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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 31일 금요일

[음악] 클래식 음악 단상

주말입니다. 즐거운, 재충전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어느 날 라디오에서 들려왔던 베르디 오페라 "아이다"의 개선행진곡은 제가 클래식 음악 감상 취미를 시작하게 된 동기가 되었습니다. 스타디움같은 큰 야외 공간에서도 공연되는 "아이다"는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죠.

Aida (Act 2 Triumphal March)
Maria Chiara, Nello Santi, Verona Arena 1992

고등학생 시절 좋은 음향기기에 욕심이 많이 갔었는데, 집에 있었던 것은 축음기 스타일의 아주 오래된 LP판 전축, 라디오가 없는 카세트 녹음/재생기(회화용)와 라디오였습니다. 주로 FM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카세트 녹음기에 가까이 대고 녹음해서 반복해서 듣는 식으로 취미생활을 했습니다. 아버지께 쓸만한 카세트/라디오 녹음/재생기를 사달라고 하루는 졸랐습니다만, 돌아온 답은,

"그 돈으로 땅을 산다고 하자. 그러면 10년 뒤에 그 가치가 어떻게 될 것 같으냐?" ==> "땅값이 많이 오르겠죠."

"그러면 그 카세트 라디오 값은 10년 뒤 어떻게 되겠느냐?" ==> "....."

(아버지께서 부동산 투기하셨던 것은 아닙니다. 오해 마시길.^^ 평범한 농부의 장남으로 도회지에 진출하여 집안을 꾸리시느라 매우 "실용적"으로 사셨죠.)

그런 와중에 현금으로 장학금을 받는 쾌가 생겨서, 결국 그 장학금으로 최소한의 기능(방송을 곧바로 녹음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춘 조그만 카세트 라디오를 샀을 때 제 희열은 대단했습니다. ^^ 해설서에 밑줄 치면서 음악을 들었습니다. 그 당시 제가 자주 들었던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한번 들어보시죠. 훌륭합니다.

Beethoven "Emperor" Claudio Arrau (excerpt)

제가 좋아하는 쇼팽의 야상곡 1번을 올립니다.


Vadim Chaimovich plays nocturne op. 9 no.1 b-Moll by Chopin


그리고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월광입니다.

[수필] 사회과학의 재미

제가 고등학생이었을 때는 2학년에 올라가면서 문과와 이과를 나눴습니다. 한 학년에 반이 10개였는데, 이과가 7반, 문과가 3반이었습니다. 저는 주저 없이 문과를 선택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과를 택해서 의사가 되거나, 컴퓨터 관련 공학자가 되는 것이 더 적성에 맞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가끔 듭니다만, 그때는 외교관이 되고 싶어서 문과를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경로가 서울대 사회과학계열, 외교학과, 외무고시, 그리고 외교관으로 활동하는 것이었죠.

아버지는 제 선택에 전혀 조언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제 자유를 존중해주신 것이고, 다르게 보면 구체적으로 조언하실 만한 정보가 없어서 그냥 방임하신 면도 있습니다. 제가 서울대 사회계열에 합격하고 외교학과로 들어간 후에서야 아버지는 제 진로에 대해서 회고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길이는 법대로 갔어도 좋았을 텐데..."

미리 말씀하셨다면 제가 법대에 원서를 냈을지도 모르죠. 지금은 듣보잡(그 듣보잡은 아닙니다!)이지만, 고등학생일 때 제가 공부를 조금 했습니다.^^ 그때는 예비고사 제도였죠. 예비고사 전국수석이 부산 출신이었습니다. 그것도 집이 광안리였습니다. 제 고향이 광안리 아닙니까. 집에 확인전화가 오기도 했습니다. 혹시 수석 한 것 아니냐고... ㅋㅋㅋ 전국수석은 차치하고, 학교에서 수석도 못했습니다. 그래도 재수는 안 했습니다. 본고사 수학문제가 매우 어렵게 출제되었는데, 저는 운 좋게도 몇 문제를 풀 수 있어서 그럴 듯한 성적으로 사회계열에 합격했습니다.

유치원 때부터 친구인 의사가 있습니다. 의대로 진학하여 꿈을 이뤘죠. 서울에 가면 그 친구 병원에 꼭 놀러 갑니다.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습니다. 수술 한 건 하고 나면 대부분은, 행복이 증가하는 사람이 한 명 탄생하거든요. 자신도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서 매우 뿌듯하게 생각합니다. 자칭 예술가죠. ^^

사회과학을 공부하면 그런 뿌듯함을 느끼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공부하면 할 수록 이것도 맞는 것 갖고, 저것도 옳은 것 같아서 뭐가 뭔지 헷갈릴 때가 흔히 있습니다. 인간사가 그렇지 않습니까. 최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해서도 보는 시각에 따라서, 서거가 되기도 하고, 사망도 되고, 자살이 되기도 하죠. 각자 마음과 표현의 자유가 있으니까요.

사회과학 교수가 되면 교육과 연구에서 보람을 찾으면 됩니다. 사실, 직업 한도 내에서는 그것이 가장 바람직한 행복 찾기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연구는 반드시 어려운 전문 논문용 연구가 아니더라도, 예컨대 일반인을 위한 해설서라든지, 학생교육을 위한 훌륭한 교과서를 집필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그런데 인간의 욕심도 있죠. 교육, 연구에 덤으로 자신의 아이디어가 정책에 반영되어 사회가 더 발전하면 더 좋은 것이죠. 그런 욕심이 없는 학자를 찾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나라 출신 이공계 학자들은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에서 활동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그러나 사회과학자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 학위를 하고 최종 종착지는 우리나라 직장을 선택하죠. 저도 그랬습니다. 첫 직장은 미국 대학교였지만, 영 재미가 없었습니다. 영어로 교육하려니 기본은 가르치겠는데, 강의만 마치고 돌아서면 뭔가 허전한 것입니다. 우리말로 가르쳤으면 더 잘 설명할 수 있었을 텐데라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미국에서 정년을 보장받으려면 허접한 논문 여러 개보다 똑똑한 자식 한둘이 더 위력을 발휘합니다. 우리나라에 대해서도 설을 매우 잘 풀면, 미국 정치학 학술지 랭킹 1위인 American Political Science Review에 논문을 게재할 수 있겠죠. 그런데 학술지 제목을 보십시오. American으로 시작합니다. 물론 미국 정치학회 학술지라서 그렇지만, 내용도 USA 위주입니다. 지금까지 그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한 우리나라 출신 학자는 한 손에 꼽습니다.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 학술지에 한 편 실으면 가문의 큰 영광이 됩니다. 신촌 모 대학의 제 친구가 오래전에 한 편 실었습니다. 저는 그 친구에게 무조건 실력을 인정한다고 했습니다. 부러비~라고 말했습니다. ^^

미시간 촌구석에서 저 같은 듣보잡이 아무리 떠들어봐야, 워싱턴 DC에서는 들은 척도 안 합니다. 당연하죠. 미국에 학자가 얼마나 많은데요. 그중에서 실력이 뛰어나고, 또 정책 입안자들이 고르고 골라서 학자들의 주장을 듣습니다. 극동 아시아에서 온 촌놈이 워싱턴 쪽에 먹히는 한 소리를 내놓는 것은, 저로서는 고양이가 쥐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교수가 되면 상황은 급반전합니다. 왜일까요? 실력이 갑자기 좋아져서일까요? 아닙니다, 아닙니다. 학자 숫자가 적어서 그렇습니다. 우리나라 인구가 4천 5백만 정도죠. 미국은 약 3억입니다. 대충 7배라고 합시다. 미국 학자수는 7배보다 훨~씬~ 많습니다. 대학교 수만 비교해도 뻔한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게다가 소위 일류 대학교라는 학교로 범위를 좁히면, 큰 방 하나면 해당 정치학자 모두 모을 수 있습니다. (물론, 소위 일류대학 교수라고 해서 더 실력이 좋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지금은 이전보다 경쟁이 제법 생겼다고 하지만, 학자 숫자 자체가 적으면 제대로 된 경쟁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대학교 교수 숫자는 더 늘어나야 합니다. 대운하니, 4대강이니, 그런 데 돈을 쓸 것이 아니라, 일부라도 비정규직 대학교원을 정규직으로 바꾸는 데 돈을 쓰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학자들 사이에 경쟁도 생기고, 지식의 축적이 일어나서, 장기적으로 우리나라 발전에 도움이 됩니다. 돈 쓰고 환경 파괴하는 것과 비교해 보십시오. 얼마나 좋습니까.

사회과학을 연구하는 학자는 주로 연구와 강의를 통해서 자신의 철학과 주장을 관철합니다. 그렇지만 때에 따라서 신문에 시론을 쓰든지, 일반인을 대상으로 책을 내서 사회를 상대로 홍보하기도 하죠. 이럴 때, 더 많은 사람이 공감해주면 더 행복해지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그런데 맥이 탁 풀릴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주장은 올곧은데 비주류가 될 때입니다. 많은 사람이 참 옳은 말이라고 칭찬을 해주는데, 현실 정책으로는 반영이 되지 않을 때입니다. 이럴 때도 신이 난다면, 무골호인이죠. 성인의 반열에 올라도 됩니다. 그런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바람직한 사회는 그런 분이 비주류가 되지 않는 사회일 것입니다. 그래야 사회과학을 제대로 하는 재미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오늘도 두서없이 주저리주저리 했습니다. ^^

(사진 출처: 서울대 경제학부 이준구 교수님께서 직접 촬영하신 것입니다.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2009년 7월 30일 목요일

[단상] "몇 어찌"

(서울대 이준구 교수 게시판, 2008/07/10)

중학교인지, 고등학교인지 기억이 정확하게 나지는 않지만 제가 공부한 국어 교과서에 "몇 어찌"라는 故 양주동 선생(1903~1977, 국문학자, 영문학자, 향가 연구가)의 수필이 있었습니다. 인터넷 유람을 하다 오랜만에 같은 제목의 동영상을 발견하고 무척 반가웠습니다. 동영상을 보니 요즘 국어 교과서에는 그 수필이 빠졌는지 학생들이 "몇 어찌"가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는 것 같습니다.

같은 수필에서 "삼인칭"에 대한 일화도 나옵니다. 영문법을 공부하다 삼인칭이라는 용어를 접하고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서 영어 선생님께 달려가서 여쭤 봤더니, "내가 일인칭, 너는 이인칭, 나와 너 외엔 우수마발(牛溲馬渤, 쇠 오줌과 말똥)이 다 삼인칭이라."는 재미있는 표현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양주동 선생은 생전 걸쭉한 입담으로 유명한 분이셨죠. 자기 자신을 천재 혹은 대한민국 인간 국보로 칭했다고 합니다.


양주동의 몇 어찌

[단상] 인터넷과 가면 놀이

인터넷 게시판을 크게 두 종류로 나누면 실명제 공간과 비실명제 공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실명제 공간에서는 가면 놀이가 가능하지 않죠. 그런데 비실명제 공간에서는 가면 놀이가 가능합니다. 그 공간은 다시 익명이 허용되는 곳과 허용되지 않는 곳으로 나뉠 수 있습니다. 익명이 허용되지 않는 비실명 공간의 가면 놀이는 기껏해야 필명을 사용하는 정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이 가면은 실제로는 완벽한 가면이라고 할 수 없겠습니다.

인터넷 인생이 십수 년이 되다 보니 별의별 일들을 많이 겪었습니다. 그중에 가면 놀이와 관련된 해프닝이 생각나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래전에 모 게시판에서 높은 수준의 내공을 보여주던 한 필명이 있었습니다. 항상 재미있는 글들을 많이 올려서 인기도 좋았습니다. 저는 처음에 여자 대학생 혹은 대학원생인 줄 알았습니다. 문체나 화법이 그랬거든요.

그런데 그 필자는 여자도 아니었고, 학생도 아니었습니다. 우연히 그 사실을 제가 알게 되었죠. 그 이후에 제가 발제를 해서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방법"에 대한 토론이 있었는데, 그 필자가 또 여학생인 척 글을 올렸습니다. 토론이 과열되면서 가면 뒤의 실제 인물에 대한 얘기가 오가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그 필자가 어느 학회의 뉴스레터에 한 수학 문제에 대한 수필을 실었는데, 대충 다음과 같은 표현이 나왔었던 모양입니다. "필자가 자주 가는 인터넷 게시판의 회원인 X가 이 문제를 제기하였다. 그 문제는 다음과 같이 풀 수 있다..."

그런데 그 X가 필자 자신이었다는 것이 위의 토론 과정에서 밝혀져 버린 것입니다. 그 결과 X는 게시판을 자진 탈퇴하고 사라졌습니다. 가면 놀이의 씁쓸한 결말이었습니다. 가면이 가식이 되어버린 경우죠.

익명이라는 진짜 가면을 쓰게 되면 심한 경우에는 욕설이 오고가는 목불견이 생기기도 하지요. 가면도 잘 쓰면 많은 사람에게 즐거움을 안겨주면서 자신의 행복추구도 할 수 있겠습니다. 한 가지 유의해야 할 것은 가면은 벗겨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가면을 쓰더라도 벗겨질 경우를 염두에 두고 가면 놀이를 해야 합니다. ^^

[자유] 국가와 사회적 약자

[설명] 아래 글은 영국 정치사상가 홉스(Thomas Hobbes)를 원용하여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평등 개념이 어떻게 도출되는지를 보여준다. 국가는 당연히 여자나 장애인과 같은 헌법에 규정된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해야 한다. 그것은 국가의 책무이다. 이것을 지키지 않는 국가에 대해서는 국민이 그 시정을 강력하게 요청해야 한다. 아울러서 명시적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더라도 사회적 약자라는 공감대가 생기면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그들을 돕고 보호해야 한다.

(1) 홉스와 데카르트(Rene Descartes)

국가의 역할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능은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국가기능이 역할을 제대로 할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특히 약자를 보호한다는 측면에서는 아쉬움을 느낄 때가 있었습니다.

국가가 왜 약자를 보호해야 하느냐를 설명하려면 홉스의 <리바이어던(Leviathan)>을 참조하는 것이 한 방법일 것입니다. 홉스는 마키아벨리(Nicolo Machiavelli)와 함께 근대 정치학의 한 획을 긋는 영국의 정치사상가로서 자연상태와 사회계약을 이론적으로 체계화시켰습니다. 우리의 귀에 익숙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란 유명한 말을 남겼죠.

홉스의 방법론을 이해하려면 프랑스의 데카르트를 어느 정도 이해해야 합니다. 데카르트는 <방법 서설>에서 지식을 어떻게 축적할 것인가를 간단명료하게 설명하였습니다. 연역적 방법론을 체계화시켰습니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Je pense, donc je suis. Cogito ergo sum.)”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다른 표현으로 설명하면 “생각은 존재의 충분조건”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면 생각을 하는지 아닌지를 확인해보면 됩니다. 이 명제는 (생각 => 존재)의 관계를 설파하는 것으로 대우명제는 (존재X =>생각X)이 되겠습니다. 참인 명제입니다.

이 명제가 사회과학 방법론에 미친 영향은 큽니다. 지식이 어떻게 축적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데카르트는 분석대상을 쪼개서 연구할 것을 제시했습니다. 인간만큼 중요한 분석대상도 없습니다. 인간을 인간 전체로 분석하자면 너무 복잡해서 인간에 대해서 잘 알 수 없다는 것이 데카르트의 입장이었습니다. 군인으로 막사에 앉아서 화롯불을 쬐면서 데카르트는 생각했습니다. 인간은 결국 쪼개서 연구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머리 즉 생각은 분리해버리면 인간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래서 그 유명한 명제가 나온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데카르트는 이 모든 것을 생각으로 해결했습니다. 연역적 방법론입니다. (생각 => 존재)의 논리를 사회과학 전반에 적용시켜서 전체는 부분으로 쪼개서 분석하자는 주장이지요. 이것이 근대 실증과학 철학의 근간을 형성합니다. 어려운 것보다는 쉬운 것부터, 복잡한 것보다는 단순한 것부터 분석해서 하나하나 쌓아 올리는 지식축적론을 주창한 것입니다. 이 방법론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서구문명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2) 자연상태와 국가 형성의 사회계약: 평등 구현

홉스와 데카르트의 연관관계는 어떤 것일까요? 홉스는 아주 간단한 모형에서 시작하여 국가의 형성을 설명하려고 하였습니다. 즉, 통치기구도 없고 아무런 질서도 없는 가장 단순한 자연상태를 분석하기 시작했습니다. 인간도 아주 단순하게 보았습니다. 홉스는 흔히 두려움(fear)과 쌍생아 관계라고 얘기합니다. 어릴 때부터 유약했던 홉스에게 인간의 존재, 즉 생존만큼 중요한 것은 없었다는 해석이지요. 자연상태에서는 경찰도, 어떤 형태의 도와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다만, 자기 자신만을 믿을 수 있을 뿐이지요. 자구(self-help)가 유일한 생존법칙인 세계입니다.

이런 자연상태의 세상에서는 일단 힘이 있어야 합니다. 홉스의 원초적 인간관은 아시다시피 매우 부정적입니다. 자연상태에서 믿을 수 있는 것은 자신의 폭력과 지능밖에 없습니다. 남을 순수한 폭력으로 제압하든지, 돌멩이 같은 도구를 이용하여(지능을 동원) 물리칠 수 있어야 자신의 안전에 대한 약간의 안심을 할 수 있는 지경이니까요. 여기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약자는 강자에게 당해야 되는 세상이고, 틈만 나면 남을 제거해야(궁극적으로는 자신만 남아야) 안전이 더 많이 확보되는 아주 불편한 인간관계가 성립된다는 것입니다. 인류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 이런 자연상태였는지 홉스가, 또 우리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홉스도 연역적 방법을 동원하여 일단 이론적으로 그런 모형을 만들어서 국가 형성을 설명하려고 했던 것뿐입니다.

인간은 역시 생각하는 동물이라 위와 같은 불편함을 없애기 위한 노력을 시작합니다. 홉스에 따르면 자신이 가진 물리적 폭력을 대부분 포기할 것을 서로 약속하게 됩니다. “사회계약”을 이루어서, 국가라는 “괴물(성서의 리바이어던)”에게 남을 해칠 수 있는 능력을 포기하는 “각서”를 쓴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국가는 관리자가 되고 사회계약 속의 인간들은 남의 생명을 해치지 못하도록 규정된다는 의미에서 일종의 평등을 이룩합니다. 즉, 약자나 강자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제도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왜 강자가 그런 계약을 맺게 되는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절대적인 강자는 없기 때문입니다. 약한 인간들도 연합해서(혹은 머리를 써서) 힘센 사람을 죽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시민 혹은 국민은 누구나 국가의 보호를 받아야 된다는 당위성이 생깁니다.

(3) 룻쏘(J. J. Rousseau)와 사토리(Giovanni Sartori)의 평등 개념

홉스 이후의 룻쏘나 사토리 같은 정치사상가들의 주장을 같이 참조하면, 우리 헌법에도 명문화되어 있듯이 장애인과 여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는 국가가 더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이 제시됩니다. 그런 논의들의 출발점이 바로 홉스라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즉, 자연상태에서 불평등한 인간들이 국가를 만들어서 일종의 “평등” 상태를 구현한다는 아이디어입니다.

그런데 룻쏘가 볼 때, 인간 사회가 평등하지 않은 것입니다. 룻쏘는 불평등을 자연적(육체적) 불평등과 정신적(moral) 불평등으로 나눴습니다. 다른 사회계약론자인 로크(John Locke)가 인간들이 사회계약을 자발적으로 맺는 것으로 파악했지만, 룻쏘는 특히 정신적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인간들에게 강제적으로 사회계약을 맺게 하는 측면을 강조하게 됩니다. 룻쏘가 정치사상사에서 권위주의(authoritarianism)나 사회주의/공산주의 주춧돌을 놓은 것으로 평가되는 것은 이때문입니다.

그다음에 사토리는 평등 개념을 더 체계화시켜서 정치적 평등, 사회적 평등, 기회균등을 민주주의의 기본 평등 개념으로 제시합니다.

“완전한 정치적 평등(보통 선거권), 사회적 평등(계급 및 재산과 상관없는 동등한 지위와 배려), 그리고 기회의 균등(동등한 출발점과 진입)”
“Full political equality (as equal universal suffrage), social equality (as equal status and consideration regardless of class or wealth), and equality of opportunity (as equal access and equal start)”

결론적으로 말씀드려서 홉스의 평등 개념에서 시작하여 룻쏘를 거쳐서 사토리까지 참조하면 국가는 사회적 약자를 더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음악] 오렌지 꽃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마스카니의 단막 오페라 카바렐리아 루스티카나에 나오는 "오렌지 꽃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입니다.

요즘은 다방이라는 이름이 거의 사라졌는데, 제가 대학생이었던 80년대에 대학생들이 주로 노는 장소가 다방이었죠. 미팅도 다방에서 많이 했고요. 다방 이름도 특이한 것이 많았습니다. 그중에서 특히 제 기억에 남는 다방 이름이 "오렌지 꽃향기는 바람에 날리고"라는 제법 긴 이름입니다. 그 이름은 마스카니의 오페라 "카바렐리아 루스티카나" 시작 부분에 나오는 합창 가사에 나오는 것인데, 다방 주인이 그 합창곡을 좋아해서 그렇게 이름을 붙였을 것 같습니다. 이름에 걸맞게 실내도 밝은 노란색/흰색 파스텔 색조로 장식한 아담한 다방이었습니다. 오페라 "카바렐리아 루스티카나"는 영화 God Father 3부에 매우 중요한 설정으로 나옵니다. 알 파치노의 아들이 법대를 때려치운 다음, 성악을 공부하여 오페라 가수로 시실리에서 데뷔했던 오페라가 바로 그것이죠. 오페라 줄거리 자체가 비극적이라서 그 영화와 잘 맞는 것 같습니다.

이곳은 오래 전에 오렌지 꽃이 졌습니다. 오렌지가 무럭무럭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자유] 인터넷과 민주주의

(1996년 3월 1일에 작성한 글입니다. 현 시점에서도 유효한 내용이라서 올립니다.)

국회가 필요 없는 세상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 원래 국회란 대의정치의 편의 기구로서 만들어진 것이므로 국민의 뜻을 더 잘 대표할 수 있는 방편만 있으면 국회나 국회의원은 없어도 된다는 논리도 가능하다. 지금 미국에서는 현대 문명의 발전에 힘입어 모든 안건을 전 유권자가 직접 결정하자는 운동이 일각에서 일고 있다. 인터넷을 이용한 직접 투표가 바로 그것이다. 물론 현재로서는 인터넷을 이용한 직접 민주주의가 대부분 국가에서 구체화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급속히 발전하는 정보 기술을 참작할 때, 가까운 장래에 "국회를 없애자!"라는 주장이 이곳저곳에서 나타날지도 모른다.

직접 민주주의가 아니더라도 인터넷은 전자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대의 정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믿음 중의 하나는, 더 많은 유권자가 사회의 중요한 결정에 참여하면 더 나은 결정을 가져 온다는 것이다. 따라서 민주주의에서는 대다수 여론을 최대한 존중하는 원칙을 지켜나간다. 그런데 한 사회의 크기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시민의 뜻을 어떻게 취합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문제가 반드시 생긴다. 인터넷은 그 문제를 부분적으로 해결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우리들의 곁에 어느새 다가와 있다.

인터넷이 없던 시기에는 말로 전달하든지, 신문고를 울리든지, 투서를 하든지, 종이 신문에 독자 의견을 내든지, 방송에 나가서 하소연하든지 등등의 형식으로 시민의 뜻을 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방법들은 모두 여론이 전달되는 범위가 좁거나, 전달 매체에 쉽사리 접근할 수 없는 한계를 안고 있다. 인터넷은 이런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특성이 있다. 인터넷은 광범위하며, 24시간 접근할 수 있다. 또한, 웹에서 대표적으로 구현하듯이, 인터넷은 일반 신문이나 방송과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많은 시민의 의견 피력을 허용하고 있다. 따라서 인터넷을 잘만 이용한다면, 대의 정치의 가장 중요한 명제인 여론 형성과 전달에 획기적인 발전도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전자 민주주의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서는 관계하는 모든 이의 협력과 노력이 필요하다. 근래에 주목받는 안내판 (BBS)과 인터넷 신문의 독자의견란, 혹은 포럼(뉴스 그룹)의 예를 들어 보자. 먼저,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 시민은 어떤 특정 정치인이나 현안에 대해서 말하고자 할 때, 그것이 욕설이 되지 않도록 유의할 필요가 있다. 객관적인 사실에 따라 건전한 비평이나 의견교환이 될 수 있도록, 글을 적은 후 다시 정독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아도 인터넷이 쓰레기장으로 변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타나고 있는데, 신선한 의견이 흘러 넘쳐야 할 곳에 몇몇 사람이 욕설에 가까운 표현이나, 억지 같은 논리를 펴서 대중을 피곤하게 한다면 진정한 전자 민주주의는 머나먼 일이 될 것이다.

근래에는 정치와 관련 있는 웹 페이지들을 많이 만들고 있다. 정부나 정당, 혹은 정치인들이 인터넷을 통해서 시민과 접촉을 시도할 때는, 특히 정보나 의견의 상호 교류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예를 들어서, 청와대 웹 페이지는 대통령에게 의견을 제출할 수 있도록 하는데, 만약 어떤 시민이 의견을 낸다면, 대통령이 직접 답하지는 않더라도, 담당자가 빨리 답을 해줘야 한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웹 페이지를 개설한 정당이나 후보자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가진 정보는 최대한 유권자에게 보여줘야 할 것이고, 유권자가 질의/건의한 내용에 대해서는 성심껏 답해야 한다. 더 나아가서 다른 시민이 어떤 의견을 내었는지도 될 수 있으면 공개하는 것이 옳다.

인터넷은 잘만 활용하면, 국회가 없어도 괜찮은 그런 이상향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민주주의 대원칙인 대의정치를 더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좋은 방편이 될 것이다. 아울러서, 인터넷이 민주주의에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도 연구, 검토하여 진정한 전자 민주주의를 구현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2009년 7월 29일 수요일

딴지일보라는 인터넷상의 괴짜

안박사가 인터넷 상의 여러 현상에 대하여 얘기하고 있는데,
딴지일보에 관한 견해도 궁금합니다.

뭐 쓰레기라 언급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얘기해 주면 되고...
이 걸보면 글쎄... 조선 중앙 문화 등이 더 쓰레기 같기도 하고...

난 이 게 황우석을 두둔하는 거 보고 등돌렸는데,
요즈음 다시 가끔 들러서 킥 킥 거리며 보는 내 자신을 발견하고는 약간의 갈등을 느끼거든.
(황우석 사건에 대하여 헛발질 했다고 사과 한마디 없단 말이야...)

[자유] 인터넷 소통 자유민주주의 선언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9/06/29)

(패러디 한번 해봤습니다.^^ 인터넷 자율정화에 대한 일반론입니다.
우리 게시판의 특정 사안을 염두에 두고 작성된 것이 아닙니다.)

인터넷 소통 자유민주주의 선언

인터넷 소통에 귀신들이 떠돌고 있다. 인터넷의 하늘에는 인신공격, 심한 욕설, 사생활 공개, 중상모략(인욕공모)의 귀신들이 아직 떠돌고 있다. 지금 네티즌은 자유와 평등을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이에 인터넷 소통 자유민주주의 선언을 하여 우리들의 자유와 평등 권리를 귀신들에게 빼앗기지 않을 것을 전 네티즌에게 호소한다.

1. 자유

어떤 네티즌도 표현의 자유를 갖는다. 그러나 이 자유는 어떤 표현도 용납하는 방종이 아니다. 인간으로서 기본 가치와 권리를 부정하는 어떤 표현도 네티즌은 단호히 배격해야 한다. 인욕공모로 중무장한 귀신들은 우리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면서 요술을 부리고 있다. 우리는 그 귀신들이 훼손하려는 인터넷 자유 정신을 온 몸으로 지켜야 한다.

네티즌은 준익명의 자유를 갖고 있다. 준익명 정신은 자유를 진작시키는 도구로서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준익명 정신을 악용하려는 귀신들의 준동은 단호히 처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유 진작의 준익명 정신이 심각하게 훼손될 것이다. 귀신들은 준익명을 악용하여 많은 사람들을 현혹하고 괴롭히고 있다. 이들의 준동을 막아야 인터넷 자유는 온전히 보전될 수 있다.

2. 평등

네티즌은 인터넷 서비스에 가입하면서 평등한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았다. 평등은 어떤 특권도 용납하지 않는다. 귀신들은 사이비 자유를 달콤하게 속삭이면서 자신들의 특권을 지키려고 한다. 우리가 이 귀신들을 처단하지 않으면 국가라는 괴물이 개입할 수도 있다. 그 괴물은 인터넷 밖에서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데, 귀신들의 몰지각한 이기주의와 인욕공모 신공이 괴물이 쳐들어 올 빌미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귀신들이 그런 신공을 사용할 자유가 있다면 우리는 그 신공을 비판할 자유 묘법이 있다. 평등하기 때문이다.

3. 참여

"자유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이 있다. 본래 자유와 평등은 그것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자들에게 부여된 선물이다. 그것을 진작하려는 노력을 펼치지 않으면 귀신들의 요술 신공에 현혹되어 국개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사람이지 개가 아니다.

자유와 방종의 차이는 인터넷에서 어떻게 구분되는 것이 바람직한가? 관리자가 구분하는 것인가, 국가가 구분하는 것인가? 자유와 방종을 구분하려는 네티즌들의 노력은 얼마나 있었는가? 방치되는 방종은 자유가 되어버린다. 방종을 비판하고 적절히 제어해야 그 때 방종과 자유가 확연히 구분된다. 그렇지 않으면 방종이 자유의 가면을 쓰고 인터넷 거리를 활보할 수 밖에 없다.

자유와 평등을 지키려는 참여가 없이 인터넷을 지키려는 것은 공짜 점심을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세상에 공짜가 없듯이, 인터넷에도 공짜는 없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는 네티즌의 자발적인 참여는 필수조건이다.

귀신들에게 묻는다.

너희들의 귀신 가면은 영원히 특권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귀신 너희들은 인터넷의 자유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국가라는 괴물로부터 인터넷 소통을 온전히 보존할 비책이 있는가?

전 네티즌에게 온 몸으로 호소한다.

- 인터넷 자유민주주의 깃발 아래 모두 모이자!
- 귀신들의 준동이 자유가 아니고 방종임을 온 몸으로 보여주자!
- 귀신들은 가면을 벗고 원래 모습인 인간으로 돌아오라!

인터넷의 진정한 자유인들이여 대동단결하라!

[자유]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

우리 사회에 이념적 갈등이 있습니다. 흔히 진보-보수, 좌파-우파 갈등이라는 것이죠. 이 갈등을 건설적으로 활용하면 사회를 더 발전시키는 동력이 될 수 있지만, 이전투구가 되면 부정적 갈등만 증폭시킵니다. 상대방을 "빨갱이", "좌빨", "수구", "꼴통", 이렇게 부르기 시작하면 사회발전 동력이 될 수 없고, 감정의 골만 깊어집니다.

좌우, 보수-진보는 상호 견제하면서 소통하는 진영이지, 상대방의 존재를 부정해야 하는 진영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자유민주주의에서는 양 진영의 가치를 모두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선진국 정치를 보십시오. 그렇지 않습니까? 특히, 유럽에서는 보수와 진보가 난형난제하면서 아웅다웅하지만, 우리같이 상대방을 일종의 "악"으로 몰지는 않습니다.

전선이 잘못되었습니다. 공공의 적은 "권위주의"입니다. 자유민주주의에 반하는 개념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 헌법에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대못을 박아놓았습니다. 그렇다면 자유민주주의를 무시하는 권위주의가 우리 국민의 적입니다. 좌우, 보수, 진보가 아닙니다. 정치판에서 각자 세력을 넓히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정치적 조작 측면은 제가 이해를 합니다. 그러나 이제 새로운 발상을 할 때가 되었습니다. 아직 남아있는 과거 독재/권위주의 잔영을 청소해야 합니다.

아래 첨부는 한국경제 논설위원 정규재 씨의 글입니다. 잘 아시죠? 이념 놀이를 계속 하자는 코미디입니다. 이것을 진보나 좌파 쪽에서는 어떻게 비판할 수 있을까요? 좌우 개념을 이용해서 비판하면 끝이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자유민주주의로 비판합니다. 글을 읽어보면 뚜렷하게 자유주의에 어긋납니다. 헌법 정신을 어기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우파라는 비판도 가능하지만, 좌우 잣대로 싸우는 것은 정규재 씨가 즐기는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당신은 권위주의자!"라고 일갈합니다.

칼럼의 내용이 문제입니다. 흑백논리라고 하죠. 저는 좌도 좋고 우도 좋습니다. 단, 자유주의 기본 정신에 어긋나지 않아야 합니다. 정규재 씨는 우파는 "선", 좌파는 "악"이라는 식으로 짜깁기를 했습니다. 그러면 우파 권위주의가 됩니다. 일종의 중상모략입니다.

헌법 제19조 양심의 자유는 흑심의 자유도 인정합니다. 따라서 생각은 자유입니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는 서로 박치기가 될 수 있어서 제한이 있습니다. 헌법 제21조 제4항에서 "언론·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된다. 언론·출판이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한 때에는 피해자는 이에 대한 피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라고 한 규정이 그것입니다. 표현/언론 자유가 방종 낌새를 보이면 격렬한 저항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저항은 국가가 할 수도 있고, 시민이 할 수도 있습니다. 저항받지 않으면, 그 자유는 그냥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흘러갑니다. 아래 첨부 글은 방종 낌새가 뚜렷하다는 것이 제 소견입니다. 좌파든 우파든 권위주의를 몰아내야 합니다. 그래야 선진국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규재 칼럼] 좌ㆍ우 이념 자가진단법 `10+3` 입력시각 : 2009-07-20 17:06

... (전략) 또 광우병 조작으로 유명한 방송의 한 사회자가 "나는 좌파가 아니라 인본주의자"라고도 했다지 않은가. 재미있는 것은 우파는 자신을 우파라고 인정하는 데 반해 대부분의 좌파는 자신이 좌파라는 사실을 모르거나 애써 부인한다는 점이다. 레드 콤플렉스 탓만은 아닐 것이다. 우파는 좌파를 머리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좌파는 스스로를 가치 지향적이라고 규정하는 것도 일반적이다. 우리나라뿐만도 아니다.

---(중략) 프랑스 혁명이 인류에 새로운 빛을 주었다고 주장하는 페인에 대해 쓰레기 잡탕들의 광기일 뿐이라고 응수했던 버크의 논변은 실로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기념비적 이정표다. ...(중략)

몇 가지 자가진단 기준을 제시해본다. 시장경제가 정의로운 체제라고 생각한다면 우파다. 그러나 약탈이며 약육강식의 체제라고 생각한다면 좌파다. 국가의 개입이 공익을 증진시킨다고 주장하면 좌파가 분명하고 국가 아닌 시장이 결과적으로 공익을 증진시킨다고 생각하면 우파다. 국가가 국민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면 좌파지만 국가가 내 밥그릇을 책임질 경우 결국에는 나의 자유도 가져갈 것이라고 본다면 우파가 된다. ...(중략)

... 현실을 천국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우파요 지옥에 가깝다고 생각하면 좌파다. 이들 기준은 보편적이어서 세계적으로도 다를 것이 없다.

한국에서만 작용되는 세 가지 기준이 더 있다. 집단지성이 투표소와 시장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하면 우파요, 거리에 쏟아져 나온 시위군중의 지혜라고 주장한다면 좌파다. 한국 현대사를 성공의 역사라고 보면 우파가 되고 오욕의 실패한 역사라고 본다면 좌파다. 김정일 체제로는 동포의 인권도 없다고 생각하면 우파요 북한 인권은 자기들이 알아서 할 문제라고 보면 좌파다. 정신의 미성숙과 가치판단의 이중성을 반영하는 재미있는 기준이다. 하나 더! 다소 어려울 수도 있는 항목이지만 명사형 관념어를 좋아하면 좌파요 동사를 좋아하면 우파다. 독자 여러분의 이념 정향은 무엇인지 항목별로 O,X 숫자를 세어 보시라.

[수필] 바람직한 제자 상이란...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9/07/01, http://jkl123.com/)

(치악산에서. 자주색 모자 쓴 젊은? 청년?이 저입니다. ㅋㅋ 2004년 )

선생님들에게 가장 큰 보람은 역시 제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게시판의 글들을 읽으면서, 이 교수님께서 제자들을 생각하시면 흐뭇하실 때가 잦겠다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저에게도 제자들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러시아에서 온 학생이 조금 특별한 경우라서 요즘도 한 번씩 생각이 나곤 합니다. 그 학생은 러시아 정부가 한국통으로 키울 요량으로 상당한 투자를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울대 학생으로 오기 전에 평양의 김일성 대학에서 우리말을 공부했으며, 서울대도 일종의 러시아 국비 장학생으로 한국학 석사과정에 입학했으니까요. 그 한국학 과정은 외국인 학생들이 대부분이었고, 강의와 학위논문 작성은 우리말로 했습니다. "한국어 몰입" 교육이었던 셈이죠.

그 잘 생긴 러시아인 학생이 저에게 논문 지도교수를 해달라고 찾아왔었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제 사부께 지도교수 청을 드리러 갔던 장면이 그때 떠오르더군요. 받아주실지 아닐지 가슴을 졸이면서 겨우 말씀을 드렸더니, 제 미국 사부는 공부 얘기는 하지 않으시고, "We need to maintain an intimate relationship." 한마디만 하시더군요. 그 학생이 어렵게 어렵게 말을 꺼내는 것을 보고, 옛 생각이 나서 흔쾌히 승낙하여 스승-제자 관계가 성립했습니다. 논문 주제는 남북한 관계에 관한 것이었는데, 나중에 지도하면서 간단한 게임 모델도 활용하도록 했었습니다. 학위 논문의 한글 교정을 보면서 상당한 시간을 들였던 기억이 납니다.

그 러시아 학생을 포함해서 학생들과 소주를 한잔하러 가면 주위 사람들이 모두 신기하게 쳐다봤습니다. 일단 생긴 것이 많이 다르니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고, 외국인 학생이 우리말을 매우 잘하니 그것도 일종의 구경거리가 되었던 것이죠. 한 술 더 떠서 그 학생이 저에게 소주잔을 받을 때, 처음에는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공손하게 받았으니 주위 사람들이 보면 아마 가관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군사부일체를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더 잘 아는 것 같더군요.

그 학생의 한국 사랑은 유별났습니다. 석사 과정을 마치고 러시아로 돌아가서 외교관이 되었습니다. 자신은 당연히 서울로 발령을 받을 줄 알았는데, 그런 낌새가 없자 과감하게 사표를 던졌고, 러시아 한 신문사의 특파원이 되어서 다시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서울로 오고 싶어서 그랬다고 그러더군요. 아마 지금도 서울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을 것입니다.

선생님들에게 가장 바람직한 제자 상은 어떤 것일까요? 저는 그 러시아 학생이 그런 제자 상에 가까웠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공부도 열심히 했고, 스승을 대하는 태도도 예의 바르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얘기는 모두 하는 편이었으니까요. 덧붙여서 사회에 진출하여 반듯하게 살거나(부정부패하지 말고, 남 등쳐먹지 말고, 능력껏 주위를 도와주면서 자기실현을 추구), 스승을 학문적으로 뛰어넘을 수 있으면 금상첨화가 되겠습니다. 아래에서 이 교수님께서 청출어람이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그런 경우입니다.

이 교수님 학생들이 바람직한 제자가 되어서, 이 교수님께 아름답고 보람있는 추억으로 남게 될 것을 감히 기원해봅니다.

(요즘 이 교수님께서 이 게시판에 들이시는 정성을 보건대, 교수-학생 소통이라는 측면에서 학생들에게는 매우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듭니다. 경제학에서 행위 주체를 흔히 합리적 행위자로 가정하는데, 실습을 할 좋은 기회인 것 같습니다. 많이 많이 활용하세요. ^^)

One more piece

Karl Jenkins의 Palladio입니다.



요즈음 젊은 세대 말로 "즐감".

[자유] 이기적 이타주의

자신을 이기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타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 자신을 생각해봤습니다. 제가 공부한 합리적 선택이론이나 게임이론에서는 사람을 이기적이라고 가정합니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가정입니다. 물론, 마리아 테레사 수녀님 같은 숭고한 이타주의를 실천한 분도 계시지만, 제가 아는 많은 사람은 이기적입니다. 인터넷의 누리꾼들을 관찰해봐도 그렇고,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봐도 이타적이라기보다 이기적인 예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사람은 이기적이라고 가정해도 무리가 없습니다. 특히, 돈이나 권력 같은 희귀한 자원에 대해서는 더 그렇습니다.

그런데 반드시 이기와 이타 이분법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는 것도 맞습니다. 사람이 천편일률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니까요. 어떤 때는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어떤 때는 이타적으로 행동하기도 하죠. 수전노가 보육원에 기부하면, 이기주의자가 이타적 행동을 하는 것으로 봐야 합니다. 어떤 분은 그 기부도 자신의 행복을 위한 이기적 행동이라고 주장하겠지만, 그렇게 고무줄 늘이듯이 이기적 잣대를 주물이면 테레사 수녀님도 이기주의자가 되겠죠. 즉, 이기주의에 모든 것을 환원하는 생각은 무엇을 설명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과학적 방법론에서 환원주의(reductionism)를 매우 경계합니다. 종교에서는 도움이 됩니다.

지금 말씀드린 그런 사례가 아니고, 이기주의자가 이타주의자가 되어야 하는 상황이 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가 그렇습니다. 생각을 돕기 위해서, 어떤 사회에 A와 B 두 대안이 있다고 합시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입니다. A와 B, 둘 중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애매모호한 상황이라고 하죠. 그러면 자유주의에 따라서 각자 옳다고 주장하고, 민주주의에 따라서 사회적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A 혹은 B를 지지하는 각 진영에 리더가 있습니다. 각 진영이 서로 자신의 대안을 전체 결정으로 만들려고 노력하겠죠. 그러면 리더를 도와야 합니다. 리더의 목소리가 더 커질 수 있도록 참여해야겠죠. 이것이 자유민주주의적 참여이며, 이기주의자가 이타주의자가 되는 사례가 될 수 있겠습니다.

자유민주주의에서는 머릿수 다툼을 흔히 합니다. 선거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정책에 있어서도, 민주주의가 다수 지배를 의미하므로, 사람을 더 많이 모으는 정책이 관철될 가능성이 더 크죠. 물론, 대의제에서는 이전 선거에서 이긴 진영의 뜻이 더 존중되지만, 그래도 여론의 향배를 무시하지 못합니다. 뭐, 최근의 미디어법 같은 막가파식 사례가 나오기도 합니다만...

상대적으로 옳은 견해를 갖는 비주류가 외롭게 되는 예를 우리는 흔히 봅니다. 그것은 알게, 모르게 그렇게 될 때가 잦습니다. 자유민주주의 대 권위주의를 생각해보시죠. 자신이 권위주의 형이라는 것을 모를 수 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헌법 아래 살고 있으면, 저절로 자유민주주의자가 되는 것은 아니죠. 그렇다면, 특정 상황에서 겉으로는 자유민주주의가 다수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유민주주의자가 소수이고, 권위주의자가 다수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꼭 수로만 따질 것이 아니라, 권력 지도까지 포함해서 따질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자유민주주의를 위해서 이기주의에 기반을 둔 이타주의가 필요합니다. 서로 도와야죠. 장기적 관점에서는 이기적 행위이겠지만, 그 시점에서는 이타적 행위입니다.

주위에서 옳고 바른 견해를 가지고 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소수나 외톨이가 된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시면, 이기적 이타주의를 한번 발휘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경쟁이 벌어지면 이기는 것이 좋죠, 지는 것보다는. 저는 이기적 이타심을 가능한 한 자주 발휘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제 근본은 자연스럽게 건전한 이기주의에 두고 말입니다.^^

p.s. 이 글은 이준구 교수님의 말씀,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유주의자는 자신의 자유와 권리뿐 아니라, 남의 자유와 권리까지도 조금이라도 침해된다면, 목숨을 걸고 싸울 용기를 갖고 있어야 해."에서 생각의 나래를 펼쳐서 작성한 것입니다. 저는 처음에 모순어법처럼 들렸습니다. 자유주의자는 이기적인데, 남을 위해서 격렬한 투쟁을 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습니까?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 "남"은 권위주의자가 아니라 자유주의자였던 것입니다. 빙고! 이미 알고 계셨나요? 그렇다면, 제가 우둔했습니다. ㅜ.ㅜ

좋은 화두를 던져주신 이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데카르트에 따르면, 생각은 인간 존재의 충분조건이라고 합니다. ^^ 사진은 스탠포드 미술관에서 직접 찍었습니다. 로댕 진품이라고 합니다. 조각품은 진품이 여러 개 있다고 들었습니다.

[정치] 공공선택으로서 국회의원 선거제도

(지금 적고 있는 책의 일부분입니다. 원 글은 2008년 4월 9일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에 올렸습니다.)

[설명] 필자는 노무현 제16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정치개혁연구실에서 상근 자문위원으로 “정치적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선방안 연구”에 참여한 바 있다. 아래 글은 그 당시 참여한 학자들이 최종적으로 합의한 개선안인 소선거구제 + 일률배분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간략하게 설명한 것이다. 제18대 총선을 맞이하여 지난 시절의 소회가 떠올라서 작성한 글이다. //

공공선택(Public Choice) 측면에서 선거는 개인 선호를 특정 사회 전체 선호로 모으는 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애로우(Kenneth Arrow) 교수의 불가능성 정리를 참조하면 이 선호 전환 과정에서 완벽한 제도를 고안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 우리를 우울하게 만듭니다. 따라서 어느 특정 선거제도가 모든 점에서 우월하다는 주장을 할 수는 없습니다. 미국 대통령 선거제도를 살펴보면 가관입니다. 간접선거에 각 주의 선거인단 획득 규칙은 승자독식(winner-takes-all)이 대부분이므로 민주주의 기본원칙을 어길 가능성이 있는 제도입니다. 제도개선 주장이 제법 있지만, 그래도 그 제도를 유지하는 것은 결국, 미국의 정치/사회/문화적 요인이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습니다.

소선거구제와 전국단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가 섞인 우리나라 국회의원 선거제도도 그 나름대로 존재 이유가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 정치의 고질적 병폐로서 흔히 언급되는 정치적 지역주의를 완화할 대안을 검토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작업입니다. 이 문제의식과 관련하여 그동안 검토되었던 국회의원 선거구제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중대선거구제입니다. 지역구에서 2~5명을 선출하는 제도인데,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우리 정치적 지역주의를 완화하기에는 미흡합니다. 그 효과가 미흡함에도 채택해야 할 장점이 별로 없는 제도입니다.

둘째, 독일식 선거구제 변형입니다. 원래 독일식은 지역구와 정당명부 비례대표의 기준 정원이 1:1입니다. (이 기준은 우리 현실을 고려하여 2:1 정도로 변형시킬 수 있음.) 유권자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지역구 선출투표 한 표와 정당투표 한 표를 행사합니다. 전체 정당득표율로 각 정당의 의석수를 일단 결정하고, 각 정당이 권역별로 의석을 배분하는데, 특정 권역의 지역구 당선자 수가 권역 배당을 초과하면 그 초과분을 인정해주는 제도입니다.

예를 들어서, A 권역의 전체 기준 의석수가 40석이고, X 정당의 그 권역 지역구 당선자 수가 20명이며, X 정당의 해당 권역 배분 의석수가 15석이면(전체 정당득표에 대한 그 권역 득표의 비율로 계산), 5석의 초과의석을 인정해주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되면, 선거 전 기준의석이 40석이던 A 권역은 선거 후 전체 의석이 45석이 됩니다.

이 제도는 일단 상대적으로 복잡하며, 전체 의석수가 유동적이라는 단점이 있습니다. 또한, 정책정당이 뿌리내리지 못 하는 우리 정치를 참작할 때, 현 제도를 독일식 변형으로 송두리째 바꿀만한 제도개선 유인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지역구는 갑 정당후보, 정당투표는 을 정당 식으로 투표하는 경우가 우리나라에서는 상대적으로 많이 나오는 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셋째, 소선거구제 + 일률배분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입니다. 전국을 서울 / 인천 경기 / 강원 / 충청 / 광주 호남 / 부산 울산 경남 / 대구 경북 / (제주), 7~8개 권역으로 나눠서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적용합니다. 지역구 200석, 비례대표 99석으로 하며(현행 법률상 국회의원 수 상한선은 299석), 각 권역 비례대표 배분은 각 정당의 권역 내 득표율이 아닌, 전국득표율을 기준으로 하는 내용입니다.

이 방안은 이론과 현실(국민 설득, 여야합의 가능성 등)을 심층적으로 고려한 것으로서, 정치적 지역주의 완화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권역별 비례대표를 전국 정당득표율로 배분하는 점에서 시비가 걸릴 수 있지만, 국회의원은 국가 전체를 대표하는 헌법기관이므로, 그렇게 배분해도 괜찮습니다. 이 제도를 도입해서 우리 정치의 발목을 잡는 정치적 지역주의를 점진적으로 완화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가 이 교수님 게시판에 국내정치와 관련된 글은 올리지 않으려고 조심하고 있습니다만, 오늘은 날이 날인 만큼 정치 얘기를 한번 해봤습니다. 공공선택 분야의 선거제도에 대한 의견으로 간주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토론]

[게시판 주인(이준구 교수님)] “이런 아카데믹(academic)한 글은 많이 올라오면 올수록 좋은 것 아닙니까? 비합리성(irrationality)을 발휘해 조금 전에 투표를 하고 왔습니다.”

[필자] 저는 투표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불쌍한 인생입니다. ^^ 재정학에서도 선거제도 등 공공선택을 다루는지 궁금합니다.

[게시판 주인] “공공선택은 재정학의 중요한 이슈 중 하나입니다. 예를 들어 뷰캐넌(J. Buchanan) 같은 사람에게 재정학이 무엇을 연구하는 분야라고 물으면, 공공선택 문제를 연구하는 분야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회원1] 세 번째 방안이 좋아 보인다. 현실화하려면 여론의 힘이 필요한 것 같다. 이 쟁점과 관련해서 정치학계 목소리가 작은 이유가 궁금하다.

[필자] 궁극적으로 법률을 개정해야 하므로 국회의원들 목에 방울 달기가 되겠습니다. 참여정부 시절 노 전 대통령이 대연정과 연계하면서 선거구제 개편을 걸었는데, 잘못된 것이라고 본인도 인정했죠. 타이밍도 늦었고요.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주도하면 야당들이 선뜻 합의하기 어렵습니다. 국회에서 논의해서 법률개정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 국회의원들에게 기대하기도 어렵죠. 결국, 학자들과 시민사회가 여론을 일으켜서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유력한 방법일 것입니다.

그런데 선거구제는 정답이 없어서 학자나 시민사회의 한목소리를 이끌어내기가 어렵습니다. 상당수 학자와 진보 측이 독일식을 선호하는데, 제가 보기에는 현실감각이 모자랍니다. 독일식으로는 대국민 설득도 어렵고 국회 합의도 어렵습니다. 정치적 지역주의 완화 효과도 적고요. 이번 선거 결과도 결국 정치적 지역주의를 재확인한 것이니, 학자들이 우선 그 문제를 더 부각해서 선거구제 개선 여론을 일으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토론 소감] 2003년 인수위 정치개혁 연구에 필자가 뒤늦게 합류했을 때, 당선자에게 가는 1차 보고서를 독일식 변형 위주로 정리하고 있었다. 필자는 초과의석 문제를 지적하여 독일식 변형이 현실적이지 않음을 주장했다. 결국, 최종보고서에서 제1안으로 채택된 안은 세 번째 방안이다. 그 연구에 참여한 학자들도 합의하는 데 애로사항이 많았을 정도로 선거구제 개선은 힘든 작업임에 틀림없다. 선거제도 전문 학자들이 앞장서서 여론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정치적 지역주의 극복이라는 뚜렷한 대의명분이 있기 때문에, 다른 정치적 이해와 연결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본다. 노 전 대통령은 선거구제 개선을 대연정과 연계했는데, 정치적 판단 실수였다고 필자는 평가한다.

2009년 7월 28일 화요일

[단상] 꿈은 이루어질까요?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8/03/19, http://jkl123.com/)

이전 제 홈페이지를 방문한 사용자 중에 "꿈은이루어진다"라는 아이디가 있었습니다. 그 사용자는 양재역에서 무가지를 아침마다 나눠주는 20대 초의 여성이었습니다. 무가지를 받을 때마다 밝은 미소가 인상적이어서 하루는 제가 말을 걸어서 알게 되었습니다. "꿈"님은 낮에는 음향녹음실에서 일하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서 새벽부터 무가지 일을 아르바이트로 했던 분이었습니다. 지금도 꿈을 이루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휴학중에 아르바이트를 하던 젊은 친구를 오래 전에 알았는데, 한참 뒤에 다시 만난 자리에서 그 친구가 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더군요. 영문을 몰라서 물어봤더니, 제가 기억도 못하는, 우연히 던진 말에 필이 꽂혀서 전공을 컴퓨터 쪽으로 바꿨다고 하더군요. 학교 졸업 후에 조그만 회사를 차려서 사장이 되었고, 제법 안정이 되었다고 하더군요. 아르바이트를 할 때 부모님은 일찍 돌아가시고 할머니만 모시고 산다는 말에 마음이 찡했었는데, 그 말을 들으니 그 친구는 꿈을 이뤘다는 감동이 밀려들었습니다.

꿈은 이뤄질까요? 이뤄지겠죠? 이곳을 이용하시는 모든 분들의 꿈이 이뤄지길 빕니다.

(사진은 2004년 11월 5일 정동진에서 찍었습니다.)

[샹그릴라] 중국식 자본주의

(지인 중에 중국에 빠진 사나이가 한 명 있습니다. 블로그 필자로 초청했는데, 필자는 커녕 블로그를 볼 수도 없다고 합니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60주년을 맞이하여, 북경에서 이곳 미국으로 오는 인터넷 길을 통제하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샹그릴라" 중국 연구가의 글을 제가 중계하기로 했습니다. 댓글로 코멘트를 해주시면, 이메일로 전달하여 답을 받아서 올리겠습니다. 제 책임도 있습니다. 제가 중국은 "수정 사회주의"라고 어설프게 추정했는데, 아니라고 하네요. ㅜ.ㅜ 한번 보시죠. 이메일에서 저에게 이야기하는 형식임을 고려해주시기 바랍니다.^^)

수정사회주의요. 이론적인 것 보다도 생활에서(북경생활 6년째) 느끼는 걸로 얘기하자면요, 중국인들은 한나라, 당나라 때의 화려한 시기를 꿈꾸는 것 같아요. 그들은 사회주의냐, 아니냐가 별로 중요한 이들은 아닌 것 같고요, 미국 선수들 하고 붙어서 이길 수 있으면 그 체제가 오케바리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혹, 그 중에 신좌파-뉴레프트-라는 선수들도 있는 것 같은데요, 영토 -국민국가의 최소한- 부분에 들어가면 막 망가지는 것 같아요. 그 훌륭하다는 왕후이도 티베트 문제에는 좀 이상한 것 같고요. http://en.wikipedia.org/wiki/Wang_Hui_(intellectual)

(만약 중국의 좀 괜찮은 (망명?) 지식인과 티베트 지식인과의 논쟁을 보고 싶다면) http://www.newleftreview.org/?view=2380http://www.newleftreview.org/?view=2388http://www.newleftreview.org/?view=2388
제가 보기에는 중국 먹물들은 1840년 아편전쟁이 중국과 동아시아에 가져다 준 임팩트, 혹은 충격에 어쩔 줄 몰라하는 당시 "독서인"의 마인드 같아요 - 이 나라가 조금이라도 영토적으로 찢어지면 정말 끝이라는.

사실은 제가 요즘 티베트 관련 책 하나를 번역하고 있는데요. 온갖 사이트를 다 뒤졌습니다. 미국, 일본, 중국, 한국... 중국 선수들 목소리는 거의 하나로 모아지는 것 같아요. "위대한 중국-국민국가-을 보위하자"

근데 미국에 예일대 어쩌구 나온 정치학자가 있거든요, http://www.michaelparenti.org/Tibet.html 이 선수는 몇가지 팩트(영어말고는 못하는 선수니까요)를 적당히 긁어 모아서, "티베트가 신정국가였고, 농노제 국가였다. 그래서 중국 인민해방군이 들어가서 해방시켰다. 뭐가 문제냐. 물론 학살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내가 중국 선수들을 옹호하는 건 아니다."라고 얘기하고 있지만, 그래서 A라는 나라가 B라는 나라를 지배하는 게 정당하냐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어요. 서양 좌파의 한계인 것 같아요.

혹은 티베트 불교의 독실한 신자였다 뭔 계기로 맛이 가서, 달라이라마 및 지배층에 대한증오를 가진 독일 부부들도 있고요. http://www.trimondi.de/SDLE/

아니면 역사적 관점은 굉장히 훌륭한데 종교-그 종교!-에 맛이 간 과도한 정서투사(emotional projection)가 심한일본 연구자도 있고요. http://tibet.que.ne.jp/okamenomori/ (일본어)

그래서...... 중국 먹물들의 목소리는 사실 굉장히 다양한데요, 공통분모가 있는 것 같아요. 남사군도도, 서사군도도, 동사군도도, 신장도, 내몽고도, 티베트도 "원래" 자기 거라는. 근데 수정사회주의요? 제가 보기에는 아닙니다. 이건 소위 "중국 특색의 자본주의" 입니다.

예를 들어, 프레시안 우수근 선생의 기사,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41201124219&Section=05 또한, 이미 자본주의적 소유권을 인정하는 물권법이 제정된 지 오래고요, http://en.wikipedia.org/wiki/Property_Law_of_the_People

근데요, 딱 하나 남아 있죠. 토지의 전민소유 개념이죠. 국가(Chinese State)가 모든 토지의 이념적 소유자죠. 근데 이게 웃긴 게, 법률적 소유 주체는 2가지 거든요. 도시지역은 지방정부, 농촌지역은 집체소유(collective property)-이건 인민공사의 전통인 것 같고요. 따라서 이 선수들이 자신들이 처한 경제적인 기회에 따라서 무지하게 개발을 하거든요. 이른바 토지개발상에게 막 넘기는 거죠. 그리고 그 이윤은 고스란히 지방정부나 농촌정부, 그리고 개발상과 품빠이하는 거고요. 동시에 거기 살던 주민들은 정말 싸구려 보상금만 주고 몰아 내거든요.

하나의 예로서 중국에 최근 고속철도가 뚫렸거든요(시속 350km). 예를 들자면, 북경에서 천진이 -예전에 제가 거기 5개월 살았잖아요- 옛날에는 1시간 40분 걸렸는데, 이제는 30분도 안 걸려요. 1년만에 뚫었거든요. http://en.wikipedia.org/wiki/High-speed_rail_in_China 왜냐, 그런 큰 국책사업을 하려면, 한국은 아마도 제일 큰 지연요인이 토지보상 문제죠. 중국은 그런 것 없습니다. 일정한 저항이 있지만, 토지가 전민소유인데, 모든 인민의 복리를 위해서 빠른 철도를 놓겠다는 데, 뭐가 문제냐, 이거죠. 그러니 당연히 총알같이 건설완료죠. 근데, 또 하나는, 토지는 점유하고 있으면 곧 소유하고 있다는 관념이 생겨납니다. 그러니 저항이 있기도 하죠.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자본주의적 저항인 거죠...^^

정리하자면 개혁기 이후 중국 상황은 마이클 더튼의 책 서문에 나와 있는 걸로 정리가 되는 것 같아요. http://www.cambridge.org/catalogue/catalogue.asp?isbn=9780521637190 그 중 일부분을 예전에 제가 번역한 걸 옮기면,

[문서의 처음]......그러면, 이러한 중국 경제개혁 이야기의 ‘깊은 구조’는, 1978년 12월 중국 공산당 제11기 전국대표대회 제3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와 함께 시작된 게 아닌 반면, 영국에서는 15세기와 19세기 사이 어느 때쯤에서 시작되었다는 차이가 나타난다. 게다가 이 과정은 덩샤오핑 선집을 봐서는 알 수 없고, 오히려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봐야 설명이 된다는 것이다. 인클로저와 방랑자들(vagrancy)에 대한 영국법률의 결과로 그러한 경향의 일반적 영향이 나타났다고 설명하는 것은 바로 마르크스 <<자본론>>이다. 중국 호구등기제도 붕괴의 중요성과 망류 단속 법안 강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 두 가지 법적 조치들을 이해해야만 한다. 즉 오늘날 중국의 인권훼손을 양산하는 핵심동학을 위해하기 위해!서는 빅토리아 여왕의 조언대로 '눈을 감고 영국을 생각하면 그만이다(close your eyes and think of England)!’ 영국을 기억하면 영국 산업혁명이 낳은 주요 경향이 생각날 것이고, 그럼 중국 경제혁명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온갖 얘기가 많은 데요, 뭐 오늘만 날이 아니니까 다음에도 얘기를 빡시게 함 하고요. 오늘은 이만하죠.
p.s. 사진 설명: 중국 신장위구르족자치구 서쪽에 이리 카자흐족 자치주의 주도 이닝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닝에서 차를 타고 5시간 정도 서남쪽으로 가면, 카자흐스탄과 국경지대에 자오수(Zhaosu)라는 대평원이 나타납니다. 눈 끝 간데 까지가 유채꽃밭이고, 그 너머로 천산산맥이 보이는 곳입니다. http://en.wikipedia.org/wiki/Tian_Shan 거기서 찍었습니다.

[방명록]

제 블로그를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방문 기념으로 한 말씀 해주실 분은 이곳을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자유가 충만한 하루를 보내시기 바랍니다. ^^

Another Present

제가 즐겨듣는 곡 중 하나로 Woodstock의 전설 Joe Cocker가 부르는 unchain my herat입니다.

여기에 소개하는 방법은 이 밖에 모르니 안박사가 손질해 주던가....

Enjoy.

안박사가 이리로 옮기라 해서...

안 박사 블로그에 오게 되었으니 뭔가 선물이라도 해야 할텐데, 여기서의 선물은 글 남기는 것 밖에 없군요. 근데 글 쓰기의 귀차니즘이 보통이 아니라서...(10년전에 출판 계약을 하고 아직 완성하지 않은 책이 있습니다. 다행히 그 때 계약금을 안받아서 ㅎㅎㅎ) 그래서 생각한 것이 여러분 읽어 보시라고 link를 걸면 되겠다입니다.

지금 미국은 오바마의 health care reform 때문에 뜨겁지요? 서로 반대편에 있는 경제학계 두 거두들의 견해를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우선 Paul Krugman의 뉴욕타임즈 칼럼(여러개가 있지만 최근 것 하나로 http://www.nytimes.com/2009/07/24/opinion/24krugman.html )과 그의 블로그, http://krugman.blogs.nytimes.com/ 다음으로 Gary Becker의 블로그 http://www.becker-posner-blog.com/

혹시나 선물이 아니라 짐(burden)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Anyway, c ya later.

[수필] 藝田 (예전)

藝田(예전), 이름 멋있죠? 블로그 초기인 요즘, 부산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해서 조금 망설여지기는 하지만, 글이라는 것이 필이 꽂히면 줄줄^^ 나가기 때문에 다시 할 수밖에 없네요. 양해 부탁합니다.

사실, 저는 다른 인터넷 공간에서는 고향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습니다. 공개를 꺼리는 편이라고 보셔도 됩니다. 그것은 제가 정치적 지역주의 완화 혹은 극복에 관한 주장을 자주 하기 때문입니다. 제 출신지역을 독자가 알면 괜한 선입견이 생길 수도 있겠다는 걱정에 그렇게 해왔습니다. 이곳은 제 개인 블로그이니, 저에 대해서 가능한 한 솔직하게 많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이 저에게도 편합니다. 사적으로 남 욕하는 것보다 저에 대해서 주저리주저리 하는 것이 더 낫죠.^^

藝田은 제가 대학교 1학년일 때 자원봉사를 했던 클래식음악 커피숍 이름입니다. 부산 부심지인 서면 뒷골목에 있었습니다. 부산은 도심이 자갈치 시장이 있는 남포동/광복동 일대, 부심지가 부전동이 있는 서면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럴 것입니다.

1980년 5.18이 터졌을 때, 저는 다행히 서울대 기숙사에 있지 않았고, 외박을 했습니다. 누님이 이사하신다고 해서 인사차 그 집에 들렀는데, 때맞춰서 군인들이 서울대 캠퍼스로 들어왔죠. 나중에 들으니 사감 교수님부터 학생까지 큰 봉변을 당했더군요. 새벽에 자고 있는데 곤봉이 날아들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아찔하시죠? 저는 사주팔자가 좋았는지, 그 인권유린 현장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ㅜ.ㅜ 학교출입이 봉쇄되었습니다. 고향으로 내려가기 전에 제 물건을 기숙사에서 가져 나올 수 있는지 행정실에 전화했습니다. 들어갈 수는 있는데, 전혀 권유할 마음은 없다고 친절하게 안내하시더군요. ㅋ

그다음 날 부산으로 내려갔습니다. 가방도, 책도 없는 맨몸 귀향이었습니다. 나중에 학교에서 이러저러한 숙제를 제출하면 학점 준다고 해서, 리포트는 고향집에서 열심히 적었습니다. 시간이 제법 남더군요. 시간이 남으니 대략난감 상태가 되었습니다. 외교관이 되고 싶은 생각에, 미리 준비한답시고 알리앙스 프랑세즈에 불어를 배우러 다녔는데, 그래도 시간이 남았습니다.

하루는 친구가 서면에서 만나자고 해서 나갔더니, 藝田이라는 아담한 클래식음악 커피숍이었습니다. 새로 개장했는데 음향시설이 좋아서 제가 혹했습니다. 그래서 무료로 DJ를 해주겠다고 주인에게 말씀드렸죠. 이미 DJ가 있어서 필요 없다는 냉정한 답을 처음에 들었지만, 저는 한다면 하는 사람입니다. ^^ 적당한 의제 설정(agenda setting)과 정치적 조작(political manipulation)을 했습니다. DJ도 점심은 드셔야 될 것 아니냐고 하면서, 그 시간대에 두 시간 정도 봐 드리겠다고 했죠. 무!료!를 강조했습니다. ^^

드디어 허락이 떨어졌고, 저는 하루에 세 시간 정도 훌륭한 음향시설에서 커피 대접을 받으면서 클래식 음악감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원래 점심 식사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는데, 나중에는 점심 도시락도 DJ 박스에 넣어주시더군요. 함께 DJ를 했던 누나는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는 소식을 한참 뒤에 들었는데, 그렇다면 저와 같은 나라에 있는 셈이네요. 이 글을 보시면 연락해주세요. ㅋ

그 당시 부산에서 가장 유명했던 클래식음악 커피숍은 남포동의 전원(田園)이었습니다. 藝田보다 훨씬 컸습니다. 이름이 비슷하네요. 베토벤 6번 교향곡에서 따왔었겠죠. 저에게 전원보다 아담한 藝田이 더 좋았을 것은 독자께서 쉽게 짐작하시겠죠. 藝田에서 자주 틀었던 프랑스 작곡가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가 오늘따라 듣고 싶습니다. 베토벤 전원 교향곡과 구노 오페라 파우스트에 나오는 "병사의 합창"을 듣겠습니다.



SOLDIERS CHORUS, FROM GOUNOD´S "FAUST"
WIENER STAATSOPER, ERICH BINDER CONDUCTING.


Karajan - Beethoven Symphony No. 6 In F Major 'Pastoral'

[자유] 특급경호?를 받아야 할 愛社4 친구

친지와 대화를 나누면서 제가 갖고 있었던 생각을 확인할 수 있으면 기분이 참 좋습니다. 며칠 전에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오랜만에 연락한 친구는 무시무시한 핵 발전시설의 안전을 전공한, 때에 따라서 특급경호?를 받아야 하는 조금 겁나는 포스를 갖고 있습니다. 그 친구가 마음의 자유로 자본주의를 견제하는 매우 바람직한 이야기를 해서 신기한 느낌이 왔습니다.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에서 간략하게, 자유주의 / 민주주의 / 자본주의 삼각편대가 서로 돕기도 하고, 견제하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자유가 방종이 되지 않도록, 민주 친구가 태클을 걸고, 자본이 방종으로 흐르지 않도록 민주가 시비를 거는 식입니다.

자본주의가 방종이 되면 골치 아픕니다. 그 친구가 하는 일이 핵폭발의 상업화와 관련이 있으니, 이윤 추구의 자유가 방종이 되면 쓰리마일과 같은 참담한 핵 재앙이 다시 생길 수도 있죠. 따라서 자본가와 경영자가 안전설비에 들어가는 비용을 가능한 한 줄이려는 합리성을 과도하게 발휘하면, 엄청난 위험이 도사릴 수 있습니다.

그 친구는 핵 기술자의 양심으로 자본주의를 견제한다는 매우 중요한 말을 했습니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과거보다는 더 정확하게 안전을 평가하여, 비용을 많이 절감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도 근본적인 안전판은 "절대로" 양보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기술자의 마음 자유주의가 자본주의를 견제하는 장면입니다.

게다가 우리 대한민국인은 유교적 도덕률까지 덤으로 선사받아서 철갑을 두른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죠. 이럴 때 유교적 도덕률이 제대로 작동하는 것입니다. 이런 전통가치는 살려야죠. 저는 권위주의와 결합한 유교적 도덕률과 고리타분한 윤리는 사그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친구가 말한 긍정적 의미의 전통가치와 도덕률은 더 세련되게 자유민주주의와 결합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 친구가 자랑스럽습니다. 그 친구가 다음에 귀국할 일이 있으면, 특급경호?가 더 잘 이뤄지면 좋겠습니다. 특급경호단의 비공식 명칭은 "愛社4"라는 강호의 전설이 있습니다... 하는 일이 비밀스러워서 이곳에 커밍아웃하기는 쬐끔 힘들지도 모릅니다. ^^

p.s. 이 글을 적고 나서 겁이 덜컥 났습니다. 그 친구가 하는 일이 "핵"과 관련이 있어서 제가 글로 방종을 저지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초고를 친구에게 보냈습니다. 제 예상 일부는 맞았고, 일부는 기우였습니다. 그 친구의 보충설명을 아래에 참고자료로 인용합니다.^^ 바쁠 텐데, 초고와 수정본을 읽고 확인해준 친구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요즈음 원자력 발전소 안전에 관련된 것은 오픈 정책으로 나가기 때문에 예전보다 그렇게 비밀스러운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애사 4의 특별 경호가 필요없다는 말은 아니다. ㅎㅎ)

참고로 핵발전에 대해 정보를 말해주면:

1. 핵발전은 '핵 폭발의 상업화' 라기 보다는 "엄청난 에너지를 낼 수 있는 핵 분열 반응을 잘 조절하여 상업화 (전력 생산)" 에 이용한 것이다. 핵 무기와 핵 발전소의 공통점은 핵 분열반응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이용한다는 것인데 핵무기에서는 일부러 반응을 조절안하여 터지게 만드는 것이고 핵 발전소에는 설계 단계부터 핵폭발은 일어나지 않게 조절하여 에너지를 뽑아내 쓰는 것이지. 물론 핵폭발이 안일어난다고 해서 안전을 신경 안써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잘 조절된 핵반응에서 나오는 에너지 조차도 어마어마하거든. 비상시 핵 반응이 정지 되고 나서도 남아 있는 열들을 제거하지 못하면 쓰리마일 아일랜드 같은 사고가 나는거다.

2. 쓰리마일 사고는 운전원들의 경험부족으로 인하여 간단한 사고에 잘못 대응하여 일어난 사고이고, 인위적으로 안전 장치를 불능화 시켜서 큰 재앙을 초래한 사고는 구 소련에서 일어난 체르노빌 사고이다. (인터넷에서 체르노빌 사고에 관련한 자료들 (반핵주의자들이 쓴 것 말고) 찾아보면 도움이 될거다). 따라서 안 박사 논조에 더 맞는 예는 체르노빌 사고가 아닌가 생각된다."

2009년 7월 27일 월요일

[자유] 촛불과 성냥불


조용한 캘리포니아 일요일 저녁입니다. 블로그 초기라서 제가 신경을 좀! 쓰고 있습니다.^^ 조금 지나면 저도 안정적으로, 하루에 한 시간 정도 블로그에서 사랑방 놀이를 할 수 있겠죠. 블로그를 열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몇 년 연락을 하지 않았더니, 궁금하게 생각하셨던 여러 친지가 연락해줘서 반갑다는 인사를 전해주셨습니다. 격려도 많이 받았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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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의 이름에 "성냥불"이라는 표현이 들어 있습니다. 저는 그 표현을 1997년부터 사용했습니다. 경제학을 크게 거시와 미시로 나누는데, 그 분류를 적용하면 제가 공부한 정치학이 미시 정치학에 속합니다. 합리적 선택이론이라는, 상대적으로 최근에 생긴 정치학 방법론입니다. 미시 경제학의 공공선택과 게임이론을 합쳐서 정치 현상을 분석하는 것으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따라서 핵심 용어는 <인간의 선호>입니다. 좋고 싫은 잣대를 이용하여 선거제도, 투표행위, 외교/협상 전략, 국제분쟁 등을 연구합니다. 연구 대상만 다를 뿐이지, 미시경제학 방법론을 거의 그대로 사용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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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마이크로에 치중하다 보니 큰 변화보다 작은 변화에 더 관심이 간 것은 당연합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가 더 발전하려면 큰 횃불보다 조그만 성냥불만 있으면 된다는 문제의식이 생겼습니다. 물론, 조선 말 개화기였다면 횃불이 필요했겠죠. 그러나 1997년은 이미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제법 성장했고, 정치적으로도 직선제 개헌 이후 10년이 되는 시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때까지 잘 작동했던 발전 동력에 성냥불 정도의 마이크로 조정만 있으면 우리나라가 더 성숙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문제의식은 저에게는 아직 유효합니다. 정치인이나 사회지도자들이 무슨 큰일을 할 듯이 거창하게 떠들면, 저는 영 불편합니다. 왠지 뜬구름 위에 있는 기분이 들거든요.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라고 하면, 저는 그 국가가 무슨 국가인지, 그 민족이 과연 우리 민족인지 오히려 의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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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성냥불보다 더 위력적인 촛불을 시민이 밝혔습니다. 성냥불로 우리 사회 발전을 미리 밝혔으면, 촛불이 거리로 나오지 않았을 텐데... 라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저는 느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자유민주주의 촛불이 아니라, 그보다 대단히 약한 성냥불로 산다는 것도 어려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권위주의 어둠에 갇혀 있는 것보다는, 자유민주주의 성냥불 하나라도 밝히는 것이 우리 장래에 도움이 된다고 저는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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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블로그 이름에 10년 전 생각했던 그 조그만 성냥불을 갖다 붙였습니다. 오랫동안 꺼지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수필] 인터넷 필명 晴海.

청해라고 하면, 신림사거리 근처 횟집인 청해수산이 먼저 떠오르지 않으십니까? ^^ 인터넷에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도 있고, 제가 "느끼" 한 이야기를 많이 해서인지, 필명이 너무 고리타분하다든지, 윤리도덕 교과서 냄새가 난다고 태클을 거는 분도 있더군요.

晴海는 제 고향 바닷가 카페 이름이었습니다. 윤리도덕과는 거리가 조금 있습니다.^^ "버스에서 앉아 있으면 가지 않고, '서면' 간다."는, 그 부산 서면에서 광안리 남천동 저희 집으로 이사한 것이 1970년이었습니다. 그 당시 저희 집 주변에 논이 있을 정도로 외진 곳이었습니다. 위치도 애매했습니다. 아예 해운대로 들어가든지, 문현동이나 대연동 정도로 도심에 가까운 것이 좋다는 이야기를 주위 어른들에게 어릴 때 많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보니, 아버지는 탁월한 안목으로 광안리 남천동을 찍으셨습니다. 지금은 서울로 치면 신사동 정도 된다고 보시면 될 것입니다. 제가 어릴 때는 그렇게 잘사는 동네가 아니었습니다. 바닷가는 한적했고, 허름한 횟집들이 바다를 바라보고 드문드문 늘어서 있었죠. 저는 고등학생 때까지 바다에서 자주 놀았습니다. 해수욕장이 바로 코 앞이니 여름방학 때는 거의 매일 해수욕을 했죠.^^ 고등학생 때, 대학 입시의 무게로 마음이 괴로우면 바닷가에 가서 넋을 잃고 앉아 있을 때도 잦았습니다. 탁 트인 바다를 보면 한결 기분이 풀리더군요.

아버지의 예상은 적중했습니다. 바다를 바라보고 오른쪽 끝에 조그만 돌섬이 있었는데, 어느 날 그 돌섬과 육지를 잇는 방파제를 만들고 매립을 시작했습니다. 그 매립지에 종합관광단지를 만든다는 거창한 계획이 발표되었지만, 결국 대형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습니다. 그 때부터 제가 사랑했던 조용한 바닷가에 개발의 광풍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광안리 바닷가에 최초 카페가 생긴 것이 1979년입니다. (지금은 카페 정도가 아니죠. 바닷가 전체가 난리 부르스입니다.^^) 그 카페 이름이 晴海입니다. 바닷가에서 산책하면서, 신기한 도회지 풍의 찻집이 생겼다는 생각은 했지만, 들어갈 엄두는 못 냈죠. 고등학생이었으니까요. 이름도 특이했습니다. 그냥 푸를 청이 아니고, 갤 청이라서 제 관심을 더 끌었습니다.

서울대 합격 통지를 받았을 무렵, 셋째 형이 그 카페로 저를 데리고 가시더군요. 10 명 정도가 앉으면 찰 것 같은 조그만 공간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가끔 들러서 카페 주인이나 부인과 친하게 지냈습니다. 주인은 서울에서 내려온 최고학부 출신이었는데, 카페 일은 거의 하지 않고 낚시만 즐기는 것 같더군요. 따라서 커피 타는 일은 대부분 주인 부인의 몫이었는데, 간난 아기를 업고 고생하더군요. 별로 자유민주주의적인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방학 때 고향집에 가면 제가 즐겨 찾는 곳이 그 카페였습니다. 문만 열고 나가면, 넓은 바닷가여서 매우 좋았죠. 제가 좋아하는 베버 클라리넷 협주곡 LP를 선물하고, 갈 때마다 그 음악이 나오도록 유도하는 센스도 발휘했습니다. ^^ 시간이 흐를수록 손님은 늘어났고, 제법 장사가 되자, 가게 건물주인이 탐을 냈습니다. 그래서 가게 세를 갑자기 높게 올렸는데, 감당이 되지 않아서 그 부부는 광안리 바닷가를 떠났습니다. 광안리 첫 카페의 끝이었습니다. 카페 이름이 晴海에서 海晴으로 바뀌었습니다. 몇 번 가봤는데 이전 분위기가 전혀 나지 않아서 그 이후로 발길을 끊었습니다.

한참 뒤 카페 아주머니를 다시 본 것은 해운대였습니다. 이번에는 카페가 아니고 분식집을 하시더군요. 머쓱해서 인사는 하지 않았습니다. 아주머니가 여전히 등에 아기를 업고 있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베버 클라리넷 협주곡 제1번 제2악장을 한번 들어보시죠. 제가 가장 좋아하는 선율입니다.

Weber, concert n. 1. (II mov. Adagio) Calogero Palermo clarinet
Calogero Palermo plays Carl Maria Von Weber, concerto n° 1 in fa minore per clarinetto e orchestra op. 73 - Adagio

(사진 출처: http://blog.joins.com/media/index.asp?uid=pnet21&folder=8)

2009년 7월 26일 일요일

[단상] 애국심이냐, 합리적 이기심이냐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8/03/05)

제가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시작했을 때인 80년대 후반에는 우리나라 제품의 수준이 미제나 일제보다 질이 떨어졌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애국심과 합리적 이기심 사이에서 유학생들이 고민할 때도 있었습니다. 중고 자동차를 사려고 하면 국산차를 사야 할지 일제를 사야 할지 고민하는 경우죠. TV를 살 때도 유명 브랜드인 소니를 사야 할지, 대우나 삼성을 사야할지 생각해보는 식입니다. 가격은 일제가 더 비싸지만, 중고차는 고장이 적게 나고, 나중에 다시 팔 때 받을 수 있는 가격을 고려하면, 합리적 계산에 의해서 일제 차에 끌리게 됩니다. 소니 TV를 보면 화질의 차가 제법 나니, 색감이 더 좋고 더 깨끗한 화면을 보여주는 소니를 사고 싶은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인이 외국에서 우리 제품을 애용하는 것이 더 좋다는 도덕적 명분이 고려되지 않을 수도 없었죠.

요즘은 이런 딜레마가 많이 해소되었습니다. 일부 현대차는 같은 급의 일제 차에 손색이 없을 정도가 되었고(가격은 여전히 더 싸니 더 좋죠), LCD TV "샘숭"은 명품 반열에 올랐습니다. 저도 몇 년 전에 차를 바꿀 때, 전혀 고민하지 않고 현대차를 사서 지금까지 무척 만족하면서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오래된 TV를 교체하면서 다른 딜레마가 생겼습니다. 애국심을 고려하면 "샘숭"을 사는 것이 좋은데, 가격이 너무 비싼 것입니다. 게다가 삼성 비자금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갑자기 "샘숭" 제품이 감정적으로 싫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삼성이라는 대기업이 개인 소유가 아니며, 대부분의 삼성 직원들은 자신을 위해서, 또한 우리 경제를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 것을 고려하면 그런 감정이 바람직하지 않지만, 저도 인간인지라 어쩔 수 없는 면이 있었습니다. (이 감정보다는 가격 차가 너무 많이 나서 결국 다른 브랜드 제품을 샀습니다만... ^^)

삼성가를 보면, 노블레스 오블레쥬라는 거창한 구호를 외치지 않아도 이해되지 않는 점들이 많습니다. 제가 항상 안타깝게 여기는 점이 우리 사회의 지도층들이 단기적 이익계산에는 매우 밝은데 장기적 이익계산에는 매우 둔하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우리나라가 불과 몇십 년 만에 기적에 가까운 경제성장을 이룩하면서 나타난 부작용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돈을 모아야지, 얼마나 많은 돈을 자식에게 물려줘야 행복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와중에 발생할 자신들의 고통이나 주위 사람들, 더 넓게는 국민의 아픔은 왜 그 계산법에서 적절히 처리되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것들이 결국은 부메랑으로 돌아올 텐데 말입니다.

삼성이 이번 기회에 다시 태어나서 다음에 제가 TV를 교체할 때, 조금 더 비싸더라도 애국심과 합리적 계산을 동시에 참조하면서, 아무 거리낌 없이 "샘숭" TV를 고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자유] 민주주의와 의견의 상충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8/03/26, http://jkl123.com/)

자유민주주의 기본은 어떤 행위의 선택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거의 없다."라는 것을 인정합니다. 종교에 있어서는 어떤 행위의 선택에서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편입니다만, 절대자를 인정하지 않는 자유민주주의적 사고방식에서는 어느 특정인의 생각이나 제안을 절대적 진리로 받들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의 신봉자인 로체스터 대학의 故 라이커(William H. Riker) 교수는 룻쏘(Rousseau)를 --- 조금 과장되게 옮기자면 --- 일종의 "사기꾼"으로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즉, 있지도 않은 "일반의지(General Will; Volonte Generale)"를 갖고 자유민주주의의 가면을 썼다는 것이지요. 스탠포드대 경제학과 애로우 (Arrow) 교수의 "불가능성 정리 (Impossibility Theorem)"를 참조하면, 자유민주주의하에서 절대적으로 옳은 사회적 선택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유민주주의에서 사회적 선택은 어떤 것이나 정당화될 수 있느냐는 당연한 문제가 그다음 화두로서 대두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칫 잘못 생각하면 지적 상대주의를 취하는 자유민주주의에서는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 없으므로, 아무렇게나 결정해도 된다는 식으로 유추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유추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적용되는 절대적인 것은 없더라도, 일정한 원칙을 잣대로 채택해서 어느 것이 상대적으로 옳은 것인가라는 논의는 항상 가능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반드시 해야 합니다.

그런데 원칙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고 여러 원칙이 매우 다양하게 제시될 수 있으므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갑과 을이 논쟁을 했는데, 제 삼자들이 보기에는 갑의 주장이 더 훌륭한 것으로 판정했음에도 을이 마음의 문을 닫고 계속 자신의 주장을 고수하겠다고 하면, 이 문제를 자유민주주의적으로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1) 말로 설득하고, 듣지 않으면 우격다짐을 하고, 그래도 말이 통하지 않으면 때려서라도 을의 생각을 고쳐야 한다.
2) 포기하고 을을 다른 나라로 추방해야 한다.
3) 을을 완전히 무시하고 상대하지 않는다.
4) 을의 의견을 존중하여 을의 지분을 인정해준다.
5) 을을 계속 설득해보고, 그래도 갑에 동의하지 않으면 을의 의견은 존중하지만, 사회적 선택으로는 채택하지 않는다.

1)은 폭력적이라서 곤란하겠지요? 또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입니다. 자유민주주의를 채택한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경향이 왕왕 관찰되곤 했습니다. 정치적으로 2)와 같이 해결하는 곳도 있습니다. 을의 생각이 사회적 해악을 장차 가져올 수 있다고 판단되면 이 방법을 쓸 수도 있을 것입니다. 3)은 을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겠다는 뜻인데,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4)와 같이 일을 해결해나가면 "땡강" 부리는 사람들이 자유민주주의를 악용하는 사례가 날이 갈수록 늘겠지요?

5)가 적절한 것 같습니다. 즉, 절대적으로 옳음을 증명하지 못하므로, "당신이 옳을 수도 있지만, 지금은 당신 의견을 전체사회 결정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음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오." 정도가 자유민주주의적으로 바람직한 결정이 될 것입니다.

사회가 몇 명 안 되는 소수 인원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어떤 사회적 결정이 쉽게 내려질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같이 매우 많은 인원이 전체 결정에 참여해야 하면, 그 결정 과정이 복잡하고 어떤 원칙이 어떻게 적용되어야 할지가 애매모호할 때가 잦습니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사회적 결정에서 흔히 옳음/그름을 최종 잣대로 삼기도 하지만, 좋음/싫음의 잣대를 더 많이 참조하곤 합니다.

[수필] 나와 아버지의 눈물

(이전에 적어둔 글을 일부 수정했습니다.)

내가 태어난 곳은 부산의 부심지인 서면 근처 부전동이다. 초등학교 2학년 1학기까지 그곳에서 살다, 광안리 해수욕장 근처의 남천동으로 이사해서 대학에 진학할 때까지 살았다. 남천동 집은 바다에서 2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어서, 어릴 때 해수욕을 하러 갈 때는 집에서 수영복을 입고 출발할 수 있었을 정도였다. 그 집은 마당도 제법 넓었다. 아버지는 은행 차장으로 근무하시면서 대지를 사들이고, 직접 설계도 하실 만큼 애정을 쏟은 집이었다.

아버지의 취미 생활은 마당에서 수목과 화초를 돌보시는 것이었다. 딸기도 재배해서 여름에는 직접 따 먹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대학생이 된 이후에 언제부터인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아버지는 공작을 한 쌍 키우셨다. 나는 애완동물에 별 관심이 없었던 아버지가 왜 공작을 키우시게 되었는지 항상 궁금했었다. 그 답은 어떤 날 아버지가 손님과 나누는 대화 중에 들을 수 있었다.

"내가 아들을 네 명 봤고 딸도 한 명 있는데, 지금은 모두 내 곁에 없습니다. 어떤 때는 쓸쓸하기도 하고 심심하기도 해서 공작들을 자식처럼 여기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자식들이 모두 객지에서 살고 있어서 마음 한구석이 텅 빈 것 같은 느낌을 항상 가지고 계셨던 것이다. 평소에는 자식들에게 너무나도 무뚝뚝하셨지만(나는 막내라서 상대적으로 나은 편이었음), 속으로 아버지의 깊은 정을 감추고 계셨던 것이다. 아버지의 얘기를 듣고 눈시울이 붉어졌던 기억이 난다.

처음에는 공작들이 별로 예쁘지 않더니, 조금 지나니 숫 공작은 예의 아름다운 꼬리를 선보이면서 남천동 집의 명물이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공작이 보기에는 아름다운데, 한번 울기 시작하면 온 동네가 떠나갈듯한 소음공해를 배출하는 것이었다. 이웃들의 항의가 이어지고, 결국 공작 문제에 대해서 아버지는 용단을 내리실 수밖에 없었다. 하루는 가족들에게 공작을 표구로 만들고, 그 고기는 가족들 보신에 사용하시겠다는 "엄청난" 결정을 발표하셨다. 마침 방학 중이라서 내가 그 얘기를 현장에서 들었는데, 얼마나 놀랐던지... 죽은 공작도 아닌 산 공작을 잡아서 표구로 만들고, 그 고기를 먹는다고 한번 상상해보시라. (여담이지만, 나는 아직 보신탕을 거의 먹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남들이 보신탕을 먹는 데 대해서 혐오감을 가진 것도 아니다. 식용 개와 애완용 개의 분리를 통한 보신탕의 합법화를 제안한 적도 있다.)

나는 결단코 반대했다.

"아부지, 안됨미더. 병들어서 죽은 공작이면 표구를 하는 것이 좋겠지만, 이 경우는 살아서 우리의 귀여움을 받던 공작아님미꺼."

"그럼, 어떻게 해야 되노? 무슨 대안이 있어야 할꺼 아이가?"

나는 조금만 여유를 두고 공작 처리문제를 심사숙고해보자고 아버지께 말씀드렸고, 아버지는 대안을 찾아보라고 하셨다. 남천동에서 부산의 부심지인 서면 쪽으로 가면, 대연동이 끝나고 문현동이 시작하는 지점 근처에 "부산 혜성학교"라는 장애인 특수 교육학교가 있었다. 나는 그 점에 착안하여, 오랫동안 교육계에 계셨던 작은아버지께 연락드려 혜성학교가 공작을 기부받을 의사가 있는지 타진해보시도록 청을 드렸다. 혜성학교는 크게 환영했고, 아버지는 처음 결정을 번복하시고 공작들을 기증하도록 허락하셨다.

공작들이 이주하는 날에는 큰 소동이 벌어졌다. 별로 날렵해보이지 않던 공작들이 혜성학교 선생님들이 잡으려고 하자, 그 좁은 공작 장 안에서도 이렇게 피하고 저렇게 피해서 도저히 잡히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공작이 약간의 부상을 당하는 불상사가 벌어진 이후에 공작들은 함께 철거된 공작 장과 함께 혜성학교로 떠나게 되었다. 몇 달 지나서 나는 혜성학교를 직접 방문해서 공작들이 건강하게 잘 살아있는 것을 내 눈으로 확인했다. 공작들이 떠나고 나서 휑하니 남은 빈자리를 보신 아버지는, "공작 장까지 가져갈 필요는 없었는데..."라고 아쉬움을 표하셨다. 아마도 공작 대신 다른 "자식들"을 키울 생각도 있었을 것 같다.

위에 적은 내용을 영작해서 대학생일 때 활동하던 EHSA(English Hearing and Speaking Association)의 문집 EIDOS에 실은 적이 있다.

대학교 4학년 겨울 방학때 우리 가족 전체의 분위기가 심하게 깔아 앉은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형제애에 대해서 훈계를 하셨다. 그래도 풀리지 않는 분위기가 계속 되었다. 하루는 가족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내가 그 영작문을 번역해서 읽었다. 내 글이 가족들의 내려 앉은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끌어 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끝까지 읽지 못했다. 눈물이 너무 많이 나와서 끝까지 읽을 수가 없었다. 나는 중간에 가족들 앞을 물러날 수 밖에 없었고, 결국은 큰 형이 이어 받아서 그 영작문을 끝까지 번역해서 읽었다. 눈물을 훔치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아버지가 수건을 들고 방에서 나오고 계셨다. 나는 아버지가 우시는 것을 그 때 이외에는 본 적이 없다...

[수필] EHSA 愛社

제가 대학생일 때 활동했던 EHSA(English Hearing & Speaking Association) 동아리 주제가 및 보조 주제가입니다. EHSA는 사랑이 모이는 곳이라서, 저는 愛社라고도 부릅니다. 영어 공부보다 사랑이 더 중요했죠. ^^ 주말 노래로 올립니다.

500 Miles - The Brothers Four


Peter, Paul & Mary - Puff The Magic Dragon

2009년 7월 25일 토요일

[자유] 자유민주주의 놀이?

주말입니다. 심심하시면 주말에 자유민주주의 놀이를 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아내가 남편에게, "설겆이 해!" 이러면 권위주의 놀이입니다. "여봉~ 요즘 내가 많이 힘든데, 설겆이 조금만 도와주면 안 될까요?" 이러면 자유주의 놀이가 됩니다.

주말에 가족이 함께 여가를 선용하면 좋죠. 가장께서, "모두 내가 좋아하는 R 영화 보러가자!" 이러면 권위주의입니다. "우리 주말에 뭘 하면 좋을까?" 이렇게 슬쩍 질문을 던지면, 민주주의 놀이가 될 수 있습니다. 아, 투표하실 때, 가장은 1.5표를 행사하셔도 괜찮습니다. 다른 가족이 그것을 존중하는 분위기면 괜찮습니다. 가정이 정치판은 아니니까요.^^

즐거운 주말 보내시기 바랍니다.

[자유] 교수-학생 소통의 추억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9/07/01, http://jkl123.com/)

미시간주립대 정치학과 교수 시절(1994~1997)부터 저는 인터넷 소통을 했었습니다. 본격적인 인터넷 소통은 서울대 국제지역원 교수로 부임한 1997년부터입니다. 인터넷에서 교수를 "괴수"로 부르더군요. 요즘도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하루는 학생들이 많이 이용하는 어느 챗방에서 회원들이 귓속말을 하는 것을 우연히 읽게 되었습니다. 딴에는 귓속말로 보냈는데, 명령어를 잘못 사용하여 화면에 떠버린 겁니다. "앗, 괴수닷! 도망가자!" 이렇게 말입니다. 저는 저으기 당황했습니다. 그 당시는 인터넷의 속성을 잘 몰라서 제 신원을 공개적으로 밝힌 상태였거든요. 그러니까 제가 교수라는 것은 모두 알고 있었던 것이죠.

교수라고 밝힌 것 때문에 오해도 많이 받았어요. 대접 받으려고 그런다고. 제 뜻은 그것이 아니었거든요. 아무 생각 없이 저를 소개하려고 했던 것인데, 대부분이 학생이었던 회원들이 기분 나빠진 것입니다. 스트레스 풀려고 게시판에 들어왔는데, "괴수"를 다시 보게되서 기분 잡쳤다는 느낌이었을 것입니다.

아무튼 저는 "괴수"라는 표현을 읽으니 순간 기분이 참 나쁘더군요. 학생의 예의 문제를 떠나서 교수를 괴수로 표현할 정도면 문제가 심각해도 한참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토론 발제문을 작성했습니다. 그 발제문 제목이 "교수? 괴수?"입니다. 제 주장은 저는 교수이지 괴수는 아니라는 것이었고, 대부분의 회원은 괴수가 맞다는 것이었죠. 그 때 제가 느낀 것은 제가 맞는 부분도 있지만, 우리나라 교육계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이었습니다. 학생에게 돌아갈 연구비를 교수가 가로채고, 프로젝트를 타와서 끊임 없이 학생들에게 맡기고 교수는 외판사원처럼 밖으로 돌고, 보다 더 부려 먹으려고 학생 졸업을 늦추는 등, 괴수같은 짓을 많이 한다는 주장이 계속 제기되더군요. 발제를 한 제 체면도 있고 해서, 그래도 인문계는 이공계보다 덜 하지 않겠냐는 애매한 추정을 하면서 그 토론을 끝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저를 회원들이 괴수라고 불러도 전혀 감각이 없게 되었습니다.^^

학생들과 더 소통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뭔지 몰라도 교수 따로 학생 따로 논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그래서 저는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연구실에 제 학생들을 초청해서 직접 원두커피를 타주고 얘기를 나누기도 했죠. 커피는 항상 타 놓을테니 언제든지 연구실로 놀러오라고도 해봤구요. 대학원이라서 함께 술도 많이 마셨습니다. (어이쿠, 이 교수님께서는 술을 싫어 하시는데... ㅎㅎㅎ 괜찮습니다. 요즘은 한 방울도 마시지 않습니다.) 초기 제자들은 제 친구처럼 대했죠. 그래도 학생들의 마음을 열기가 참 힘들더군요. 쌍방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복잡하겠지만 그 당시 제가 대충 추정한 것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먼저 서울대 국제지역원에 들어올 정도면 우리 사회에서 성공한 사례라고 보는 것이 맞죠. 그렇다면 초중고대까지 얼마나 많은 관문을 잘 통과했겠습니까? 점수 따는 데는 도사들이라고 봐야 합니다. 이전 경험에서 무엇을 느꼈을까요. 선생이나 교수는 교육 현장에서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교육자로서 권위에 입각한 권력이죠. 그 권력자에게 잘 보이는 방법을 잘 터득했겠죠. 선생이나 교수 앞에서 실수하면 점수 잃는다는 처세술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 앞에서는 극도록 조심하게 되고, 제가 아무리 마음을 열어도 짝쿵이 맞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유교문화적, 혹은 권위주의적 마인드입니다. 제자들은 대부분 범생이들이라고 보면 되죠. 우등생 아니면 들어오지 못 하는 곳이었습니다. YS 정부에서 국제화의 기치를 내걸고 많은 예산을 확보하여 대학교에 지원금을 별도로 보내서 만든 국제전문인력 양성기관이었거든요. 그래서 학생들에게 특혜가 많았습니다. 어떤 학교는 해외연수를 보내주고, 그래도 돈이 남아서 노트북 컴퓨터를 한 대씩 사주고 그랬습니다. 서울대는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해외연수를 거의(성적에 따라 일부는 부담) 무상으로 보내줬죠. 그렇게 혜택이 좋으니 그 당시 최우수 인력들이 모였다고 보면 됩니다. 막바로 영어 강의를 해도 전혀 지장이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사회 전체의 권위주의적 분위기에 범생들은 어떻게 적응했겠습니까? 깍듯한 예의 하나는 끝내주는 것입니다. 물론 원론적으로는 예의를 모두 차려도 제대로 소통을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나 조금 희소하다고 봐도 되겠습니다. 그런 분위기에서 어떻게 제대로 된 소통이 가능했겠습니까? 철벽이었습니다. 저는 강의실 밖에서도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크게 두 가지를 추진했습니다.

하나는 스킨십을 최대한 시도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얘기한 커피 타주기나 함께 술마시기가 그 예가 되겠습니다. 일대 일 면담도 참 많이 했습니다. 그 다음에 인터넷 소통을 시도했습니다. 국제지역원이 1997년에 설립되었습니다. 지금은 국제대학원이죠. 제가 PC와 인터넷을 빨리 접한 덕분에 전산실과 도서관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 때 직원들과 정말 재미있게 일을 했습니다. 전산실 관리자, 그래픽 디자이너, 사서 책임자, 그리고 사서 세 명이었습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 도형 군에게 빼빼로데이 쵸콜릿 배달하기 미션 대상이었죠.)

제 주도로 대학원 홈페이지를 짜게 되었고, 제가 가장 관심을 기울인 것이 게시판을 통한 소통이었습니다. 익명 보드를 만들었습니다. 사실 교육 현장에서 익명 보드는 말이 안됩니다. 미국 어느 대학 홈페이지를 들여다봐도 익명 보드는 커녕 게시판 자체가 없는 곳이 대부분입니다. 자유주의의 대표적 국가인데 왜 그렇겠습니까? 미국에서는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만 생긴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또한 학생들이 제대로 된 의견을 학교나 교수들에게 아무 피해를 받을 염려 없이 전달할 수 있는 소통 채널이 안정적으로 확보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것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고 저는 판단했습니다. 게다가 권위주의적 사회 분위기도 있구요. 그래서 익명이라는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차선책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죠.

익명 보드의 관리자는 당연히 전산 담당인 제 몫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준구 교수님처럼 인터넷으로 학생들과 의견교환을 많이 했습니다. 국제지역원이 막 출범한 시점이라서 학생들의 건의도 대학원을 빨리 정착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는 아이디어도 있었고, 학생들의 불만을 솔직하게 전달받을 소통 통로도 필요하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익명으로 했던 것이죠. 요즘은 모르겠는데, 그 당시 우리나라 분위기에서 학생들에게 "가면"을 하나씩 나눠주지 않으면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특히 그렇게 머리가 좋은 학생들의 경우, 교수들에게 잘 보이려고 하지 괜히 한 마디 잘 못해서 찍히면 본인만 손해라는 것을 더 잘 알고 있었겠죠. 허심탄회하게 학생들이 의견을 개진해보도록 익명 보드가 학생들에게 제공되었습니다. 제가 교수로서 활동한 기간이 학기 수로 13 학기인데 별로 내세울 것이 없지만 그 당시 소통 노력은 제법 잘 된 것이었다는 생각은 아직 갖고 있습니다.

지금 떠오르는 예로, 국제지역원 전관 금연지정 소동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학생들에게 흡연실을 제공했는데, 그래도 비흡연 학생들의 민원이 생겼습니다. 문 틈으로 담배 연기가 새나와서 간접흡연이 된다는 주장이 게시판에 마구 올라왔던 것입니다. 사실 비흡연자에게는 담배 냄새가 조금만 나도 불쾌할테니까 그 주장은 타당해보였습니다. 그래서 교수회의에서 전관 금연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번에는 흡연자들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참, 조그만 대학원에서 그러니, 비정규직같은 큰 쟁점에 대한 사회 갈등은 안봐도 비디오가 아니겠습니까^^) 익명 게시판에서 갑론을박이 시작되었고 결국 게시판 담당 교수인 제가 토론에 참여할 수 밖에 없었죠. 역시 소통은 좋은 것이었습니다. 저는 학교의 입장을 정확하게 전달하면서 전관금연의 당위성을 충분히 설명했습니다. 흡연자들은 처음에 불만이 많았는데 제 설명을 듣고 분위기가 차분해졌습니다. 결국 원래 계획대로 건물 외부에 학생들용 파라솔과 흡연 편의시설이 갖춰지면서 전관금연은 실시되었습니다. 사회 갈등은 이렇게 풀어야 되는데, 우리 정부는... 이하 생략입니다. ㅋ .

지금까지 읽으신 분은 제가 무슨 큰 사명감에서 그런 일을 한 것으로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그것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좋아했습니다. 저는 사람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것을 정말 좋아합니다. 미국 사람들과 얘기하는 것은 별로 재미가 없습니다. 아직까지도 우리말이 훨씬 편해서 캘리포니아에 서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우리나라에 와서 인터넷 소통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면에서 저는 이준구 교수님이나 한순구 교수님과 닮았다고 보셔도 되겠습니다. 교수님께 학생들은 고맙게 생각하셔야죠. 또 잘 활용하시면 자다가도 떡이 생깁니다.^^

주저리 주저리 글이 길어졌네요.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후기 1: 지금 상황으로는 익명 보드가 학교에서 필요 없다는 생각을 저는 갖고 있습니다. 막을 수 없는 피해가 발생할 수 있어서 그 득보다는 실이 더 많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이 험하죠.

후기 2: 학생들과 친하게 지낸 덕분인지 제가 국제지역원을 떠날 때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나무 두 그루를 대학원 건물 옆에 심어줬습니다. 이른 바, 안병길 사과 나무, 복숭아 나무입니다. 그 나무들은 잘 자라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ㅜ.ㅜ

2009년 7월 24일 금요일

[자유] 자유와 인권, 링컨과 마틴 루터 킹 목사

2004년 여름에 찍은 사진인데, 미국 워싱턴 DC 링컨 기념관에 새벽에 몰래 잠입하여 찍었습니다. 그래서 주위에 관광객이 한 명도 없는 쾌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 때는 제가 우리나라에서 일할 때였습니다. 출장으로 워싱턴 DC를 갔다 아리조나로 가는 비행기를 타러 가기 전에 렌트카를 몰고 링컨 기념관에 새벽에 갔었죠. 경비 아저씨가 친절하게 찍어주시더군요.

링컨도 훌륭한 정치인이었지만, 저는 이 장소에 가면 항상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연설을 떠올립니다. 너무나도 감동적인 연설이었죠.

힘찬 하루, 시작하십시오. 홧팅!


[자유] 눈물 나는 이야기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9/07/20, http://jkl123.com/)

어느 고등학교 3학년 학생과 담임 선생님의 이야기입니다. 공부를 참 잘하는 학생이랍니다. 거의 모든 과목에서 1등급 실력을 갖추고 있는데, 영어만은 1등급이 아니고 2등급이랍니다. 왜인지 아십니까? 집안이 가난해서 그렇답니다. 영어 과외에 돈을 많이 쓸 형편이 안되는 것이죠. 하루는 학생이 담임 선생님께 물었답니다.

"선생님, 파이 드셔 보셨나요?"
"무슨 파이? 파이도 종류가 많은데... 애플 파이, 피칸 파이..."
"애플파이요.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어요..... 커다랗고 둥근 파이를 앞에 놓고 한번 잘라서 먹고 싶어요."
"....."

그 학생의 꿈은 장차 서울대학교에 진학하고, 외국에도 나가서, 국제적으로 살아 보는 것이라고 합니다.

담임 선생님은 코스트코에서 애플파이를 사서 그 학생에게 선물했다고 합니다. 그 학생은 무척 당황하면서 말도 잘 못하고 우물쭈물했다고 합니다... 서울대 근처에서 벌어진 실화입니다.

서울대학교... 영어가 조금 떨어지는 가난한 학생들도 많이 뽑아주세요.
그것이 우리 헌법의 교육평등 정신에 맞다고 생각합니다...

[정치] 활극 한 편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9/07/23, http://jkl123.com/)

음... 심각하네요. 갑자기 정신이 멍합니다.

[자유] NATO: 현실주의에서 자유주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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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4월 3일 세계일보 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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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대서양 조약기구(NATO)가 창설된 지 50년이 되었다. NATO는 1949년 북미와 서유럽의 안보 수준을 높이기 위한 동맹기구로서 창설되었고, 소련과 동구권이 공산주의를 포기할 때까지 약 40년 동안 냉전적 평화를 유지하는 한 축으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다. 냉전이 끝나자 폐지에 대한 논의가 있었지만, NATO는 미국 중심의 패권적 세계질서의 유용한 도구로서 건재함을 이번 유고연방 공습에서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일찍이 마키아벨리나 홉스 등의 현실주의(Realism) 정치이론가들은 인간과 국가의 가장 중요한 목표로서 안전 혹은 안보를 설파하였다. 존재 그 자체가 보장되지 않으면 다른 어떤 것도 수행할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이나 국가는 적의 공격을 억제할 수 있는 장치를 당연히 고안한다는 것이다. 현실주의적 주장에 의하면 국제관계 속성상 상대 국가가 강해지면 자국의 안보가 위협을 받는 '안보의 딜레마'가 존재하므로 항상 분쟁의 소지가 있고, 따라서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단 자국이 속한 진영의 힘을 과시하여 가상 적국들의 침공을 억제해야만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NATO는 공산권이 소멸할 때까지 서방 국가들의 안보협력 장치로서 그 명성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현실주의적 시각으로 NATO의 유고연방 공습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유고가 코소보 주민을 비인간적으로 탄압한 데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감행한 이번 군사 작전은, 그로티우스의 국제법 사상이나 칸트의 영구평화론 사상 등이 대표하는 자유주의(Liberalism) 시각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자유주의에 의하면 인간이나 국가가 상호 편의를 도모하여 협력과 평화를 유지할 수 있고, 주권을 가진 국가라도 인간의 자연권을 함부로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칸트는 자유민주주의 공화국들이 전세계 연방체를 형성하면 영구평화가 이룩된다고 주장하였는데, 그러한 이상적인 세상에서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자연권이 함께 존중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유고연방 공습에 대한 미국과 NATO의 명분은 자유주의적 사고에 입각하여 평화를 위해서 타국의 내정에 간섭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유고연방 공습은 NATO가 현실주의에서 자유주의로 그 존재 이유를 재설정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평화와 협력을 강조하는 자유주의를 제시한다고 해서 국제관계의 폭력성이 소멸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또한 보여주고 있다. 역사적으로 자유민주주의 국가들 사이에는 주요 전쟁이 없었던 이유에 대한 궁극적인 답으로서 자유민주주의 자체의 평화적 속성을 지목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음을 이번 사태를 통해서 재확인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다른 속성을 지닌 국가와 부닥쳤을 때는 그 폭력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특히 미국은 패권적 질서의 주창자로서 필요하다면 전세계 어느 곳에서도 자유민주주 카드와 동반된 무력 사용을 감행하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현실주의를 제시하든 자유주의를 주창하든, 미국 등의 NATO 국가들로서는 무력분쟁에서 지불해야 할 정치적, 경제적 비용과 연관된 숙제를 안고 있다. 일반적으로 분쟁초기에는 국민들이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를 보여주더라도, 분쟁이 장기화되면 정치적 지지도가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사실을 클린턴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또한 국민의 세금으로 지불되는 전쟁비용을 무한정 쓸 수도 없다. 현재 상황에서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하는 유력한 방법은 적당한 시기에 협상을 통해서 타협하는 것이다. NATO 창설 50주년을 맞아서 NATO의 새로운 이념을 공포하는 행사와 같이 된 이번 무력개입은 그 정도 수준에서 멈추는 것이 좋을 듯하다. 자칫 잘못하면 현실주의적 무력개입이었던 베트남 전쟁과 유사한 사태가 자유주의 판으로 발칸반도에서 등장하는 악몽을 꿀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유] 둘에 둘 더하면 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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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6월 5일 조선일보 여론면 옴부즈맨 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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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5월 28일 자 홍사중 문화마당의 "둘에 둘 더하면 다섯"은 다수결이 항상 정의와 진실에 더 가깝게 가는 것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매우 중요하고도 자명한 사실을 지적하였다. 즉, 한 초등학교의 산수문제 풀이 예를 들면서, 민주적 결정이 "둘에 둘을 더하면 다섯"이라는 오답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민주주의 기본 원칙인 다수결, 정확하게는 단순과반수 원칙이 민주주의 사회의 모든 결정과정에 적용되지 않고, 어떤 의제가 절대적 정의나 진실을 묻는 것이 아닐 때 주로 적용함을 이 글에서 지적하고자 한다. 다수결 원칙은 절대적으로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는 기준이 아니라, 한 사회 구성원이 전체적으로 어떤 것을 상대적으로 더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를 결정하는 정치 제도라고 볼 수 있다.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선호를 사회 전체 결정으로 바꾸는 한 방법이 바로 다수결이다. 절대군주제하에서는 왕이나 소수 신하가 국민 선호를 직접 묻지 않고 국가적 결정을 내린다. 그러나 민주주의 선거는 일정한 나이와 자격을 갖춘 국민은 모두 일인일표를 던져서 전체 사회 결정을 이끌어내는 일반투표권(universal suffrage)을 채택하는 차이점이 있다.

민주주의의 세부적인 절차는 잘 알다시피 시대와 사회에 따라서 각기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 대통령 선거제만 예를 들더라도 우리나라는 직접투표에 의한 단순다득표제, 프랑스는 직선 결선투표제, 미국은 선거인단에 의한 간선제를 채택하고 있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천편일률적인 양상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각 사회의 역사, 문화에 따라서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홍사중 선생이 언급한 "다수결 원칙"도 민주주의 사회의 모든 결정과정에 도입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미국 배심원 제도 중 일부는 배심원 중 한 명이라도 피고의 죄를 인정하지 않으면 그 피고인은 무죄가 된다. 그와 유사한 예로 홍사중 선생이 든 7명의 반대를 무시한 링컨의 결정은 "다수결 원칙"을 링컨과 관계장관들 회의에 적용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이 예들에서 민주주의 사회가 "다수결 원칙"을 모든 결정과정에 도입하는 것은 아니고, 또 그 원칙을 평가하는 적절한 예가 아님을 역설적으로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배심원 제도는 "피고의 인권보호," 링컨의 결정은 "대통령의 비토권"이라는 원칙을 더 중요하게 적용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둘에 둘 더하면 다섯"의 예로 "다수결 원칙"을 올바르게 평가하는 예가 될 수 없고, 그 원칙이 오용 내지는 남용된 예일 뿐이다. 즉, 초등학교 교실의 문제 풀이 정답은 "선생님이 제시한다." 라는 원칙을 적용함이 더 적절하다는 예시일 뿐이다.

"다수결 원칙"은 민주주의의 어느 결정에서 존중해야 하는 원칙인가? 그 원칙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절대적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안건을 처리할 때 주로 적용해야 하는 원칙이다. 둘에 둘 더하기 의제는 이미 절대적으로 옳은 답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투표를 하여 과반이 다섯이라고 대답하는 것이 전혀 중요한 결정 기준이 될 수 없다. "둘에 둘 더하면 그냥 넷"이라고 말하면 된다. 그런데 이러한 절대적 진리를 확보할 수 없는 대표적인 예가 바로 선거이다. 물론 선거에 입후보한 모든 정치인이 "나는 절대적으로 옳다!"라고 주장하면서 유권자를 설득하겠지만, 그중에 누가 옳은지를 평가하는 것은 유권자가 투표해서 결정한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유권자들이 사회적으로 어느 후보를 더 좋아하는지를 결정하는 것이 바로 선거이다.

다수결(단순과반수 의결) 원칙은 갑과 을 두 후보가 있을 때, 갑을 을보다 좋아하는 유권자가 더 많으면 갑이 당선되어야 한다는 원칙일 뿐이지, 갑이 항상 옳다든지 옳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원칙이 아니다. 따라서 다수결에 의한 결정에 옳지 않은 것이 선택되는 것은 그 원칙 자체 결함이 아니라 유권자 선호의 결함일 뿐이다. 민주주의 사회의 선거에서 "단순과반수 의결" 원칙을 강조하는 것은, 일인일표제 평등주의하에서 과반수 의견을 소수의견보다 더 존중해야 함을 의미하지, 과반수가 맞다든지, 소수가 틀려야 한다든지 등의 논의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이념적 바탕이 인간의 올바른 이성을 믿는다. "단순과반수 의결"을 통해서 정치지도자를 뽑으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크다는 신념이 강하게 채색되어 있지만, 절대적 정의나 옳음을 확보하는 과정이 아님을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

예컨대, 어떤 국가에서 "단순과반수 의결"을 채택하여 히틀러와 같은 독재자를 대통령으로 뽑았다면, 그것은 "단순과반수 의결"의 오류가 아니고, 그 국민의 오류이며, 그들이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둘에 둘 더해서 다섯"이 나오면 독재의 폐해를 볼 것이고, "둘에 둘을 더해서 넷"이 나오면 그런 폐해를 입지 않을 것이라는 유추가 가능할 뿐이다. 자유민주주의의 사상적 기반은 답이 "넷"으로 나올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믿음을 깔고 있다. 미국 로체스터 대학교 라이커 교수가 적절히 지적했듯이 "단순과반수 의결"은 민주주의 사회의 선거에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왜냐하면, 선거에서는 누가 절대적으로 옳은지 판가름하기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단순과반수 의결이 정의와 진실에 더 가깝게 가는 것을 보장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보다 더 멀리 가는 것도 아니라는 점도 같은 비중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자유] 미시간 주립대학교를 떠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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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4월, 미시간 주립대 학생회 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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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미시간 주립대학교 정치학과에 재직한 지 벌써 삼 년이 지났습니다. 1994년 어느 봄날 전 학과장이셨던 Brian Silver 교수님으로부터 조교수직을 제의받고 저 자신을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비슷한 일이 지난 2 월 중에 생겼습니다. 한국의 한 대학교의 조교수로 임명하겠다는 연락을 받고 저는 또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저 자신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로서는 그 학교의 교수로 간다는 것이 더없는 영광이며 제 분에 넘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미시간 주립대학교에 재직하고 계신 모든 한국관계 교직원과 학생 여러분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이 지면을 빌어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동안 저에게는 많은 일이 MSU에서 있었던 것 같습니다. 1995년 광복 50주년 학술행사를 임 길진 교수님의 후원을 받아서 그 당시 학생회장과 공동 조직하였으며, 작년 4월에는 정치학과 주최의 국제 학술회의를 조직하였던 기억이 주마등같이 지나갑니다. 또 1995-96 학년도에는 한국 학생회 지도교수를 맡아서 학생회 홈페이지 구축을 유도하였습니다. 이런 일들을 하는 와중에 저 자신의 부덕과 능력 부족으로 말미암아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제가 주도한 일과 관련하여 조금이라도 잘못된 것이 있었다면 모두 제 불찰로 간주하시고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자유민주주의를 매우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MSU에서 벌어지는 한국관계 행사와 활동도 자유민주주의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자유민주주의는 여러 면을 가지고 있지만, 그 중 하나가 서로의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는 사회활동에서 절대적으로 옳지 않은 것을 가려내기 어려운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학생회 활동도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듣고 어떤 것이 상대적으로 더 옳은 것인지, 어떤 것을 상대적으로 더 좋아하는지를 판단의 기준으로 삼을 필요가 있습니다. 또 학생회는 주인이 학생이므로 지도교수님과 다른 관련된 분들의 의견을 참조할 수는 있지만, 마지막 결정은 학생회에서 주체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유민주주의 기본 가정 중 하나가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MSU에서 벌어지는 한국관계 관련행사가 천편일률적으로 조직되지 않는다고 해서 전혀 비관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저는 평소에 주장해왔습니다. 우리나라 경제발전을 빗대어서 권위주의적인 군대식 조직운영이 유리한 점이 있다고 평가하실 분들도 계시겠지만 이제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더 개방적이고, 더 합리적인 방향으로 학생회 활동과 한국관련 행사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저는 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MSU에 있는 여러 한국관계 단체들이 불협화음을 일으키거나 협력관계가 잘 유지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서로 협의하고 조정하면서 상부상조하면 더욱 훌륭한 행사와 활동이 꽃을 피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MSU 학생회 여러분은 서로서로를 격려하면서 하시는 학업에 큰 열매를 맺으시길 바랍니다. 저는 우리나라 문화를 간혹 "Culture of Discouragement"로 규정하곤 합니다. 크게 틀리지 않았다면 될 수 있는 한 타인의 의사를 존중하면서 박수와 격려를 보내는 것이 인지상정이 되어야 하는데, 남의 행동을 가능한 깎아 내리고, 또 못하도록 핀잔을 주는 경우가 주위에서 너무나도 자주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렇게 discourage 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절대적으로 옳다고 증명할 수도 없으면서 말입니다. 인간 행동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잘 생각해야 합니다. 자신입니다. 남의 행동이 타인에게 해를 끼친다는 구체적인 증거가 없으면 discourage보다는 encourage를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Negativism보다는 Positivism이 더 밝고 건강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동안 제가 MSU에 있는 동안 도와주신 분들에게 성함은 모두 열거하지 못하지만,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면서 이 인사말을 마칠까 합니다. 하시는 모든 일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시길 빕니다. 한국에 오실 기회가 있으면, 꼭 연락 주셔서 활짝 웃는 낯으로 뵐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09년 7월 23일 목요일

[공지] 자유주의, 민주주의, 그리고 성냥불 참여

[공지] 네이버에 Mirroring Site를 만들고 있습니다.
(2009년 12월 5일)

제 블로그의 미러링(Mirroring) 사이트를 국내에 만들고 있습니다.

주소는 http://blog.naver.com/clearsea80
입니다.
구글 블로그 이용에 불편을 느끼시는 분들을 위해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네이버 블로그 구축이 완료되어도 이곳이 주 블로그입니다.
항상 즐겁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첫 인사]

이곳이 우리나라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조그만 성냥불의
쉼터가 되면 좋겠습니다.


[공지] 실명과 필명에 대해서 (2009/07/28)

회원 초청을 승낙하신 분이 실명을 사용하신 경우도 있고, 필명을 사용하신 경우도 있습니다. 필명으로 등록하신 분은 실명이 개인정보에 해당합니다. 저는 블로그 운영자로서 필명의 실명 주인공을 알 수 있지만, 그 개인정보는 본인 스스로 밝히지 않는 한, 원칙적으로 공개하지 않겠습니다. 헌법에 명시한 사생활 비밀보장 권리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제 초청을 승낙해주신 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공지] 회원가입 신청 안내 (2009/08/04)

안녕하세요. 지금까지는 제가 아는 분에게 초청장을 보내드려서 회원으로 모셨습니다. 지금부터는 회원가입 신청도 받겠습니다. 가입을 희망하시는 분은 간단한 본인소개를 ahnabc@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지] 글 분류에 대해서 (2009/09/21)

안녕하세요. 좋은 주말 시작하고 계신지요.
글 분류를 다음과 같이 해봤습니다.

[자유] 자유민주주의 3대 원칙인 자유, 평등, 참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정치] 정치 현상에 대한 제 주장이나 견해를 밝힌 글입니다.
[단상] 사회 현상에 대한 짧은 견해나 소회를 적은 글입니다.
[수필] 신변잡기 위주로 제 느낌을 적은 글입니다.
[음악] 음악 동영상을 링크하거나 감상을 적은 글입니다.
[여행기] 제 여행 경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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