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Notice) | 방 명 록 (GuestBoard)

2009년 7월 27일 월요일

[수필] 인터넷 필명 晴海.

청해라고 하면, 신림사거리 근처 횟집인 청해수산이 먼저 떠오르지 않으십니까? ^^ 인터넷에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도 있고, 제가 "느끼" 한 이야기를 많이 해서인지, 필명이 너무 고리타분하다든지, 윤리도덕 교과서 냄새가 난다고 태클을 거는 분도 있더군요.

晴海는 제 고향 바닷가 카페 이름이었습니다. 윤리도덕과는 거리가 조금 있습니다.^^ "버스에서 앉아 있으면 가지 않고, '서면' 간다."는, 그 부산 서면에서 광안리 남천동 저희 집으로 이사한 것이 1970년이었습니다. 그 당시 저희 집 주변에 논이 있을 정도로 외진 곳이었습니다. 위치도 애매했습니다. 아예 해운대로 들어가든지, 문현동이나 대연동 정도로 도심에 가까운 것이 좋다는 이야기를 주위 어른들에게 어릴 때 많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보니, 아버지는 탁월한 안목으로 광안리 남천동을 찍으셨습니다. 지금은 서울로 치면 신사동 정도 된다고 보시면 될 것입니다. 제가 어릴 때는 그렇게 잘사는 동네가 아니었습니다. 바닷가는 한적했고, 허름한 횟집들이 바다를 바라보고 드문드문 늘어서 있었죠. 저는 고등학생 때까지 바다에서 자주 놀았습니다. 해수욕장이 바로 코 앞이니 여름방학 때는 거의 매일 해수욕을 했죠.^^ 고등학생 때, 대학 입시의 무게로 마음이 괴로우면 바닷가에 가서 넋을 잃고 앉아 있을 때도 잦았습니다. 탁 트인 바다를 보면 한결 기분이 풀리더군요.

아버지의 예상은 적중했습니다. 바다를 바라보고 오른쪽 끝에 조그만 돌섬이 있었는데, 어느 날 그 돌섬과 육지를 잇는 방파제를 만들고 매립을 시작했습니다. 그 매립지에 종합관광단지를 만든다는 거창한 계획이 발표되었지만, 결국 대형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습니다. 그 때부터 제가 사랑했던 조용한 바닷가에 개발의 광풍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광안리 바닷가에 최초 카페가 생긴 것이 1979년입니다. (지금은 카페 정도가 아니죠. 바닷가 전체가 난리 부르스입니다.^^) 그 카페 이름이 晴海입니다. 바닷가에서 산책하면서, 신기한 도회지 풍의 찻집이 생겼다는 생각은 했지만, 들어갈 엄두는 못 냈죠. 고등학생이었으니까요. 이름도 특이했습니다. 그냥 푸를 청이 아니고, 갤 청이라서 제 관심을 더 끌었습니다.

서울대 합격 통지를 받았을 무렵, 셋째 형이 그 카페로 저를 데리고 가시더군요. 10 명 정도가 앉으면 찰 것 같은 조그만 공간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가끔 들러서 카페 주인이나 부인과 친하게 지냈습니다. 주인은 서울에서 내려온 최고학부 출신이었는데, 카페 일은 거의 하지 않고 낚시만 즐기는 것 같더군요. 따라서 커피 타는 일은 대부분 주인 부인의 몫이었는데, 간난 아기를 업고 고생하더군요. 별로 자유민주주의적인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방학 때 고향집에 가면 제가 즐겨 찾는 곳이 그 카페였습니다. 문만 열고 나가면, 넓은 바닷가여서 매우 좋았죠. 제가 좋아하는 베버 클라리넷 협주곡 LP를 선물하고, 갈 때마다 그 음악이 나오도록 유도하는 센스도 발휘했습니다. ^^ 시간이 흐를수록 손님은 늘어났고, 제법 장사가 되자, 가게 건물주인이 탐을 냈습니다. 그래서 가게 세를 갑자기 높게 올렸는데, 감당이 되지 않아서 그 부부는 광안리 바닷가를 떠났습니다. 광안리 첫 카페의 끝이었습니다. 카페 이름이 晴海에서 海晴으로 바뀌었습니다. 몇 번 가봤는데 이전 분위기가 전혀 나지 않아서 그 이후로 발길을 끊었습니다.

한참 뒤 카페 아주머니를 다시 본 것은 해운대였습니다. 이번에는 카페가 아니고 분식집을 하시더군요. 머쓱해서 인사는 하지 않았습니다. 아주머니가 여전히 등에 아기를 업고 있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베버 클라리넷 협주곡 제1번 제2악장을 한번 들어보시죠. 제가 가장 좋아하는 선율입니다.

Weber, concert n. 1. (II mov. Adagio) Calogero Palermo clarinet
Calogero Palermo plays Carl Maria Von Weber, concerto n° 1 in fa minore per clarinetto e orchestra op. 73 - Adagio

(사진 출처: http://blog.joins.com/media/index.asp?uid=pnet21&folder=8)

댓글 10개:

  1. 가입해서 블로그스팟 레이아웃스타일을 슬쩍 보았는데
    만들기는 편하게 했는데 수정하기가 그리 쉬운것은
    아닌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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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와사비님, 어서오세요. 좀 그렇죠? 블로그도 우리나라 포털 사이트가 훨씬 선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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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블로그 개설 축하드립니다. 자주 들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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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익명님, 캄샤합니다. 자주 놀러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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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병길아 반갑다 서울언제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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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절친 주환, 어서 오소. 9월로 목표를 잡고 있는데 아직 미정이다. 확정되면 연락줄게. 8월은 안 될 것 같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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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저와 동향이시네요. 저는 동래에 살았습니다.
    청해님에 자극 받아서 저도 블로그를 새롭게 관리하려고 결심하였습니다. 예전에 html로 홈페이지를 직접 만들때는 Scratch board를 만들어서 꽤 적극적으로 글을 쓰고 친구들과 교류도 잦았는데, 싸이가 유행하면서 퇴조해 버렸어요. 그 후로 몇 번 시도는 했었는데 예전만큼 잘 안되더군요. 이젠 좀 다를 것이라 각오하고 시작해 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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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생각의 정원님,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로 시도하시는 일이 잘 되길 기원합니다. 개장하시면 꼭 저에게 알려주세요. 기쁜 마음으로 놀러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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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좋은 이름이네요.

    晴海에서 조금 북쪽으로 가면 淸道라는 곳도 있었는데. 주로 감이나 복숭아를 파는게 좀 다르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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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Little Rock님 반갑습니다. 제 초청을 승낙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청도에 가면 감이나 복숭아를 푸짐하게 먹을 수 있어서 좋을 것 같습니다. 경부선을 오르내리면서 청도 간판을 본 적은 많은데 아직 한번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이전에 떼루아라는 드라마에서 감 와인을 만드는 곳으로 청도가 나왔던 것 같습니다.^^ 즐거운 한 주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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