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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 26일 일요일

[단상] 애국심이냐, 합리적 이기심이냐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8/03/05)

제가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시작했을 때인 80년대 후반에는 우리나라 제품의 수준이 미제나 일제보다 질이 떨어졌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애국심과 합리적 이기심 사이에서 유학생들이 고민할 때도 있었습니다. 중고 자동차를 사려고 하면 국산차를 사야 할지 일제를 사야 할지 고민하는 경우죠. TV를 살 때도 유명 브랜드인 소니를 사야 할지, 대우나 삼성을 사야할지 생각해보는 식입니다. 가격은 일제가 더 비싸지만, 중고차는 고장이 적게 나고, 나중에 다시 팔 때 받을 수 있는 가격을 고려하면, 합리적 계산에 의해서 일제 차에 끌리게 됩니다. 소니 TV를 보면 화질의 차가 제법 나니, 색감이 더 좋고 더 깨끗한 화면을 보여주는 소니를 사고 싶은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인이 외국에서 우리 제품을 애용하는 것이 더 좋다는 도덕적 명분이 고려되지 않을 수도 없었죠.

요즘은 이런 딜레마가 많이 해소되었습니다. 일부 현대차는 같은 급의 일제 차에 손색이 없을 정도가 되었고(가격은 여전히 더 싸니 더 좋죠), LCD TV "샘숭"은 명품 반열에 올랐습니다. 저도 몇 년 전에 차를 바꿀 때, 전혀 고민하지 않고 현대차를 사서 지금까지 무척 만족하면서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오래된 TV를 교체하면서 다른 딜레마가 생겼습니다. 애국심을 고려하면 "샘숭"을 사는 것이 좋은데, 가격이 너무 비싼 것입니다. 게다가 삼성 비자금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갑자기 "샘숭" 제품이 감정적으로 싫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삼성이라는 대기업이 개인 소유가 아니며, 대부분의 삼성 직원들은 자신을 위해서, 또한 우리 경제를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 것을 고려하면 그런 감정이 바람직하지 않지만, 저도 인간인지라 어쩔 수 없는 면이 있었습니다. (이 감정보다는 가격 차가 너무 많이 나서 결국 다른 브랜드 제품을 샀습니다만... ^^)

삼성가를 보면, 노블레스 오블레쥬라는 거창한 구호를 외치지 않아도 이해되지 않는 점들이 많습니다. 제가 항상 안타깝게 여기는 점이 우리 사회의 지도층들이 단기적 이익계산에는 매우 밝은데 장기적 이익계산에는 매우 둔하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우리나라가 불과 몇십 년 만에 기적에 가까운 경제성장을 이룩하면서 나타난 부작용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돈을 모아야지, 얼마나 많은 돈을 자식에게 물려줘야 행복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와중에 발생할 자신들의 고통이나 주위 사람들, 더 넓게는 국민의 아픔은 왜 그 계산법에서 적절히 처리되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것들이 결국은 부메랑으로 돌아올 텐데 말입니다.

삼성이 이번 기회에 다시 태어나서 다음에 제가 TV를 교체할 때, 조금 더 비싸더라도 애국심과 합리적 계산을 동시에 참조하면서, 아무 거리낌 없이 "샘숭" TV를 고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댓글 4개:

  1. 이준구
    (2008/03/05 22:17) 삼성 사태를 보면 "Greed does not pay."라는 말이 생각나지요. 상속증여세 몇 푼 아끼려고 그 수모를 당하는 것은 정말로 우둔함의 극치지요. 중소기업이라면 모를까 세계 일류를 자처하는 기업이 그런 촌스런 짓을 하다니요.

    안박사에게 보내는 간략한 퀴즈 (사전 보지 말고 풀어야 함) : 미국 사람이 수선화를 가리킬 때 daffodils라는 말보다 더 흔하게 쓰는 말은요?

    안병길
    (2008/03/06 00:03) 언뜻 생각나는 것은 나르시스인데요, 자신은 없습니다. 한 수 가르쳐 주시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스펠링도 자신 없어서 한글로 적었습니다. ^^

    83눈팅
    (2008/03/06 09:23) 삼성家는 썩 마음에 들지 않지만, 삼성제품을 포함해서 우리나라 제품이 고급품 취급을 받는 건 기분좋은 일이네요.

    이준구
    (2008/03/06 10:01) 미국사람들이 narcissus라는 어려운 말을 쓸 리 없지요. 그 사람들은 jonquil이라는 말을 자주 씁니다. 대학원생 때 우리 집 앞에 수선화가 가득 피었는데, 우리 집에 놀러온 미국 친구가 그걸 jonquil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잘 되었다 싶어 "야, 이 무식한 놈아. 그건 daffodils라고 부르는 꽃이다."라고 했는데 지지 않고 덤비는 거예요. 나중에 사전 찾아 보니 jonquil이 수선화라고 되어 있더군요.
    더욱 놀란 것은 꽃 카타로그에도 그 이름으로 나와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한번은 어디 수목원에 갔더니 우리나라에 흔한 플라타너스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함께 간 미국 친구한데 그 이름을 말했더니 이 녀석이 그 나무는 sycamore라고 우기더군요. 그런데 sycamore라는 이름은 우리 집 바로 앞 거리의 이름이기도 해서 예전에 사전 찾아본 적이 있거든요. 단풍나무과로 되어 있는 것을 기억해, 자신있게 그 나무는 sycamore가 아니라고 우겼지요. 결국 제3자의 개입에 의해 해결될 수밖에 없었는데, 미국사람들은 플라타너스를 syamore라고 부르며 플라타너스는 학술적인 명칭이라나요. 둘 다 맞았지만 내가 더 격조 높은 이름으로 알고 있어 정신적 승리를 거뒀지요.

    오늘 아침 조선일보에 "또 다른 침묵의 봄"이라는 컬럼글이 있는데, 아주 좋았습니다. 꽃 이름, 새 이름에 무지한 세상이 되어가는 것을 개탄한 글입니다. 이 글 읽는 모든 사람이 한번 읽어보기 바랍니다.

    안병길
    (2008/03/06 10:45) 위의 수선화 사진은 어제 아침 동네에서 산보하면서 찍었습니다. 선배님께 또 좋은 정보를 얻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위키에 찾아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네요. 특히 미국 동남부에서 jonquil라고 많이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The name jonquil is sometimes used in North America, particularly in the southeastern, but strictly speaking that name belongs only to the rush-leaved Narcissus jonquilla and cultivars derived from it. In the southern United States, narcissus are sometimes referred to as buttercups.

    Flowers of the tazetta-group species Narcissus papyraceus are commonly called paperwhites."

    제자*오
    (2008/03/06 12:30) 예전 학교 다닐 때 미학과의 모 교수님께서 대학원생들을 데리고 나무 심던 광경이 생각납니다. 기숙사 올라가는 길의 14동 근처에서 곧잘 목격하곤 했는데요. 아래 글에서 교수님께서도 화단을 가꾸신다는 글을 본 기억이 납니다. 어디인지 알려주시면 휴일에 구경 갈까 합니다.

    이준구
    (2008/03/06 22:16) 그 오선생님에게 꽃 몇 개를 얻어온 적도 있네. 그 분은 인문대라 학생들을 쉽게 동원하셨을 거라고 생각하네. 내 화단은 사회대와 멀티미디어동 사이에 있는데, 지금은 깊은 겨울잠에 빠져 있네.
    한 달쯤 있어야 조금 변화가 있을 것이네.

    제자*오
    (2008/03/07 08:36) 올 봄에는 아내에게 2동 주위의 라일락 향기, 기숙사 근처의 벚꽃, 그리고 교수님의 화단을 소개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따뜻한 봄날이 어서 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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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블로그 개설을 축하드립니당~~~

    저도 삼성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았는데, 한국 와서 보험회사 아줌마가 삼성자동차 보험이 4만원 싸다고 해서 얼른 들어 버렸네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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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이런글이 올라왔었군요.
    전 여기서 처음 보네요^^
    삼성에 대한 생각은 안박사님의 의견에 동의하고 또 댓글의 새로운 정보도 흥미롭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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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한 교수님, 방문해주셔서 큰 영광입니다. 축하 말씀, 감사합니다. 한 교수님 선택은 합리적인 것이죠. 저도 그렇게 했을 것 같습니다. 요즘같이 경기가 좋지 않을 때 4만 원도 크죠.^^

    BeA님, 제가 이 교수님 게시판에 글을 많이 올리기는 했나 봅니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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