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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 29일 수요일

[수필] 바람직한 제자 상이란...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9/07/01, http://jkl123.com/)

(치악산에서. 자주색 모자 쓴 젊은? 청년?이 저입니다. ㅋㅋ 2004년 )

선생님들에게 가장 큰 보람은 역시 제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게시판의 글들을 읽으면서, 이 교수님께서 제자들을 생각하시면 흐뭇하실 때가 잦겠다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저에게도 제자들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러시아에서 온 학생이 조금 특별한 경우라서 요즘도 한 번씩 생각이 나곤 합니다. 그 학생은 러시아 정부가 한국통으로 키울 요량으로 상당한 투자를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울대 학생으로 오기 전에 평양의 김일성 대학에서 우리말을 공부했으며, 서울대도 일종의 러시아 국비 장학생으로 한국학 석사과정에 입학했으니까요. 그 한국학 과정은 외국인 학생들이 대부분이었고, 강의와 학위논문 작성은 우리말로 했습니다. "한국어 몰입" 교육이었던 셈이죠.

그 잘 생긴 러시아인 학생이 저에게 논문 지도교수를 해달라고 찾아왔었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제 사부께 지도교수 청을 드리러 갔던 장면이 그때 떠오르더군요. 받아주실지 아닐지 가슴을 졸이면서 겨우 말씀을 드렸더니, 제 미국 사부는 공부 얘기는 하지 않으시고, "We need to maintain an intimate relationship." 한마디만 하시더군요. 그 학생이 어렵게 어렵게 말을 꺼내는 것을 보고, 옛 생각이 나서 흔쾌히 승낙하여 스승-제자 관계가 성립했습니다. 논문 주제는 남북한 관계에 관한 것이었는데, 나중에 지도하면서 간단한 게임 모델도 활용하도록 했었습니다. 학위 논문의 한글 교정을 보면서 상당한 시간을 들였던 기억이 납니다.

그 러시아 학생을 포함해서 학생들과 소주를 한잔하러 가면 주위 사람들이 모두 신기하게 쳐다봤습니다. 일단 생긴 것이 많이 다르니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고, 외국인 학생이 우리말을 매우 잘하니 그것도 일종의 구경거리가 되었던 것이죠. 한 술 더 떠서 그 학생이 저에게 소주잔을 받을 때, 처음에는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공손하게 받았으니 주위 사람들이 보면 아마 가관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군사부일체를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더 잘 아는 것 같더군요.

그 학생의 한국 사랑은 유별났습니다. 석사 과정을 마치고 러시아로 돌아가서 외교관이 되었습니다. 자신은 당연히 서울로 발령을 받을 줄 알았는데, 그런 낌새가 없자 과감하게 사표를 던졌고, 러시아 한 신문사의 특파원이 되어서 다시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서울로 오고 싶어서 그랬다고 그러더군요. 아마 지금도 서울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을 것입니다.

선생님들에게 가장 바람직한 제자 상은 어떤 것일까요? 저는 그 러시아 학생이 그런 제자 상에 가까웠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공부도 열심히 했고, 스승을 대하는 태도도 예의 바르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얘기는 모두 하는 편이었으니까요. 덧붙여서 사회에 진출하여 반듯하게 살거나(부정부패하지 말고, 남 등쳐먹지 말고, 능력껏 주위를 도와주면서 자기실현을 추구), 스승을 학문적으로 뛰어넘을 수 있으면 금상첨화가 되겠습니다. 아래에서 이 교수님께서 청출어람이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그런 경우입니다.

이 교수님 학생들이 바람직한 제자가 되어서, 이 교수님께 아름답고 보람있는 추억으로 남게 될 것을 감히 기원해봅니다.

(요즘 이 교수님께서 이 게시판에 들이시는 정성을 보건대, 교수-학생 소통이라는 측면에서 학생들에게는 매우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듭니다. 경제학에서 행위 주체를 흔히 합리적 행위자로 가정하는데, 실습을 할 좋은 기회인 것 같습니다. 많이 많이 활용하세요. ^^)