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Notice) | 방 명 록 (GuestBoard)

2009년 7월 26일 일요일

[자유] 민주주의와 의견의 상충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8/03/26, http://jkl123.com/)

자유민주주의 기본은 어떤 행위의 선택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거의 없다."라는 것을 인정합니다. 종교에 있어서는 어떤 행위의 선택에서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편입니다만, 절대자를 인정하지 않는 자유민주주의적 사고방식에서는 어느 특정인의 생각이나 제안을 절대적 진리로 받들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의 신봉자인 로체스터 대학의 故 라이커(William H. Riker) 교수는 룻쏘(Rousseau)를 --- 조금 과장되게 옮기자면 --- 일종의 "사기꾼"으로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즉, 있지도 않은 "일반의지(General Will; Volonte Generale)"를 갖고 자유민주주의의 가면을 썼다는 것이지요. 스탠포드대 경제학과 애로우 (Arrow) 교수의 "불가능성 정리 (Impossibility Theorem)"를 참조하면, 자유민주주의하에서 절대적으로 옳은 사회적 선택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유민주주의에서 사회적 선택은 어떤 것이나 정당화될 수 있느냐는 당연한 문제가 그다음 화두로서 대두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칫 잘못 생각하면 지적 상대주의를 취하는 자유민주주의에서는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 없으므로, 아무렇게나 결정해도 된다는 식으로 유추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유추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적용되는 절대적인 것은 없더라도, 일정한 원칙을 잣대로 채택해서 어느 것이 상대적으로 옳은 것인가라는 논의는 항상 가능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반드시 해야 합니다.

그런데 원칙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고 여러 원칙이 매우 다양하게 제시될 수 있으므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갑과 을이 논쟁을 했는데, 제 삼자들이 보기에는 갑의 주장이 더 훌륭한 것으로 판정했음에도 을이 마음의 문을 닫고 계속 자신의 주장을 고수하겠다고 하면, 이 문제를 자유민주주의적으로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1) 말로 설득하고, 듣지 않으면 우격다짐을 하고, 그래도 말이 통하지 않으면 때려서라도 을의 생각을 고쳐야 한다.
2) 포기하고 을을 다른 나라로 추방해야 한다.
3) 을을 완전히 무시하고 상대하지 않는다.
4) 을의 의견을 존중하여 을의 지분을 인정해준다.
5) 을을 계속 설득해보고, 그래도 갑에 동의하지 않으면 을의 의견은 존중하지만, 사회적 선택으로는 채택하지 않는다.

1)은 폭력적이라서 곤란하겠지요? 또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입니다. 자유민주주의를 채택한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경향이 왕왕 관찰되곤 했습니다. 정치적으로 2)와 같이 해결하는 곳도 있습니다. 을의 생각이 사회적 해악을 장차 가져올 수 있다고 판단되면 이 방법을 쓸 수도 있을 것입니다. 3)은 을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겠다는 뜻인데,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4)와 같이 일을 해결해나가면 "땡강" 부리는 사람들이 자유민주주의를 악용하는 사례가 날이 갈수록 늘겠지요?

5)가 적절한 것 같습니다. 즉, 절대적으로 옳음을 증명하지 못하므로, "당신이 옳을 수도 있지만, 지금은 당신 의견을 전체사회 결정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음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오." 정도가 자유민주주의적으로 바람직한 결정이 될 것입니다.

사회가 몇 명 안 되는 소수 인원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어떤 사회적 결정이 쉽게 내려질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같이 매우 많은 인원이 전체 결정에 참여해야 하면, 그 결정 과정이 복잡하고 어떤 원칙이 어떻게 적용되어야 할지가 애매모호할 때가 잦습니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사회적 결정에서 흔히 옳음/그름을 최종 잣대로 삼기도 하지만, 좋음/싫음의 잣대를 더 많이 참조하곤 합니다.

댓글 1개:

  1. 이준구
    (2008/03/27 10:23) Thank you for your enlightening lecture, Dr. Ahn. (안이란 성 스펠링 맞습니까?)

    안병길
    (2008/03/27 10:37) 옙, 맞사옵니다. 그 앞에 H만 붙이시면 한 교수 영문 성이 되옵니다. 따라서 AH 포라는 표현보다는 HA 포라는 표현이 더 경제적인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

    김영삼
    (2008/03/27 15:06) (정치인 선출이 아닌) 정책에 대한 국민투표가 시행된다면 기수적 선호를 반영해서 투표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기수적 선호는 국민 1인당 1점이 주어지고, 일정한 금액을 내면 1점 추가해주는 것 (한도는 3~5점 정도. 1점당 만원 정도) 그렇게 모인 금전은 국가경비에 충당해도 되겠지만 패한 쪽에 나눠주는것이 더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정책의 승리냐.. 금전적 이득이냐.. 라는 게임 속의 또다른 게임을 즐길수 있게 될테니까요. 별 영양가 없는 제 생각이지만... 한번 끄적여 봤습니다. ^^

    안병길
    (2008/03/27 20:51) 재미있는 발상인데요, 현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인 "보통 선거"를 위반하는 결정적인 결점이 보이네요.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