藝田(예전), 이름 멋있죠? 블로그 초기인 요즘, 부산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해서 조금 망설여지기는 하지만, 글이라는 것이 필이 꽂히면 줄줄^^ 나가기 때문에 다시 할 수밖에 없네요. 양해 부탁합니다.
사실, 저는 다른 인터넷 공간에서는 고향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습니다. 공개를 꺼리는 편이라고 보셔도 됩니다. 그것은 제가 정치적 지역주의 완화 혹은 극복에 관한 주장을 자주 하기 때문입니다. 제 출신지역을 독자가 알면 괜한 선입견이 생길 수도 있겠다는 걱정에 그렇게 해왔습니다. 이곳은 제 개인 블로그이니, 저에 대해서 가능한 한 솔직하게 많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이 저에게도 편합니다. 사적으로 남 욕하는 것보다 저에 대해서 주저리주저리 하는 것이 더 낫죠.^^
藝田은 제가 대학교 1학년일 때 자원봉사를 했던 클래식음악 커피숍 이름입니다. 부산 부심지인 서면 뒷골목에 있었습니다. 부산은 도심이 자갈치 시장이 있는 남포동/광복동 일대, 부심지가 부전동이 있는 서면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럴 것입니다.
1980년 5.18이 터졌을 때, 저는 다행히 서울대 기숙사에 있지 않았고, 외박을 했습니다. 누님이 이사하신다고 해서 인사차 그 집에 들렀는데, 때맞춰서 군인들이 서울대 캠퍼스로 들어왔죠. 나중에 들으니 사감 교수님부터 학생까지 큰 봉변을 당했더군요. 새벽에 자고 있는데 곤봉이 날아들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아찔하시죠? 저는 사주팔자가 좋았는지, 그 인권유린 현장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ㅜ.ㅜ 학교출입이 봉쇄되었습니다. 고향으로 내려가기 전에 제 물건을 기숙사에서 가져 나올 수 있는지 행정실에 전화했습니다. 들어갈 수는 있는데, 전혀 권유할 마음은 없다고 친절하게 안내하시더군요. ㅋ
그다음 날 부산으로 내려갔습니다. 가방도, 책도 없는 맨몸 귀향이었습니다. 나중에 학교에서 이러저러한 숙제를 제출하면 학점 준다고 해서, 리포트는 고향집에서 열심히 적었습니다. 시간이 제법 남더군요. 시간이 남으니 대략난감 상태가 되었습니다. 외교관이 되고 싶은 생각에, 미리 준비한답시고 알리앙스 프랑세즈에 불어를 배우러 다녔는데, 그래도 시간이 남았습니다.
하루는 친구가 서면에서 만나자고 해서 나갔더니, 藝田이라는 아담한 클래식음악 커피숍이었습니다. 새로 개장했는데 음향시설이 좋아서 제가 혹했습니다. 그래서 무료로 DJ를 해주겠다고 주인에게 말씀드렸죠. 이미 DJ가 있어서 필요 없다는 냉정한 답을 처음에 들었지만, 저는 한다면 하는 사람입니다. ^^ 적당한 의제 설정(agenda setting)과 정치적 조작(political manipulation)을 했습니다. DJ도 점심은 드셔야 될 것 아니냐고 하면서, 그 시간대에 두 시간 정도 봐 드리겠다고 했죠. 무!료!를 강조했습니다. ^^
드디어 허락이 떨어졌고, 저는 하루에 세 시간 정도 훌륭한 음향시설에서 커피 대접을 받으면서 클래식 음악감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원래 점심 식사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는데, 나중에는 점심 도시락도 DJ 박스에 넣어주시더군요. 함께 DJ를 했던 누나는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는 소식을 한참 뒤에 들었는데, 그렇다면 저와 같은 나라에 있는 셈이네요. 이 글을 보시면 연락해주세요. ㅋ
그 당시 부산에서 가장 유명했던 클래식음악 커피숍은 남포동의 전원(田園)이었습니다. 藝田보다 훨씬 컸습니다. 이름이 비슷하네요. 베토벤 6번 교향곡에서 따왔었겠죠. 저에게 전원보다 아담한 藝田이 더 좋았을 것은 독자께서 쉽게 짐작하시겠죠. 藝田에서 자주 틀었던 프랑스 작곡가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가 오늘따라 듣고 싶습니다. 베토벤 전원 교향곡과 구노 오페라 파우스트에 나오는 "병사의 합창"을 듣겠습니다.
SOLDIERS CHORUS, FROM GOUNOD´S "FAUST"
WIENER STAATSOPER, ERICH BINDER CONDUCTING.
Karajan - Beethoven Symphony No. 6 In F Major 'Pastoral'
노무현 대통령도 그렇고 아마 박사님과 같은 고민이 많았을 것입니다. 부산에서 태어난 원죄일까요?
답글삭제자유민주주의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고향이란 한계이자 극복해야 할 껍질이었을 것 입니다.
최근에는 이곳에도 그러한 지역주의 정치색이 점점 비판받는다는 것이 희망이라면 희망일 것입니다.
형찬씨, 어서 오세요. 초청에 응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답글삭제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는 100미터 달리기가 아니고, 42.195킬로미터 마라톤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마라톤이 역주행하고 있어서
답글삭제가슴이 아프고 도피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ㅎㅎㅎ 필경씨 표현이 재미있네요. 순주행했다, 역주행했다 하는 측면도 있죠. 평균적으로는, 장기적으로는, 순주행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답글삭제서울에도 '전원'이라는 클래식 음악 다방이 있었습니다.
답글삭제가장 유명했던 것은 '르네상스'와 '아폴로'였지만요.
'심지'라는 대중 음악 다방도 있었는데 정말 시끄러웠어요.
거기서 소개팅 받았는데 너무 시끄러워 정신이 없는 바람에 잘 안 되었답니다.
선생님의 유려한 언변이 소음에 파묻혔던 모양입니다.
답글삭제사모님께는 정말 고마운 다방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