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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2일 수요일

[자유] 문명의 충돌인가, 자유의 박치기인가?

현대 민주주의가 대의제(간접) 민주주의를 기본으로 채택합니다. 이것은 직접 민주주의가 대의제보다 원리적으로 열등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사회의 크기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직접 민주주의가 비효율적이라서 그렇습니다. 초고속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날이 갈수록 발달하는 요즘 세태를 참작하면, 그 기술을 활용하는 직접 민주주의적 요소가 현대 민주주의에 더 들어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재 사용되는 대표적인 직접 민주주의 제도에는 주민 발안, 주민 투표, 주민 소환 등이 있죠.

세계에서 직접 민주주의를 가장 많이 활용하는 나라가 스위스입니다. 스위스 정치는 직접 민주주의를 근간으로 채택한다고 평가할 수도 있습니다. 스위스는 1848년 헌법을 채택한 이후에 중요 법안은 대부분 국민투표(referendum)로 결정합니다. 의회에서 통과한 법안이라도 시민이 태클을 걸 수 있습니다. 100일 동안 5만 명 이상 서명을 받으면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죠. 국민투표에서 단순과반수만 얻으면 시민이 제안한 새 법안이 채택됩니다. 시민이 개헌을 제안할 수도 있습니다. 18개월 이내에 10만 명 이상 서명을 받으면 국민투표를 합니다. 최근에 이 사례가 생겼죠.

11월 29일 스위스 개헌 국민투표에서 이슬람 사원 모스크의 미나레트(첨탑) 설치를 금지하는 헌법 조항이 통과되었습니다. 국민투표에 참여한 유권자 중 57%가 새 헌법 조항에 찬성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종교를 차별하는 것이냐 아니냐는 논란이 이전부터 있었지만, 앞으로 더 격화될 것 같군요. 이슬람교도가 급격히 늘어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기독교 우파 쪽에서 11만 5천여 명의 서명을 받아서 개헌 발안을 했다고 합니다.

미나레트가 하루에 다섯 번 예배 시간을 알리는데 그 소리가 시끄럽고 듣기 싫다는, "소극적 자유"를 주장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이슬람교도들의 적극적 종교 자유와 스위스 시민의 소극적 자유가 박치기했다고 볼 수도 있죠. 겉으로는 그렇게 주장했을 겁니다. 속내는 이슬람 세력이 확장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 제법 되었겠죠.

문명의 충돌일까요, 자유의 박치기일까요?

참조: 스위스 ‘모스크 첨탑 금지’ 국민투표 과반 찬성 통과

2009년 10월 3일 토요일

[정치] 민주주의에 대한 단상들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8/06/25)

[설명] 2008년 상반기에 시민이 거리로 다시 뛰쳐나왔다. 여러 복잡한 요인이 있었지만, 그중에서 두드러진 것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협상 결과에 대한 국민의 분노였다. 연일 이어지는 촛불 시위/집회에서 시민은 정부의 잘못을 지적했고, 급기야 정권 퇴진 구호까지 등장하였다. 한 원로 정치학자의 정년퇴직 기념 강연 내용에 대한 보도를 읽고, 필자가 평소 생각하고 있었던 민주주의 개념과는 다른 내용이 눈에 띄어서 작성한 문건이다. 그 정치학자는 현대 민주주의를 대의제 민주주의로 간주하여 시민이 정권 퇴진을 외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견해였다. //

(1) 민주주의 = 대의제 민주주의?

현대 민주주의가 대의제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것은 어떤 사회가 일정 크기를 넘어서면 직접민주주의를 정치 일반에 적용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거나, 비효율적인 측면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직접민주주의 자체를 옳다/그르다로 평가한 것은 아닙니다. 즉, 현대 민주주의에서 간접적 요소가 더 채택되는 쪽으로 “선택”한 것이지 현대 민주주의 자체가 대의제(간접) 민주주의라고 강변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현대 민주주의에 대한 정확한 표현은 “대의제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채택하지만 직접민주주의 요소도 있는 혼합형이다.” 정도가 될 것입니다.

주민 투표, 주민 소환, 주민 발안 등의 직접민주주의 제도가 우리 정치에서 아직 뿌리를 못 내리고 있지만, 그런 제도들도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입니다. 또 우리 대통령 선거는 어떻습니까? 대의제로 가는 길이지만,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뽑는 것은 직접민주주의가 아닙니까? 이런 예들은 직접민주주의가 오히려 더 중요한 의사결정에 적용됨을 보여주며, 민주주의에서 직접민주주의적 요소를 배제할 수 없음을 잘 나타냅니다.

만약 “절차적 정당성”의 대의제 민주주의와 “인민 주권”의 직접민주주의가 서로 부딪히면 직접민주주의가 우월적 지위를 갖는 것은 물론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4.19 혁명, 5.18 광주 민주화 항쟁, 6.10 직선제 쟁취 민주화 항쟁 등의 국민 저항이 폄훼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 민주주의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당정치가 발전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떻게?”라는 질문을 자동으로 던질 수밖에 없습니다. 촛불이 꺼지면 정당정치가 정상화될 것이라든지, 촛불의 과도한 직접민주주의가 대의제를 약화시킨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민운동과 대의제/정당정치 관계는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작금의 촛불 시위가 정당정치 발전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단언할 수 없습니다. 촛불 때문에 여의도 국회 의사당이 불타는 정도는 아닙니다. 만약 촛불과 정당정치 사이에 관계가 있다면 정치인들이 시민 사회의 입력을 더 잘 받들어야 되겠다고 깨닫는 긍정적인 효과도 포함할 것입니다. 촛불 시위 이후 여당이 보여준 쇠고기 수입 쟁점에 대한 태도변화를 참조하면, 그것이 대의제 민주주의와 정당정치에 도움을 주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2) 정치적 표현으로서 촛불?

“민주주의는 대의제 민주주의”라고 주장하면서 촛불 시위의 “정치적” 주장이 “잘못” 되었다고 평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봤습니다.
•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대의제 민주주의라서?
• 촛불이 쿠데타 음모를 꾸미고 있어서?
• 촛불이 정치적 주장을 외치면 남한이 북한에 먹히기 때문에?
• 우리 경제가 결딴나서?
• 대통령이 중도 하차하고, 여당 지지율이 급격하게 떨어져서?
• 국회가 해산될 가능성이 있어서?
• 우리 민주주의가 유신이나 5공 시절로 되돌아가기 때문에?
이런 이유는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일까요? 아마도 지금까지 정부/여당의 실패가 정권 교체의 조건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이것은 논란이 될 수는 있지만 무슨 증명을 하듯이 명쾌한 해답으로 제시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촛불이 “정치적” 구호를 외치는 것이 왜 “잘못”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자유민주주의에서는 어떤 시민도 어떤 정권에 대해서 정치적 의견을 낼 수 있습니다. 그런 운동도 합법적으로 조직할 수 있습니다. 그 요청이나 운동 목적이 구현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일부 촛불의 요구가 대통령을 다시 뽑자는 것인지, 따끔하게 대통령을 꾸짖는 정도인지도 불분명하지만, 설사 대통령을 다시 뽑자고 주장한들 그것이 무슨 “잘못”이겠습니까? 저는 시민이 그런 주장을 하는 것 자체는 자유민주주의(대의제든 직접이든)에 전혀 어긋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자유민주주의에서 정치적 성향이 다르다고 해서 함부로 상대방을 “틀렸다.”든지, “잘못”이라고 강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현 정권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잘못된 주장은 아닙니다.

촛불에 대해서 그것이 횃불이 될지, 성냥불이 될지, 그냥 사그라질지 노심초사하는 유력 인사들이 많은 것 같은데, 오버는 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과도한 주장은 침묵보다 못할 수 있습니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있으니 그런 사람들도 나름대로 정치적 주장을 할 수도 있는데, 그들의 “과분한 위치(한마디만 하면 주요 언론에서 대문짝만 하게 취급함)”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부정적 파급 효과를 고려하여 자중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특정 자유민주주의의 합의된 틀 안에서 정치적 의사표현은 최대한 존중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촛불이 정치적 의견을 개진하는 것도 민주주의 한 발현으로 이해해야 하며, 그것이 반드시 대의제 민주주의를 약화시키는 것으로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특정 시민의 정치적 선호일 뿐이며, 그런 주장이 사회 전체 결정으로 채택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3) 대통령제의 한계?

촛불 시위를 대통령제의 한계와 연결하고, 개헌해서 의원내각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일정 기준을 제시해서 민주주의의 특정 제도를 맞다, 잘못됐다는 식으로 평가할 수는 있습니다. 애로우(Kenneth Arrow) 교수의 불가능성 정리(The Impossibility Theorem)를 참조하면 민주주의 제도에 일반적인 정답이 없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민주주의 제도를 옳다/그르다는 식으로 평가할 때는 특정 조건이나 기준을 잣대로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러므로 의원내각제를 도입하는 것이 옳다면, 우리나라의 어떤 조건이나 기준에서 그 제도가 대통령제보다 우월하냐는 분석이 필요할 것입니다. 저는 우리나라는 대통령제가 성공한 사례라는 점을 중시하는 편입니다. 또한, 남북한 분단 구조, 짧은 민주주의 역사, 미성숙한 정당정치 등을 참작하면 의원내각제를 도입하는 것은 아직 적절하지 않다고 봅니다. 기존 대통령제를 수정, 보완하는 정도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요즘 오히려 걱정하는 것은 정치인들이 “야합”해서 의원내각제로 바꾸면 어찌하느냐는 것입니다. 권력구조와 같은 근본적 정치제도의 급격한 변경은 “정치 교육”을 비롯한 유형, 무형의 막대한 비용이 소요됩니다. 정치에서도 “공짜 점심”은 없습니다. 의원내각제 지지자들은 대통령제의 단점과 의원내각제의 장점만 드러내는 경향이 있는데, 전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편익 계산을 제대로 해야 할 것입니다. //

2009년 7월 30일 목요일

[자유] 인터넷과 민주주의

(1996년 3월 1일에 작성한 글입니다. 현 시점에서도 유효한 내용이라서 올립니다.)

국회가 필요 없는 세상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 원래 국회란 대의정치의 편의 기구로서 만들어진 것이므로 국민의 뜻을 더 잘 대표할 수 있는 방편만 있으면 국회나 국회의원은 없어도 된다는 논리도 가능하다. 지금 미국에서는 현대 문명의 발전에 힘입어 모든 안건을 전 유권자가 직접 결정하자는 운동이 일각에서 일고 있다. 인터넷을 이용한 직접 투표가 바로 그것이다. 물론 현재로서는 인터넷을 이용한 직접 민주주의가 대부분 국가에서 구체화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급속히 발전하는 정보 기술을 참작할 때, 가까운 장래에 "국회를 없애자!"라는 주장이 이곳저곳에서 나타날지도 모른다.

직접 민주주의가 아니더라도 인터넷은 전자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대의 정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믿음 중의 하나는, 더 많은 유권자가 사회의 중요한 결정에 참여하면 더 나은 결정을 가져 온다는 것이다. 따라서 민주주의에서는 대다수 여론을 최대한 존중하는 원칙을 지켜나간다. 그런데 한 사회의 크기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시민의 뜻을 어떻게 취합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문제가 반드시 생긴다. 인터넷은 그 문제를 부분적으로 해결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우리들의 곁에 어느새 다가와 있다.

인터넷이 없던 시기에는 말로 전달하든지, 신문고를 울리든지, 투서를 하든지, 종이 신문에 독자 의견을 내든지, 방송에 나가서 하소연하든지 등등의 형식으로 시민의 뜻을 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방법들은 모두 여론이 전달되는 범위가 좁거나, 전달 매체에 쉽사리 접근할 수 없는 한계를 안고 있다. 인터넷은 이런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특성이 있다. 인터넷은 광범위하며, 24시간 접근할 수 있다. 또한, 웹에서 대표적으로 구현하듯이, 인터넷은 일반 신문이나 방송과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많은 시민의 의견 피력을 허용하고 있다. 따라서 인터넷을 잘만 이용한다면, 대의 정치의 가장 중요한 명제인 여론 형성과 전달에 획기적인 발전도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전자 민주주의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서는 관계하는 모든 이의 협력과 노력이 필요하다. 근래에 주목받는 안내판 (BBS)과 인터넷 신문의 독자의견란, 혹은 포럼(뉴스 그룹)의 예를 들어 보자. 먼저,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 시민은 어떤 특정 정치인이나 현안에 대해서 말하고자 할 때, 그것이 욕설이 되지 않도록 유의할 필요가 있다. 객관적인 사실에 따라 건전한 비평이나 의견교환이 될 수 있도록, 글을 적은 후 다시 정독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아도 인터넷이 쓰레기장으로 변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타나고 있는데, 신선한 의견이 흘러 넘쳐야 할 곳에 몇몇 사람이 욕설에 가까운 표현이나, 억지 같은 논리를 펴서 대중을 피곤하게 한다면 진정한 전자 민주주의는 머나먼 일이 될 것이다.

근래에는 정치와 관련 있는 웹 페이지들을 많이 만들고 있다. 정부나 정당, 혹은 정치인들이 인터넷을 통해서 시민과 접촉을 시도할 때는, 특히 정보나 의견의 상호 교류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예를 들어서, 청와대 웹 페이지는 대통령에게 의견을 제출할 수 있도록 하는데, 만약 어떤 시민이 의견을 낸다면, 대통령이 직접 답하지는 않더라도, 담당자가 빨리 답을 해줘야 한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웹 페이지를 개설한 정당이나 후보자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가진 정보는 최대한 유권자에게 보여줘야 할 것이고, 유권자가 질의/건의한 내용에 대해서는 성심껏 답해야 한다. 더 나아가서 다른 시민이 어떤 의견을 내었는지도 될 수 있으면 공개하는 것이 옳다.

인터넷은 잘만 활용하면, 국회가 없어도 괜찮은 그런 이상향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민주주의 대원칙인 대의정치를 더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좋은 방편이 될 것이다. 아울러서, 인터넷이 민주주의에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도 연구, 검토하여 진정한 전자 민주주의를 구현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