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이준구 교수 게시판, 2008/07/10)
중학교인지, 고등학교인지 기억이 정확하게 나지는 않지만 제가 공부한 국어 교과서에 "몇 어찌"라는 故 양주동 선생(1903~1977, 국문학자, 영문학자, 향가 연구가)의 수필이 있었습니다. 인터넷 유람을 하다 오랜만에 같은 제목의 동영상을 발견하고 무척 반가웠습니다. 동영상을 보니 요즘 국어 교과서에는 그 수필이 빠졌는지 학생들이 "몇 어찌"가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는 것 같습니다.
같은 수필에서 "삼인칭"에 대한 일화도 나옵니다. 영문법을 공부하다 삼인칭이라는 용어를 접하고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서 영어 선생님께 달려가서 여쭤 봤더니, "내가 일인칭, 너는 이인칭, 나와 너 외엔 우수마발(牛溲馬渤, 쇠 오줌과 말똥)이 다 삼인칭이라."는 재미있는 표현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양주동 선생은 생전 걸쭉한 입담으로 유명한 분이셨죠. 자기 자신을 천재 혹은 대한민국 인간 국보로 칭했다고 합니다.
양주동의 몇 어찌
김파랑새
답글삭제(2008/07/10 23:35) 멋모르고 “예, 예.” 하다 보니 어느덧 대정각(a와c)이 같아져 있지 않은가! 그 놀라움, 그 신기함, 그 감격, 나는 그 과학적, 실증적 학풍 앞에 아찔한 현기증을 느끼면서, 내 조국의 모습이 눈앞에 퍼뜩 스쳐감을 놓칠 수 없었다. 현대 문명에 지각하여, 영문도 모르고 무슨 무슨 조약에다 “예, 예.” 하고 도장만 찌다가, 드디어 “자 봐라, 어떻게 됐나.”의 망국의 슬픔을 당한 내 조국 ! 오냐, 신학문을 배우리라. 나라를 찾으리라. 나는 그 날 밤을 하얗게 새웠다.
음... 최근에 어디서 본 상황 같네요? ㅎㅎ
차현정
(2008/07/10 23:48) 저도 중,고등학교 시절 "몇 어찌"라는 수필을 배우지 못했는데 박사님덕분에 알게 되네요.
안병길
(2008/07/11 00:22) 저도 동영상 마지막 부분에서 파랑새님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는... ㅎ
지나고 나서 되새겨 보면 중고등 교과서에 명문들이 많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죠. 물론 전문가들이 매우 신경써서 골랐을테니 당연한 얘기겠죠? 또 기억나는 교과서 수록 수필은 피천득님의 수필인데, 덩치 큰 콘트라베이스가 허둥지둥 빨리 연주한다는 표현이 인상 깊게 남아 있습니다.
"야구 팀의 외야수(外野手)와 같이 무대 뒤에 서 있는 콘트라베이스를 나는 좋아한다. 베토벤 교향곡 제5번 ‘스켈소’의 악장 속에 있는 트리오 섹션에도, 둔한 콘트라베이스를 쩔쩔매게 하는 빠른 대목이 있다. 나는 이런 유머를 즐길 수 있는 베이스 연주자를 부러워한다."
플루트 연주자, 피천득(皮千得)
http://tinyurl.com/5mpvjc
김규식
(2008/07/11 09:06) "몇 어찌"....기하학에 대한 일화아니었나요??ㅎㅎㅎ한순구 교수님의 "경제학비타민"에 관련 일화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닌가요...?부젓가락 얘기가 나오면서, 경제정책에 대한 얘기도 나왔던 것 같은데............몹쓸 기억력..ㅜㅜㅜ)
그런데 박사님, 어떻게 중고등학교때의 교과서 기억까지 하실 수 있는거죠..?? 후덜덜....(저는 대화를 하다가도 주제가 뭐였는지 자주 까먹는 사람ㅋㅋ)
제자*오
(2008/07/11 13:11) 교과서의 수필을 말씀하시니 '가난한 날의 행복'이 생각납니다. 따뜻한 부부애가 인상적이었죠. 입사 초기, 잠시 만났던 분에게 제가 좋아하는 수필이라며 메일을 보냈는데 자신은 구질구질하게 사는 거 별로 좋게 보이지 않는다고 답해서 황당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참 다양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래도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지는 않겠죠?
안병길
(2008/07/11 13:28) 규식님, 감수성 예민할 때 몇 구절 정도는 머리 속에 쏙 들어오지 않던가요? 저도 대부분 기억 못 합니다.^^
제자*오님, "가난한 날의 행복", 김소운님의 수필이네요.
http://tinyurl.com/6axjql
"왕후(王侯)의 밥, 걸인(乞人)의 찬……. 이걸로 우선 시장기만 속여 두오." --- 실직한 남편이 직장을 다니는 아내에게 밥과 간장으로 점심상을 차려두고 남긴 쪽지.
김규식
(2008/07/11 15:41) 음음,,,전 왜 초등학교 때 '개미의 분비물'뭐 이런게 기억이 나는걸까요..ㅋㅋㅋ 감수성이 예민하진 않고 성격만 까칠하던 초등학생 때라 그렇것 같습니다.^^
저는 언어공부하면서 저런 재미난 글들 읽느라 꽤 즐거웠던 것 같아요.ㅋ잔잔한 감동이 있는 수필의 맛은 수험생 때 알게되었죠.ㅋ
(근데 지금은 귀차니즘의 만연으로 뒹굴뒹굴거리며 드라마만 보고 있습니다.ㅋㅋ더하기 설거지)
아아~장하늘 선생님이 한국명문100이라고해서 수필들 모아놓으신 책이 있던데 굉장히 재밌었습니다.^^정작 장하늘 선생님의 글은......알 수 없는 꾸밈말이 대거 출현해서 저는 읽기도 전에 긴장해버립니다.ㅋㅋ
hugo
(2008/07/12 00:36) 아버님의 책장에 꽂혀 있던 피천득님의 수필을 읽고 정말 이런 글솜씨를 갖고 싶다고, 그리고 피천득님을 한 번 뵙고 싶다고도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작년에 피천득님이 임종하셨을때 실망을 많이 했었습니다.
그 외에 정말 좋았던 수필은 신영복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있네요. 어떻게 감옥 속에서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으셨는지 신기했었습니다. 읽고는 "아, 나도 감옥에 가면 저런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있겠구나!" 하고 감옥에 가볼까하는 생각에도 빠졌었고.. ;;;;
안병길
(2008/07/12 11:38) 피천득님이 일찍 절필을 했는데, 그 이후에도 계속 글은 적었다고 합니다. 태백산맥의 조정래 작가가 피천득님께 왜 그렇게 일찍 절필했는지 여쭤보니, 이후에 적은 글들이 그 전에 적은 글들보다 더 좋지 않아서 발표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