유권자는 많습니다. 바람직하든 아니든 그것이 우리 정치 현실입니다. 야권이 약자라는 또 다른 근거이죠. 그런데 총선 준비, 특히 공천 과정을 살펴보면 강자인 여당이 더 열심히 머리를 굴린 흔적이 여러 곳에서 보입니다.
이번 총선은 여야가 합의하여 완전개방형 예비선거를 시행할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여당도 절박해서 그 카드를 만지작거렸죠. 그런데 민주당이 모바일 투표를 고수하여 그 기회를 날렸습니다. 예비선거는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준다는 명분을 챙기면서 야권의 흥행몰이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더 신중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완전개방형 예비선거는 본 선거의 4대 원칙(보통, 평등, 직접, 비밀)을 적용하는 것이 적절하므로 모바일 투표를 도입하기 어렵습니다. 더구나 야권의 통합후보 경선과정에서 드러났듯이 여론조사 방식의 모바일 투표는 투명성을 보장할 수 없는 근본적인 약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약점을 여권에서 잘 활용했죠.
정치적 지역주의는 여전히 우리 선거 행태를 설명하는 주요 잣대입니다. 이번 총선에서 젊고 경력이 짧은 새누리당 손수조 후보가 차기 야당 대권 주자인 문재인 후보와 붙어서 44%를 득표한 것은 정치적 지역주의로 설명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치적 지역주의는 매우 바람직하지 않은 고질병 같은 것이지만 현실이 그렇습니다. 중장기적으로는 유권자의 선호도 바뀌고 제도 개선도 이뤄져서 약화되겠지만, 단기적 선거 전략을 짤 때는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상수와 같은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에 정치적 지역주의가 기여한 부분이 있습니다. 부산/경남 지역주의가 영남 지역주의를 일부 깬 것이죠. 이것은 김대중/노무현 두 대통령의 영남 득표율을 비교하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야권이 다음 대선에서 이기려면 정치적 지역주의에 대한 머리 굴리기를 심각하게 해봐야 할 것입니다.
3. 힘을 제대로 모았는가?
이번 총선에서 민주통합당(민주당)과 통합진보당(진보당)이 단일후보를 내세우기 위해서 합의할 수 있었던 것은 야권으로서는 고무적이었습니다. 결선투표를 적용하지 않는 현 선거제도에서 두 정당이 따로 후보를 내면 여당에 유리한 것은 뻔한 것이죠. 따라서 약자 야당이 힘을 모으려고 노력했고 그 결실을 본 것입니다.
그런데 이 협력의 기본 속성이 선거 연합이지, 정책 연합이 아님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념이나 정강정책으로 대충 나누면 민주당은 중도, 진보당은 진보로 볼 수 있으므로 전반적인 정책 연합을 이뤄낼 토대는 약합니다. 따라서 각 당은 상대방에게 무리한 정책 공조를 요구할 필요가 없고, 선거 연합의 실리 상으로도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 이유는 정치경제학의 중위 투표자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민주당이 오른쪽으로 조금 움직이더라도 선거 연합을 지지하는 유권자가 여당을 찍을 확률은 낮습니다. 그러나 중도에 있는 부동층 유권자가 민주당을 찍을 확률은 상대적으로 올라가죠. 따라서 의회 권력 교체라는 대의명분에 걸맞게 여당 의석을 최대한 줄이는 방향은 이론적으로는 민주당이 왼쪽이 아니라 오히려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진보당으로서도 과도하지만 않다면 민주당의 우 클릭은 손해 볼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진보당의 지지율을 올릴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죠.
이번 총선 과정에서 한미 FTA에 대하여 민주당과 진보당이 삐걱거렸죠. 진보당이 민주당에 더 왼쪽으로 오라고 요구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참여정부가 한미 FTA에 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민주당은 한미 FTA 완전폐기를 주장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가 있습니다. 완전폐기가 과연 최선인지 논란거리이기도 하지요. 민주당과 진보당이 이런 정책 문제에서 필요 없는 불협화음을 보이면 중도 유권자의 지지가 줄어들 수 있습니다. 정책은 큰 틀에서 문제가 없다면 제 갈 길을 가는 것이 선거 연합의 힘을 더 올릴 수 있었다고 봅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분단국가입니다. 이 구조적 속성도 매우 중요합니다. 안보 영역에서는 보수적인 견해를 가진 유권자가 다수입니다. 안철수 원장도 안보에서는 보수에 가깝고 경제에서는 진보에 가깝다는 발언을 한 적이 있죠. 그 정도입니다. 따라서 민주당은 안보 영역에서는 특히 왼쪽으로 갈 것이 아니라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것이 표를 더 얻는 길입니다.
제주 해군기지 논란에서 진보당의 비례대표 후보가 기지 건설 작업을 강행하는 해군 인력을 해적으로 표현했을 때 새누리당이 야권을 싸잡아서 비난하는 호재로 활용했죠. 그 후보를 교체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지만, 그 쟁점을 민주적 절차나 환경 문제보다 안보 영역으로 간주하는 유권자들에게는 야권이 너무 왼쪽에 있는 것으로 보여질 수도 있었습니다. 새누리당이 강원도를 석권했고 경기 북부 지역에서 선전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앞으로도 해군 기지 건설 반대가 안보 쟁점으로 주로 비춰지지 않도록 야권은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과반인 152석을 차지했고, 민주당과 진보당이 140석을 얻었습니다. 집권 세력이 아니고, 언론 환경이 불리하며, 정치적 지역주의가 여전히 기승을 부린 것을 참작하면 야권이 오히려 선전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야권이 6석만 더 얻었다면 여당의 과반을 저지하면서 동률을 이뤘을 것입니다. 간발의 차이입니다. 앞에서 말씀 드린 머리 굴리기와 힘 모으기에서 조금만 더 전략적으로 움직였다면 야권이 이겼을 것입니다.
여당의 연말 대선 후보는 거의 결정된 것 같습니다. 야권에서 어떤 머리 굴리기와 힘 모으기를 해서 대선에 임할지 궁금합니다. 특히, 한나라(새누리)당의 정치적 확장에 반대한다고 분명히 말한 안철수 원장이 자신의 “역사적 소명”을 어떻게 펼칠지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2012년 4월 17일 화요일
2012년 3월 17일 토요일
[자유민주] 박근혜 위원장과 연좌제
[작성자]
안병길晴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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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1:36
김종인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은 최근 박근혜 위원장을 유신 독재의 폐해와 연결하여 비판하거나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연좌제이며 지나친 정치적 행위라고 주장했다. 김 위원은 연좌제라는 의제를 설정하여 박 위원장을옹호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가 독재자라서 그 딸이 부당하게 공격당하는 것은 억울하다는 것이다. 일리가 있는 어법이다. 부모가 아무리 못나도 자식은 훌륭할 수 있으니까. 박근혜 위원장을 단순히 ‘독재자의 딸’로비판하거나 공격하는 것에 대한 제법 쓸 만한 방어술이다.
이 의제 설정은 유신 독재에 대한 평가나 정치철학을 묻는 매우 적절한 문제 제기를 슬쩍 피해 나갈 수도 있을것이다. 예컨대, “자유민주주의와 민주화를 가혹하게 탄압한 유신 체제에 대한 평가/사과 요청”을 “아버지의 독재에 대한 자식의 사죄 요구”로 슬쩍 비틀어서 연좌제로 받아치는 식이다.
‘독재자의 딸’이나 ‘연좌제’가 문제의 핵심은 아니다. 그런 것은 정치인들이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해서 활용하는정치적 수사일 뿐이다. 핵심은 최근 모 방송사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문재인 이사장이 에둘러서 표현한 적이 있다. 유신 시절 문 이사장이 민주화 운동으로 구속되어 있었을 때 박 위원장은 청와대에 있었다는 회고이다.여기서 ‘청와대’는 대통령 아버지의 관저라는 의미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곳에서 박 위원장이 유신 독재의 퍼스트레이디(First Lady)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다. 퍼스트레이디는 단순한 내조만 하는 것이 아니고, 고도의 정치적 의미가 있는 자리임은 자명하다.
독재는 자유민주주의 공적 제1호이다. 박 위원장은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유명 정치인이며,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의 유력 주자이다. 그런 인사가 유신 독재체제에 퍼스트레이디로 적극 협조했다면 국민에게 일단 공식적으로 사과하여 용서를 구하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정치나 공직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풀었어야할 과제였다. 나는 아직 박 위원장이 그렇게 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2009년 9월 4일 금요일
[정치] "예비 정치인" 정운찬 총리 내정자에 대해서
[작성자]
안병길晴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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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0:52
이 글은 학자나 항간의 좋은 이미지로서 정운찬 내정자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고, 이 대통령의 총리 내정을 받아들인 "예비 정치인"에 대한 제 생각을 적은 것입니다. 저는 정 내정자의 경제원론 강의를 들은 적은 있으나 그와 아무런 직접적인 친분관계가 없는 사람입니다. 우리 정치를 계속 관찰하면서 정 내정자 같은 분이 정치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은 제법 오랫동안 해왔습니다. "예비 정치인"이란 표현은 제 주관이 강하게 들어간 것인데, 총리가 대표적인 정무직이라서, 또한 지난 대선에서 정 내정자의 민주당 후보 가능성이 제기되어서 그 표현을 썼습니다. 저는 정 내정자가 학문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얼마나 훌륭한지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런 것을 잣대로 정 내정자의 행보를 평가하지는 않겠습니다. 정치적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자로서 정 내정자를 나름대로 바라보겠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정 내정자가 정치적 이익만 추구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당연히 아닙니다. 총리직 제안을 받아들인 계기는 복합적이겠죠.
몫(stakes)이 크게 걸렸을 때 인간은 합리적으로 판단할 가능성이 큽니다. 여기서 합리적이란 경제학에서 정의하는 그 합리성입니다. 이번 정운찬 내정자의 입각도 저는 인간의 합리적 행위로 해석하고 싶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합리성과 정 내정자의 합리성이 일단 박자가 맞았다고 보는 것이죠.
들은풍월로는 이 대통령은 정치판에서 박근혜 씨를 싫어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정황으로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 서로 험악하게 치고받는 사이였죠. 한나라당에 계파는 없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친이계와 친박계가 서로 아옹다옹하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죠. 또한, 지금부터 1년 정도만 지나면 레임덕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레임덕을 최소화하려면 대권 후보를 두고 복수의 승부사가 용호상박 하는 모양새가 현직 대통령에게는 유리합니다. 한 명이 독주하면 사람들이 그쪽으로 쏠리고 레임덕은 그만큼 일찍 찾아오게 되죠. 제가 보기에 이 대통령이 정 내정자를 그런 상황에 끌어들이려는 고려도 했던 것 같습니다. 정 내정자에게 총리라는 날개를 달아주면 자연히 그쪽으로 사태가 발전할 수 있으니까요.
게다가 정 내정자는 명망 있는 학자로 알려져 있으며, 정치 경력이 없어서 상대적으로 깨끗한 이미지를 갖고 있고, 지역도 중립이라고 볼 수 있죠. 따라서 정운찬 카드는 이 대통령에게는 호재 중의 호재입니다.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었다면 서로 핀트가 잘 맞지 않는 지난 언행이 있겠습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성취하기 위해서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저는 봅니다.
한쪽만 노력한다고 해서 거사가 성립되는 것은 아니죠. 어떤 예비 정치인이 권력 근처에 갈 가능성을 보았다면, 권력에 대한 희망을 완전히 접기까지 기회를 노리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강금실 전 장관의 예를 보시죠. 강 전 장관은 제가 보기에는 정치와 어울리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그래도 서울 시장에 출마했죠. 그만큼 권력은 매력적입니다. 돈이 매력적인 것과 마찬가지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겉으로는 이런저런 수사가 난무하지만, 정치에서는 권력을 차지하는 단계적 목표를 세울 수도 있습니다. 권력이 있으면 자신이 원하는 바를 펼치기가 더 수월하니까요.
정운찬 내정자가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대선후보 타진을 받았지만, 그 길로 가지 않은 것도 합리적 판단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리 몫이 크더라도 확률이 매우 낮으면 아무 소용이 없죠. 이번에 총리직을 수락한 것은 정치적 합리성이라는 측면에서 시의적절했다고 저는 평가합니다. 초대 총리가 약 1년 반을 재임했습니다. 지금부터 1년 반이 지나면 제18대 대선 국면에 본격적으로 들어갑니다. 박근혜 씨의 대항마가 이 대통령으로서 필요한데, 친이계의 면면을 살펴보면 상대가 될 만한 인사가 보이지 않았겠죠. 다크호스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이런 정황을 참조하면 정 내정자가 이 대통령의 지원을 받을 최적 시기에 총리직 제안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 대통령과 정 내정자의 이해관계가 잘 맞아떨어진 행보인 것 같습니다. 저는 이것에 대한 선악 잣대 갖다대기는 하지 않습니다. 정치는 상대주의 세계라서 선악 잣대보다는 좋고 싫음의 잣대가 더 중요하게 작동하는 사례가 많으며, 이번 경우가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 협력관계의 결과를 섣불리 예단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역사가 단선으로 흐른다고 믿으면 인간의 자유의지가 너무 불쌍하니까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저는 그 협력관계가 저에게 득이 되는 쪽으로 가면 좋겠습니다. 저는 박근혜 씨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독재자의 딸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고, 유신 독재에 적극적으로 협조한 정치인이라서 그렇습니다. 자의든 타의든 특정 정치적 행위에 대한 책임은 져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충 넘어가는 문화가 있지만, 앞으로 그 문화가 바뀌면 좋겠습니다. 수평적 정권교체가 다시 일어나면 더 좋겠지만, 박근혜 씨가 아닌 정운찬 내정자가 한나라당의 차기 대선후보가 되는 것도 저에게는 좋은 것입니다. 정 내정자가 처신을 잘해서 적어도 박근혜 씨를 한나라당 대선후보에서 밀어내면 좋겠습니다.
정 내정자에게는 앞으로 좋은 참모가 필요합니다. 제자 중에서 실력 있고 현실 감각이 뛰어난 인재들을 자주 만나서 훌륭한 아이디어와 전략을 많이 얻기를 바랍니다. 언론 인터뷰에서 4대 강 사업을 긍정적으로 언급한 것과 이 대통령과 경제를 보는 시각이 비슷하다고 설명한 것은 초기 립서비스로 이해할 수는 있지만, 보는 시각에 따라서 너무 구체적으로 들어간 것으로 평가할 수도 있겠습니다. 총리라는 지위와 차기 대권도전 가능성을 고려하면 이 대통령과 불가근불가원에 유사한 포지션을 잡는 것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정 내정자에게도 득이 되고, 저에게도 득이 되고, 우리나라에도 득이 되는 좋은 사례를 기대합니다. 매우 어려운 길이라고 생각하지만, 희망을 품습니다.
몫(stakes)이 크게 걸렸을 때 인간은 합리적으로 판단할 가능성이 큽니다. 여기서 합리적이란 경제학에서 정의하는 그 합리성입니다. 이번 정운찬 내정자의 입각도 저는 인간의 합리적 행위로 해석하고 싶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합리성과 정 내정자의 합리성이 일단 박자가 맞았다고 보는 것이죠.
들은풍월로는 이 대통령은 정치판에서 박근혜 씨를 싫어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정황으로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 서로 험악하게 치고받는 사이였죠. 한나라당에 계파는 없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친이계와 친박계가 서로 아옹다옹하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죠. 또한, 지금부터 1년 정도만 지나면 레임덕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레임덕을 최소화하려면 대권 후보를 두고 복수의 승부사가 용호상박 하는 모양새가 현직 대통령에게는 유리합니다. 한 명이 독주하면 사람들이 그쪽으로 쏠리고 레임덕은 그만큼 일찍 찾아오게 되죠. 제가 보기에 이 대통령이 정 내정자를 그런 상황에 끌어들이려는 고려도 했던 것 같습니다. 정 내정자에게 총리라는 날개를 달아주면 자연히 그쪽으로 사태가 발전할 수 있으니까요.
게다가 정 내정자는 명망 있는 학자로 알려져 있으며, 정치 경력이 없어서 상대적으로 깨끗한 이미지를 갖고 있고, 지역도 중립이라고 볼 수 있죠. 따라서 정운찬 카드는 이 대통령에게는 호재 중의 호재입니다.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었다면 서로 핀트가 잘 맞지 않는 지난 언행이 있겠습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성취하기 위해서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저는 봅니다.
한쪽만 노력한다고 해서 거사가 성립되는 것은 아니죠. 어떤 예비 정치인이 권력 근처에 갈 가능성을 보았다면, 권력에 대한 희망을 완전히 접기까지 기회를 노리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강금실 전 장관의 예를 보시죠. 강 전 장관은 제가 보기에는 정치와 어울리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그래도 서울 시장에 출마했죠. 그만큼 권력은 매력적입니다. 돈이 매력적인 것과 마찬가지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겉으로는 이런저런 수사가 난무하지만, 정치에서는 권력을 차지하는 단계적 목표를 세울 수도 있습니다. 권력이 있으면 자신이 원하는 바를 펼치기가 더 수월하니까요.
정운찬 내정자가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대선후보 타진을 받았지만, 그 길로 가지 않은 것도 합리적 판단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리 몫이 크더라도 확률이 매우 낮으면 아무 소용이 없죠. 이번에 총리직을 수락한 것은 정치적 합리성이라는 측면에서 시의적절했다고 저는 평가합니다. 초대 총리가 약 1년 반을 재임했습니다. 지금부터 1년 반이 지나면 제18대 대선 국면에 본격적으로 들어갑니다. 박근혜 씨의 대항마가 이 대통령으로서 필요한데, 친이계의 면면을 살펴보면 상대가 될 만한 인사가 보이지 않았겠죠. 다크호스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이런 정황을 참조하면 정 내정자가 이 대통령의 지원을 받을 최적 시기에 총리직 제안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 대통령과 정 내정자의 이해관계가 잘 맞아떨어진 행보인 것 같습니다. 저는 이것에 대한 선악 잣대 갖다대기는 하지 않습니다. 정치는 상대주의 세계라서 선악 잣대보다는 좋고 싫음의 잣대가 더 중요하게 작동하는 사례가 많으며, 이번 경우가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 협력관계의 결과를 섣불리 예단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역사가 단선으로 흐른다고 믿으면 인간의 자유의지가 너무 불쌍하니까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저는 그 협력관계가 저에게 득이 되는 쪽으로 가면 좋겠습니다. 저는 박근혜 씨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독재자의 딸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고, 유신 독재에 적극적으로 협조한 정치인이라서 그렇습니다. 자의든 타의든 특정 정치적 행위에 대한 책임은 져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충 넘어가는 문화가 있지만, 앞으로 그 문화가 바뀌면 좋겠습니다. 수평적 정권교체가 다시 일어나면 더 좋겠지만, 박근혜 씨가 아닌 정운찬 내정자가 한나라당의 차기 대선후보가 되는 것도 저에게는 좋은 것입니다. 정 내정자가 처신을 잘해서 적어도 박근혜 씨를 한나라당 대선후보에서 밀어내면 좋겠습니다.
정 내정자에게는 앞으로 좋은 참모가 필요합니다. 제자 중에서 실력 있고 현실 감각이 뛰어난 인재들을 자주 만나서 훌륭한 아이디어와 전략을 많이 얻기를 바랍니다. 언론 인터뷰에서 4대 강 사업을 긍정적으로 언급한 것과 이 대통령과 경제를 보는 시각이 비슷하다고 설명한 것은 초기 립서비스로 이해할 수는 있지만, 보는 시각에 따라서 너무 구체적으로 들어간 것으로 평가할 수도 있겠습니다. 총리라는 지위와 차기 대권도전 가능성을 고려하면 이 대통령과 불가근불가원에 유사한 포지션을 잡는 것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정 내정자에게도 득이 되고, 저에게도 득이 되고, 우리나라에도 득이 되는 좋은 사례를 기대합니다. 매우 어려운 길이라고 생각하지만, 희망을 품습니다.
2009년 8월 21일 금요일
[정치] 현행 대통령 선거제도 개선
[작성자]
안병길晴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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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2:01
[설명]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흔히 부른다. 국민 개별 선호가 전체 의사결정이 되는 선거는 그만큼 중요하다. 특히 국가지도자를 뽑는 우리 대통령 선거는 모든 국민의 관심을 끄는 최고 중요 정치 이벤트임이 틀림없다. 이 글에서 필자는 현행 대통령 선거제도가 심각한 결함을 내포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그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서 결선투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차기 대통령으로 선호하는 인물 1위가 박근혜 의원, 그리고 2위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대통령 중심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새 대통령을 선출한 지 1년밖에 안 됐지만, 다음 대통령에 대해서 관심을 두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여당은 정권 재창출에 항상 관심을 두고, 야당도 정권 재탈환에 큰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죠. 야당에서는 급기야 반기문 총장을 차기 대선 후보로 떠올리는 비상수단까지 고려하는 모양입니다.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언제 다시 유엔 사무총장과 같은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있는 인사를 쉽사리 배출할 수 있겠습니까. 연임하는 관례를 고려하건대, 반 총장은 한 번 더 사무총장직을 수행하는 것이 본인이나 국민에게 득이 된다고 봅니다.
저는 1995년에 작성한 한 발제문에서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제도가 심각한 결함을 갖고 있으므로, 결선투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현행 대선제도가 절차적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시되는 원리인 “단순과반수 원칙”을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할 가능성이 있어서 개선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아직 그대로입니다. 그동안 제 주장을 여러 전문가와 정치인에게 설명하고 반응을 살펴봤는데, 이론상으로는 맞는 이야기이지만 현실에 적용하기는 어렵겠다는 평이 제법 있었습니다.
1) 선거를 한 번 더 하는 비용 문제, 2) 제도 수정의 현실적 난관(예컨대, 야당의원은 여당이 합의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여당의원은 야당이 반대할 것이라는 반응), 이 두 문제였죠. 그런데 대선 결선투표를 채택하는 프랑스와 러시아 등을 참조한다면 절차적 민주주의를 더 정교하게 만들어서 발생하는 편익이 그 비용을 능가하는 것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이제는 우리 경제 역량이 가장 중요한 선거를 한 번 더 하는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수 있죠.
따라서 두 번째 문제만 해결된다면 우리도 결선투표제를 도입하여 단순과반수의 지지를 받는 대통령의 탄생을 지켜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화 이후 과반수 유효득표를 한 대통령 당선자가 없었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공공선택이론으로 심하게 이야기하면 결정적인 결함이 있는 제도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표가 분산되어서 40% 득표를 했지만, 그 당선자를 55%가 반대할 수 있는 상황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제대로 된 민주주의라면 그 후보는 당선되면 안 됩니다.
저는 앞으로 정치부문의 화두로 대통령 선거제도 개선을 제시하고 싶습니다. 경제가 위중해서 쟁점이 될 것 같지는 않지만, 장기 국가발전 프로젝트로 검토되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입니다. 현 국회의장께서 취임 초에 개헌을 추진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여러 정황을 고려하면, 제18대 국회에서 개헌을 하기는 힘든 것 같습니다. 만약 개헌범위를 권력구조 개편이라는 최소한으로 국한한다면 혹시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쟁점과 관련하여 우리 대선에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려면 개헌이 반드시 필요한지 의문이 있습니다. 헌법 관련 조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헌법 제67조
1. 대통령은 국민의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에 의하여 선출한다.
2. 제1항의 선거에 있어서 최고득표자가 2인 이상인 때에는 국회의 재적의원 과반수가 출석한 공개회의에서 다수표를 얻은 자를 당선자로 한다.
3. 대통령후보자가 1인일 때에는 그 득표수가 선거권자 총수의 3분의 1 이상이 아니면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없다.
4. 대통령으로 선거될 수 있는 자는 국회의원의 피선거권이 있고 선거일 현재 40세에 달하여야 한다.
5. 대통령의 선거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제2항이 문제가 될 수 있겠습니다. 이 의문을 포함하여 여러분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
[토론]
[회원1] 헌법 제67조 제5항은 결선투표를 법률로 규정할 수 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결선투표를 도입하려면 개헌을 해야 한다.
[필자] 공직선거법, 제187조(대통령 당선인의 결정·공고·통지)에는 대통령 당선을 어떻게 결정하는지 규정하고 있죠. 이 규정에 결선투표를 삽입해서 개정하면 위헌이 될까요?
[회원2] 결선투표 도입은 50보 100보이다. 오히려 칼 포퍼를 참조하여 “사악한 지도자”를 뽑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필자] 회원2님은 제 문제제기를 너무 확대하여 해석하신 것 같습니다. a, b, c 대선 후보가 있다고 합시다. 각각 40%, 35%, 25%를 득표했습니다. 현행 제도로는 a가 대통령이 됩니다. 그런데 결선투표를 하면 b가 60:40으로 a를 꺾을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a가 대통령이 되는 것은 비민주주의이며 비효율이라는 것이 제 주장의 요점입니다. 오십보백보라는 식으로 대충 해석하셨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큰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회원1] 공직선거법은 관련 헌법 조항을 구체화 내지는 반복하는 규정이다. 헌법 제67조 제2항 결선투표 외에 다른 형태의 결선투표를 공직선거법에 넣는 것은 헌법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필자] 회원1님이 해석한 것과 같이 유추할 수는 있다고 저도 생각합니다. “최고 득표자”, “다수표”라는 표현이 있어서 결국 단순다득표제(plurality)를 내포하는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크겠네요.
[게시판 주인] “좋은 아이디어입니다만, 우리가 지난 선거를 다른 방식으로 치렀다고 지금의 상황이 달라졌을 것 같지는 않네요.”
[회원3] 게시판 주인 생각에 동감이다. 더 늦기 전에 개선이 필요하므로, 필자 생각에도 동감이다.
[필자] 제 생각에도 제17대 대선 결과는 결선투표를 했어도 다르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결선투표 대부분이 과반수 획득을 선출조건으로 하지만, 변형도 있습니다. 예컨대 1등이 45%, 46%, 혹은 47% 이상 득표하면 결선투표 없이 당선을 결정짓는 것입니다. 이 변형은 이론상 결함은 있지만, 일부 불필요한(경험적으로) 결선투표를 하지 않아도 되는 이점이 있습니다. 기준이 자의적이라서 저는 변형을 찬성하지 않습니다.
[회원4] 게시판 주인과 동감이다. 미국식 중임제는 어떨까?
[필자] 연임 허용 4년 임기 대통령제에 결선투표를 결합하는 형태를 지지하는 정치학자들이 지금은 제법 있습니다.
[회원5] 개헌 없이 결선투표 도입은 안될 것이다. 결선투표 도입은 찬성한다. 단순다수제와 지역구도가 결합하여 특정 지역은 일당 독재나 마찬가지이다. 연대와 연합을 조장하는 결선투표가 국회의원 선거에도 도입되면 좋겠다.
[필자] 회원5님의 의견에 동감입니다. 일단 대선에 결선투표를 도입해서 시행하고, 다음 단계에 총선까지 확산하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심려 깊은 의견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
[토론 평] 이 토론에서 발제자인 필자는 필요한 정보를 획득했고, 여러 회원으로부터 발제 취지에 동의하는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일부 회원은 그 실현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였다. 한 회원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국회의원 선거에도 결선투표가 도입되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하여 필자의 동감을 이끌어냈다. 전반적으로 차분한 분위기에서 각자의 의견이 제대로 전달된 잘 된 토론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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