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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3일 토요일

[정치] 민주주의에 대한 단상들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8/06/25)

[설명] 2008년 상반기에 시민이 거리로 다시 뛰쳐나왔다. 여러 복잡한 요인이 있었지만, 그중에서 두드러진 것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협상 결과에 대한 국민의 분노였다. 연일 이어지는 촛불 시위/집회에서 시민은 정부의 잘못을 지적했고, 급기야 정권 퇴진 구호까지 등장하였다. 한 원로 정치학자의 정년퇴직 기념 강연 내용에 대한 보도를 읽고, 필자가 평소 생각하고 있었던 민주주의 개념과는 다른 내용이 눈에 띄어서 작성한 문건이다. 그 정치학자는 현대 민주주의를 대의제 민주주의로 간주하여 시민이 정권 퇴진을 외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견해였다. //

(1) 민주주의 = 대의제 민주주의?

현대 민주주의가 대의제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것은 어떤 사회가 일정 크기를 넘어서면 직접민주주의를 정치 일반에 적용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거나, 비효율적인 측면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직접민주주의 자체를 옳다/그르다로 평가한 것은 아닙니다. 즉, 현대 민주주의에서 간접적 요소가 더 채택되는 쪽으로 “선택”한 것이지 현대 민주주의 자체가 대의제(간접) 민주주의라고 강변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현대 민주주의에 대한 정확한 표현은 “대의제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채택하지만 직접민주주의 요소도 있는 혼합형이다.” 정도가 될 것입니다.

주민 투표, 주민 소환, 주민 발안 등의 직접민주주의 제도가 우리 정치에서 아직 뿌리를 못 내리고 있지만, 그런 제도들도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입니다. 또 우리 대통령 선거는 어떻습니까? 대의제로 가는 길이지만,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뽑는 것은 직접민주주의가 아닙니까? 이런 예들은 직접민주주의가 오히려 더 중요한 의사결정에 적용됨을 보여주며, 민주주의에서 직접민주주의적 요소를 배제할 수 없음을 잘 나타냅니다.

만약 “절차적 정당성”의 대의제 민주주의와 “인민 주권”의 직접민주주의가 서로 부딪히면 직접민주주의가 우월적 지위를 갖는 것은 물론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4.19 혁명, 5.18 광주 민주화 항쟁, 6.10 직선제 쟁취 민주화 항쟁 등의 국민 저항이 폄훼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 민주주의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당정치가 발전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떻게?”라는 질문을 자동으로 던질 수밖에 없습니다. 촛불이 꺼지면 정당정치가 정상화될 것이라든지, 촛불의 과도한 직접민주주의가 대의제를 약화시킨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민운동과 대의제/정당정치 관계는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작금의 촛불 시위가 정당정치 발전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단언할 수 없습니다. 촛불 때문에 여의도 국회 의사당이 불타는 정도는 아닙니다. 만약 촛불과 정당정치 사이에 관계가 있다면 정치인들이 시민 사회의 입력을 더 잘 받들어야 되겠다고 깨닫는 긍정적인 효과도 포함할 것입니다. 촛불 시위 이후 여당이 보여준 쇠고기 수입 쟁점에 대한 태도변화를 참조하면, 그것이 대의제 민주주의와 정당정치에 도움을 주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2) 정치적 표현으로서 촛불?

“민주주의는 대의제 민주주의”라고 주장하면서 촛불 시위의 “정치적” 주장이 “잘못” 되었다고 평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봤습니다.
•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대의제 민주주의라서?
• 촛불이 쿠데타 음모를 꾸미고 있어서?
• 촛불이 정치적 주장을 외치면 남한이 북한에 먹히기 때문에?
• 우리 경제가 결딴나서?
• 대통령이 중도 하차하고, 여당 지지율이 급격하게 떨어져서?
• 국회가 해산될 가능성이 있어서?
• 우리 민주주의가 유신이나 5공 시절로 되돌아가기 때문에?
이런 이유는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일까요? 아마도 지금까지 정부/여당의 실패가 정권 교체의 조건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이것은 논란이 될 수는 있지만 무슨 증명을 하듯이 명쾌한 해답으로 제시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촛불이 “정치적” 구호를 외치는 것이 왜 “잘못”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자유민주주의에서는 어떤 시민도 어떤 정권에 대해서 정치적 의견을 낼 수 있습니다. 그런 운동도 합법적으로 조직할 수 있습니다. 그 요청이나 운동 목적이 구현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일부 촛불의 요구가 대통령을 다시 뽑자는 것인지, 따끔하게 대통령을 꾸짖는 정도인지도 불분명하지만, 설사 대통령을 다시 뽑자고 주장한들 그것이 무슨 “잘못”이겠습니까? 저는 시민이 그런 주장을 하는 것 자체는 자유민주주의(대의제든 직접이든)에 전혀 어긋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자유민주주의에서 정치적 성향이 다르다고 해서 함부로 상대방을 “틀렸다.”든지, “잘못”이라고 강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현 정권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잘못된 주장은 아닙니다.

촛불에 대해서 그것이 횃불이 될지, 성냥불이 될지, 그냥 사그라질지 노심초사하는 유력 인사들이 많은 것 같은데, 오버는 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과도한 주장은 침묵보다 못할 수 있습니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있으니 그런 사람들도 나름대로 정치적 주장을 할 수도 있는데, 그들의 “과분한 위치(한마디만 하면 주요 언론에서 대문짝만 하게 취급함)”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부정적 파급 효과를 고려하여 자중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특정 자유민주주의의 합의된 틀 안에서 정치적 의사표현은 최대한 존중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촛불이 정치적 의견을 개진하는 것도 민주주의 한 발현으로 이해해야 하며, 그것이 반드시 대의제 민주주의를 약화시키는 것으로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특정 시민의 정치적 선호일 뿐이며, 그런 주장이 사회 전체 결정으로 채택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3) 대통령제의 한계?

촛불 시위를 대통령제의 한계와 연결하고, 개헌해서 의원내각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일정 기준을 제시해서 민주주의의 특정 제도를 맞다, 잘못됐다는 식으로 평가할 수는 있습니다. 애로우(Kenneth Arrow) 교수의 불가능성 정리(The Impossibility Theorem)를 참조하면 민주주의 제도에 일반적인 정답이 없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민주주의 제도를 옳다/그르다는 식으로 평가할 때는 특정 조건이나 기준을 잣대로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러므로 의원내각제를 도입하는 것이 옳다면, 우리나라의 어떤 조건이나 기준에서 그 제도가 대통령제보다 우월하냐는 분석이 필요할 것입니다. 저는 우리나라는 대통령제가 성공한 사례라는 점을 중시하는 편입니다. 또한, 남북한 분단 구조, 짧은 민주주의 역사, 미성숙한 정당정치 등을 참작하면 의원내각제를 도입하는 것은 아직 적절하지 않다고 봅니다. 기존 대통령제를 수정, 보완하는 정도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요즘 오히려 걱정하는 것은 정치인들이 “야합”해서 의원내각제로 바꾸면 어찌하느냐는 것입니다. 권력구조와 같은 근본적 정치제도의 급격한 변경은 “정치 교육”을 비롯한 유형, 무형의 막대한 비용이 소요됩니다. 정치에서도 “공짜 점심”은 없습니다. 의원내각제 지지자들은 대통령제의 단점과 의원내각제의 장점만 드러내는 경향이 있는데, 전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편익 계산을 제대로 해야 할 것입니다. //

2009년 7월 27일 월요일

[자유] 촛불과 성냥불


조용한 캘리포니아 일요일 저녁입니다. 블로그 초기라서 제가 신경을 좀! 쓰고 있습니다.^^ 조금 지나면 저도 안정적으로, 하루에 한 시간 정도 블로그에서 사랑방 놀이를 할 수 있겠죠. 블로그를 열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몇 년 연락을 하지 않았더니, 궁금하게 생각하셨던 여러 친지가 연락해줘서 반갑다는 인사를 전해주셨습니다. 격려도 많이 받았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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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의 이름에 "성냥불"이라는 표현이 들어 있습니다. 저는 그 표현을 1997년부터 사용했습니다. 경제학을 크게 거시와 미시로 나누는데, 그 분류를 적용하면 제가 공부한 정치학이 미시 정치학에 속합니다. 합리적 선택이론이라는, 상대적으로 최근에 생긴 정치학 방법론입니다. 미시 경제학의 공공선택과 게임이론을 합쳐서 정치 현상을 분석하는 것으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따라서 핵심 용어는 <인간의 선호>입니다. 좋고 싫은 잣대를 이용하여 선거제도, 투표행위, 외교/협상 전략, 국제분쟁 등을 연구합니다. 연구 대상만 다를 뿐이지, 미시경제학 방법론을 거의 그대로 사용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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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마이크로에 치중하다 보니 큰 변화보다 작은 변화에 더 관심이 간 것은 당연합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가 더 발전하려면 큰 횃불보다 조그만 성냥불만 있으면 된다는 문제의식이 생겼습니다. 물론, 조선 말 개화기였다면 횃불이 필요했겠죠. 그러나 1997년은 이미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제법 성장했고, 정치적으로도 직선제 개헌 이후 10년이 되는 시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때까지 잘 작동했던 발전 동력에 성냥불 정도의 마이크로 조정만 있으면 우리나라가 더 성숙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문제의식은 저에게는 아직 유효합니다. 정치인이나 사회지도자들이 무슨 큰일을 할 듯이 거창하게 떠들면, 저는 영 불편합니다. 왠지 뜬구름 위에 있는 기분이 들거든요.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라고 하면, 저는 그 국가가 무슨 국가인지, 그 민족이 과연 우리 민족인지 오히려 의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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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성냥불보다 더 위력적인 촛불을 시민이 밝혔습니다. 성냥불로 우리 사회 발전을 미리 밝혔으면, 촛불이 거리로 나오지 않았을 텐데... 라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저는 느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자유민주주의 촛불이 아니라, 그보다 대단히 약한 성냥불로 산다는 것도 어려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권위주의 어둠에 갇혀 있는 것보다는, 자유민주주의 성냥불 하나라도 밝히는 것이 우리 장래에 도움이 된다고 저는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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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블로그 이름에 10년 전 생각했던 그 조그만 성냥불을 갖다 붙였습니다. 오랫동안 꺼지지 않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